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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도 총독과 아그립바 왕을 전도하는 사도 바울
사도행전 25:13~26:32
오늘 본문 말씀은 좀 깁니다. 그러나 함께 살펴보면서, 사도 바울이 가진 전도의 열정을 다시 한번 느끼고 우리 심령 속에도 이 전도의 열정이 솟아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먼저,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는 당시 사도 바울이 갇혀 있던 가이사랴의 헤롯 궁전의 감옥, 곧 로마 총독의 관저로 헤롯 아그립바 2세 왕과 그의 누이 버니게 공주, 곧 헬라어로 베르니케가 내방한 사실을 말합니다. 1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수일 후에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가 베스도에게 문안하러 가이사랴에 와서”
헤롯 아그립바 2세와 그의 여동생 베니게는 지난 번 사도 바울을 심문했었던 벨릭스 총독의 유대인 아내 드루실라의 친형제자매 사이입니다. 이들은 사도 야고보를 목 베어 죽이고 사도 베드로까지 처형하려고 했었다가 실패하고 가이사랴 야외 공연장에서 연설하는 중에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자기가 가로챘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5일 만에 급사한 헤롯 아그립바 1세의 자녀들입니다. 헤롯 아그립바 1세가 죽었을 때에 헤롯 아그립바 2세는 나이가 17살밖에 안 되었기에 분봉 왕에 오르지 못했다가 좀 나이가 되었을 때에 레바논 지역의 칼키스의 왕으로 임명되었다가 나중에 로마 황제 네로가 더 넓은 영토를 넘겨주었기 때문에 상당한 땅을 다스리는 분봉왕이 되었습니다. 헤롯 아그립바 2세는 유다의 마지막 황실의 통치자로서 그런 대로 너그럽게 행동하고자 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는 황제로부터 예루살렘 성전과 대제사장 임명 권한이 부여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기 누이 버니게와 부적절한 관계로 소문이 났기 때문에 유대인들에게 존경을 받지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버니게는 매우 방탕한 여인이었습니다. 첫 남편 마르쿠스가 죽자 그녀는 자기의 숙부와 재혼했는데, 그 남편마저 죽자 아그립바 2세에게 돌아와 생활하다가 나중에 소문이 좋지 않자 길리기아의 폴레모 왕을 유혹하여 결혼했으나 품행이 좋지 못한 소문이 나서 다시 이별하고 돌아와서 오빠 아그립바 2세의 궁전에서 마치 왕비처럼 행세하며 지냈습니다. 바로 사도 바울을 만난 때는 바로 이런 저런 남성 편력을 펼친 후에 오빠 아그립바 왕 곁에 있을 때입니다. 이 때 그녀의 나이가 30세 정도 되었을 것입니다. 그 후에도 버니게의 남성 편력은 끝이 없었으니 후일에 로마 황제 베니파시안의 아들 디도 장군이 팔레스타인에 머물 때에 그를 유혹하여 그의 애인이 됩니다. 그리고 디도가 아버지를 이어서 로마 황제가 되었을 때에 정식 부인이 되어 로마 황제의 아내 황후가 되기를 갈망하였습니다. 그러나 유대인 출신이고 방탕한 소문이 있는 버니게가 황제의 부인이 되기를 원치 아니한 로마의 원로원과 로마 사람들의 반대로 버니게는 디도로부터 결국 버림을 받습니다. 버니게는 그렇게 좋은 가문과 젊음과 아름다운 미모를 무기로 삼아 자기의 세속적 욕망을 이루기 위하여 물불 안 가리고 모험하며 달려갔던 여인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원수 노릇을 하던 헤롯 왕가의 마지막 황금기를 누렸던 헤롯 아그립바 2세와 버니게와 드루실라에게조차 하나님께서 바울을 보내어 복음의 진리의 빛을 비추어주시는 은혜의 기회를 주셨다는 것은 참으로 기이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도 멸망치 않고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받기 원하시며, 심판날에 핑계치 못하게 하시기 위함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그들에게 어떻게 사도 바울로부터 복음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지 그 과정을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4절로부터 22절까지 함께 읽겠습니다.
