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水滸傳•제 140편
한편, 관승은 영채로 돌아와 갑옷을 벗어 놓고 가만히 생각했다.
“내가 아무리 힘껏 싸웠어도 두 장수를 당해낼 수 없어 곧 지게 생겼는데, 송강이 도리어 군마를 거두어들인 것은 대체 무슨 의도였을까?”
군졸을 시켜 함거에 갇혀 있는 장횡과 완소칠을 불러오게 하여 물었다.
“송강은 운성현의 일개 서리에 불과한데, 너희들은 어찌하여 그에게 복종하느냐?”
완소칠이 응답했다.
“우리 형님은 산동과 하북에 명성을 떨치고 있는 급시우 호보의 송공명이시다. 너처럼 예의도 모르는 놈이 어찌 알겠느냐!”
관승은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가, 두 사람을 다시 함거에 가두라고 명하였다. 그날 밤 답답하여 앉아 있어도 누워 있어도 마음이 불안하여 바깥으로 나와 보니, 하늘엔 달빛이 가득하고 온 땅에 서리꽃이 가득했다. 탄식하고 있는데, 군졸이 와서 보고했다.
“수염난 장군이 필마로 와서 원수를 뵙고자 합니다.”
관승이 말했다.
“누구인지 물어 봤느냐?”
“그는 갑옷도 입지 않았고 무기도 없습니다. 이름을 물어 봐도 대답하지 않고 다만 원수를 뵙겠다는 말만 합니다.”
“그렇다면, 불러 오너라.”
잠시 후 그가 막사로 와서 관승에게 절을 했다. 관승이 그를 보니, 얼굴이 낯익은 듯한데 등불 아래에서는 잘 알아볼 수가 없었다. 관승이 물었다.
“누구시오?”
그가 말했다.
“좌우를 물리쳐 주십시오.”
“상관없소.”
“소장은 호연작이라 합니다. 지난번에 조정에서 준 연환마군을 거느리고 양산박을 정벌하러 갔다가, 뜻밖에 적의 간계에 빠져 패전하고 고향으로 돌아가지도 못하는 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장군께서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기쁨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오늘 전투 중에 임충과 진명이 장군을 막 사로잡으려 했을 때 송강이 급히 군사를 거둔 것은, 장군께서 다치실까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송강은 평소에 귀순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다른 무리들이 따르지 않으므로 혼자서 어쩌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몰래 저와 상의하여 몇 사람과 함께 귀순하고자 합니다. 장군께서 허락하신다면, 내일 밤중에 가벼운 활과 짧은 화살로 무장하고 빠른 말을 타고서 소로를 따라 적의 영채로 돌입하십시오. 임충 등의 도적들을 생포하여 경성으로 압송해 가면 큰 공을 세울 수 있을 것입니다.”
관승은 크게 기뻐하며 술을 내어 대접하였다. 호연작이 말하기를, 송강은 오로지 충의만을 생각하는 사람인데 불행하게도 도적이 되었다고 했다. 두 사람은 서로 충정을 토로하면서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다음 날, 송강이 군사를 일으켜 싸움을 걸어 왔다. 관승은 호연작과 상의하였다.
“오늘 먼저 승전을 해야, 밤에 계책을 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호연작이 갑옷을 빌려 입고 말에 올라 진 앞으로 나서자, 송강이 큰 소리로 호연작을 꾸짖었다.
“산채에서 너를 조금도 홀대하지 않았는데, 너는 어찌하여 심야에 몰래 도망갔느냐?”
호연작이 말했다.
“네놈들은 도적인데, 무슨 큰일을 이루겠다는 거냐!”
송강이 진삼산 황신에게 출전하라고 명을 내리자, 황신은 상문검을 들고 말을 몰아 곧장 호연작에게 달려들었다. 두 말이 부딪치면서 싸우다가 10합이 채 되지 않아 호연작이 강편을 들어 황신을 내리쳐 말에서 떨어뜨렸다. 송강의 진에서 군사들이 달려와 황신을 구하여 돌아갔다. 관승은 크게 기뻐하면서 삼군에게 일제히 돌격하라고 명하였다. 호연작이 말했다.
“추격하면 안 됩니다. 오용이란 놈은 기략이 많아, 추격하다가 계략에 빠질 위험이 있습니다.”
관승은 그 말을 듣고 급히 군사를 거두어 본채로 돌아왔다. 중군 막사로 돌아와 술을 대접하면서 진삼산 황신에 대해 묻자, 호연작이 말했다.
“그 사람도 원래는 조정의 관원이었습니다. 청주의 도감이었는데, 진명·화영과 함께 도적이 되었습니다. 오늘 먼저 그놈을 죽여 위풍을 꺾어 놓았으니, 오늘 밤 기습은 필시 성공할 겁니다.”
관승은 크게 기뻐하며 군령을 내려, 선찬과 학사문은 양로로 접응하게 하고 자신은 가벼운 활과 짧은 화살로 무장한 5백 마군을 거느리고 호연작을 앞세워 기습하기로 하였다. 밤 10시경에 출발하여 자정 전후에 송강의 영채에 당도하면, 화포 소리를 신호로 하여 안팎으로 호웅하면서 일제히 돌격하기로 하였다.
