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히
붙은 나뭇가지나 다정한 연인이나 부부의 애정이 지극히 깊음을 상징하는
것에 連理枝(연리지)가 있다. 연리지(連理枝)는「나란히 붙어 있는 나뭇가지」이다.
곧 뿌리가 다른 두 그루의 나무가 사이좋게 합쳐진 가지가 連理枝다.
간혹 거대한 고목에서나 그런 경우를 볼 수 있는데 다정한 느낌이 들어보기에도
좋다. 이 외에도 비목어(比目漁)나 비익조(比翼鳥)라는
말도 연리지와 같은 의미를 상징한다. 중국의 전설에 동쪽 바다에 비목어(比目漁)가
살고 남쪽 땅에 비익조(比翼鳥)가 산다고 하는 얘기가 있다. 비목어는
눈이 한쪽에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두 마리가 좌우로 달라붙어야 비로소
헤엄을 칠 수가 있고, 비익조는 눈도 날개도 한쪽에만 있어 암수가 좌우
일체가 되어야 비로소 날 수 있다는 전설이다. 이처럼 '比目'이나 '比翼',
'連理'는 그 말의 이미지가 남녀간의 떨어지기 힘든 결합을 뜻한다.
비목어(比目魚)는 물고기 이름이지만 시에서는 당나라
시인 노조린의 시에서 처음으로 등장한다. 근자에 우리 나라에 잘 알려진
류시화 시인도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이란 제목으로 아래와
같이 비목어(比目魚)를 노래했다.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 류시화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살고 싶다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사랑하고 싶다 두눈박이 물고기처럼 세상을
살기 위해 평생을 두 마리가 함께 붙어 다녔다는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처럼 사랑하고 싶다
우리에게 시간은 충분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만큼 사랑하지 않았을 뿐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그렇게 살고 싶다 혼자 있으면 그 혼자 있음이 금방
들켜 버리는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처럼 목숨을 다해
사랑하고 싶다
連理枝(연리지)의 故事는 중국의 남북조시대에 송나라(420-479)
범영이 쓴 역사책 《후한서》에 이런 이야기가 실려있다. 후한 말의
대 학자인 채옹이란 사람은 어머니가 병으로 자리에 눕자 지극한 정성으로
간호하다가 돌아가시자 무덤 곁에 초막을 짓고 3년 동안 묘를 지켰다.
얼마 후 채옹의 방 앞에는 두 그루의 나무가 서로 마주보면서 자라나기
시작하더니, 차츰 두 나무는 서로의 가지가 맞붙어 마침내 이어져 연리지가
되었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채옹의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와 자식이
한 몸이 된 것이라고 칭송했다. 이때부터 연리지는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을 나타내는 효의 상징으로 여겨왔다. 그러나
세월이 한참 지나 당나라 현종과 양귀비의 비극적인 사랑을 노래한 시에
연리지를 인용하면서부터 남녀간의 변함없는 사랑의 뜻으로 더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서기 736년 무혜왕비를 잃고 방황하던 56세의 현종은,
남도 아닌 자신의 열 여덟 번째 아들 수왕 이모(李瑁)의 아내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아무리 제왕이 하는 일에는 부끄러움은 없다고 생각한
왕조시대의 사람들이 지만 훗날 양귀비가 된 22살 짜리 며느리와의 사랑
놀음은 당시로서도 충격적인 스캔들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비극으로
끝난 이들의 사랑이야기는 양귀비가 죽고 50여 년이 지난 서기806년,
유명한 시인 백거이(백낙천)에 의하여 다음과 같은 장한가(長恨歌)라는
대서사시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장한가의 전문은 상당히 긴 시이다)
중국의 전설에 비익조는 눈도 날개도 한쪽에만 있는
새라서 암수가 합치지 않으면 날 수 없는 신화 속의 새이다. 연리지는
물론 두 나무의 가지가 합쳐 하나가 되는 현상을 남녀의 애틋하고 영원한
사랑과 비유한 말이다. 이후 수많은 중국인들의 사랑이야기에 연리지는
단골손님이 된다. 우리의 역사 속에도 연리지는
일찌감치 등장하는데, 남녀간 사랑의 뜻만이 아니라 상서로운 조짐으로
받아들였다. 때로는 선비들의 우정을 나타내기도 하였으며 여염에서는
이 나무에 빌면 부부사이가 좋아진다고 믿었다. 또 연리지에 올라가
기도를 하면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에 들어 있는 연인이 그 날 밤잠을
이루지 못하게 된다고 한다. 바로 그 연인에게 상사병이 옮겨가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라고 했다. 《삼국사기》에 보면, 신라
내물왕 7년(362) 4월에 시조 묘의 나무가 연리 되었으며 고구려 양원왕
2년(546) 2월에 서울의 배나무가 연리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 고려사에도
광종 24년(973) 2월에 서울 덕서리에서 연리지가 났으며 성종 6년(987)에
충주에서도 연리지가 생겨났다고 하였다. 이처럼 연리지의 출현을 일일이
역사책에 기록할 만큼 희귀하고 경사스러운 길조로 생각한 것이다. 고려중기
이규보의 시문집인《동국이상국집》의 고율시(古律詩)에도 아래와 같이
연리지를 언급하여 친구사이의 우정을 나타낸 노래도 있다.