“여러 날을 있더니 베스도가 바울의 일로 왕에게 고하여 이르되 벨릭스가 한 사람을 구류하여 두었는데, 내가 예루살렘에 있을 때에 유대인의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그를 고소하여 정죄하기를 청하기에 내가 대답하되 무릇 피고가 원고들 앞에서 고소 사건에 대하여 변명할 기회가 있기 전에 내주는 것은 로마 사람의 법이 아니라 하였노라 그러므로 그들이 나와 함께 여기 오매 내가 지체하지 아니하고 이튿날 재판 자리에 앉아 명하여 그 사람을 데려왔으나 원고들이 서서 내가 짐작하던 것 같은 악행의 혐의는 하나도 제시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들의 종교와 또는 예수라 하는 이가 죽은 것을 살아 있다고 바울이 주장하는 그 일에 관한 문제로 고발하는 것뿐이라 내가 이 일에 대하여 어떻게 심리할는지 몰라서 바울에게 묻되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일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려느냐 한즉 바울은 황제의 판결을 받도록 자기를 지켜 주기를 호소하므로 내가 그를 가이사에게 보내기까지 지켜 두라 명하였노라 하니 아그립바가 베스도에게 이르되 나도 이 사람의 말을 듣고자 하노라 베스도가 이르되 내일 들으시리이다 하더라”(사도행전 25:14~22)
이 내용은 총독 베스도 주관으로 사도 바울에 대한 재판이 며칠 전에 일단락이 되어 사도 바울이 로마의 네로 황제 앞에서 상소 판결을 받도록 결정되었던 일에 대하여 아그립바 2세에게 총독이 설명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총독 베스도는 그 재판 과정에서 자기로서는 전혀 관심도 없고 의미도 없는 종교 문제와 예수의 부활 문제 가지고 유대인의 대제사장과 바울 간의 논쟁이 있었는데, 자기는 어떻게 심리할 줄 몰랐노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당시의 대다수의 로마 사람들과 관리들은 기독교에 대하여 무관심했습니다. 유대인의 종교를 매우 경멸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런 재판장 앞에서라도 사도 바울은 변론하는 중에 예수의 부활에 대한 사실을 말할 기회가 주어지자 사도는 그 기회를 이용하여 열렬하게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했던 것입니다. 한번도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 아니하였던 베스도는 이 유대의 총독으로 임명받아 옮으로써 오자마자 가장 종교적인 민족의 재판 건에 휘말려서 이 구원의 진리를 비자발적으로나마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당시 대제사장 임명권을 가지고 성전의 관할권을 가진 아그립바 2세가 왔으니 이 바울의 재판 문제를 상의하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서 말을 꺼내 본 것입니다.
그랬더니 아그립바 2세가 덥썩 그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22절에서 본 대로 아그립바 2세는 총독의 말을 듣자마자
“나도 이 사람의 말을 듣고자 하노라”
고 하였습니다. ‘듣고자 하노라’는 말을 원문의 뜻을 살려서 해석하자면, “그 동안 계속해서 듣고 싶어했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고 학자들은 말합니다. 그것도 원문에 보면, ‘자기가 직접’ 듣기를 원해왔다는 것입니다. 그 동안 사도 바울이 이방인들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여 수많은 이방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는 일이 일어나고 유대인들 중에는 이 일에 대하여 불만이 폭증하여 사도 바울을 죽이려드는 일이 있다는 소식을 아그립바 2세 역시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의 아버지가 기독교의 지도자 야고보를 죽였고 사도 베드로도 죽이려고 감옥에 붙잡아두었다가 베드로가 사라지는 일도 겪었던 일도 들어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의 증조할아버지 헤롯 대왕부터 그의 할아버지격인 헤롯 안디바나 그의 아버지 아그립바 1세에 이르기까지 그 집안은 대대로 하나님을 대적하며 교회를 핍박하는 일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아그립바 2세가 기독교의 복음을 전하는 위대한 일꾼인 사도 바울을 만나 그의 말을 직접 듣고 싶어 했노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과연 아그립바 2세가 사도 바울을 직접 대면하여 그의 말을 듣고자 한 것은 진심어린 영적 갈망 때문일까요 아니면 단순한 호기심 때문일까요? 과거 그의 배다른 여러 할아버지 중 한 사람이었던 헤롯 안디바의 경우에도 세례 요한과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얼굴을 보고 그의 기적을 자기 눈으로 보기를 열망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지하고 진실한 영적 열망이 아니라 단순한 호기심, 자기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하고자 하는 지적, 감정적 호기심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아그립바 2세는 과연 어떤 마음을 가지고 그 동안 사도 바울의 말을 직접 듣기를 원했을까요? 그리고 이제 그의 바람대로 사도 바울의 말을 듣게 되었을 때 그는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되었을까요?
