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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 자유게시판 스크랩 철부지의 낙서장 ; 봄마중 남도나들이
승시기 추천 0 조회 75 12.02.28 18:2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계절의 발걸음이 더디기만 하다.

3월이 코 앞인데 겨울은 아직 물러날 생각이 없는 듯하고 봄은 완강히 버티는 그 겨울을 쫓아낼 엄두가 나지 않는 모양이다.

그래서 미적대는 봄이란 놈의 멱살이라도 잡아 끌고올 양으로 지난 주말 친구들과 부부동반으로 봄마중 남도나들이에 나섰다.

토요일 아침 8시 5분 광명역을 출발한 KTX가 11시 조금 못미쳐 광주역에 도착했다.

미리 마중을 나와 있던 광주쪽 일행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 다음 본격적인 나들이의 시동을 걸었다.

 

 

 

새벽부터 서두른 탓에 아침식사가 부실했던 터라 우선 배부터 채우기로 했다.

명불허전(名不虛傳)이라했던가.

광주는 역시 소문난 예술의 고장(藝鄕)이자 맛의 고장(味鄕)다웠다.

먼저 눈에 띈 것은 '홍익재(弘益齋)' 란 식당건물 이름.

'학습장소'나 '기숙사'를 뜻하는 재(齋)를 갖다 붙인 점이 다소 생뚱맞긴 했지만 깊은 인상을 주기도 했다.

음식으로 배만 채우지 말고 음식을 먹으면서 '널리 이롭게 하라(弘益)'는 가르침도 배워가는 곳이라는 의미는 아닐른지.

 

 

 

우리 일행이 들어간 매실(梅室) 방안 풍경이 예사롭지 않았고 그곳으로 들여오는 음식 하나하나도 입에 착착 감겼다.  

벽에 걸린 '백인당(百忍堂)'이라는 허백련(許百鍊) 선생의 글씨와 그 맞은 편의 고풍스런 가구가 눈길을 끄는 가운데

배추김치 매실장아찌 톳같은 몇몇 반찬이 먼저 들어오자마자 우리 일행은 모두들 정신없이 몽땅 먹어치워 버렸다.

'참고 참는 곳(百忍堂)' 이라는 허백련 선생의 글씨가 위에서 내려 보고 있었지만 맛있는 걸 어떡하란 말인가.

특히 김치가 맛있다며 이구동성으로 감탄했는데 알고보니 김치축제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솜씨란다.

울 사모님들 택배주문도 가능하냐고 묻더니 바로 카달로그 하나씩을 챙겼다.

차례차례 나오는 음식마다 정말 ?있어서 짜구날 정도로 많이 먹고 식식거렸다.

다만 술이 빠질 수 없는 자리인데 애주가 친구들 대부분이 이런저런 이유로 이제 술을 멀리 해야할 건강 상태가 돼버려 안타까울 뿐이었다.

젊은 시절 먹는 시늉만해도 취하던 한 친구와 내가 이제 친구들중에 가장 술에 강해졌다는 소리를 들으니 세상 참 얄궂다.   

 

 

 

 

 

 

 

 

 

봄을 찾아 나들이에 나섰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살을 에는듯한 바람과 안개비로 애를 먹었다.

아마 겨울이 마지막 발악을 해대는 모양이었다.

오죽하면 '순천만자연생태공원'에서 옆지기를 포함한 일행중 몇 명이 입장권을 끊고 들어가자마자 산책을 포기하고 바로 차로 돌아갔을까.

나로서는 꼭 가보고 싶던 곳인데다 언제 또 다시 찾아갈 수 있을지 몰라 몇몇 친구들과 함께 1시간 30분가량 갈대숲 사잇길을 돌고돌아

순천만 갈대늪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용산전망대까지 다녀왔다.

그곳에서 내려다보니 여수반도와 고흥반도 사이에 어머니의 자궁처럼 들어앉아 수많은 생명체를 품고 있다더니 과연 그런 말이 나올만 했다.

