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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창궐해, 각 국가와 제약사들이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 과정에서 백신 개발과 관련해 언론에 자주 등장한 국가가 있다. 바로 러시아다. “백신 개발에서 앞서고 있다” 등의 얘기들이 여론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면서 코로나 백신과 관련해 러시아는 항상 화제 중심에 섰다.
러시아 백신 시장은 제약산업과 별도로, 정부 구매(정부 조달)가 수익 창출과 유통구조에서 지배적이다. 러시아 연방은 매년 ‘국가 백신(예방접종) 계획’ 하에 연간 예산(정부 입찰 예산)을 책정하고 있다. 러시아 연방 산업통상부 발표 내용을 인용한 현지 언론 기사에 따르면 러시아 연방의 ‘국가 백신 계획’ 예산은 2020년 급격히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2년 해당 예산은 56억 루블이었으며 2020년은 266억 루블(약 3억 7,400만 달러)로 루블 기준 375%가 증가했다.
러시아는 ‘B형 간염·감염성 폐렴·파상풍·급성 회백수염’ 등 12개 감염병을 ’국가 백신 계획‘의 개발 대상으로 하고 있다.
러시아 현지 제조 백신은 전체 시장의 84%(수량 기준으로 94% 비중)를 차지하고 있어 수입 의존도는 매우 낮다. 이는 소비에트 시절부터 보유한 기초과학 기술력을 기반으로 개발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실질적으로 러시아 백신 시장 중 72%가 연방정부 구매와 지방정부 구매로 수익을 얻고 있고 시중 판매 수익 비중은 2%에 불과하다.
백신 상황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의학 산업은 면역력을 키우면서 최소한의 약으로 암이나 심장병 등의 질환을 치료하는 생물학적 치료법에 큰 강점이 있다. 특히 유전인자와 인체의 단백질 정보를 연구하는 게놈 등 생명공학 분야에서도 선두를 지키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글에서는 러시아 보건의료체계와 관련해 러시아의 공공성을 이야기한다.
▲ 의사는 민중의 친구다라는 문구가 써 있다. © 이인선 통신원 |
1. 소련 시기의 보건의료체계
혁명 직후 소련은 오랜 내전과 기근으로 인해 유럽 등 서방 국가 못지않게 감염병이 창궐했다. 열악한 생활환경으로 인해 소련 인구의 1/4가량이 감염 질환 등에 노출되어있는 실정이었다.
러시아 혁명 직후 볼셰비키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보건의료체계 구축의 6대 원칙을 공표했다.
ㄱ) 양질의 의료 서비스
ㄴ) 모든 인민이 이용 가능한 서비스
ㄷ) 국가에 의해 제공되는 단일, 통합된 서비스
ㄹ) 무상 의료 서비스
ㅁ) 건강한 국민을 만들어내기 위한 예방의 집중
ㅂ) 건강서비스에 있어서 전체 노동자의 참여
소련을 포함한 사회주의 국가의 사회보장제도는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고 다양한 사회보장제도를 갖추고 있다. 이 제도는 일할 능력이 있고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고용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즉, 어떤 상황에서도 일을 잃는 사람은 없다. 사회보장 소요 재원은 전액 국가가 부담하며 노동자는 일체 부담하지 아니한다.
소련은 의료 인력을 대량 양성하고 병원 인프라를 구축하였다. 소련의 의료 기반을 서방 선진국과 비교한 자료에 의하면 1989년에 인구 1만 명 당 병상 수는 139개로 OECD 평균의 90개보다 많고 동 병상 중 급성기 병상(주로 30일 이하 기간에 의료환경을 제공하기 위한 병상)은 85%로 OECD 평균 56%보다 높았다. 인구 1만 명 당 의사 수는 1913년 4.0명, 1940년 7.2명, 1950년 14명, 1960년 18.6명, 1963년 20.5명, 1980년 32.9명, 1989년 36.4명으로 늘어나 2000년에는 42명으로 EU 평균 39명을 능가하였다.
