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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사기 7장 19-22절 하나님의 영광을 보라 8-소수로 다수를 물리치게 하시는 영광
하나님은 자신이 하시고자 하는 일이면 무엇이든지 다 하실 수 있으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힘을 남용하지 않으십니다. 사람은 힘과 권력과 돈을 가지고 있으면 그것을 과사하고 남용하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으십니다. 여러분들이 성경을 통해 예수님을 삶을 보시면 확인할 수 았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얘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권세를 가지셨지만 그 권세를 남용하지 않으시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구원과 섬기시는 일을 위해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 사회에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이 하나님 자신이 만드신 창조질서를 잘 유지하는 선애서 표적을 행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자녀된 성도가 무엇엔가 욕심을 부리면서 구하는 것을 달라고 기도하면 하나님은 그것을 거부하실 때가 많으십니다. 왜 그렇게 거부하십니까? 그 이유는 들어주면 들어줄수록 욕심은 커지고, 자기 중심성이 강해지며, 이기적으로 변하고, 교만하여 사람들에게 무례하게 대할 뿐 아니라 하나님조차도 자신의 이용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심히 위험한 일입니다. 패망의 길을 가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자신의 자녀인 성도들의 기도를 응답해주시거나 응답해주지 않으심을 통해 관계를 더욱 더 깊게 만들어가시며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 세상을 복되게 하는 축복의 통로요, 영적인 통로가 되도록 만들어 가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선하시며 영광스러운 계획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몸인 교회를 통해 어둠에 사로잡혔던 세상은 진리를 알게 되고 진리이신 하나님과 예수님을 알고 믿으며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영적인 원리를 사용하셔서 영광을 받으시는 하나님의 방법 중 하나가 교회를 대적하는 자들과 교회를 한 곳으로 인도하셔서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나타내시는 것이라는 말씀을 지난 주에 홍해바다 사건을 통해 들으셨습니다.
오늘은 소수로 다수를 물리치게 하심으로서 받으시는 영광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기드온은 체격도 좋고 건장한 외모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외모와 다르게 겁과 의심이 많은 회의론자입니다. 이런 사람은 세상에서 성공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을 하나님이 찾으셔서 어떤 방법으로 영광을 받으시는 지를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우선 오늘 말씀을 같이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사기 7장 19-22절입니다.
“기드온과 그와 함께 한 백 명이 이경 초에 진영 근처에 이른즉 바로 파수꾼들을 교대한 때라 그들이 나팔을 불며 손에 가졌던 항아리를 부수니라 세 대가 나팔을 불며 항아리를 부수고 왼손에 횃불을 들고 오른손에 나팔을 들어 불며 외쳐 이르되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다 하고 각기 제자리에 서서 그 진영을 에워싸매 그 온 진영의 군사들이 뛰고 부르짖으며 도망하였는데 삼백 명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와께서 그 온 진영에서 친구끼리 칼로 치게 하시므로 적군이 도망하여 스레라의 벧 싯다에 이르고 또 답밧에 가까운 아벨므홀라의 경계에 이르렀으며”
여기 기드온이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기드온은 겁이 많고 조심성도 많은 사람입니다. 겁이 많은 사람은 조심성도 많습니다. 힘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머리를 쓰기 싫어하고, 힘이 약한 사람은 머리쓰기를 좋아하는 것처럼 겁과 두려움이 많은 사람은 조심성이 많습니다. 그래서 행동파는 돌다리도 뛰듯이 건너가지만 겁과 두려움이 많은 사람은 돌다리를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흔들어보고 안전하다 싶으면 건너갑니다. 고추를 먹어도 행동파는 고추의 꼭지가 있는 곳부터 먹지만 조심성이 많은 사람은 고추 끝의 뾰쭉한 부분을 살짝 입으로 잘라 먹어보고 점점 몸통을 먹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심성이 많은 사람들은 일의 진척은 느리지만 사고날 확률은 별로 없습니다.
