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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영남등산문화학교 | 양산등산교실 원문보기 글쓴이: 오상수
◇ 고행(苦行)과 수행(修行)의 길, 내 인생의 안나푸르나 (15)-최종회… ◇
* [HIMALAYA ANNAPURNA ROUND TREKKING] ♣…집필 오상수 *
▶ 2013년 4월 2일 (화요일) : 제14일
*[카투만두]-하늘 길-[방콕국제공항]
☆… 카투만두에서 마지막 밤을 보냈다. 아침의 날씨는 청명하고 햇살은 화사했다. 오전 8시, 삼사라호텔의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난 후, 짐을 꾸렸다. 우리를 환송하기 위해서 이번 트래킹에서 가이드를 맡았던 셀파 겔젠이 찾아오고, 쿡 마일러도 왔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아세아트래킹의 툭텐 부사장도 왔다. 모두 우리를 환송하기 위해서 우정 달려온 것이다. 공항으로 출발하는 차에 오르기 전, 툭텐 부사장은 네팔의 전통적인 방식으로 우리를 환송했다. 우리가 공항에 도착할 때처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연황색의 ‘카타’(실크 목도리)를 목에 걸어주며 따뜻하게 손을 잡고 인사를 했다. 정성을 다하는 예절이었다. 아주 절친한 가족을 멀리 보내는 애틋함이 묻어나왔다. 트래킹을 통해 검은 얼굴이 더욱 검어진 겔젠과도 악수를 나누었다. 키가 작고 정이 많은, 소년 같은 50대의 마일러와 포옹하고 악수를 했다.
*[카투만두 트리부반공항]-하늘 길-[방콕국제공항]
☆… 오후 1시 30분, 우리는 네팔의 카투만두공항을 출발하여 3시간의 비행 끝에 방콕공항에 도착했다. 방콕공항은 세계의 허브공항으로 그 규모나 시설이 엄청났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인천국제공항이 시설이나 시스템면에서 세계 최고의 공항으로 평가를 받고 있지만 지리적 위치에서는 방콕공항이 유리한 조건을 지니고 있는 것 같았다. 유럽이나 호주 그리고 동아시아로 통하는 길목에 위치한 방콕공항은 엄청나게 많은 승객들이 거쳐 가는 곳이다. 사실 거대한 나무의 가지처럼 뻗어 나간 거대한 건물의 규모도 그렇지만 공항 내부 상가에는 서울에서 성시를 이루는 유명 백화점처럼 많은 사람들이 붐볐다. 우리들은 사람이 비교적 적은 공항 대합실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태국의 쌀국수로 간단하게 저녁 식사를 했다. 그리고 각자 적당하게 시간을 보냈다. 쇼핑을 하기도 하고 공항의 여기저기를 구경도 하고 인터넷검색도 했다. 대원들이 뿔뿔이 산보를 나간 사이, 나는 그냥 자리에 앉아 있는 재성 군과 같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 [방콕국제공항 로비] …전도양양한 재성이를 위하여
☆… 평생 교육자의 길을 걸어온 호산아 백파는 노재성 군에게 찬찬히 이야기를 해 주었다. 재성이는 장래 뮤지컬 배우의 꿈을 지닌 부산 해강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다. 백파가 말했다. 단순히 인기 직업인으로서의 배우 아니라 평생을 훌륭한 예술가의 길을 가고자 한다면 전문적인 기량뿐만이 아니라 인간적인 덕목을 갖추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독서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을 힘주어 말했다. 예술적 창의성을 발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문학·역사·철학 등의 인문학적 교양과 지식을 갖추어야만 한다는 것이 그 요지였다. 재성 군은 내 이야기를 주의 깊게 경청했다. 착하고 순수한 심성을 지니고 있는 학생이다. 아버지 노민수 님은 미국계 보험회사인 메트로라이프의 부산·경남 본부장이라고 했다. 일찍이 어린 재성이를 데리고 중학교 2학년 때 아프리카의 최고봉 킬리만자로를 등정했고 고등학교 1학년 때는 유럽의 최고봉 알프스의 몽블랑까지 다녀왔다. 이번에도 방학도 아닌 학기 중인데 아들을 강하게 키우고 아들 스스로 인생의 지혜를 터득시키기 위해 이렇게 히말라야로 보낸 것이다. 특별한 사랑이 돋보이는 아버지이다.
*[방콕국제공항의 이별] …서울행과 부산행
☆… 밤 11시 10분(한국 시간으로 새벽 1시 10분), 서울 팀인 호산아 백파와 기원섭이 방콕국제공항에서 그 동안 정들었던 부산대원들의 환송을 받으며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탑승했다. 그리고 두어 시간 뒤에 부산의 대원들은 김해국제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탈 것이다. 나처럼 유난히 얼굴이 새까매진 여삼동 사장, 허연 수염이 덥수룩하게 빛나는 전민수 사장, 야무지고 짜임새 있는 몸매를 가지고 있는 김석순 대원, 말없이 성실하게 트래킹을 마친 착한 고3 노재성 군, 그리고 15일 간의 험난한 히말라야 대장정을 원만하고 깔끔하게 이끌어 준 외윤 이상배 대장 등의 면면을 다시 한 번 바라보았다. 이제 우리는 그 아프도록 아름다운 동행의 역사를 쓰고 각자의 삶터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 대장의 제의로, 이번 우리들의 히말라야의 역사를 기념하기 위해서 기념로고-'AROUND ANNAPURNA'를 넣은 파카를 만들어, 착복식을 겸하여 재회의 등반을 하기로 약속했다.
