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 한식날(寒食-)과 시묘(侍墓) 살이
신아문예대학 수필가 구연식
우리 민족의 세시풍속은 농경과 협동 그리고 조상숭배 등을 근본으로 한, 사람과 신과의 관계를 빌고 감사드리는 풍속으로 점철됐다. 4대 명절은 설날, 한식, 단오 그리고 추석이다. 효의 사상은 살아계실 때는 물론 돌아가신 뒤에도 생전의 불효를 반성하고 명복(冥福)을 비는 뜻에서 조상님들의 묘소 관리와 보호에도 온갖 정성을 다하고 있다. 이렇게 민간에서는 한식(寒食)을 동지로부터 105일째 되는 날로 4대 절사(節祀)라 하여 조상의 산소를 찾아 겨우내 무너진 묘소에 흙을 돋우는 성토(盛土)작업이나 잔디 보수작업을 하고 제사를 지냈다.
상례(喪禮) 절차 중 하나인 시묘(侍墓)살이는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자식은 탈상(脫喪)할 때까지 3년 동안 묘소 근처에 움집을 짓고 산소를 돌보고 공양을 드리는 일이다. 3년이라는 기간은 혼자 먹고 활동할 수 없는 유아기 동안 길러주신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기간이다. 부모님이 살아 계시던 때와 똑같이 아침저녁으로 문안드리고, '공양'이라고 부르는 간단한 상차림도 했다. 또한, 부모님의 죽음이 자신의 불효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여 3년 동안 수염과 머리카락도 깎지 않고 허름한 상복(喪服)을 걸치고, 자식으로서 해야 할 도리를 다했던 효문화풍속이었다. 시묘살이 후에도 불효자는 하늘 보기가 두렵다고 집 밖의 생활은 언제나 삿갓을 쓰고 일생을 근신하며 살았다. 참으로 기네스북에 오를 효의 민족이다.
나는 시묘살이는커녕 삿갓을 쓰고 반성하면서 사는 것을 흉내조차도 내지 못했으니 천하의 불효자가 분명하다. 그래서 하는 것이 삭망성묘(朔望省墓)를 하면서 불효를 반성하고 보름 동안의 삶을 추스르며 살아가고 있다. 한식(寒食)의 유래는 여러 가지로 전해오는데 그중 하나는 날씨가 건조하고 모든 숲이 완연한 새싹이 나오기 전이라 산속은 매우 건조해서 마치 모든 숲이 가장 발화점이 낮은 불쏘시개가 되어있다. 그러므로 조상님의 묘역도 불붙을 염려가 있어서 인화 물질 지참은 물론 음식도 차가운 음식(寒食)으로 먹도록 했다는 전설이 전해 오고 있다.
조상님께 제사 지내는 일 그리고 개인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나름의 인간 사후에 영혼이 있다고 믿는데서 비롯된 것으로 본다. 그래서 살아 있는 사람들은 조상의 묘소나 종교의식의 제전에서는 옷깃을 가다듬고 살아온 삶을 반성하고 내일의 삶을 추슬러보는 계기의 장소다. 어느 민족이든지 세시풍속은 그 민족만이 이어져 오는 민족혼이다. 우리의 세시풍속은 권선징악을 바탕으로 한 효도와 우애가 그 근본정신이다. 그래서 국난극복도 개인 생활의 어려움도 헤쳐나가고 있다. 사람을 중시하고 지켜야 할 도리를 으뜸으로 여겼던 얼마나 대단한 홍익인간의 민족이냐! 조상님들에게 새삼 감사드리며 후손의 도리를 다시 한 번 반성해 본다.
