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나가사키 신앙의 역사, 세계유산을 향해 가다 (1) 일본교회 역사 · 유산 세계에 알리고 보호한다
우리는 선조들의 유산이 주는 혜택 속에 살아간다. 건축, 기술, 문화 등에서부터 자연에 이르기까지. 유산 중 모든 인류에 대해 보편적인 가치를 지닌 유산을 유네스코는 세계유산이라 부르며 지속해서 유산을 발굴하고 보호,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00년의 역사 속에 교회의 신앙선조들이 남겨온 수많은 유산 역시 그 많은 수가 세계유산에 등록돼 있다.
교회의 역사가 비교적 길지 않은 아시아에서는 아직 세계유산에 등록된 교회의 유산은 없지만 최근 교회유산을 세계유산으로 추진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앞장서고 있는 곳이 일본이다. 일본은 지난 2007년 나가사키 일대의 성당과 그리스도교 관련 유적을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록시키고 최종 등록을 위한 마지막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록된 나가사키 일대의 성당과 그리스도교 관련 유적은 ▲ 오우라성당 ▲ 시츠성당과 관련 유적 ▲ 오노성당 ▲ 히노에성터 ▲ 하라성터 ▲ 쿠로시마성당 ▲ 타비라성당 ▲ 히라도섬의 성지와 취락 ▲ 구 노쿠비성당 ▲ 카시라가지마성당 ▲ 구 고린성당 ▲ 에가미성당 등 총 12곳이다. 이 유적들은 단순히 건축물로서 가치 있는 것이 아니라 일본에서 교회 문화가 가장 융성하던 나가사키에서 신자들이 250년 동안 사제도 없이 박해를 견디다 다시 교회를 일으켜 세운 신앙의 역사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유산들이다.
나가사키 성당과 교회 유적의 세계유산 등록은 현과 교회 모두에 큰 이익을 준다. 현은 지역 관광 및 경제를 활성화 시키고 현의 위상을 높이는 효과를 얻고 교회는 일본교회의 역사와 유산을 세계 홍보함과 동시에 교회유산을 보호할 수 있는 방책을 얻는다. 나가사키 교회 유적이 속한 지역 신자 수가 감소하면서 지역교회공동체의 힘만으로는 신앙의 역사를 지닌 성당의 유지·관리가 어려울 뿐 아니라 신자 수가 전 국민의 0.4%에 불과한 일본교회로서는 그 모든 유적을 관리할 여력이 없어 대책이 필요한 것이다.
교회문화가 꽃피운 아시아의 여러 나라 중에서도 일본이 앞서서 교회유산을 세계유산으로 추진하고 있지만 다른 문화재의 세계유산 등록과는 달리 교회유산을 세계유산으로 등록하는 작업은 국가 차원의 노력만으로는 실현이 어려웠다. 민간단체와 관공서, 교회가 협력하지 않고서는 이룰 수 없었던 것이다. 이 속에서 나가사키대교구의 나가사키 순례센터가 큰 역할을 했다. 교회유산의 가치를 증명하는 각종 연구와 홍보를 벌이고 각 기관·단체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네트워크가 됐기 때문이다.
나가사키 성당과 교회유적의 세계유산 등록 추진의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는 나가사키 순례센터의 나카무라 미치루 신부와 나가사키현 문화관광물산국 세계유산등록추진실의 오사키 요시로 실장을 만나봤다.
[인터뷰] 나카무라 신부 - 소극적 일본교회 움직임 바꿀 계기 되길
“세계유산 등록은 단순히 성당 건물의 우수성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일본 교회의 역사를 알리는 일입니다. 이 일이 소극적인 일본교회의 움직임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나카무라 미치루 신부가 이끌고 있는 나가사키 순례센터는 교회를 대표하는 기관임과 동시에 세계유산 등록 추진을 위해 움직이는 모든 단체를 아우르는 역할을 하고 있다. 나가사키현의 교회 유적이 있는 지역의 모든 지자체와 협력관계를 구축했을 뿐 아니라 지역 관광연맹, 가이드 모임, 관련 연구기관, 민간단체, 여행사에 이르기까지 센터와 교류하지 않는 곳은 없다.