환자들은 1차적으로 외래병원·의원·응급실·지역사회 보건소·보건진료소·산업시설 내 진료소 등을 방문한다. 이러한 1차 진료 시설의 의사들은 국민 건강 지킴이 역할을 담당하면서 중증환자는 2차 진료체계인 상급 의료기관에 의뢰한다. 그리고 3차 진료체계인 대학병원은 의료전달체계 피라미드의 최상부에서 고난도의 기술이 필요한 진료를 담당한다. 국립전문병원은 특수 질병 환자를 수용·치료·보호한다. 위생과 전염병 관리 분야에서는 지휘·명령 계통에 따라 체계적 관리가 이루어진다. 이러한 소련의 1·2·3차 진료체계는 이후 세계적 모범이 되어 각 국가에서 이 체계를 따라 진료체계를 형성하게 되었다.
이렇게 구축한 소련의 보건의료체계는 단지 한 나라의 보건의료체계가 아니라 국가연합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주변 유럽 국가들, 중국, 쿠바, 한반도를 포함한 당시 세계 인구의 20% 정도의 국가가 소련과의 교류가 있었던 것을 고려하면 그 의의는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소련의 보건의료체계는 2차 세계대전 부상자 치료에 이바지했고 1950년대에는 동유럽과 아프리카, 아시아, 중동, 남미 등지에 소련식 의료보장제도가 확대보급 되었다. 이런 소련의 보건의료체계는 1978년 알마아타 선언에 따라 WHO의 권장 표본이 되었다. 알마아타 선언은 1978년 카자흐스탄 알마아타에서 열린 국제회의에서 “모든 사람에게 건강을”이라는 표제 아래 2000년까지 인간의 건강 증진을 목표한 선언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일제강점기 당시 양봉근를 비롯한 조선의 보건운동가들이 처음 소련의 보건의료체계를 소개했다. 많은 보건운동가는 조선의 해방 이후 사회를 그리며 소련의 보건의료체계를 연구해나갔다. 이는 우리나라의 해방 직후 한반도에 어떤 보건의료 체계를 구축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에서 최응석(훗날 김일성대학 의학부 부장 겸 병원장)을 중심으로 소련의 보건의료체계와 유사한 보건의료체계 구축을 제기하는 배경이 되었다. 하지만 분단으로 인해 북의 보건의료체계에만 적용되게 되었다. 북의 경우처럼 중국과 쿠바의 의료제도 역시 소련의 체계를 토대로 적용하였다.
© 이인선 통신원 |
2. 러시아의 보건의료체계
(1) 개요
오늘날 러시아 연방 내 보건의료체계는 크게 3가지(국영·지자체 관할·민영)로 분류할 수 있다.
국영 보건의료 체계에는 행정부 산하 연방기관들과 러시아 연방주체(주·지방·시·공화국·자치주· 자치구 등) 내 보건 분야 행정당국들, 러시아 의료과학 아카데미, 그 외 여러 국영 보건기관· 과학연구기관·교육기관·의약품 유통기관·방역·위생기관들과 기타 기업·기관·조직들이 포함된다. 대표적으로 러시아 코로나19 백신 스푸트니크 V를 개발한 가말레야 연구소가 있다.
지자체 관할 보건의료체계에는 국가로부터 보건의료 분야에 대한 자체적 운영관리 권한을 부여받은 지방자치단체들과 그 지자체 소속인 의료기관·제약, 의약품 유통기관 등이다.
민영 보건의료 체계에는 개인이 소유하고 운영하는 보건기관·의약품 유통기관들과 사립 형태의 의료 및 제약 활동을 하는 조직들이 해당한다.
국공립병원과 민간병원 두 가지로 분류되는 러시아 병원은 현재까지 국공립병원이 전체 병원의 약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의료보험과 마찬가지로 러시아에는 의무 의료보험 제도가 있다. 의무 의료보험 제도는 무상 의료지원에 대한 러시아 국민의 헌법상 권리를 보장하고 사회보장의 일환으로서 국민의 건강 보호에 대한 국가의 의무를 수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2) 국가 우선 과제 프로젝트
러시아 정부는 소련의 보건의료체계를 이어 국가의 경제·환경·사회 및 문화개선을 위한 문제해결 방안으로 ‘국가 우선 과제 프로젝트’를 도입했다. 보건 부문에 대한 관리와 운영에 국가개입을 강화한 것이다.