▶ 2013년 4월 3일 (화요일) : 제15일 (최종일)
*[방콕국제공항]-[인천국제공항] …‘자연인’의 무사 귀국
☆… 2013년 4월 3일 이른 아침 6시, 장장 15일간의 히말라야 대장정을 마치고 무사히 귀국했다. 시계는 다시 태국 방콕보다 2시간 먼저 가는 한국의 시간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우리의 시간, 나의 일상으로 돌아온 것이다. 호산아의 턱과 구렛나루에는 2cm 정도의 털이 덥수룩하게 자라 있었다. 강렬한 햇빛과 눈부신 눈밭이 태운 새까만 얼굴이 가관이었다. 그러나 마음은 가뿐했다. 히말라야의 기나긴 고행을 통해 그 동안의 인습에 찌든 의식의 허물을 벗고 온 기분이었다. 짧은 동안이나마 ‘자연인(自然人)’의 삶을 살았던 히말라야의 여정이 아프고 은은한 여운으로 가슴을 채웠다.
산에 오를 땐
오직, 겸허한 마음으로
가슴에 산을 안고
올랐다.
산에서 내려올 땐
온몸에 산을 지고
내려왔다
아, 벅차고 아름다운 고행(苦行) -
늘 한결같이 거기
있는 산(山)
억만 년 침묵 속에서
끊임없이 생명(生命)의 언어를
안겨주는 산(山)
내 인생의 거대한 산(山) —
아아, 안나푸르나!
▶ [에필로그] 히말라야 설산고행의 의미
☆… 집으로 돌아오는 공항리무진버스 안에서 눈을 감고 조용히 생각했다. 몸은 히말라야 거산이 누르는 듯한 피로감으로 무거웠지만, 이상하게도 정신은 수정(水晶)처럼 맑았다. 히말라야에서 나는 무엇을 안고 왔는가.
☆… 생각해 보면, 히말라야(Himalaya) 여정은, 우리 인생의 한 과정을 그대로 보여 주는 것이었다. 연둣빛 신록이 파릇파릇 살아나오는 베시사하르(Besisahar)의 봄기운이 평화로운 유년의 순수였다면, 서서히 고도를 높이면서 올라가야 하는 마르샹디(Marshangdi) 대협곡의 여정은 젊음의 뜨거운 땀방울이었다. 길고 험난한 노정이었다. 참제(Camje)에서, 다네큐(Danaque)에서, 차메(Chame)에서, 그리고 피샹(Pisang)에서 해 뜨면 걷고 해 지면 자야 하는 일상이 되풀이 되었다. 우리네 일상(日常)처럼—.
그렇다. 인생은 나그네의 길, 그래서 이백(李白)은 일찍이 ‘인생(人生)은 백대지과객(百代之過客)'이라고 했던가. 그렇게 인생의 짐을 지고 걸어가야 하는 길이었다. 힘들기도 했지만 땀 흘린 만큼 행복한 시간이었다. 남중히말, 안나푸르나, 강가푸르나의 설산거봉이 함께하고, 홍데(Hongde) 평원의 히말라야소나무가 지켜보는 가운데, 이른 봄 호숫가에서 풀을 뜯고 있는 염소들의 모습에서 목가적 평화도 흘렀다.
☆… 그러나 마낭(Manang) 가는 길은 절박한 인생처럼 갈수록 숨이 가빠지고 몸은 무거운 피로감에 젖어 들었다. 야크크라카(Yak Kharka)에서 순정한 야크의 눈망울과 마주하는 고지의 초원에는 고즈넉한 오후의 햇살이 흘렀다. 그렇게 하룻밤 어질머리 숨결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해발 4,500미터에 위치한 초룽페디(Thorung Phedi)의 산장에 오르기 위해 마음을 다하고 몸을 다하여 걸었다. 절벽과 협곡의 출렁다리와 위험한 모래 사면으로 난 외길을 걸었다. 별빛이 쏟아지는 고지의 산장에서는 출전을 앞둔 병사처럼 깊은 잠을 들지 못했다.
☆… 야심(夜深) — 한밤중에 일어나 밝은 달을 바라보고, 북두칠성을 헤아리며, 꼭 50년 전 어린 아들을 남겨놓고 쓸쓸하게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고, 소중한 가족을 생각하고, 정겨운 친구를 생각했다. … 그리고 우리는 한밤중에 일어나 싸늘한 달빛 속에서 '하늘'을 향하여 오르기 시작했다. 설산고행(雪山苦行)은 하나의 온전한 그 무엇이 되기 위해서 겪어야 할 통과의례(通過儀禮, Initation)인지 모른다. 부처님도 인생이란 난제를 풀기 위해 6년간의 설산고행을 하지 않았던가.