그 다음날 베스도 총독은 사도 바울을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 공주와 여러 귀인들 앞에 불러내어 말을 듣는 시간을 갖도록 조치합니다. 정식 재판은 이미 끝났지만 아그립바 왕을 대접하는 일환으로, 그리고 자기가 황제에게 올리는 소송의 이유를 얻을 일환으로 접견장에 바울을 불러 내어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러면 23절로부터 27절까지 함께 읽겠습니다.
“이튿날 아그립바와 버니게가 크게 위엄을 갖추고 와서 천부장들과 시중의 높은 사람들과 함께 접견 장소에 들어오고 베스도의 명으로 바울을 데려오니 베스도가 말하되 아그립바 왕과 여기 같이 있는 여러분이여 당신들이 보는 이 사람은 유대의 모든 무리가 크게 외치되 살려 두지 못할 사람이라고 하여 예루살렘에서와 여기서도 내게 청원하였으나 내가 살피건대 죽일 죄를 범한 일이 없더이다 그러나 그가 황제에게 상소한 고로 보내기로 결정하였나이다 그에 대하여 황제께 확실한 사실을 아뢸 것이 없으므로 심문한 후 상소할 자료가 있을까 하여 당 신들 앞 특히 아그립바 왕 당신 앞에 그를 내세웠나이다 그 죄목도 밝히지 아니하고 죄수를 보내는 것이 무리한 일인 줄 아나이다 하였더라”
날이 밝자 가이사랴의 총독 관저서 총독과 날마다 파티와 사교적인 모임을 가지면서 한가롭게 대화를 즐기던 그들은 이제 하나님의 섭리에 의하여 의의 교사요 복음의 선포자인 사도 바울 앞에 나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같은 지구상에 살면서도 마치 딴 세상 사람들처럼 권력과 재물을 소유하고 기름진 음식을 날마다 먹으면서 이 지상에서 축복받은 삶을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23절에 보면, 그를 보러 온 아그립바 왕이나 버니게가 크게 위엄을 갖추고 왔다고 했습니다. 왕이 붉은 자주 빛 왕복을 걸치고 머리에 빛나는 금관을 썼고 버니게 역시 왕비처럼 화려하고 아름다운 빛나는 치마와 목걸리와 귀고리와 팔찌로 장식하고 나온 것입니다. 왕과 공주가 그렇게 화려한 정장을 입고 나타날 것이므로 총독 역시 붉은 빛 정장의 총독 예복을 착용하였고, 그의 휘하에 있는 가이사랴의 다섯 명의 천부장들도 화려한 군인 정복을 입고 여러 귀족들 역시 정식 예복을 입고 그 자리에 참석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 앞에 불려 나온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한 군인에 이끌려서 손에 결박이 채워진 채 그들 앞에 서 있는 사도 바울의 모습은 인간적으로 볼 때 매우 초라합니다. 죄수복에 손에 결박된 상태로 있습니다. 그의 외모에 대한 외경 ‘바울과 데킬라 행전’이라는 책에서 사도 바울은 키가 작고 눈썹이 서로 맛닿아 있고 이마가 벗어진 대머리이고 코가 길고 구부러져 있으며다리는 밭장다리이고 그 얼굴 표정은 남자 때로는 천사와 같았다고 하는 기록이 있습니다. 외적인 면에서는 바울은 보잘것이 없음이 분명합니다. 그들 앞에 화려하게 치장하고 나타난 수많은 귀족들 앞에 서니 더더욱 초라하고 미미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차분하고 그 마음이 조용히 깊게 흐르는 큰 대양 같은 사람이며 자기의 신앙과 신념을 태산처럼 흔들림없이 고수하는 강직한 사람이며 불과 같은 열정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과연 아그립바 2세와 버니게와 베스도 총독과 천부장들과 귀족들은 과연 이 보잘것없는 외모를 가진 결박된 유대인 죄수로부터 들려지는 말에 어떠한 반응을 할까요? 아그립바 왕이 사도 바울에게 자기를 위하여 변명하라고 발언을 허락했을 때에 사도 바울은 자기 앞에 주어진 이 전도의 기회를 최선을 다해 살려서 그 중 한 사람이라도 복음을 듣고 구원의 길로 인도하려고 입을 열어 말하기 시작합니다.