국가 우선 과제 프로젝트는 2005년 9월 5일 푸틴 대통령의 연설로 공식화했다. 국가 우선 프로젝트는 세부적으로 건강·교육·주택·농업 네 가지로 프로젝트의 구체적 방향을 모색하고 적용한다. 이 사업은 구소련 시절 이후 러시아 보건 분야에서 최초로 대규모 국가 예산이 투입되었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러시아 정부는 국민의 건강진흥을 국가발전을 위한 핵심안건으로 선정하여 보건의료체계 개혁과 확립에 주력했다. 본 계획으로 병원과 진료소에 고급 첨단장비와 구급차를 배치하고 새로운 의료센터를 개설하여 예방접종과 무료 건강검진을 시작하는 것을 실천했다. 이 계획에는 의료진들의 훈련 프로그램을 늘리는 것과 급여인상에 관한 내용도 포함되었다.
푸틴 대통령은 보건 부문에 대한 국가 우선 과제 프로젝트에서 러시아 인적자원의 질적 향상을 중심으로 실천하고자 했다. 장기적으로 노동 생산성 향상을 통해 세계적으로 국가 경쟁력을 높이고자 했다.
이러한 보건 부문 프로젝트는 러시아 국민의 건강을 향상하는 것뿐만 아니라 경제 잠재력을 높이고 생활 수준 향상을 위한 첫 시도로 평가된다.
2008년 국가 프로젝트는 통제된 원인에서 러시아 연방 인구의 사망률을 줄이고 국가 노동력을 보존하기 위한 새로운 지침을 포함했다. 이는 기존 프로젝트에서 몇 가지 조항을 포함하여 ‘건강관리개발개념 2020’으로 명시한다.
건강관리개발개념 2020은 첫 번째 단계(2009-2015)와 두 번째 단계(2016-2020)로 나누어졌다. 첫 단계는 국민건강평가 시스템 개발과 두 번째 단계는 정부의 무료의료보장제도·의약품 공급 시스템 개선·인적자원정책 개선 및 의료시스템 현대화 등을 진행했다.
러시아는 이 사업이 사실상 국가안보와 연관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니콜라이 파트루셰프 러시아 연방 안전보장회의의 서기는 국가가 국민에게 풍족한 삶을 제공하는 것이 국방 능력과 안보체계와 같이 국가안보를 보장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3) 국가보건연맹
세계보건기구와 러시아는 2009년 1월 18일 ‘러시아 연방정부와 WHO 간의 협력에 관한 협정’을 체결하여 협력의 목표와 범위에 대한 합의와 우호적 협력 정신으로 상호 의무를 다할 것을 선언하며 합의했다. 러시아와 WHO는 협약에서 기술 및 자문 협력 프로그램 정보 제공, 자문 제공을 협력하기로 약속했다. 러시아는 이 협정 이행을 담당하는 부서를 ‘러시아 연방 보건 사회 개발부’로 결정했다.
러시아는 WHO와의 협력을 통해 국가 안의 사회 질병 예방을 위한 정책을 채택했다. 러시아는 러시아 국민의 생활개선을 통한 건강진흥을 도모하며 이를 위해 ‘국가보건연맹’ 활동에 중요성을 부여했다. 이는 과거 정책을 통한 강제적인 권고가 아닌 비영리단체를 통해 국민의 생활습관을 개선함으로써 건강을 추구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국가보건연맹은 2003년 설립된 공공기관이다. 국가보건연맹은 러시아 국민의 건강한 생활방식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국가 우선 과제 프로젝트에 따른 국민 건강 보호를 위한 주립 프로그램 결정 과정에 참여한다. 이 기관은 사회 비정부기구에 러시아 국가 보조금을 배포하는 공인기관 중 하나이기도 하다.
