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 신화
우리의 국조 단군의 탄생과 홍익인간이라는 건국이념을 담고 있는 단군 신화는 삼국유사, 제왕운기, 세종실록지리지, 응제시주(應制詩注) 등에 소상히 기록되어 있다. 이 단군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상식으로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것이지만,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을 요약해 보면 이러하다.
환인의 아들 환웅이 인간 세상을 탐내어,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가지고, 그 무리 3천과 더불어 태백산 꼭대기 신단수 아래 내려와서, 인간의 삼백예순 가지나 되는 일을 주관하며, 인간 세계를 다스리며 교화하였는데, 하루는 곰 한 마리와 범 한 마리가 와서 사람 되기를 간청하므로, 쑥 한 묶음과 마늘 스무 개를 주면서, 백날 동안 햇빛을 보지 말라고 일러 주었다.
범은 참지 못하였으나, 곰은 이를 잘 지켜서 기(忌) 한 지 21일 만에 여자로 환신하였다. 이 웅녀는 매일 환웅에게 다가와 아이 배기를 청하므로, 환웅이 임시로 변하여 그와 결혼하여 아들을 낳으니, 이 분이 곧 단군왕검이다. 왕검은 요 임금이 왕위에 오른 지 50년인 경인년에, 평양성에 도읍하여 나라를 세우고, 국호를 조선이라 하였는데, 나라를 다스린 지 1천 9백 여덟 살에 아사달에 들어가 산신이 되었다.
그야말로 인간의 범상스러운 이야기라고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신이한 이야기, 즉 신화로 꾸며져 있다. 그래서 흔히들 단군은 실재(實在) 인물이 아닌, 꾸며진 이야기 속의 가공적 인물이라고 이야기들 하고 있다. 그리하여 한동안 우리의 국사 교과서에서도, 신화 속의 인물을 정사로 취급할 수 없다 하여, 단군 조선을 빼어 버리기까지 하였고, 지금도 이에 동조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고 알고 있다.
단군은 과연 한낱 가공적 인물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단군을 허황된 이야기 속의 한 주인공으로만 보아 넘기는 그러한 견해는 결론부터 말하여, 겉만 보고 속을 살피지 못한 그릇된 것이다. 이런 오류를 갖게 된 까닭은 신화의 생성과 그 본질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데 그 주된 요인이 있으며, 또한 일본 사람들이 연출한 이른바, 식민지 사관이라는 독소에 크게 오염된 때문이 아닌가 한다.
무릇 신화라는 것은, 어떤 위대한 인물이 실제로 존재할 경우에 이 인물을 신성시하고 숭상하기 위하여, 뒤에 덧붙여지는 이야기라는 것을 우리는 먼저 기억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하면, 실존 인물이 없이 황당 무계한 신화가 먼저 생긴 뒤에, 부차적으로 어떤 인물이 기존의 이야기와 결부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어떤 훌륭한 인물이 실재했을 때, 이를 신성시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신이한 이야기가 첨가되고, 그의 일생이 윤색되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신이성의 첨가 요소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의 하나는, 모든 신화의 주인공들은 그 출생 과정이 보통 사람과는 다르다는 점이다. 그렇게 꾸며짐으로써 그 신화 속의 주인공은 보통 사람이 아닌, 신성한 인물로 상승되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그 몇 예를 보기로 하자.
신라 시조 박혁거세는, 천마가 내려다 준 알에서 태어났으며, 고구려 시조 동명왕은, 유화 부인의 몸에 햇빛이 비추어져 잉태하였고, 김수로왕, 김알지도 다 알에서 태어났다. 이것은 모두가 이들의 출생이 범상인과는 다른 난생임을 이야기하여, 그 신성성을 높이기 위한 사후의 부회임을 알 수 있다.
또 후백제의 견훤은 아버지가 지렁이였으며, 백제 무왕의 아버지는 연못의 용이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들도, 모두 이와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 또 예수가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성령으로 잉태한 것이나, 석가모니가 모후 마야 부인의 옆구리를 뚫고 나와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외쳤다고 한 것이나, 시이저가 어머니의 배를 가르고 나왔다는 이야기 등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모두가 비정상적인 출산이라는 과정을 제시함으로써, 신성성을 부여하려 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하겠다.
우리는 흔히 단군 신화가 사실 무근한 이야기라고 웃어넘기면서, 단군이 곰에게서 태어났다는 것을 곧잘 지적한다. 그러나 이것은 신화 생성의 본질적 측면에서 볼 때, 단군이라는 인물을 신성시하기 위하여 덧붙여진 신화의 보편적 공식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단군의 비정상적 출생을 들어서, 단군이 실재 인물이 아닌 가공인물이라고 내세우는 주장은, 그 논거를 잃게 되는 것이다.
햇빛에 의하여 잉태된 고주몽이나, 지렁이에서 태어난 견훤이나, 알에서 태어난 혁거세 등은 실재 인물로 인정하면서, 곰에서 태어났다는 단군만을 가공인물로 처리해 버린다면, 이야말로 콩과 보리를 구별하지 못하는 처사가 될 것이다.