26장 1절로부터 23절까지 함께 읽겠습니다.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너를 위하여 말하기를 네게 허락하노라 하니 이에 바울이 손을 들어 변명하되 아그립바 왕이여 유대인이 고발하는 모든 일을 오늘 당신 앞에서 변명하게 된 것을 다행히 여기나이다 특히 유대인의 모든 풍속과 문제를 아심이니이다 그러므로 내 말을 너그러이 들으시기를 바라나이다
내가 처음부터 내 민족과 더불어 예루살렘에서 젊었을 때 생활한 상황을 유대인이 다 아는 바라 일찍부터 나를 알았으니 그들이 증언하려 하면 내가 종교의 가장 엄한 파를 따라 바리새인의 생활을 하였다고 할 것이라 이제도 여기 서서 심문 받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조상에게 약속하신 것을 바라는 까닭이니 이 약속은 우리 열두 지파가 밤낮으로 간절히 하나님을 받들어 섬김으로 얻기를 바라는 바인데, 아그립바 왕이여 이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유대인들에게 고소를 당하는 것이니이다 당신들은 하나님이 죽은 사람을 살리심을 어찌하여 못 믿을 것으로 여기시나이까
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많은 일을 행하여야 될 줄 스스로 생각하고 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들에게서 권한을 받아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찬성 투표를 하였고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 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게 하는 말을 하게 하고 그들에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에까지 가서 박해하였고 그 일로 대제사장들의 권한과 위임을 받고 다메섹으로 갔나이다 왕이여 정오가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부터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비추는지라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말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아그립바 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르지 아니하고 먼저 다메섹과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다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하라 전하므로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나를 잡아 죽이고자 하였으나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언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밖에 없으니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니라”
사도 바울은 발언권을 얻자 곧 자기 앞에 화려한 왕복과 총독의 제복과 번쩍이는 훈장들로 장식된 천부장들과 기품 있는 옷을 입은 왕과 공주와 총독과 천부장과 귀족들을 향하여 거침없이 담대하게 전도하기 시작합니다. 그의 요지는 분명합니다. 그는 유대인들이 유대교의 정통 학파로 인정받는 바리새인으로 자라나서 그 학파의 가장 중요한 교리대로 죽은 자의 부활의 소망을 갖고 전하였고 이 소망 때문에 지금 재판을 받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죽은 자의 부활이 확실한 것을 자기의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난 경험을 간증함으로써 확증합니다. 그가 이단이라고 생각하고 그토록 잔혹하게 핍박하였던 나사렛 예수가 다메섹 도상에서 대낮의 햇살보다 더 강렬한 영광 중에 자기에게 나타나시고 그를 향하여 일어나 서라 그리고 자기가 본 부활의 주님의 증인이 되라고 하셨다는 말씀을 증언합니다. 그리하여 예수께서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보내어 그들의 눈을 뜨게 하고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사함과 천국 기업을 상속받게 하는 일을 하라는 사명을 자기에게 주셨노라고 증언합니다.
자기가 그토록 무섭게 핍박하던 기독 교회가 추종하는 이단의 괴수 나사렛 예수가 바로 조상적부터 내려오던 소망 곧 죽은 자의 부활을 성취하신 약속의 구주 그리스도이신 것을 그가 분명히 체험함으로써 이제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하던 그리스도가 바로 나사렛 예수시며 그가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전함으로 그를 믿음으로 죄사함과 하나님 나라의 기업 천국을 얻게 된다는 것은 확실한 것이라고 담대히 전하면서, 자기는 바로 그렇게 보냄받은 사명대로 일한 것뿐이라고 당당하게 전하였던 것입니다.