국가보건연맹은 러시아 대통령 명령에 따라 건강한 생활방식을 홍보하고 공중 보건을 보호하며 환경을 보호하는 역할을 주로 한다. 국가보건연맹의 모든 활동은 주 정부와 공공기관에 의해 적극적으로 지원되며 연방 및 지역 언론매체에 의해 보도된다. 국민건강연맹은 러시아 연방 체육부·러시아 보건부·러시아 천연자원 및 환경부·러시아의 독립 노조 연맹·모스크바시 보건부를 포함한 여러 지역 행정부와의 협력에 관한 협약을 맺고 있다.
국가보건연맹은 보건의료체계를 관리·감독하고 ‘러시아 건강’에 대한 조사를 매년 시행한다. 이 기관은 ‘무알코올 러시아’ 및 ‘담배 없는 러시아’와 같은 국가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있고 ‘어린이의 마음을 위한 프로젝트’와 ‘건강한 물결’을 주도하고 있다.
3. 러시아 보건의료체계가 시사하는 점
한국과 러시아의 학자들은 2020년 5월 22일 ‘한국과 러시아의 코로나바이러스 대처와 전망’을 주제로 화상 회의를 개최했다.
김영웅 극동연구소 선임연구원(전 소련 연방의회 의원)은 러시아에서 코로나19 사망자가 속출하지 않는 이유로 사회주의 혁명 이후 구축한 공중보건의료 시스템이 잘 작동하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김 연구원은 이러한 이유로 미국, 서방, 일본의 정치지도자들과 달리 푸틴 대통령에 대한 러시아 국민의 지지는 여전히 확고하다고 말했다.
베라 비쉬냐코바 러시아 고등경제대학교 교수는 회의에서 코로나 이후 미국 중심주의의 붕괴가 가속화 될 것이며 대신 서로 공조하고 협력하는 방식의 세계화가 이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은 2021년 4월 7일 기준 3,171만 명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해 현재 코로나19 확진자·사망자 최대 발생국이다. 이는 미국의 보건의료체계가 철저히 민영화되어 있고 코로나19 검사·백신 접종은 무료더라도 나머지 진료비·병원 입원비 등은 환자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데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일간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2021년 2월 8일 코로나19 치료비로 133만 9천 달러(14억 9,499만 원)를 청구받은 51세 퍼트리샤 메이슨의 사례를 보도하기도 했다.
러시아 보건의료체계는 공공성을 기본으로 한다. 러시아는 국민의 안녕이 곧 국가안보와 직결된다고 본다. 물론 제재와 지역적 특성으로 아직 의료기기와 의료환경에 미흡한 부분도 있지만 러시아 정부가 목표한 대로 진전을 보이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자국 산업 육성을 위해 2014년 수입 의료기기 대체 정책을 시행했다. 2016년 이후 러시아 의료기기 시장에서 러시아산 제품의 점유율이 18.2%에서 2018년에 22.8%로 증가했다. 러시아 연방 보건부 자료에 따르면 2013년 국비를 통하여 첨단기술 의료지원을 받은 환자 수는 2012년 45만 2천 명에서 12.5% 증가한 50만 5천 명으로 집계되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020년 12월 2일 러시아 전역으로 스푸트니크 V로 코로나19 바이러스 예방접종 할 것을 공표했다. 미하일 미슈스틴 러시아 국무총리는 이 예방접종과 진료비 등은 무료로 제공된다며 교사, 의사, 그리고 사회 근로자들에게 먼저 주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 정부는 2021년 안에 전 국민에게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마칠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의 공공성은 다른 나라로까지 가닿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의심할 여지 없이 백신은 모든 대중의 소유라며 백신을 필요한 국가에 제공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스푸트니크 V는 현재 59개국에 수출되고 있다.
많은 나라에서 사람들이 여전히 죽지 않아도 될 병으로 죽고, 산재로 죽고 감당할 수 없는 치료비로 고통을 받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생각하면 소련의 보건의료체계가 전 세계에서 찬사를 받았던 이유를 짐작해볼 수 있다. 그리고 러시아가 현재 보건의료체계의 공공성을 유지하는 이유라고 볼 수 있다.