성령에 의하여 태어났다고 하여, 예수가 없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어머니의 옆구리를 차고 나와 천상천하를 외쳐댔다고 하여, 석가가 실재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가?
단군은 실재했던 인물이다. 곰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단군의 신성성을 높이기 위해 배치된 하나의 기형적 출생담일 뿐이다.
어떤 인물을 신성시하기 위한 이러한 신화적 요소는, 현대에도 생성되고 있음을 종종 보게 된다. 연전에 관광버스를 타고 명승지 탐방의 길에 올랐을 때의 일인데, 안내양은 그 특유의 고운 목소리와 물 흐르는 듯한 말솜씨로, 버스가 지나는 연도의 이름 난 곳을 마이크로 가끔 설명해 주곤 하였다.
나도 매우 호감이 가서, 안내 방송이 있을 때마다 귀를 기울이곤 하였는데, 어느 지점을 지나려니, “이 고개 너머 ○○바위는 나라에 큰 인물이 태어나면 반드시 땀을 흘린다고 하는데…….” 하는 이야기를 서두로 하여, 군사 정부의 어떤 실재 인물과 연결시켜 끝을 맺었었다.
한 실재 인물을 위대시하기 위해, 부회시킨 현대판 신화라 할 수 있겠는데, 이는 신화적 창의가 현대인의 가슴 속에서도, 그 맥이 꿈틀거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한 예라고 하겠다. 바위가 땀을 흘리는 것이나, 곰이 아이를 낳는 것이나, 모두가 그 근본적인 의도는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군이 신화로 윤색되어 있다고 하여, 실재했던 인물이 아니고 가공인물이라고 하는 것은, 얼마나 피상적이고 허황된 주장인가를 알게 된다.
그러면 단군은 어떤 인물인가?
단군은 단군(檀君) 또는 단군(壇君)으로 문헌에 따라 그 표기가 약간씩 다르게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원래 한자어 아닌 순수한 우리말을 한자로 빌어 표기한 것이며 그 어의(語義)는 몽고어 Tengri에서 온 것으로, 천(天)을 대표하는 군사(軍師)의 칭호이다. 즉, 단군(Tengri)은 고대의 제사 의식을 관장하는, 신성한 자에게 붙이는 칭호인 것이다.
단군은 고대 제정일치 시대에, 정치권과 제사권을 함께 지닌 우리 민족의 신권 계승자였던 것이다. 이러한 제의를 행하는 우리의 고유 신앙은 무속(巫俗) 즉, 샤머니즘을 배경으로 행하여졌음은 물론이겠는데, 이러한 제사권자로서의 단군(Tengri)의 명칭은, 현재 호남 일원에서 제의를 관장하는 무(巫)를 가리켜, ‘단골, 당골, 당갈’이라 하는 데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실재 인물 단군을 가공 인물로 처리하게 된 또 하나의 커다란 배후 요인은, 서두에서 지적하였듯이 일본인의 역사 왜곡이라는 간악한 계략이 숨어 있음을 간과할 수가 없다. 단군에 관한 이야기를 신화로 명명한 것도 일본인이다. 그들이 식민지 사관에 입각하여, 우리 역사를 거짓으로 조작하기 이전에 저술된, 우리 선인들의 어떤 문헌에도 단군은 신화적 인물로 다루어져 있지 않았으며, 하나같이 실재하는 인물로 취급하여 왔다.
유명한 규원사화(揆園史話)는 말할 것도 없고 단기고사(檀奇古史), 신단실기(神檀實記) 등도 다 그러하다. 특히, 단기고사에는 단군부터 후단조(後檀朝)제 23세 단제(檀帝)에 이르기까지의 재위 연간과 치적이 편년체로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저들의 신공 황후가 신라를 정벌하였다는 그야말로 허황된 고대 신화를, 자기들 좋은 대로 해석하여 정사로 굳히고 있으면서, 우리의 단군은 단순한 가공인물로 처리하였고, 게다가 단군에 관한 기록 20만여 점을 모아 불태우기까지 하면서, 단군의 실재를 까뭉개려 하였다.
이것은 두 말할 것도 없이, 우리의 상고 역사를 잘라 버림으로써, 그들의 역사를 우위에 두고자 한 잔꾀이었던 것이다. 그들의 역사를 길게 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우리를 역사 얕은 민족, 미개의 민족으로 전락시키기 위한 하나의 모략이었다.
우리는 이제 이러한 그들의 술수에 넘어가서는 안 됨은 물론이거니와, 우리의 신화를 깊이 있게 연구하여, 우리의 역사를 올바로 정립하여야 하겠다.
독일의 고고학자 슐리만은 호머의 일리아드와 오딧세이를 연구하여, 그 신화에 등장하는 고대 도시 미케네, 티린스등을 발굴해 내는데 성공하였다. 단군 신화의 무대가 고대 문화의 중심 지역과 일치됨은 결코 우연도 조작도 아닌 것이다. 신화의 정당한 해석이 역사를 개찬(改纂)시키는 위력을 가진 확증이라고 말하여지는데, 이 말은 바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역사가 던지는 하나의 중요한 잠언인 것이다.
첫댓글 감사히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