연리지(連理枝)는 쉽게 얘기해서“사랑나무”다.
가까이 자라는 두 나무가 맞닿은 채로 오랜 세월이 지나면 서로 합쳐져
한 나무가 되는 현상이 연리(連理)다. 그래서 두 몸이 한 몸이 된다하여
남녀간의 애틋한 사랑과 비유한 것이다. 나뭇가지가 서로 이어지면 연리지(連理枝),
줄기가 이어지면 연리목(連理木)이라 한다. 연리목은 가끔 만날 수 있으나
가지가 붙은 연리지는 매우 드물다. 가지는 다른 나무와 맞닿을 기회가
적을 뿐만 아니라 맞닿더라도 바람에 흔들려 버려 좀처럼 붙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편 땅속의 뿌리는 우리가 잘 볼
수 없어서 그렇지 이런 연리현상이 땅위의 줄기나 가지보다 훨씬 더
흔하게 일어난다. 좁은 공간에 서로 뒤엉켜 살다보니 맞닿을 기회가
많아서다. 연리근(連理根)이라고 불러야 하나 그런 경우는 너무 흔하다보니
쓰지 않는 말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주변은 너무 빨리 변해 가고 있다. 가장 전통적이고 우리다워야 할 사랑의
방식도 가치관도 오늘에서 어제를 몰라볼 만큼 달라지고 있다. 가수
전영록 씨가 부른 노래 중에 이런 노래가 유행하였다.
“사랑을
쓸려거든 연필로 쓰세요. 사랑을 쓰다가 틀리면 지우개로 깨끗이 지워야
하니까...”
이런
유행가 가사를 지은 사람을 탓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이러한 현 세태를
말한다면 사랑이 그렇게 연필로 썼다 지웠다할 만큼 가벼운 놀이가 되겠는가?
그래도 이건 약과다. 나야 노래는 젬병이지만《점포맘보》라는 노래가사는
소위 쉰 세대급 사람들은 거의 기절할 지경에 이를 것이다.
“같이
삽시다. 살아봅시다. 과연 우리 서로 잘 맞는지 어떤지 한번 살아봅시다...
점포맘보”
노래
가사대로라면 사랑도 점포에 진열해 놓은 물건인 모양이다. 이처럼 너무
쉽게 만나고 너무 쉽게 헤어지는 인스턴트 사랑은 아마도 바람처럼 지나가는
유행일 뿐이리라. 곰팡내 나는 소리 같지만 사람과 사람사이를 이어주는
사랑이라는 기본 틀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을 것이다. 특히 남녀가
만나 사랑을 나누고 부부의 연을 맺어 평생을 같이 하는 과정을 연리지로
승화시킨 옛 사람들의 사랑 방식은 오늘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잔잔한
감동을 아니 준다고 대들 사람은 감히 아무도 없을 것이다. 어떤
나무가 연리가 되는 과정은 가까이 심어진 두 나무의 줄기나 가지는
자라는 동안 지름이 차츰 굵어져 맞닿게 된다. 양쪽 나무는 해마다 새로운
나이테를 만들므로 나이를 먹어가면서 서로를 심하게 압박한다. 우선
맞닿은 부분의 껍질이 압력 때문에 파괴되거나 안쪽으로 밀려나고 나면
맨살이 그대로 맞부딪친다. 남남으로 만난 둘 사이에는 사랑의
스킨십이 이루어지면서 물리적이 맞닿음이 아니라 생물학적인 결합을
준비하는 것이다. 먼저 지름생장의 근원인 부름켜가 조금씩 이어지고
나면, 다음은 양분을 공급하는 유세포(柔細胞)가 서로를 섞어버린다.