갈대숲뿐만 아니라 찾아가는 과정에서도 흔히 볼 수 없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논에 앉아 먹이를 구하는 독수리떼와 무리를 지어 날아오르는 재두루미같은 새도 내 눈으로 직접 보는 기쁨을 누렸다.

그 뿐인가. 우중중한 날씨속에서도 용산전망대로 오르는 길에서는 오뉴월에나 볼 수 있을 법한 수목의 초록빛에 기분이 한결 상큼해졌다.

 

 

 

 

 

 

 

순천시청 부근 한식당 저녁식사 자리에는 영산포 김원장 내외도 합류했다.  

광주 조선한정식은 코스요리인데 비해 대원식당은 한꺼번에 차려 내놓는 모듬요리였다.

두 종업원이 상을 들여올 때보니 상가운데가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그 모양새로 보아서는 '상다리가 부러진다'는 표현은 이제 '상허리가 끊어진다'로 갈아치워야할 성싶었다.    

'대갱이무침'이 이채로왔고 고등어살을 채소에 싸먹는 맛도 괜찮았다.  

점심때 광주에서 한식으로 정말 흐벅지게 배를 채운 탓에 추위속에서 순천만을 그렇게 헤집고 쏘다녔는데도 여전히 배가 뱅뱅해

저녁 식사상에 차려진 음식을 많이 먹지 못한 점은 못내 아쉽기만하다.

식사후 율포해수욕장에 자리한 '다비치콘도'에 여장을 풀고 간단히 모임을 가졌다.

5월 형진이 결혼, 6월말 영은이 쌍둥이 출산 예정, 우리 장남 약대 입학, 도기네 조카 반석이 의대 인턴 등 각 가정의 경사를 서로 축하했고

김원장이 오메가3 두 통씩을 각 가족에게 선물해준 사실에 대해 감사표시를 하고, 그 동안 회비가 웬만큼 쌓인데다 이제 각 집마다 고정수입이 줄어들었으니 올해부터 갹출하는 회비는 월2만5천원에서 월2만원으로 줄이자는데 합의했다.

회의후 노여사가 토정비결을 봐 주며 복채를 벌기도 하고 일부는 노래방에서 뒤풀이를 즐기기도 했다.

그런데 노래방 상호가 '서편제노래방'이라니 판소리의 고장답다.   

 

숙소로 돌아 와 씻고 코골이 친구들을 피해 거실에 자리를 깔았는데 결과만 보면 여우를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난 꼴이 되고 말았다.

한 친구가 밤새 텔레비젼을 틀어 놓고 뒤척인 탓이다.

물론 피곤한데다 술기운이 겹쳐 서너 시간은 정신없이 곯아떨어졌으니 별 문제는 없었다.

광명역 열차시각에 대가려고 새벽같이 부산을 떨었고 추위에 떨며 순천만 갈대숲을 거닌데다 끼니때마다 반주를 곁들이고

회의할 때와 노래방에서 맥주로 입가심을 한 덕분이었다.

그보다 큰 병을 앓고 난 뒤 밤잠을 설치는 고역을 겪는 그 친구가 안타까운데 하루빨리 건강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 와

그가 좋아했던 술도 마음껏 마실 수 있게 되길 빌어 본다.

어디 그 친구뿐이랴.

여행을 좋아하고 사람과 어울리기를 즐기면서도 건강상 사정으로 이번 모임에 함께하지 못한 건호 엄마는 말할 것도 없고,

모임에 참석한 친구중에도 갑상선암수술도 모자라 얼마전 고관절 수술까지 겪은 친구, 심근경색을 겪고 나서 늘 노심초사하는 친구, 건강상의 이유로 지난 연말 대기업 사장직에서 갑작스럽게 물러난 친구 등등 우환에서 자유로운 친구가 별로 없다.

강건한 젊은 시절로 되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함께 만나 웃고 떠들 수 있을 만큼의 건강상태를 회복하여 유지했으면 좋겠다.