그날 밤은 달빛이 대낮처럼 밝았다. 황혼 무렵에 말방울을 떼고 군사들은 가벼운 갑옷을 입고 막대기를 입에 물었다. 호연작이 앞장서서 길을 인도하고 군사들은 모두 그 뒤를 따라갔다. 산길을 돌아 약 1시간쯤 나아갔을 때, 앞의 길목에 매복하고 있던 4~50명의 군졸들이 나와서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거기 오시는 분은 호장군 아니십니까? 송공명이 저희들을 보내 영접하게 하였습니다.”
호연작이 말했다.
“떠들지 말고, 내 뒤를 따라 오너라!”
호연작이 앞서 가고 관승은 그 뒤를 따라갔다. 다시 산모퉁이를 하나 돌아가자, 호연작이 창끝으로 한곳을 가리키는데 멀리 붉은 등불이 하나 보였다. 관승이 말을 세우고 물었다.
“홍등이 있는 곳이 어디요?”
호연작이 말했다.
“저곳이 바로 송공명의 중군입니다.”
급히 인마를 재촉하여 홍등이 있는 곳으로 접근해 갔다. 화포 소리가 울리자 군사들이 관승을 따라 앞으로 쳐들어갔다. 홍등이 있는 곳에 당도해 보니,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호연작을 불러 보았지만, 그 역시 보이지 않았다. 관승은 깜짝 놀라며 계책에 빠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황망히 말을 돌리는데, 사방의 산 위에서 일제히 북과 징이 울렸다. 관승의 군사들은 당황하여 길을 찾지 못하고 각자 달아나기 바빴다. 관승도 황망히 말을 돌려 달아났는데, 겨우 몇 기의 마군만 따라올 뿐이었다. 산기슭을 막 돌아가는데, 숲속에서 또 화포 소리가 들리더니 사방에서 갈고리가 일제히 나와 관승을 말에서 끌어내렸다. 청룡도와 말을 빼앗고 갑옷을 벗기고, 앞뒤로 에워싸고서 본채로 끌고 갔다.
한편, 임충과 진명은 군마를 이끌고 가서 학사문을 가로막았다. 임충이 소리쳤다.
“너의 주장 관승은 계략에 빠져 사로잡혔다! 너는 무명 소장인데, 어찌하여 말에서 내려 포박을 받지 않느냐?”
학사문은 크게 노하여 곧장 임충에게 달려들었다. 두 사람이 한참 동안 싸우자, 화영이 쟁을 들고 임충을 도왔다. 학사문은 더 이상 당할 수 없어 말을 돌려 달아났다. 그때 뒤편에서 여장군 일장청 호사람이 붉은 올가미를 던져 학사문을 말에서 끌어내렸다. 보군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붙잡아 본채로 끌고 갔다.
한편, 진명과 손립은 군마를 이끌고 선찬을 잡으러 가다가 길에서 맞닥뜨렸다. 선찬이 큰소리로 꾸짖었다.
“필부 도적놈들아! 나에게 맞서는 자는 죽을 것이고, 나를 피하는 자는 살 것이다!”
진명이 크게 노하여 낭아곤을 휘두르며 곧장 선찬에게 달려들었다. 두 사람이 몇 합을 싸웠을 때, 손립이 옆에서 끼어들었다. 선찬은 당황하여 칼 쓰는 법이 흐트러져 진명의 낭아곤에 맞고 말에서 떨어졌다. 양산박 군사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달려들어 선찬을 사로잡았다.
한편, 박천조 이응은 군병을 이끌고 관승의 본채로 쳐들어가 먼저 장횡과 완소칠 및 사로잡혔던 수군들을 구하고, 군량과 말들을 탈취하였다. 그리고 사방으로 달아나는 패잔병들을 투항시켰다.
송강은 군사들을 모아 산으로 올라갔다. 그제야 동방이 차츰 밝아오기 시작했다. 충의당에 좌정하자, 관승·선찬·학사문이 차례로 끌려왔다. 송강은 황망히 내려가 군졸을 소리쳐 물리치고 친히 밧줄을 풀어 주었다. 관승을 부축하여 충의당 가운데 의자에 앉히고, 절을 올리며 사죄하였다.
“망명한 미친 무리들이 감히 장군의 위엄을 모독하였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관승은 황망히 답례하고서 어찌할 바를 몰라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호연작도 앞으로 나와서 사죄하며 말했다.
“군령을 받았기 때문에 감히 따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장군을 속인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관승이 여러 두령들을 살펴보니, 모두 의기가 있었다. 선찬과 학사문을 돌아보며 말했다.
“우리가 이렇게 사로잡혔으니, 이 일을 어찌해야 하겠는가?”
두 사람이 대답했다.
“장군의 명에 따르겠습니다.”
관승이 말했다.
“경성으로 돌아갈 면목이 없으니, 우리 세 사람을 빨리 죽여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