러시아 백신 시장은 제약산업과 별도로, 정부 구매(정부 조달)가 수익 창출과 유통구조에서 지배적이다. 러시아 연방은 매년 ‘국가 백신(예방접종) 계획’ 하에 연간 예산(정부 입찰 예산)을 책정하고 있다. 러시아 연방 산업통상부 발표 내용을 인용한 현지 언론 기사에 따르면 러시아 연방의 ‘국가 백신 계획’ 예산은 2020년 급격히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2년 해당 예산은 56억 루블이었으며 2020년은 266억 루블(약 3억 7,400만 달러)로 루블 기준 375%가 증가했다.
러시아는 ‘B형 간염·감염성 폐렴·파상풍·급성 회백수염’ 등 12개 감염병을 ’국가 백신 계획‘의 개발 대상으로 하고 있다.
러시아 현지 제조 백신은 전체 시장의 84%(수량 기준으로 94% 비중)를 차지하고 있어 수입 의존도는 매우 낮다. 이는 소비에트 시절부터 보유한 기초과학 기술력을 기반으로 개발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실질적으로 러시아 백신 시장 중 72%가 연방정부 구매와 지방정부 구매로 수익을 얻고 있고 시중 판매 수익 비중은 2%에 불과하다.
백신 상황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의학 산업은 면역력을 키우면서 최소한의 약으로 암이나 심장병 등의 질환을 치료하는 생물학적 치료법에 큰 강점이 있다. 특히 유전인자와 인체의 단백질 정보를 연구하는 게놈 등 생명공학 분야에서도 선두를 지키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글에서는 러시아 보건의료체계와 관련해 러시아의 공공성을 이야기한다.
▲ 의사는 민중의 친구다라는 문구가 써 있다. © 이인선 통신원 |
1. 소련 시기의 보건의료체계
혁명 직후 소련은 오랜 내전과 기근으로 인해 유럽 등 서방 국가 못지않게 감염병이 창궐했다. 열악한 생활환경으로 인해 소련 인구의 1/4가량이 감염 질환 등에 노출되어있는 실정이었다.
러시아 혁명 직후 볼셰비키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보건의료체계 구축의 6대 원칙을 공표했다.
ㄱ) 양질의 의료 서비스
ㄴ) 모든 인민이 이용 가능한 서비스
ㄷ) 국가에 의해 제공되는 단일, 통합된 서비스
ㄹ) 무상 의료 서비스
ㅁ) 건강한 국민을 만들어내기 위한 예방의 집중
ㅂ) 건강서비스에 있어서 전체 노동자의 참여
소련을 포함한 사회주의 국가의 사회보장제도는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고 다양한 사회보장제도를 갖추고 있다. 이 제도는 일할 능력이 있고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고용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즉, 어떤 상황에서도 일을 잃는 사람은 없다. 사회보장 소요 재원은 전액 국가가 부담하며 노동자는 일체 부담하지 아니한다.
소련은 의료 인력을 대량 양성하고 병원 인프라를 구축하였다. 소련의 의료 기반을 서방 선진국과 비교한 자료에 의하면 1989년에 인구 1만 명 당 병상 수는 139개로 OECD 평균의 90개보다 많고 동 병상 중 급성기 병상(주로 30일 이하 기간에 의료환경을 제공하기 위한 병상)은 85%로 OECD 평균 56%보다 높았다. 인구 1만 명 당 의사 수는 1913년 4.0명, 1940년 7.2명, 1950년 14명, 1960년 18.6명, 1963년 20.5명, 1980년 32.9명, 1989년 36.4명으로 늘어나 2000년에는 42명으로 EU 평균 39명을 능가하였다.