자, 이렇게 부활의 소망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확고한 체험담을 증거하는 사도 바울의 전도의 말씀을 들은 그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살펴봅시다. 24절로부터 32절까지 함께 읽겠습니다.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내어 이르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바울이 이르되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정신차린 말을 하나이다
왕께서는 이 일을 아시기로 내가 왕께 담대히 말하노니 이 일에 하나라도 아시지 못함이 없는 줄 믿나이다 이 일은 한쪽 구석에서 행한 것이 아니니이다 아그립바 왕이여 선지자를 믿으시나이까 믿으시는 줄 아나이다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바울이 이르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하니라
왕과 총독과 버니게와 그 함께 앉은 사람들이 다 일어나서 물러가 서로 말하되 이 사람은 사형이나 결박을 당할 만한 행위가 없다 하더라 이에 아그립바가 베스도에게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가이사에게 상소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석방될 수 있을 뻔하였다 하니라”
가장 먼저 사도 바울의 열정적인 전도의 말을 가로막으며 반응한 사람은 총독 베스도였습니다. 그는 사도 바울을 향하여 미쳤다고 말했습니다. 사도 바울의 많은 학문이 그를 미치게 했다고 하였습니다. 모든 종교를 다 우습게 보고 힘과 권력만으로 성공을 이루어내었던 로마 제국의 관료다운 무신론적인 반응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는 스스로의 지혜와 노력으로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네로 황제의 권력의 비호를 받고 이곳 팔레스타인에 와서 골칫거리인 종교적 사회인 유대인들을 칼창으로 다스릴 힘을 갖고 온 사람으로서 갑작스러운 종교적 도전을 받았을 때에 이렇게 반응했던 것입니다. 아무리 사도 바울의 강력하고 확고하고 분명한 체험을 곁들인 복음 전도를 들었다 해도 베스도의 이성은 그 동안 자기를 붙들고 온 무신론적인 확고한 신념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않고서 단지 두 번 듣게 된 복음, 죽은 자의 부활을 어찌 믿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다면 단 한 번의 짧은 전도로도 복음에 반응하고 생명의 길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만 베스도 총독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저 사도 바울은 미친 사람이요 예수가 부활하였고 그가 부활하신 예수를 만났다는 말은 종교에 미친 미치광이의 헛소리로만 들렸던 것입니다. 베스도의 마음에는 온통 지금 자기에게 주어진 이 유다 총독의 직위를 성공적으로 잘 감당하고 난 후 로마의 중앙 정치 무대에 다시 서서 더 높은 관직을 얻는 정치적 야망만 가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스도의 미래는 어떠했을까요? 놀랍게도 베스도는 총독의 자리에 부임한 지 2년만에 죽습니다. 그의 죽음에 대하여서 요세푸스의 전쟁사에 보면 특별한 죽음의 사유 없이 그의 죽음을 언급하고 그 자리에 알비누스라는 사람이 임명되어 부임 중에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총독 베스도는 사도 바울의 전도를 듣고 난 후 이년만인 주후 62년에 원인을 알 수 없는 일로 죽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렇듯 사람은 자기 앞날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잠시 있다가 사라질 로마의 제국의 영광보다 더 크고 영원한 나라, 불멸의 생명의 나라의 복음이 그를 부르고 있었으나 베스도는 그 나라의 임금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를 위하여 보내신 사도 바울의 전도 말씀을 두 번씩이나 들을 수 있었던 특권을 누렸지만 그는 더 높은 부르심의 초대를 단지 미친 소리로만 알고 이렇게 무시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베스도의 거절의 말을 듣고 난 후에 집중적인 전도 대상으로 삼았던 아그립바 2세 역시 사도 바울의 간절한 권면의 말을 듣고서도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라고 말하며 사도 바울의 말을 뿌리칩니다. 그가 유대인들의 임금으로서 그들의 환심을 사야 하는 처지에 있으므로 그가 그리스도인이 된다고 한다면 그는 유대인들로부터 무서운 반발을 살 것이 뻔하였기에, 그는 아무리 사도 바울의 간절한 권면을 들었어도 그것을 거절하였을 것입니다. 