 

(토정비결을 봐 주고 받은 복채 전부를 노여사가 귀경길 KTX안에서 커피 등 음료수대로 전부 환원했다)

 

 

아침 여섯 시 반쯤 콘도 안 사우나에 들러 해수녹차탕으로 피로를 풀고 냉이된장국 우거지해장국 북어국 따위로 숙취를 풀고나니 속도 개운해졌는지 콘도 앞 해수욕장에서 거친 바람과 맞서기도 했다.

그런데 내 뇌체계에 무슨 이상이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분명 학창시절에 가 본 곳인데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런 곳이 한 곳 더 있다. 이곳은 율포라는 지명이라도 생각이 나는데 그곳은 아예 해수욕장 이름조차 기억이 나질 않는다. 대체 언제 누구랑 왜 갔는지 도무지 기억이 없다. 뇌의 기억체계 이상이 아니라 억지로 끌려갔거나 인상적인 일이 없어서였을 거라고 그냥 편하게 생각해 버리자.

암튼 율포해수욕장 풍경은 바다든 모래밭이든 이번에도 을씨년스러울 뿐 아무 감흥이 없다.

 

 

 

여장을 챙긴 뒤 콘도를 뒤로하고 보성 녹차밭(대한다원)으로 걸음을 옮겼다.

남도에서 태어나 자랐으면서도 남도에는 발길을 하지 않은 곳이 정말 많다.

보성녹차밭도 그런 곳중 하나로 꼭 한 번 찾아보고 싶던 곳이어서 잔뜩 기대를 하고 찾아갔으나 시기를 잘못 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뺨이 얼얼할 정도로 너무 추워 제대로 구경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어마어마한 차밭 규모에 놀랐고 하늘을 찌를듯 곧게 솟아 있는 삼(杉)나무가 인상적이었다.

아 또 있다.

휴게실 연통으로 올라오던 그 파란 냉갈이라니.

검거나 하얗거나 푸르스름한 연기를 본 적이 있으나 그렇게 파아란 연기는 처음이었다.

왜 그렇게 파란 연기가 올라오는지 그 까닭을 물어보겠다는 생각을 했으면서도 깜박 잊고 그냥 돌아왔다.

아마 너무 추운 탓이었을 게다.

날이 풀려 날씨가 좋을 때 찾아 가면 꼭 한 번 확인해봐야겠다.

 

 

 

 

녹차밭에서 나와 화순 동면 '달맞이 흑두부'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녹차밭 휴게실에서 녹차를 마실 때 곁들여 줏어 먹은 '녹차건빵'이랑 '녹차맛 깨소미'가 뱃속에서 불어터졌는지 배가 뱅뱅해 아까운 음식들을 제대로 음미하지 못했다. 그래도 돼지고기 수육과 흑부두를 배추김치로 싸먹는 삼합맛은 잊기 어렵다.

음식맛보다 천상병 시인의 '귀천'나옹선사의 가르침을 새겨 놓은 식당 앞 시비가 오히려 마음에 든다.

두 편 모두 욕심없이 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데 저 맛있는 남도음식에 대한 식욕까지 내려놓고 그냥가라는 건 아니겠지.

그건그렇고 순천 대원식당에서 본 나옹선사의 가르침과 이 식당 앞 가르침이 다른데, 둘 다 잘못된 건 아닐런지.

욕심과 노여움과 어리석음(탐진치 貪嗔癡)이라는 세 가지 번뇌를 벗어 버리고 지혜롭게 살라는 부처님의 가르침대로라면 '(전략)탐욕도 벗어놓고/성냄도 벗어놓고/물같이 바람같이/살다가 가라 하네(후략)' 가 맞지 않을까 싶다.

어쨌거나 시간 관계상 다른 많은 곳을 들려 보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 하고 광주발 KTX에 몸을 실으며 봄마중 남도나들이를 마감했는데

이제 그 효험이 나타나는가보다, 오늘 낮부터 날이 풀렸으니...

 

 

 

(순천 대원식당에 걸려있던 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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