환자들은 1차적으로 외래병원·의원·응급실·지역사회 보건소·보건진료소·산업시설 내 진료소 등을 방문한다. 이러한 1차 진료 시설의 의사들은 국민 건강 지킴이 역할을 담당하면서 중증환자는 2차 진료체계인 상급 의료기관에 의뢰한다. 그리고 3차 진료체계인 대학병원은 의료전달체계 피라미드의 최상부에서 고난도의 기술이 필요한 진료를 담당한다. 국립전문병원은 특수 질병 환자를 수용·치료·보호한다. 위생과 전염병 관리 분야에서는 지휘·명령 계통에 따라 체계적 관리가 이루어진다. 이러한 소련의 1·2·3차 진료체계는 이후 세계적 모범이 되어 각 국가에서 이 체계를 따라 진료체계를 형성하게 되었다.
이렇게 구축한 소련의 보건의료체계는 단지 한 나라의 보건의료체계가 아니라 국가연합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주변 유럽 국가들, 중국, 쿠바, 한반도를 포함한 당시 세계 인구의 20% 정도의 국가가 소련과의 교류가 있었던 것을 고려하면 그 의의는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소련의 보건의료체계는 2차 세계대전 부상자 치료에 이바지했고 1950년대에는 동유럽과 아프리카, 아시아, 중동, 남미 등지에 소련식 의료보장제도가 확대보급 되었다. 이런 소련의 보건의료체계는 1978년 알마아타 선언에 따라 WHO의 권장 표본이 되었다. 알마아타 선언은 1978년 카자흐스탄 알마아타에서 열린 국제회의에서 “모든 사람에게 건강을”이라는 표제 아래 2000년까지 인간의 건강 증진을 목표한 선언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일제강점기 당시 양봉근를 비롯한 조선의 보건운동가들이 처음 소련의 보건의료체계를 소개했다. 많은 보건운동가는 조선의 해방 이후 사회를 그리며 소련의 보건의료체계를 연구해나갔다. 이는 우리나라의 해방 직후 한반도에 어떤 보건의료 체계를 구축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에서 최응석(훗날 김일성대학 의학부 부장 겸 병원장)을 중심으로 소련의 보건의료체계와 유사한 보건의료체계 구축을 제기하는 배경이 되었다. 하지만 분단으로 인해 북의 보건의료체계에만 적용되게 되었다. 북의 경우처럼 중국과 쿠바의 의료제도 역시 소련의 체계를 토대로 적용하였다.
© 이인선 통신원 |
2. 러시아의 보건의료체계
(1) 개요
오늘날 러시아 연방 내 보건의료체계는 크게 3가지(국영·지자체 관할·민영)로 분류할 수 있다.
국영 보건의료 체계에는 행정부 산하 연방기관들과 러시아 연방주체(주·지방·시·공화국·자치주· 자치구 등) 내 보건 분야 행정당국들, 러시아 의료과학 아카데미, 그 외 여러 국영 보건기관· 과학연구기관·교육기관·의약품 유통기관·방역·위생기관들과 기타 기업·기관·조직들이 포함된다. 대표적으로 러시아 코로나19 백신 스푸트니크 V를 개발한 가말레야 연구소가 있다.
지자체 관할 보건의료체계에는 국가로부터 보건의료 분야에 대한 자체적 운영관리 권한을 부여받은 지방자치단체들과 그 지자체 소속인 의료기관·제약, 의약품 유통기관 등이다.
민영 보건의료 체계에는 개인이 소유하고 운영하는 보건기관·의약품 유통기관들과 사립 형태의 의료 및 제약 활동을 하는 조직들이 해당한다.
국공립병원과 민간병원 두 가지로 분류되는 러시아 병원은 현재까지 국공립병원이 전체 병원의 약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의료보험과 마찬가지로 러시아에는 의무 의료보험 제도가 있다. 의무 의료보험 제도는 무상 의료지원에 대한 러시아 국민의 헌법상 권리를 보장하고 사회보장의 일환으로서 국민의 건강 보호에 대한 국가의 의무를 수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2) 국가 우선 과제 프로젝트
러시아 정부는 소련의 보건의료체계를 이어 국가의 경제·환경·사회 및 문화개선을 위한 문제해결 방안으로 ‘국가 우선 과제 프로젝트’를 도입했다. 보건 부문에 대한 관리와 운영에 국가개입을 강화한 것이다.
