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자동차 브랜드의 한국시장 공략이 가속화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 진출해 있는 도요타와 혼다, 닛산뿐 아니라 미쓰비시까지 올 하반기부터 한국에 진출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이번에 선보이는 차종들은 이전의 고가의 고급모델이 아닌 중·저가의 대중모델로 국내차와의 직접적인 경쟁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현재 수입차 중 선두를 달리는 곳은 혼다. 2004년 일본 대중차로는 처음으로 한국에 진출해 올 1월 신형 어코드 출시 이후 월 1000대 이상 판매하며 수입차 시장 1위 자리를 지켜왔다. 하지만 ‘인피니티’로 유명한 닛산의 대중브랜드 런칭과 함께 도요타에서도 중·저가 모델인 프리우스, 캠리, RAV4 등을 판매하겠다며 나서고 여기에 혼다 못지않은 가격경쟁력을 가진 미쓰비시까지 합류할 경우 일본차가 점차 국내차 시장을 잠식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현재는 30%대를 차지하고 있는 일본차의 한국 수입차 시장 점유율이 절반 이상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이에 맞서 현대자동차에서는 지난 7월 2일 고객들을 상대로 쏘나타와 혼다 어코드, 그랜저와 렉서스 ES의 비교 시승회를 여는 등 품질인증을 통한 견제에 나서고 있다. 그렇다면 일본 자동차 브랜드들이 대중형 브랜드로 한국에 몰려들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왜 한국시장인가
수입차시장 급성장하고 일본차에 호감
가장 큰 이유는 국내 수입차시장의 급성장세다.
고유가 여파로 국내 자동차시장이 주춤거리지만 올해 수입차시장은 지난해보다 큰 폭으로 성장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 자료에 따르면 올 상반기 판매된 수입차는 모두 3만3449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2만5495대에 비해 31.2%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 중 일본차의 성장률은 더욱 두드러진다. 지난 6월 혼다, 렉서스, 인피니티 등 일본 브랜드 3인방이 올린 판매 실적은 2289대. 수입차 시장점유율은 41.0%다. 월간 점유율 40% 돌파는 이번이 처음이다. 일본차의 상반기 점유율도 34.5%로 뛰어올랐다.
일본차는 2000년 렉서스를 선두로 2004년 혼다, 2005년 인피니티가 들어왔다. 2001년 10.9%(841대)에 불과했던 점유율은 이듬해 18.4%(2968대)로 성장한 뒤 매년 상승해 지난해에는 33.0%(1만7633대)까지 올라섰다. 2001년에 69.8%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했던 유럽 브랜드가 올 상반기 53.4%로 하락한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캠리(도요타) / 프리우스(도요타)
혼다를 잡아라
‘어코드 3.5’ 6월 판매 1위… 다른 업체들에도 자극
또한 혼다가 한국시장에서 거두고 있는 눈부신 성공도 일본업체들을 자극하고 있다. 혼다는 6월에만 ‘어코드3.5’와 ‘CR-V’를 각각 655대와 347대를 팔아 ‘6월 가장 많이 팔린 수입차’ 1, 2위를 차지했다. 특히 ‘어코드3.5’는 2008년 누적 실적에서도 2262대를 기록해 BMW 528을 제치고 수입차의 왕좌에 등극했다. 성장 일로에 있는 혼다의 상반기 누적 판매 실적은 6391대다. 지난해 같은 기간 실적은 3610대로 77%라는 기록적인 성적표를 보이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올 연말까지 1만대 돌파는 물론이고 1만3000대까지도 가능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같은 일본차임에도 고급형 모델인 인피니티와 렉서스의 성적은 오히려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인피니티는 지난 6월 전월대비 10.2% 하락한 282대의 판매실적을 기록했고 렉서스 역시 2% 하락한 643대를 팔았다. 또한 렉서스는 올해 상반기 3377대를 팔아 10.10%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4.8% 하락한 수치이고 일본 브랜드 가운데는 유일한 마이너스 성장이다.
한국은 일본차 각축장
2000만`~`3000만원대 대중차 줄줄이…시장 지각변동 예고
로그(닛산) / 알티마(닛산)
혼다의 대중차 시장 독주에 자극받은 도요타와 닛산 등 다른 일본 수입차 업체들은 자사의 대중차를 한국시장에 전면 도입하기로 방침을 굳혔다.
도요타는 세계적으로 1000만대 이상 팔린 ‘캠리’ 외에 고유가시대에 더욱 주목받는 하이브리드카인 ‘프리우스’, 소형 SUV인 ‘RAV4’ 등의 대중차 브랜드를 들여와 혼다의 독주를 견제할 예정이다.
닛산도 고급 브랜드 인피니티 외에 닛산의 대중차를 연내 도입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닛산은 오는 11월 대중 브랜드로 알려진 중형 SUV 차량 ‘로그’와 ‘무라노’를, 내년 상반기에는 ‘알티마’를 도입한다.
미쓰비시는 GM대우와 손잡고 한국시장에서 판매를 담당할 합작법인 ‘엠엠에스케이(MMSK)주식회사’를 설립했다. 이들은 4륜구동 세단 ‘랜서에볼루션’을 비롯해 ‘아웃랜더’ ‘이클립스’ ‘랜서’ 등을 들여와 국내 수입차 시장점유율을 5.5%까지 끌어올린다는 청사진도 발표했다. 위 차종들은 아직 한국시장 내 판매가격이 결정되지 않았지만 혼다의 대중차나 국내 완성차 중형세단과 경쟁할 수 있는 가격인 2000만~4000만원 초반대로 결정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예상이다.