반대로 행동파의 사람들은 일은 빠르게 하지만 조심성은 결여되어서 무엇인가 일을 별여 놓고 그르치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 둘을 선용하실 수도 있으십니다. 기드온을 선용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이 기드온을 찾으셨을 때 기드온은 포도즙 틀에서 곡식을 타작하고 있었습니다. 타작마당에서 타작을 하면 불시에 들이닥친 미디안군대로부터 모든 것을 빼앗기고 약탈을 당하게 되기 때문에 머리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일이 7년 동안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그로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져 있었습니다. 1년 내내 공들여 수고한 것이 헛된 것이 되었는데도 그 어디에도 하소연할 곳조차 없습니다. 그뿐아니라 내년에 대한 보장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이 미디안이라는 강한 적으로부터 모든 것을 빼앗기면서 살아야 했을까요?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그런 고단한 삶을 살게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원인은 이스리엘 백성들의 죄악 때문이었습니다. 사시기 6장 1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칠 년 동안 그들을 미디안의 손에 넘겨 주시니”
이스라엘 자손들이 미디안에 의해 정복을 당하고 그들의 다스림을 받은 이유는 하나님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징계하신 것입니다. 무려 7년의 압제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희망을 가질 수가 없었습니다. 미디안의 목표는 이스라엘을 마치 자근자근 씹어 먹듯이 피를 말리면서 죽게 하는 그런 작전을 쓰고 있었습니다. 사사기 6장 3-5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이스라엘이 파종한 때면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 사람들이 치러 올라와서 진을 치고 가사에 이르도록 토지 소산을 멸하여 이스라엘 가운데에 먹을 것을 남겨 두지 아니하며 양이나 소나 나귀도 남기지 아니하니 이는 그들이 그들의 짐승과 장막을 가지고 올라와 메뚜기 떼 같이 많이 들어오니 그 사람과 낙타가 무수함이라 그들이 그 땅에 들어와 멸하려 하니”
미디안은 이스라엘이 파종할 때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다가 이스라엘이 파종하고 나면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와서 진을 치고 토지 소산을 멸하며, 이스라엘 가운데 먹을 것을 남겨두지 아니하며 양과 소와 나귀도 남겨두지 않았습니다. 마치 깡패들이 자기들의 힘으로 열심히 살고 있는 상인들의 번 돈을 착취하는 것처럼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힘겹게 농사지은 것을 어렵지 않게 빼앗아 갔습니다.
그런 그들의 최종목표는 이스라엘의 숨통을 조이면서 서서히 멸망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그 땅에 들어와 멸하려하니”가 바로 그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주 잔인한 것입니다. 마치 논에 있는 개구리에 거머리가 몇 마리 붙어서 개구리가 죽을 때까지 피를 빨아먹는 모습과 같습니다. 거머리는 개구리가 죽기 까지는 결코 떨어지지 않습니다. 이처럼 미디안 역시 이스라엘이 완전히 멸망을 당하기까지 계속해서 죽이고 빼앗았습니다.
그러자 어디에다가도 도움을 청할 곳이 없었던 이스라엘은 궁핍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 부르짖음을 들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구원자를 먼저 보내신 것이 아니라 선지자 한 사람을 보내셨습니다. 7-10절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부르짖었으므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한 선지자를 보내시니 그가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의 하나님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며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나오게 하여 애굽 사람의 손과 너희를 학대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너희를 건져내고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었으며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기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 너희가 거주하는 아모리 사람의 땅의 신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였으나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셨다 하니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직전에 하나님의 선지자를 먼저 보내셔서 그들이 행한 죄가 무엇인지를 알게 하셨습니다. 마치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보내시기 전에 침례 요한을 먼저 보내셔서 회개하라고 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그 선지자가 전한 하나님께서 하신 일에 대하여 한 말에 귀를 기울여 들어보십시오.
첫째로는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다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하나님께서는 이 죄악 세상에서 소망도 없이 죽어가던 여러분들을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두 번째는 종되었던 집에서 나오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러분들을 사탄의 노예에서 그 죄악의 쇠사슬을 끊고 벗어나게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입니다.
세 번째로는 애굽사람의 손과 이스라엘을 학대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건져내셨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학대했던 것은 애굽만이 아니라 가나안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옛 대적과 현재의 대적의 강력한 손아귀에서 여러분들을 벗어나게 하셨습니다. 더 강력한 손으로 건져내주셨습니다. 앞으로 만나는 대적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탄은 자신과 자신에게 속한 사람들을 통해 그리스도와 교회를 대적합니다. 하지만 언제나 승리는 그리스도와 그리스도께 속한 교회에게 있습니다.
네 번째는 그들을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들에게 주실 그 땅에서 쫓아내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땅을 이스라엘애개 주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전쟁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을 묶고 있는 대적들인 마귀와 귀신들을 쫓아내야 합니다. 예수님은 귀신들을 쫓아내셨습니다. 귀신을 쫓아내야만 그들이 하나님의 복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시고 그들이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내쫓으며 하나님 나라를 선포했을 때 사탄이 하늘에서 땅으로 내쫓겼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구원이전에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하신 일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행한 죄악들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구원할 사사를 세우셨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포도즙틀에서 곡식을 타작하던 기드온입니다. 분명 기드온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에는 많은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만일 기드온을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선택에 대하여 실망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선택하실 때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무엇인가를 하나님은 보신다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그들을 선택하시는 이유들은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들마다 다 다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충성스러움이라는 것입니다.