“나가사키의 성당과 교회 관련 유적들을 세계유산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먼저 신자들이 자신의 신앙과 역사를 확실히 이해하고 전할 수 있도록 알리는 작업이 필요했습니다. 이것은 나가사키 순례센터의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세계유산 추진의 선두에 서면서 나카무라 신부가 가장 해결하고 싶었던 것은 신자들의 무관심이었다. 센터에는 ▲ 순례 가이드 및 가이드 양성 ▲ 순례의 활용과 순례 활성화를 위한 기획과 지원 ▲ 순례를 위한 숙박 시설 운영 및 지원 등 다양한 업무가 있지만 가장 주력하고 있는 것은 바로 ‘순례에 관한 조사·연구 및 정보 보급’이다. 센터는 다양한 자료와 홍보물을 제작, 배포하고 있으며 또 최근 늘어난 한국 순례자들을 위해 ‘하비에르와 함께하는 나가사키 순례’를 한국어로 번역해 출간하기도 했다. 이런 연구 및 홍보 활동은 세계유산의 가치를 증명하고 신자들과 지역 주민들에게 교회유산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데 큰 기여를 했다.
“일본 신자들은 오랜 박해의 역사 때문에 자신의 신앙을 밖으로 드러내려는 자세가 부족합니다. 나가사키의 교회유산이 세계유산에 등록되는 일은 일본 신자들이 자신의 신앙을 알리는 모습으로 바뀌는 데 큰 힘이 될 것입니다.”
나카무라 신부의 목표는 단순히 세계유산 등록 추진에 있지 않았다. 그는 교회 유산의 세계유산 등록은 목표가 아니라 목표를 위한 계기로 여겼다. 신자들이 교회를 적극적으로 알리길 바라는 그의 꿈은 나가사키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일본 전역, 그리고 아시아를 아우르는 큰 꿈이다.
“세계유산 등록은 아시아교회의 역사를 알리는 좋은 기회입니다. 이미 나가사키대교구는 교토·오사카·히로시마·후쿠오카교구와 협력해 순례지도를 만들고 있습니다. 20~30년이 걸리더라도 좋습니다. 언젠가 아시아 전체 교회 역사를 순환하는 순례지도가 만들어지길 희망합니다.”
[인터뷰] 오사키 실장 - 지역 활성화·문화가치 재인식할 수 있는 기회
“나가사키가 세계유산 등록을 위해 추진 중인 유산들의 가치는 건축물로서의 가치도 또 일본에 교회가 전파된 사실로 표현하기엔 부족합니다. 이 유산들은 이 땅에서 번영했던 교회가 250년 동안의 탄압을 딛고 다시 세워진 역사를 나타낼 수 있는 자산입니다.”
나가사키현 문화관광물산국 세계유산등록추진실 오사키 요시로 실장은 세계유산 등록 추진을 위한 첫 작업은 나가사키 교회 유산들이 세계유산으로서 가치가 있는지 검토하는 작업이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나가사키현은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세계 각국의 교회유산과 비교연구를 벌였고 나가사키의 교회유산 중 133개에 달하는 후보지 중에 어떤 유산을 세계유산으로 선정해야 할지를 따졌다.
“세계유산은 그 가치 자체도 중요하지만, 유산이 소중히 보존됐는지 앞으로 어떻게 보존해나갈지도 중요합니다. 인류의 보물은 영구적으로 보존하기 위한 준비 역시 가치를 증명하는 만큼이나 중요한 작업이었습니다.”
세계유산 추천에는 추천서만이 아니라 ‘포괄적 보존관리계획’을 첨부해 제출해야 한다. 나가사키현은 유산을 보존하기 위한 완전한 보호 장치를 형성하고자 힘을 기울였다. 대상 유산을 국가지정으로 승격시키고 각 지역에서 신규지정을 하고 유산 주변에 완충지대를 설정, 경관조례 제정, 보존관리계획 책정 등의 사업을 통해 보호체계를 강화시켰다.
“세계유산 등록에는 세계유산에 대한 대중의 이해와 공감대 형성도 중요합니다. 이 작업에는 현의 노력도 있었지만, 민간단체들의 활동이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나가사키현은 세계유산 등록 추진에 관한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민간단체 등과 연계해 세계유산에 대한 홍보활동과 국내외로 정보를 보급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유산들이 널리 분포해 있어 더 강력한 보호관리가 필요하며 종파를 넘어 전국적인 이해와 홍보가 더 필요하다는 점에서 지난 7월 국가 추천 심의에서 결정되지 않았다. 나가사키현은 2013년 국가 문화심의회에서 추천결정을 받고 2014년 유네스코에 추천서를 제출, 유네스코 자문기관인 이코모스(ICOMOS)에 의한 현지조사를 실시해 2015년에 세계유산에 등록할 수 있도록 계획을 진행하고 있다.
“세계유산 등록은 나가사키의 지명도를 세계적으로 높이고 지역을 활성화시킴과 동시에 지역의 역사와 문화의 가치를 재인식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저희는 세계유산 등록을 ‘신자발견’ 150주년인 2015년에 이뤄 더 뜻깊은 해를 맞이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가톨릭신문, 2012년 10월 14일, 이승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