마지막으로 나머지의 보통 세포들이 공동으로 살아갈 공간을 잡아가면
두 몸이 한 몸이 되는 연리의 대장정은 막을 내린다. 고욤(우리 사투리로
고얌)나무에 감나무 접을 붙이는 것과 같은 원리다. 이런 나무를 잘라보면
마치 쌍 가마를 보고 있는 듯 두 개의 나이테 두름이 한꺼번에 들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두 나무 세포의 이어짐은
적어도 10여 년이 넘게 걸리고 결국은 한 나무와 꼭 같아진다. 양분과
수분을 서로 주고받음은 물론이고 한쪽나무를 잘라버려도 광합성을 하는
다른 나무의 양분 공급을 받아 살아 갈 수 있다. 연리목은 인위적으로
만들 수도 있는데 4∼5년 생 정도의 같은 종류의 어린 나무 두 그루를
구하여 한 걸음 정도 떨어지게 심고 뿌리가 완전히 내리기를 기다린다.
두 나무가 맞닿을 줄기 부분의 껍질을 약간 긁어내고 탄력 있는 튼튼한
비닐 끈으로 묶어두면 연리목이 만들어진다. 나무의 종류는 자귀나무나
엄나무가 좋다. 자귀나무는 밤이 되면 마주 보고 벌려진 잎이 증산작용을
줄이기 위하여 닫아버리는 현상을 두고 의좋은 부부를 상징하며, 엄나무(음나무)는
사랑을 방해하는 귀신을 쫓아낸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나무와
참나무처럼 종류가 다른 나무는 수 십 년이 아니라 수 백 년을 같이
붙어 있어도 그냥 맞대고 있을 따름이지 결코 연리가 되지 않는다. 세포의
종류나 배열이 서로 달라서이다. 인간은 인간끼리만 성적인 것도 포함하여
참다운 사랑이 가능하다는 얘기일 것이다.
경북
영주시 순흥면사무소 앞마당에 가 보면 가지가 이어진 것이 아니라 소나무가
줄기가 비꼬여 가면서 서로 붙어있는 연리목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아니
눈썰미 있는 분이라면 보셨겠지만 경북 문경시 신기동 문경시자동차면허시험장 앞에 있는 고향(古香)이라는
음식점에 가보아도 연리지는 아니지만 연리목은 볼 수 있다. 이 고향
음식점은 나의 죽마고우인 한정상 동문의 내자가 꾸려가는 음식점이다.
이 음식점을 개업할 때 고향에 사시는 이용덕이라는 분이 개업 선물로
오래 전에 구해 놓은 연리목을 잘 다듬어서 준 것이다. 나는
가끔 여기에 들릴 때면 보통 사람들은 눈여겨보지는 않고 그저 "그것
참 희안하게 생긴 나무로구만....."으로 그치는 연리목이지만 한번씩
손으로 만져 보고 오늘날 깃털보다도 가벼운 남녀의 사랑방식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세태를 못마땅하게 여기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한 여자의
남편으로서의 잘못된 점이 없는가? 친구로서의 잘못은 없는가? 형제로서의
잘못은 없는가? 자식으로서의 잘못은 없는가 하고 잠시 생각해
보게 된다. 다만 이 연리목의 나무가 어떤 종류인가는 나무의 잎이 없어서
아직도 모르고 있다. 대강 짐작 가는 바는 있지만 .....
여러분들도 고향(故鄕의 古香집이라는 이중적 의미)에
가면 한 번 잘 보시고 그 의미를 음미해 주시기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긁적거린 후 여기에 올려 본 것이다. 혹시라도 조만간 결혼 기념일이
있는 벗님이 있다면 작은 나뭇가지를 깎아 연리지를 만들고 위에 소개한
류시화 시인의 시를 향기 나는 종이에 손으로 써서 상대편에게 주면서
연리지나 비익조나 비목어 얘기를 들려준다면 어떤 선물보다도 그럴
듯한 선물이 될 것이고 그 날 밤은 모처럼의 해빙무드 공간이 연출될
것이다. 남편은 여편이요 여편은 남편이라 어디 그 둘의 살키 만큼 편한
살이 어디에 있다든가? 괜히 옆 눈 돌리지 말고 잘 해 주시라는 헛소리면
헛소리고 참소리면 참소리를 해봅니다요. 지도 못하면서 ㅎㅎㅎ |
첫댓글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마음에 와닿는 글임니다만.... 지도 못하면서 ㅎㅎㅎ 이것이 젤루 맘에 들어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