이밖에 스바루는 내년 상반기 진출을 목표로 코오롱모터스와 협의 중이고, 마쓰다도 한국 진출을 위해 쌍용차의 딜러 네트워크인 아주모터스와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일본의 자동차회사들이 한국에 대중차를 잇따라 선보임에 따라 국내 자동차시장에 지각변동이 예상되지만, 한국 기업의 일본 내 자동차수출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급기야 지난 4월 현대자동차에서는 “아반떼·쏘나타 등 주력차종의 일본시장 판매를 중단한다”는 발표까지 했다.
프리우스(도요타)
한국차의 일본시장 판매는
최근 3년 내리막길… 소형 해치백으로 틈새 공략
현대차는 2001년부터 일본시장에 진출했다. 하지만 쏘나타 등 주력차종이 팔리지 않아 계속해서 어려움을 겪어왔다. 일본 수입차판매협회가 지난 4월 발표한 1분기(1~3월) 브랜드별 수입차 판매량에 따르면, 현대차의 1분기 일본 내 판매량은 148대로 전년 428대의 3분의 1 수준으로 급락했다. 일본의 자동차시장이 1996년 이후 꾸준히 하락세에 있다고 하더라도 너무나 떨어지는 수치다. 현대차의 일본 판매량은 2004년 2574대를 정점으로 2005년 2295대, 2006년 1651대로 급감하고 있다. 이 때문에 현대차는 올해 하반기부터 소형 해치백(hatchback·뒷문이 위로 열리는 차) 중심의 틈새시장 공략에 주력할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기간 동안 한국시장의 일본차 판매가 33% 증가한 것과 국내 자동차시장 규모가 일본의 4분의 1에 불과한 것을 감안하면, 일본에서 팔리는 한국차보다 한국에서 팔리는 일본차가 130배나 많은 셈이다.
국내 자동차 브랜드들은 한국시장에서 안정적으로 거둬들이는 이익을 바탕으로 미국, 인도, 중국 등 세계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 때문에 일본차의 내수시장 위협은 한국 자동차업계 전체에도 위협이 될 수 있다. 국내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일본차를 수입차라는 넓은 범주에서 따로 떼어보지 않는다”며 “일본차 진출에 따로 대응하기보다는 ‘수입차는 국내차보다 더 좋다’는 인식을 ‘국내차도 수입차에 비해 품질 면에서 결코 뒤지지 않는다’로 돌리는 것이 우선이다”고 밝혔다. ▒
| 브랜드별로 어떤 차들이 오나 |
무라노(닛산)
도요타 “캠리, 프리우스 내년 하반기 진출”
캠리 도요타의 대표 세단. 세계 100여개국에서 1000만대 이상 팔린 브랜드다. 1980년 후륜구동 ‘셀리카 캠리(Celica Camry)’로 처음 소개된 이후, 2006년 ‘중형 세단의 새로운 글로벌 스탠더드 창조’라는 테마와 함께 완전히 새로워진 모습으로 재탄생했다. 하이브리드 차종도 판매한다.
프리우스 세계 최초의 대량 생산 하이브리드 차량. 자동차의 환경보호기술 측면에서 새로운 세계적 기준을 세웠으며, 누적 판매대수도 94만대(2008년 1월 기준)를 넘어섰다. 우수한 연비(일본모드 35.5㎞/ℓ, 미국모드 25.5㎞/ℓ)와 초저공해 배기가스를 자랑한다.
RAV4 도요타의 대표적인 RV 모델. 1994년 출시 이후 꾸준히 인기를 모으고 있다. 도심과 교외에서 활동적인 라이프스타일을 가지고 있는 고객들에게 온로드(on-road)와 오프로드(off-road)에서 뛰어난 가치를 제공하는 SUV로 평가받고 있다.
도요타의 대중 차종들은 모두 내년 하반기에 시판할 예정이다.
닛산 “올 11월 SUV 모델로 승부 건다”
뉴 레전드(혼다)
무라노 265마력과 248il-ft토크의 강력한 힘을 느낄 수 있는 SUV차량. 어답티브 시프트 컨트롤(ASC)이 장착된 첨단 X트로닉 CVT를 탑재해 주행시 역동성과 부드러움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다. 전륜 또는 새롭게 강화된 사륜구동시스템 중 선택 가능. 오는 11월 시판 예정.
로그 미국의 자동차 전문 컨설팅 회사인 오토퍼시픽(AutoPacific)이 발표한 ‘2008 소비자 만족도 조사(VSA)’에서 ‘최우수 콤팩트 크로스오버 SUV’로 선정됐다. 미국고속도로교통안전협회(NHTSA)에서 실시한 측면 충돌 안전성 테스트에서도 별 다섯 개를 획득했다. 도심형 SUV로 운동 성능이 경쾌하고 핸들(스티어링휠)도 가볍게 하는 등 젊은 운전자들을 위해 설계됐다. 오는 11월 시판 예정.
알티마 1997년에 데뷔해 지금은 4세대에 이를 만큼 닛산의 베스트모델이다. 르노와 닛산이 공동으로 개발한 새로운 D플랫폼을 채택했다. 구형에 비해 휠베이스를 1인치 줄였으며 주행성능에서는 동급최고를 자랑한다. 지난해에는 JD파워(J.D Power and Associates)가 뽑은 가장 매력적인 중형차로 선정되기도 했다. 내년 상반기 시판 예정.
혼다 세계 첫 ‘뉴 레전드’ 출시, 한국시장 공들이기
지난 6월 24일 세계 최초로 국내시장에서 ‘뉴 레전드’를 출시했다. 혼다는 도요타나 닛산과 달리 별도의 럭셔리 브랜드를 갖고 있지 않은데 최고급 모델인 레전드를 한국시장에서 세계 처음으로 선보였다는 것은 혼다가 그만큼 한국시장을 중시한다는 신호로 분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