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는 길에 정육점에 들렀다. 집 앞 큰길(큰길이라고 해봤자 폭 좁은 이차선 도로)건너에 자리하고 있는 그 정육점은 지나치면서 보기는 했지만 처음이었다. 며칠 전 지나치다가 세일한다는 알림을 보았고 유념해 두었다가 들린 것이었다. 도심에는 정육점이 많지 않다. 아파트 입구에 부부 정육점이라는 곳이 한군데, 그리고 축산 명가, 이곳이다. 그동안은 늘 롯데 슈퍼에서 고기를 사다 먹었다. 롯데 슈퍼가 큰 기업이니 믿을 수 있다는 남편 주장 때문이기도 했고 시장을 보면서 함께 살 수 있으니 편리해서이기도 했다.
지난번에 만들어두었던 돈까스도 다 먹었고 삼겹살도 다 먹었으니 다시 사야 했다. 돈까스를 만들어두면 도시락 싸기도 좋았고 반찬하기도 좋았다. 돼지 불고기도 마찬가지로 환영받는 도시락 반찬이었다. 해서 매번 고기를 좀 많다 싶게 샀고 한번 넉넉히 사 냉동실에 쟁여두곤 했던 것이다. 그러나 가격은 늘 만만찮았다. 몇 근 사고 나면 지갑이 퍽 얇아져 마음 한구석이 불안했다. 고기, 그러고 보면 지금껏 고기를 넉넉히 먹여본 적이 없다. 아이가 군에 있을 때는 좋은 고기를 먹이려고 이런저런 곳을 찾아다녔고 식당에 가면 남편은 늘 고기를 아이 앞으로 밀어놓았다.
살림이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식생활은 변화가 없다. 여전히 반찬은 한 두가지고 여전히 김치를 담아 먹으며 여전히 찌개를 끓이고 나물을 볶고 무친다. 고기는 매일 올라오는 품목이 아니다. 불안해하면서 싸고 간편하다는 이유로 햄을, 그것도 커다란 햄을 사서 볶음밥과 샌드위치를 만드는 것도 여전하다. 싼 물건을 찾는 습성은 아무래도 변하지 않는다. 싼 고기를 찾는 것도 마찬가지다. 세일할 때 한꺼번에 많이 사두어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여전하다.
열린 유리문을 들어서니 누군가 유리로 만든 진열장 뒤, 카운터 뒤에서 허리를 굽히고 있었다. 그가 고개를 들었다. 얼굴에 주름 하나 없는, 그는 서른이나 되었을까, 젊었다. 염두에 두었던 돈까스 감을 주문한 다음 물었다. “주인이세요?” “네.” “젊은 분이 정육점을 하시네요?” 신선했던 것이다. 동네 정육점은 늘 늙수그레한 중년들 차지였다. 젊은이들은 거게가 직원이거나 아들이었는데. 그는 왼쪽 공간을 차지하는 커다란 냉동실에 들어가 고기를 꺼내왔다. 내 주문에 맞추느라 고기를 썰면서 그가 대답했다. “요즘은 젊은 사람들이 정육점 많이 해요. 기술직이잖아요.”
기술직? 고기 만지는 일이 기술직인가? 『장자』에 나오는 포정이 떠올랐다. 포정해우(庖丁解牛), 백정인 포정은 19년간 칼을 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칼은 새것과 다름없이 예리했다. 그는 소를 잡음에 거침이 없었고 그가 고기를 떠내는 기술은 신기에 가까웠다. 그는 문혜공의 질문에 소의 몸 구조를 그대로 따라 칼질을 하므로 인대를 다치지 않고 뼈는 말할 것도 없으며 고기가 순식간에 부드럽게 잘라진다고 말한다. 그것은 기술이지만 기술에 통달한 이, 도에 관한 이야기였다. 제한이 있으되 그 제한에 완전히 젖어들어 제한을 제한이라고 느끼지 않는 경지, 제한 속에서 자유로이 노니는 경지인 것이다.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을 본다고 평범한 우리는 장자가 말하는 ‘도’ 대신 그 ‘기술’을 말한다. 포정의 경지에까지 이르는 기술이 관심사인 것이다. 혹시 이 사람은 그 책을 알고 있을까?