기드온의 경우 믿음이 약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두려움 가운데서도 말씀하신 일을 이루었습니다. 아버지 집에 있던 우상을 부수라고 하시자 우상을 부수는 일고 했고, 전쟁터에 나가서 싸우는 일도 두려워는 했지만 순종하면서 나갔습니다. 그런 기드온에게 하나님은 승리를 주셨습니다.
미디안이 약했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강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인간 세상을 자신의 능력으로만 다스리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함께 일하십니다. 그레서 영적인 눈이 열려있지 않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하신 일과 사람이 한 일을 구분짓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기드온이 미디안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그것이 자신이 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드러낸 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과 자신이 한 일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한 일이라고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엄청난 승리를 가져오게 됩니다. 그런데 그 승리 전까지도 그는 적군들을 두려워하며 떨었습니다. 사사기 7장 9-11절을 보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진영으로 내려가라 내가 그것을 네 손에 넘겨 주었느니라 만일 네가 내려가기를 두려워하거든 네 부하 부라와 함께 그 진영으로 내려가서 그들이 하는 말을 들으라 그 후에 네 손이 강하여져서 그 진영으로 내려가리라 하시니 기드온이 이에 그의 부하 부라와 함께 군대가 있는 진영 근처로 내려간즉”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네가 내려가기를 두려워하거든 네 부하 부라와 함께 그 진영으로 내려가서 그들이 하는 말을 들으라”고 하셨습니다. “겁나면 네 부하를 데리고 가라”는 말씁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부하인 부라를 데리고 갔습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이 겁이 많은 것을 아셔서 부하인 부라를 데리고 가게 하신 것입니다.
혼자보다는 둘이 있을 때 더 든든합니다. 혼자 있을 때 잘 부러지지만 둘이 있을 때는 잘 부러지지 않습니다. 서로가 의지할 맏음직한 동료가 있다면 마음이 든든합니다. 서로 믿어주고 마음을 맞춰주는 아내와 남편이 있다면 힘이 납니다. 또한 그런 가족이 있다면 힘이 납니다. 자기를 믿어주는 직장 상사가 있다면 힘이 나고 동료들이 있다면 힘이 나서 일할 맛이 납니다. 서로를 믿어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기드온의 경우처럼 설사 그가 여러분의 아랫 사람일지라도 또 부하라할지라도 동행하는 자가 여러분과 마음을 맞춘다면 함께 나아가는데 큰 힘이 됩니다. 그래서 때때로 하나님은 함께 마음을 맞추고 앞으로 나아갈 믿음의 동역자를 붙여주셔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게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내로 하여금 남편을 돕는 베필로 정해주신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도 여러분들을 한 마음으로 돕는 베필과 한 마음으로 동행할 동역자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하지만 가장 큰 동역자는 예수님이 보내주신 성령님입니다. 성령님은 영혼을 위한 동역자며, 여러분들의 육신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도록 이끄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진리 가운데 행하며 영적 싸움에 승리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홀로 가는 길에도 외로움 없이 노래하며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기드온과 부하 부라가 밤에 적진 속으로 들어가서 보니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의 모든 사람들이 골짜기 가운데 누웠는데 메뚜기의 많은 수와 같은 데다가 낙타의 수가 많아 해변의 모래의 많음처럼 그 수를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세 개의 나라가 연합하여 이스라엘을 공격한 것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던 미디안은 명령에 순종하여 하나님이 지켜주실 것을 믿고 적진의 한 곳에 이르렇을 때 밤에 보초를 서는 두 병사가 자기들끼리 꿈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 13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기드온이 그 곳에 이른즉 어떤 사람이 그의 친구에게 꿈을 말하여 이르기를 보라 내가 한 꿈을 꾸었는데 꿈에 보리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영으로 굴러 들어와 한 장막에 이르러 그것을 쳐서 무너뜨려 위쪽으로 엎으니 그 장막이 쓰러지더라”
그러자 옆에 있던 친구가 그 꿈을 해몽합니다. 14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그의 친구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의 칼이라 하나님이 미디안과 그 모든 진영을 그의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 하더라”
기드온과 기드온의 부하인 부라가 듣고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경배를 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진영으로 돌아가서 말합니다. “일어나라 여호와께서 그 모든 진영을 너희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 그리고서 군사들을 세대로 나누어 미디안의 진과 아말렉과 동방 사람의 진에 가까이 가서 미디안을 공격하도록 합니다. 그리고 준비해온 항아리 속에 횃불을 감추고 신호를 기다리게 하였습니다.
