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륭(乾隆) 45년 경자(1780)년에는 황제(청나라 건륭황제)의 수(壽)가 일흔인데 남방으로부터 바로 북으로 열하까지 돌아왔다. 가을 8월 13일은 곧 황제의 천추절(千秋節.생일)이다. 특히 우리나라 사신을 불러 행재소(行在所)까지 와서 뜰에 참여하여 하례하도록 했다. 나는 사신을 따라 북으로 장성을 빠져 주야로 달렸다.
길에서 보니 사방으로부터 공헌(貢獻)하는 수레가 만 대는 될 것 같고, 또 사람은 지고, 약대에는 싣고, 가마에 태우고 가는데, 형세가 풍우와 같았으며 들것에 메고 가는 것은 물건 중에서 더욱 정(精)하고 다치기 쉬운 것들이라 하였다. 수레마다 말이나 노새를 예닐곱 마리씩 끌리고, 가마는 혹 노새 네 마리에 끌려 위에는 누른빛 작은 깃발에 진공(進貢)이란 글자를 써서 꽂았다. 진공물들은 모두 거죽은 붉은 빛 탄자와 여러 빛 모직 옷감과 대 삿자리나 등자리로 쌌는데, 모두 옥으로 만든 기물(器物)들이라 한다. 수레 하나가 길에 넘어져 바야흐로 고쳐 싣는데, 거죽을 싼 등자리가 조금 떨어진 틈으로 보니, 궤짝은 누른 칠을 하여 작은 정자 한 칸만 했다. 가운데는 자유리 보일좌(紫琉璃普一座)라고 썼는데, 보(普) 자 아래와 일(一) 자 위에는 글자가 두서너 자 있어 보였으나 자리 끝이 덮여져서 무슨 글자인지 알아볼 수 없었다. 유리 그릇의 크기가 이만큼 할 적에는 다른 여러 수레에 실은 짐을 이로써 미루어 알 수 있었다. 날이 이미 황혼이 되니 더욱 수레들이 길을 다투어 재촉해 달리는데, 횃불이 마주 비치고 방울 소리가 땅을 흔들며 채찍 소리가 벌판을 울리는 가운데 범과 표범을 우리에 집어 넣은 것이 10여 수레나 되는데, 우리에는 모두 창문이 있고 범 한 마리를 넣을 만큼 만들었다. 범들은 모두 쇠사슬로 목을 매어 눈은 누르고 독스러웠다. 바닥에 뒹굴고 있는 몸뚱이는 늑대같이 나지막하고 텁수룩한 털과 꼬리는 삽살개 같았다. 이 밖에 곰과 여우와 사슴 등속은 이루 다 기록할 수 없었다. 사슴 중에도 붉은 굴레를 씌워 말 몰듯 몰고 가는 것은 길들인 사슴이다. 악라사(鄂羅斯)라는 개는 높이가 거의 말만 하고, 온 몸의 뼈는 가늘고 털이 짧고 날씬한 것이 우뚝 서니 여윈 정강이는 학같이 보이고, 꼬리는 뱀같이 놀며, 허리와 배는 가느다랗고, 귀로부터 주둥이까지는 한 자나 되는데 이것이 모두 입이었다. 능히 범이나 표범도 죽인다고 한다. 훨씬 큰 닭이 있는데, 모양은 약대와 같고 높이는 서너너댓 자나 되고 발은 약대 발같이 되어 날개를 치면서 하루 3백 리는 간다고 하는데, 이것은 이름을 타계(駝雞.타조)라 한다. 낮에 본 것은 모두 이런 종류로서 상하가 길 가기에 바빠서 무심코 지나가다가 날이 저물자, 마침 하인들 중에 표범 우는 것을 들은 자가 있어 드디어 부사(副使)와 서장관(書狀官)과 함께 범 실은 수레를 가 보고서야 비로소 하루에 수없는 수레를 지나 보낸 것이 비단 옥기(玉器)나 보물뿐이 아니라, 역시 사해 만국의 기금(奇禽)과 괴수(怪獸)도 많았던 것을 알았다. 연극 구경을 할 때에 지극히 작은 말 두 마리가 산호수(珊瑚樹)를 싣고 전각 속으로부터 똑똑히 나왔다. 말의 크기는 겨우 두 자에 몸빛은 황백색(黃白色)인데, 갈기머리는 땅에 솔솔 끌리고 울음을 울고 뛰고 달리는 것이 준마(駿馬)의 체통을 갖추었다. 산호수의 가지는 엉성한 것이 말보다 컸다. 아침에 행재소 문 밖으로부터 혼자 걸어서 여관으로 돌아오다가 보니, 부인 하나가 태평차(太平車)를 타고 가는데 얼굴에는 분을 희게 바르고 수놓은 비단 옷을 입었으며, 차 옆에는 한 사람이 맨발로 채찍질을 하면서 차를 모는데 몹시 빨리 갔다. 머리털은 짧아 어깨를 덮었고, 머리털 끝은 모두 말려 들어 양털처럼 되었는데, 금고리로 이마를 둘렀다. 얼굴은 붉고 살찌고 눈은 고양이처럼 둥근데, 수레를 따르면서 구경하는 자들이 복잡하고, 검은 먼지가 날려서 하늘을 덮었다. 처음에는 차를 모는 자의 모양이 이상하므로 미처 차 속에 있는 부인을 살펴 보지 못했는데, 다시 한 번 자세히 들여다 보니, 이는 부인이 아니라 사람 형상을 한 짐승 종류였다. 털손은 원숭이처럼 생겼고, 가진 물건은 접는 부채 같은데, 잠깐 보건대 얼굴은 아주 예쁜 것 같았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 보니 노구(老嫗)와 같고 요괴스럽고 사납게 생겼으며 키는 겨우 두 자 남짓한데, 수레의 휘장을 걷어 올려서 좌우를 돌아보는 눈이 잠자리 눈같이 보였다. 대체로 이것은 남방에서 나는 것으로 능히 사람의 뜻을 안다고 하며 혹은 말하기를, “이것은 산도(山都.원숭이의 일종)이다.” 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