이로써 아그립바 2세는 사도 바울의 말을 직접 듣기를 오랫동안 갈망해왔으나 정작 직접 사도 바울을 보고 그로부터 부활의 소망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실로서 성취되었으며 나사렛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고 그에게 직접 나타나 말씀하셨다는 다메섹 체험의 증거의 말씀을 듣고서도 자기는 사도 바울의 짧은 권면의 말을 듣고 그리스도인이 될 수는 없노라고 거절하였던 것입니다. 아그립바 왕은 유대인의 왕이라는 신분 때문에 그의 아버지가 행하였던 기독교회에 대한 박해 곧 야고보를 죽이고 사도 베드로까지 죽이려 들었다가 결국 벌레 먹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깨닫지 못하고 결국 유대인들의 눈치를 보면서 사도 바울의 권면을 물리친 것입니다. 결국 그가 사도 바울의 말을 그 동안 듣고자 한 것은 과거 헤롯 안디바가 세례 요한의 말을 들으려고 자주 감옥에 내려왔던 것과 예수님을 뵙고 기적을 행하는 것을 보고 싶어했던 것과 같은 잠깐의 영적 호기심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전도의 권면이 거절될 그 때에 사도 바울은 아그립바 왕이나 버니게나 총독과 귀인들 앞에 당당하고 단호하게 이렇게 선언합니다.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이 말씀을 보면, 당시 화려한 왕복을 입고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아그립바 왕이나 세상 최고의 미모와 화려함을 가지고 온 세상을 유혹할 듯이 고상한 척 앉아 있는 공주 버니게와 자기 뒤에 로마 제국의 막강한 무력과 재력과 권력을 가지고 모든 사람들 위에 군림하며 앉아 있는 베스도 총독과 그의 직속 군대 지휘관들인 천부장들과 다른 유력한 권세자들 앞에서 사도 바울은 기가 하나도 죽지 않습니다. 그들이 하나도 부럽지 않습니다. 그들이 오히려 불쌍합니다. 그들이 그렇게 자랑스럽게 여기는 권력과 재물과 젊음과 힘과 아름다움이 잠시 후면 다 사라질 줄도 모르고 썩어질 것들을 자랑하며 의지하며 영원한 영광과 생명의 진리의 말씀을 거절하는 것을 보면서 불쌍하고 안타까웠습니다.
사실인즉 이 일 직후부터 베스도 총독과 아그립바 2세의 치하에서 급격한 강도떼가 들끓어서 치안 불안이 계속되었습니다. 점점 폭동이 많아지고 로마에 대한 반란이 극심해져서 팔레스타인 지역은 혼돈의 땅으로 변해버립니다. 결국 이년 후에는 베스도는 죽고 아그립바 왕은 로마 군에 의하여 유대 지역과 예루살렘이 완전히 황폐화 된 후에 로마의 행정관으로 전락해버렸습니다. 버니게 공주도 로마 장군 디도의 애첩이 되었지만 결국 로마의 황후가 되려고 했으나 쫓겨난 신세가 되었습니다. 또 천부장들도 수많은 전쟁터에 내몰려 죽음을 당했을 가능성이 크고, 그 때 모였던 귀족들도 강도떼들의 습격으로 모든 재산을 잃고 죽거나 로마 군대에 의하여 죽거나 유랑민이 되는 신세가 되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실제적으로도 그 자리에 화려한 옷을 입고 자기의 권세를 자랑하는 그들은 부러운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사도는 자기의 결박된 것 외에 그들 모두가 자기처럼 되기를 바란다고 솔직하게 그들에게 도전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나보다 못하다.”라고, “내가 죄수처럼 보이지만 영원하신 하나님 나라의 사신이요 여러분의 생명을 전해줄 복음의 보배를 가진 자라.”고, “여러분은 이 진리의 보화를 갖고 영원한 나라를 상속할 권세를 가진 나를 사실 부러워해야 한다.”라고, 가슴을 펴고 그들에게 당당히 도전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사실 지금 세상 권세를 다 가진 듯한 세상의 권력자들, 세상 재물을 다 가진 자와 같은 재벌 총수들, 세상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젊고 아름다운 선남 선녀들보다 더 영광스러운 권세자요 모든 것을 가진 부자들이요 영원한 청춘의 샘을 가진 불멸의 생명을 가진 불멸의 청춘들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자부심을 갖고 사시기 바랍니다. 결박된 채 한낱 죄수의 신분이었으나 그 심장에 복음에 대한 확신과 열정을 가지고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그 화려한 지위를 가진 자들 앞에서도 조금도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그들 모두가 다 자기와 같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기를 바란다고 큰소리로 전도한 사도 바울처럼, 우리도 이 시대 우리 주변 모든 이들에게 당당하게 전도하는 주님의 사람이 됩시다. 그것이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이요 오늘 본문 말씀이 주는 우리에게 주는 도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