국가 우선 과제 프로젝트는 2005년 9월 5일 푸틴 대통령의 연설로 공식화했다. 국가 우선 프로젝트는 세부적으로 건강·교육·주택·농업 네 가지로 프로젝트의 구체적 방향을 모색하고 적용한다. 이 사업은 구소련 시절 이후 러시아 보건 분야에서 최초로 대규모 국가 예산이 투입되었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러시아 정부는 국민의 건강진흥을 국가발전을 위한 핵심안건으로 선정하여 보건의료체계 개혁과 확립에 주력했다. 본 계획으로 병원과 진료소에 고급 첨단장비와 구급차를 배치하고 새로운 의료센터를 개설하여 예방접종과 무료 건강검진을 시작하는 것을 실천했다. 이 계획에는 의료진들의 훈련 프로그램을 늘리는 것과 급여인상에 관한 내용도 포함되었다.
푸틴 대통령은 보건 부문에 대한 국가 우선 과제 프로젝트에서 러시아 인적자원의 질적 향상을 중심으로 실천하고자 했다. 장기적으로 노동 생산성 향상을 통해 세계적으로 국가 경쟁력을 높이고자 했다.
이러한 보건 부문 프로젝트는 러시아 국민의 건강을 향상하는 것뿐만 아니라 경제 잠재력을 높이고 생활 수준 향상을 위한 첫 시도로 평가된다.
2008년 국가 프로젝트는 통제된 원인에서 러시아 연방 인구의 사망률을 줄이고 국가 노동력을 보존하기 위한 새로운 지침을 포함했다. 이는 기존 프로젝트에서 몇 가지 조항을 포함하여 ‘건강관리개발개념 2020’으로 명시한다.
건강관리개발개념 2020은 첫 번째 단계(2009-2015)와 두 번째 단계(2016-2020)로 나누어졌다. 첫 단계는 국민건강평가 시스템 개발과 두 번째 단계는 정부의 무료의료보장제도·의약품 공급 시스템 개선·인적자원정책 개선 및 의료시스템 현대화 등을 진행했다.
러시아는 이 사업이 사실상 국가안보와 연관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니콜라이 파트루셰프 러시아 연방 안전보장회의의 서기는 국가가 국민에게 풍족한 삶을 제공하는 것이 국방 능력과 안보체계와 같이 국가안보를 보장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3) 국가보건연맹
세계보건기구와 러시아는 2009년 1월 18일 ‘러시아 연방정부와 WHO 간의 협력에 관한 협정’을 체결하여 협력의 목표와 범위에 대한 합의와 우호적 협력 정신으로 상호 의무를 다할 것을 선언하며 합의했다. 러시아와 WHO는 협약에서 기술 및 자문 협력 프로그램 정보 제공, 자문 제공을 협력하기로 약속했다. 러시아는 이 협정 이행을 담당하는 부서를 ‘러시아 연방 보건 사회 개발부’로 결정했다.
러시아는 WHO와의 협력을 통해 국가 안의 사회 질병 예방을 위한 정책을 채택했다. 러시아는 러시아 국민의 생활개선을 통한 건강진흥을 도모하며 이를 위해 ‘국가보건연맹’ 활동에 중요성을 부여했다. 이는 과거 정책을 통한 강제적인 권고가 아닌 비영리단체를 통해 국민의 생활습관을 개선함으로써 건강을 추구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국가보건연맹은 2003년 설립된 공공기관이다. 국가보건연맹은 러시아 국민의 건강한 생활방식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국가 우선 과제 프로젝트에 따른 국민 건강 보호를 위한 주립 프로그램 결정 과정에 참여한다. 이 기관은 사회 비정부기구에 러시아 국가 보조금을 배포하는 공인기관 중 하나이기도 하다.