오늘은 일요일이자 식목일, 한식날과 겹치는 날이다. 집안 동생들과 3년 전에 조상님들의 묘지 정화사업을 했는데, 분묘와 석물들만 세웠지 묘지에 알맞은 조경수는 식수하지 않아서 한식날에 묘지 보수작업과 조경수를 식목하기로 했다. 조상님들 묘역에 심을 나무를 생각하니 여러 가지로 조심스러운 생각이 든다. 나무는 한 번 심으면 그 자리에서 몇 백 년을 살 수 있어야 한다. 수종(樹種) 선택도 심사숙고해야 하고 나무 수형도 가장 건강하고 예쁜 나무 선택에 신경이 쓰인다. 조경수로는 우리 조상들의 사당, 서원 그리고 묘역 등을 지키고 있는 100일 동안 꽃이 피는 선비들의 지조를 대변하는 배롱나무(나무 백일홍)로 결정했다.
산소에 심을 나무는 백일홍 순종으로 훤칠한 나무 8그루이다. 익산 시내권 5일장을 알아보니 오늘은 5일과 10일 장날인 황등 장날이다. 그리고 다른 묘목 시장도 서너 군데 알아보고 출발했다. 가는 길에 금마시장을 들려보니 다른 정원수나 유실수는 있어도 배롱나무는 한 그루도 없다. 오늘의 주 목적지 황등시장에 도착했다. 묘목을 파는 곳은 세 군데가 있었다. 그중에서 한 곳만 배롱나무가 있는데 4그루만 있었다. 묘목 품종도 보며 골라야 하고, 8그루가 안 되어서 군산 근처의 묘목원으로 갔는데 그곳은 2그루뿐이 없단다. 마치 코로나 번창기 때 마스크 사러 이곳저곳 약국을 찾았던 기분이다. 오전 중에는 묘목을 구매하고 오후에는 식수작업을 해야 할 텐데 걱정이다. 할 수 없이 이곳저곳에서 낱개라도 사서 모으기로 하여 겨우 8그루를 채웠다. 늦은 점심을 때우고 동네 동생 3명과 아내까지 5명이 작업을 하여 오후 4시경에 마쳤다.
아내는 종부(宗婦)의 자격으로 아침부터 내 뒤를 따라다니면서 한식날 조상님 묘소에 조경수 식목작업과 묘지 전역에서 작은 돌 캐내기, 쓰레기 수거 등에 모처럼 바쁜 하루를 보냈다. 산에서 내려올 때는 몹시 피곤했는지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아이고아이고를 계속했다. 만화방창(萬化方暢) 춘삼월에 나들이 유혹을 뒤로하고 종부의 임무를 수행해 주어서 감사했다. 주차장에 내려와 모자를 벗어 먼지를 터니 흙먼지가 일어났다. 조상님들이 나보다 종부(宗婦)를 더 사랑하셨는지 피곤하지만, 아내의 얼굴이 밝고 좋아 보였다.
자동차가 익산 순창 간 전용도로에 진입하니 혁신도시 부근부터 지체 현상이 눈에 띄게 느껴졌다. 사람들은 사회현상에 대하여 본인이 처한 경우로 해석해 버리는 경우가 있다. 전주시 평화동 나들목 입구에 도착하니 남과 북에서 밀려오는 자동차들은 산속에 수많게 흩어져 있는 조상님 산소들이 모여 와 엎드려 있는 것처럼 도로에서 꼼짝조차 하지 않았다. 겨우 움직일 때는 갓난아이 걸음처럼 아장아장 몇 걸음 걸다가 다시 멈추었다. 이렇게 많은 차가 한식날 조상님 묘소를 찾아 사초(莎草)를 하고 오다니, 참으로 기특하고 착한 후손들이다. 그런데 차량 앞 유리 와이퍼 부근과 뒷유리 움푹 팬 곳에는 하얀 벚꽃 잎이 녹지 않은 눈처럼 쌓여 있었다. 어찌했던 조상님 묘소도 돌보고 화전놀이도 갔다 오는 사람들로 생각하고 싶다. 사람들은 길 위에서 지쳐있어도 오늘의 즐거움을 계속 유지하려는지 밝은 표정으로 길섶의 민들레처럼 서로 웃고 답하니 하늘나라에 계신 조상님들도 오늘 수고했다며 흐뭇하게 웃으시는 것 같다.
(2020.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