“도제 식으로 훈련하나요?” 대답이 없었다. 일하는데 정신이 팔려 그럴 것이었다. 말을 바꾸어 물었다. “어디서 기술을 배우나요?” “아는 데서 배우죠. 이게 힘든 일이거든요.” 그럴 것이었다. 고기를 나르고, 자르고, 분류하고, 배치하고. 그가 덧붙였다. “또 서비스직이에요.” 옳은 말이었다. “맞아요. 손님이 요구하는 대로 해야 하니 서비스가 맞네요.” 나는 그에게 돈까스 감으로 그러나 얇게 잘라달라고 말한 참이었고 그는 이야기하는 내내 고기를 자르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손님이 들어왔다. 점퍼를 입은 중년 아저씨는 나를 보고 그를 보더니 말없이 도로로 면한 가게 유리창 옆 의자에 앉았다. 의자라. 정육점에 손님을 위한 의자가 있었던가? 카운터 안쪽이나 한쪽 벽에 의자가 있기는 했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들을 위한 것이었고 미용실이나 다른 가게처럼 손님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얄팍하게 썬 고기를 기계에 넣으려고 돌아서자 오른팔이 눈에 띠었다. 반팔 티셔츠를 입은 그의 팔뚝은 알통이 제법 굵었고 문신의 일부가 보였다. 무슨 문신일까? 궁금했다. 고기를 기계에 넣는 그의 모습이 거울에 비쳤다. 가게 한쪽 벽은 온통 거울로, 가게 내부가 시원스러울 정도로 넓어보이도록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이 또한 일반 정육점과 달랐다. 정육점에 대한 인상은 결코 깔끔하거나 시원스럽지 않다. 다소 좁은 공간에 도마가 있고 여러 물건들이 있는, 다소 어둡고 칙칙한 곳. 아무리 정돈하고 불을 밝혀도 그 인상은 달라지지 않는다. 오래 머무르고 싶지 않은 것이다. 물론 요즘은 많이 달라지기는 했어도 깔끔한 인상은 받기 어려운 것이다.
커다란 거울은 인상을 바꾸어 놓았다. 공간을 넓어보이게도 하지만 깨끗한 느낌이 들도록. 아마 그의 아이디어였을 것이다. 어디선가 보고 익혔을 테지만. 그는 기계에 연신 고기를 넣었다. 그런 그의 옆에 용도를 알기 어려운 스텐레스 탁자가 있었고 그 위에 책이 한권 놓여 있었다. “책도 읽으시네요. 무슨 책인가요?” “경매책이에요. 경매공부하고 있어요.” 그의 어조는 선선했고 거리낌이 없었다. “그래요. 경매공부.” 그건 자신의 앞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표상이었다. 무언가에 지향점을 두고 그 지향점을 향해 꾸준히 나아간다는 것. 공부처럼 그 노력을 잘 나타내는 것은 없다. 그는 그것을 환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직업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는 것이었다. 기술직이라는 표현과 서비스직이라는 표현, 넓지는 않지만 깨끗한 실내, 웃거나 명랑하지는 않지만 싹싹한 태도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누군가 자신의 삶에 충실하다는 것을 보는 일은 기쁘다. 그는 자신의 삶에 가치가 있고 그 의미를 증명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므로.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의 가치를 그렇게 세워가고 있는 것이므로.
“무거우니까 둘로 나누어 드릴게요.” 그는 검은 비닐봉투 두 개에 내가 주문한 품목을 나누어 담아주었다. 서비스직답게.
첫댓글 맞아요. 보통사람들이 꺼리는 직업이다보니 요즘엔 오히려
부위별 도제작업을 배워서 직업을 갖는 전문직이라고 하더라고요.
수입도 꽤 괜찮기도 하고요.^^
전문직. 아마 그말을 하고 싶었던 걸거예요. 네. 전문직.
희야 님의 관심은 끝이 없네요. 기술직 맞네요. 서비스 정신도 투철하고.
그 젊은이가 운영하는 가게에 가서 고기를 사고 싶어요. 당당하고 솔직한 젊은 가게 주인이 안 봐도 마음에 드네요.
넵! 그렇게 보였어요. 솔직하고 자부심은 아니라 해도 당당해서 보기 좋았어요.
이명님 ?
이젠 그 집 단골 하시겠어요
뭔가 저희들 정서론 백정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크게 곱지 않은 시선을 가진것이
은근히 부끄러워지네요
기술적이면서 서비스업이라 잖아요 ?
그 스탠레스 의자에서 본 책 한권이 또 경매 공부한다는데 .....
그러게 직업에 귀천이 뭐가 있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