국가보건연맹은 러시아 대통령 명령에 따라 건강한 생활방식을 홍보하고 공중 보건을 보호하며 환경을 보호하는 역할을 주로 한다. 국가보건연맹의 모든 활동은 주 정부와 공공기관에 의해 적극적으로 지원되며 연방 및 지역 언론매체에 의해 보도된다. 국민건강연맹은 러시아 연방 체육부·러시아 보건부·러시아 천연자원 및 환경부·러시아의 독립 노조 연맹·모스크바시 보건부를 포함한 여러 지역 행정부와의 협력에 관한 협약을 맺고 있다.
국가보건연맹은 보건의료체계를 관리·감독하고 ‘러시아 건강’에 대한 조사를 매년 시행한다. 이 기관은 ‘무알코올 러시아’ 및 ‘담배 없는 러시아’와 같은 국가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있고 ‘어린이의 마음을 위한 프로젝트’와 ‘건강한 물결’을 주도하고 있다.
3. 러시아 보건의료체계가 시사하는 점
한국과 러시아의 학자들은 2020년 5월 22일 ‘한국과 러시아의 코로나바이러스 대처와 전망’을 주제로 화상 회의를 개최했다.
김영웅 극동연구소 선임연구원(전 소련 연방의회 의원)은 러시아에서 코로나19 사망자가 속출하지 않는 이유로 사회주의 혁명 이후 구축한 공중보건의료 시스템이 잘 작동하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김 연구원은 이러한 이유로 미국, 서방, 일본의 정치지도자들과 달리 푸틴 대통령에 대한 러시아 국민의 지지는 여전히 확고하다고 말했다.
베라 비쉬냐코바 러시아 고등경제대학교 교수는 회의에서 코로나 이후 미국 중심주의의 붕괴가 가속화 될 것이며 대신 서로 공조하고 협력하는 방식의 세계화가 이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은 2021년 4월 7일 기준 3,171만 명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해 현재 코로나19 확진자·사망자 최대 발생국이다. 이는 미국의 보건의료체계가 철저히 민영화되어 있고 코로나19 검사·백신 접종은 무료더라도 나머지 진료비·병원 입원비 등은 환자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데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일간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2021년 2월 8일 코로나19 치료비로 133만 9천 달러(14억 9,499만 원)를 청구받은 51세 퍼트리샤 메이슨의 사례를 보도하기도 했다.
러시아 보건의료체계는 공공성을 기본으로 한다. 러시아는 국민의 안녕이 곧 국가안보와 직결된다고 본다. 물론 제재와 지역적 특성으로 아직 의료기기와 의료환경에 미흡한 부분도 있지만 러시아 정부가 목표한 대로 진전을 보이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자국 산업 육성을 위해 2014년 수입 의료기기 대체 정책을 시행했다. 2016년 이후 러시아 의료기기 시장에서 러시아산 제품의 점유율이 18.2%에서 2018년에 22.8%로 증가했다. 러시아 연방 보건부 자료에 따르면 2013년 국비를 통하여 첨단기술 의료지원을 받은 환자 수는 2012년 45만 2천 명에서 12.5% 증가한 50만 5천 명으로 집계되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020년 12월 2일 러시아 전역으로 스푸트니크 V로 코로나19 바이러스 예방접종 할 것을 공표했다. 미하일 미슈스틴 러시아 국무총리는 이 예방접종과 진료비 등은 무료로 제공된다며 교사, 의사, 그리고 사회 근로자들에게 먼저 주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 정부는 2021년 안에 전 국민에게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마칠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의 공공성은 다른 나라로까지 가닿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의심할 여지 없이 백신은 모든 대중의 소유라며 백신을 필요한 국가에 제공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스푸트니크 V는 현재 59개국에 수출되고 있다.
많은 나라에서 사람들이 여전히 죽지 않아도 될 병으로 죽고, 산재로 죽고 감당할 수 없는 치료비로 고통을 받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생각하면 소련의 보건의료체계가 전 세계에서 찬사를 받았던 이유를 짐작해볼 수 있다. 그리고 러시아가 현재 보건의료체계의 공공성을 유지하는 이유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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