☆… 드디어 다다른 곳, 아아 이번 트래킹의 정점인 초룽라(Chorung La, Chorung Pass)는 하늘과 가장 가까운 순백(純白)의 설원이었다. 숨 가쁘게 살아온 인생이 절대의 하늘과 만나는 장소이기에 감격과 흥분이 교차하면서도 숙연이 어떤 자각이 가슴을 저리게 했다. 힘겹게 걸어온 길과 앞으로 가야 할 길의 한 정점에서, 나도 모르게 ‘지천명(知天命)’이라는 성현의 말씀이 떠올랐다. 파란 하늘, 밝은 햇살, 눈부신 설원에서 순정한 언어가 말한다. … ‘인생은 결국 아픈 사랑이다.’
… 이번 안나푸르나 원정대에 동행한 지기 기원섭은 그의 산행후기에서 이렇게 술회하고 있다.
‘지구의 등뼈’같은 히말라야 산군, 그 중의 하나인 안나푸르나 라운드 트레킹은, 내게 있어 구도(求道)의 길이기도 했다. 비록 지치기는 했지만, 그 길은 한없는 행복감을 내 가슴 깊숙이 담아주고 있었다. 바로 그 행복감 때문에, 지치고 힘든 그동안의 일정도 잘 견뎌냈고, 앞으로 다가올 일정에서도 마찬가지로 잘 견뎌내야 했다.
그렇다. 숨 막히는 고통(苦痛) 속에서도, 걷는 자만이 느낄 수 있는 어떤 행복감(幸福感)이 교차하는 구도(求道)의 길, 그것은 일종의 '고통의 축제'라고 할 만하다. 묵티나트로 내려가는 기나긴 여정, 1,300m의 고도는 낮추는 눈밭 길이다. 갑자기 구름이 몰려오고 눈보라가 몰아치는 길목에서, 발목을 다친 친구와 함께 걸으며 생각했다. ‘인생이란 이렇게 아픔을 함께 하는 동행인 것을….’
☆… 눈 내린 묵티나트(Muktinath)의 아침은 한겨울의 고산 풍경을 보여주었고, 이어서 화사하고 따뜻한 햇살이 흐르는 칼리간디키(Kali Gandaki) 강을 따라 걷고 걸었다. 길에서 봄을 맞이했다. 좀솜(Jomsom)에서 바라본 티리초 거봉의 준엄한 산정에는 차가운 눈바람이 피어오르고 있었지만, 좀솜의 한 복판을 흐르는 강가에는 파릇파릇하게 버드나무의 새잎들이 살아나고 있었다. 삭막한 산협을 벗어나, 초록의 밀밭이 펼쳐진 마르파(Marpa)의 들판은 5월의 순풍처럼 촉촉한 서정이 흘렀다.
☆… 그리고 무엇보다 짠하고 아쉬운 작별도 있었다. 트레킹 내내 뜨거운 감동과 송구한 마음을 갖게 했던 네팔 친구들! 그 무거운 짐을 지고도 힘든 기색 하나 없이 묵묵히 동행해준 네팔 친구들의 착하고 순수한 인간성을 잊을 수 없다. 아아, 쿡 마일러 따망! 가이드 겔젠 셀파! 그리고 가지! 니마! 락빠! 기스너-앰럿 형제!
왼쪽부터 잊을 수 없는 — 쿡 마일러 따망, 포터 앰릿, 락빠, 춤 잘추는 막내 니마, 기스너, 가지, 그리고 가이드 겔젠 셀파! (홍데평원에서)
‘그렇게 험한 산을 왜 힘들게 가는 거냐?’
☆… 내가 귀국한 사실을 카톡으로 몇몇 친구들에게 사진과 함께 보냈다. 그 중에 한 친구가 히말라야 원정 산행을 무사히 하고 돌아온 나에게 축하와 격려의 메시지를 보내오면서 다음과 같이 되물어왔다. ‘그렇게 험한 산을 왜 힘들게 가는 거냐?’ 그래서 나는 이렇게 답했다. ‘나는 산이 고통스러워서 좋다네, 그 고행 속에서 그 동안 내 심신에 쌓인 잡것들이 싹 씻어지거든!’ 내 나름 많은 의미를 담고 한 말이었다. 친구에게 금방 회답이 왔다. ‘거 참, 말 되는구만. 이거 백파가 히말라야에서 터득한 내공(內功) 같은데. 어록(語錄)에 올려야 되겠어!’ 그렇다. 내 지난 40년 동안 뜨거운 땀방울을 흘리며 산길을 걸었고, 이번 히말라야에서 200km가 넘는 험난한 산길을 걷고 돌아 5,400고지 설산준령을 넘으면서 나름대로 터득한 깨달음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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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필] 호산아 : 백파(柏坡) 오상수(吳尙洙) 010-6203-0885 ksbpoh@naver.com
첫댓글 장도의 긴여정 의미있는 한해를 보낸것을 축하드립니다
간접경험이 할수있게해주셔서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