이제 군사들이 불침번을 교대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때 기드온이 나팔을 불자 횃불을 꺼내들고 들고 있던 항아리들을 일제히 바닥에 던져 깨뜨렸습니다. 그러자 항아리 깨지는 소리가 밤공기를 타고 온 이스라엘 대적들의 진에 크게 울렸습니다. 거기다가 300용사들 역시 손에 들고 있던 나팔을 일제히 불었습니다. 그리고 손에 들고 있던 항아리를 힘껏 땅바닥에 던져서 깨뜨렸습니다. 그리고는 크게 소리쳤습니다.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다”
그 소리에 잠을 자던 적군들은 깜짝 놀라서 일어나고 불침번을 교대하던 군사들은 서로 적이 기습공격을 해왔다고 생각해서 서로를 찔러 죽였습니다. 거기다가 자다가 놀라 뛰어나온 군사들 역시 서로 다른 나라 사람들을 적으로 오인해서 서로 죽였습니다. 이스라엘 군사들은 항아리를 깨면서 함성을 지르는 것이 다 였지만 적군들은 밤새도록 자기들끼리 죽이고 죽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러면서 살기 위해 적군들은 도망을 쳤고 도망을 치면서도 자기 주변에 있는 군사들이 자기를 쫓는 적이라고 생각해서 공격했습니다. 우리 22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삼백 명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와께서 그 온 진영에서 친구끼리 칼로 치게 하시므로 적군이 도망하여 스레라의 벧 싯다에 이르고 또 답밧에 가까운 아벨므홀라의 경계에 이르렀으며”
이것이 삼백명의 군사로 수십만의 군사를 물리치신 하나님의 전략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박이나 태풍으로 그들을 멸하신 것이 아니라 단지 300명의 소수의 군사들을 사용하셔서 적들을 섬멸하고 물리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에게서 나온 지혜를 적군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지혜로운 자가 있어서 그런 작전을 짰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며 그 사람이 기드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기드온은 그 작전이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임을 알고 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입니다.
처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32,0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전쟁에서 싸우겠다고 몰려들었습니다. 그런 군대도 많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군대를 데리고 전쟁에 나가면 적의 수가 자기들보다도 더 많은 것을 보고 기가 죽어서 도망을 치거나 숨었을 것입니다. 그로인해 남아 있는 군사들까지도 사기를 잃고 도망을 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미연에 방지하시고 목숨걸고 싸울 300 용사만을 남기셨습니다.
전쟁은 숫자가 많다고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모략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모략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 모사의 작전을 의지해야 할 때도 있지만 하나님의 작전에 더 의지해야 합니다. 거기에 진정한 승리가 있습니다.
기드온은 덩치는 컸을 지도 모르지만 마음은 두려움이 많은 작은 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작은 자를 통해 적은 숫자의 군사를 주시면서 엄청나게 많은 적들과 싸우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승리를 주셨습니다.
그렇지만 그 전에 하나님은 그를 놀라운 역사의 현장에서 쓰시기 전에 순종을 시험하셨습니다. 그 순종은 단순한 것이었지만 그 일의 결과로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바로 동네 사람들이 섬기던 우상을 부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낮에는 못하고 밤에 순종을 했습니다. 예상대로 동네 사람들은 기드온을 죽이려고 했지만 기드온의 아버지의 담대함으로 인해 목숨을 건졌습니다.
그래도 기드온의 두려워하는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두 번이나 하나님을 시험했습니다. 하지만 기드온을 큰 용사로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의 마음에 믿음이 자라게 하셨습니다. 또한 두려움이 많은 그를 담대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승리를 주셨습니다. 여러분들에게도 역시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순종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자신이 원하시는 교회와 사람들을 통해 세상을 놀라게 하시며 구원하십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는 지극히 적은 수가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의 눈을 열고 보면 하늘의 천군천사들도 우리 교회 예배의 자리에 앉거나 서서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아니면 하늘 공중에서 지켜보면서 예배를 함께 드릴 수도 있습니다. 그로인해 사탄의 진이 파괴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을 신뢰하십시오.
그렇기 때문에 이 예배가 거룩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예배, 하나님이 함께 거하시는 성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가정,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교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직장들은 비록 어려움의 과정은 있지만 항상 하나님이 주시는 승리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본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많다거나 돈이 많다거나 능력이 많은 사람들이 승리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의지하며 순종하는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는 일어나며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 영광을 보게 되길 원합니다. 믿음으로 예수님이 주신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보여주실 것이며 전하게 하실 것입니다. 이 복이 제석교회와 여러분들 모두에게 임하시길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