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 사회 복지의 관심은
복지의 평균화를 이루는 것 같습니다.
복지의 평균화......
더 잘 사는 사람도 없고 더 못 사는 사람도 없는 지상의 파라다이스.....
이것을 꿈꾸었던 사람들은 공산주의 혁명가들이요, 사회주의자들이었습니다.
믿음과 사랑으로 유무상통하였던 초대교회는
성령 세례로 인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절대적 가치로 누렸던 예수의 하나님 나라 이상이었습니다.
보편적 사회복지의 실현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이상으로는 실현불가능한 현실 정치의 과제입니다.
땀흘려 일하는 사람이 더 잘 사는 정직한 사회는
복지의 평균화와 반비례하는 절대원칙입니다.
꽃은 아름다운 향기를 가지고 있지만
모든 꽃이 똑같은 아름다움과 향기를 가져야 한다는 논리는
자연의 순리와 창조 질서에 어긋나는 악한 생각입니다.
사회적 약자를 선동하기 위하여 탄생한 정치 이데올로기인 포퓰리즘(populism)은
보편적 복지 실현을 위하는 네거티브일뿐입니다.
속고 속이는 세상.....
포퓰리즘은 하나님 나라 이상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를 선동하여 정치 권력을 잡기 위한 네거티브요, 이데올로기입니다.
여기에 서민들의 아픔이 있습니다.
빵주는 사람을 "나쁜 놈"으로 인식하기까지 굶주림보다 더한 희생의 댓가를 치르고
정신 차리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잣집 대문간에서 버리는 음식물 쓰레기로 연명하는
걸인 나사로를 보았습니다.
날마다 연회를 베풀며 고대광실(高臺廣室) 좋은 집에서 호화호식하는 부자와
사회적 약자로 최악의 상태인 걸인 나사로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유사 기독교나 사이비 교주들의 종교적 포퓰리즘은
걸인 나사로에게 호화호식하는 부자의 이상을 종교적 신념으로 심어 줄 것입니다.
바리새인처럼 하나님을 잘 섬기면
부자처럼 고대광실 좋은 집에서 날마다 연회를 베풀며 풍족하게 살 것이라고 할 것입니다.
"꿈을 가져라! 비전을 가져라! 기도하라! "면서
긍정의 힘으로 고대광실 호화호식의 눈에 보이는 이상을 따르게 할 것입니다.
지구촌 교회의 이동원 목사님은 소천하신 온누리 교회 하용조 목사님의 발인식에서
하용조 목사님은 꿈을 먹고, 꿈을 심고 꿈을 나누고, 꿈을 남긴 사람이고 설교하였습니다.
이 한 마디는 많은 사람의 죄우명이 되었고,....
목회와 삶의 역동적인 희망 비전이 되었습니다.
문덕....부잣집 대문간의 걸인 나사로는
꿈을 먹고, 꿈을 심고 꿈을 나누고, 꿈을 남긴 사람인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꿈은 허상이요, 존재하지 않는 거품입니다.
미래 이상의 꿈은 신념의 사람이 만든 네거티브요, 종교적 포퓰리즘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주린 자가 꿈에 먹었을지라도 깨면 그 속은 여전히 비고
목마른 자가 꿈에 마셨을지라도 깨면 곤비하며 그 속에 갈증이 있는 것 같이
시온 산을 치는 열방의 무리가 그와 )말씀하였습니다. (사29:8)
진실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이며....
신념은 허상을 좇지만 믿음은 존재하는 진실을 삶의 향기를 품는 것입니다.
부잣집 대문간의 음식물 쓰레기로 연명하던 거지 나사로의 진실은
음식물 쓰레기뿐만 아니라 몸의 헌데를 핥는 개들의 조롱과 멸시였습니다..
이것을 바라보신 예수님은
나사로를 위한 종교적 포퓰리즘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복음으로 담아내었습니다.
예수님의 시선은
거지 나사로를 향한 가장 정직한 관심이었습니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고, 불의한 재물에 충성하라는 복음을 선포하신 예수님은
호화호식하는 부자를 지옥의 모델로 걸인 나사로를 천국의 모델로 하나님 나라 복음을 그려내었습니다.
강남의 부자들은 걸인 나사로를 통한
예수님의 천국 복음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어쩌면.... 땅 투기해서 벌인 불의한 재물을 이 말씀으로 합리화하여
긍정적으로 위안의 말씀을 삼을 것입니다.
불의한 재물은 "주인의 재물"이요,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는 말씀은
"주인의 의로운 재물로 용서를 베풀라"는 천국 복음입니다.
"불의의 재물에 충성하라",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예수의 하나님 나라 복음으로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은
기독교 유사 종교의 인본주의 무속 신앙의 늪에 빠져 있는 사람들입니다.
진리의 말씀에 자유하지 못하고.....
보는 눈과 듣는 귀와 깨닫는 마음이 없는 어둠에 매여 있는 자들입니다.
주인의 재물은 바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의요,
하나님의 의로 용서하는 은혜를 베푸는 것이 하나님 나라 복음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로
은혜가 무엇인가를 실물교훈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자기의 것으로 의지할 것이 많은 부자는 지옥의 모델이요,
병들고 음식물 쓰레기로 연명하여 자기의 것으로 의지할 것이 없는 가난한 걸인 나사로는
하나님의 은혜로 얻는 천국의 모델로 복음의 메세지를 삼았습니다.
예수님의 천국 복음은
"은혜가 무엇인가"를 항상 말씀하였습니다.
가난한 자의 천국은
하나님의 은혜로 얻는 구원의 진리를 온전히 담아내고 있습니다.
종교적 포퓰리즘으로
미래의 꿈을 먹고, 꿈을 심고, 꿈을 나누고, 꿈을 남기는 것은
과거와 현재의 진실로 존재하는 은혜를 공유할 수 없습니다.
꿈은 허상이요,
현실로 존재하는 진실한 은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꿈으로 말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종교적 네거티브요, 종교적 포퓰리즘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독교 유사 종교의 민간 신앙이 신념으로 추구하는 사이비 행각은
바로 꿈을 은혜로 말하는 종교적 포퓰리즘입니다.
예수님께서 걸인 나사로를 통하여 담아내신 은혜의 복음 메세지는
보편적 사회복지의 포퓰리즘이 아니라 은혜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불의의 재물에 충성하라는 복음의 메세지를 선포하신 예수님은
창조의 주가 되시며,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왕으로 자기 백성을 은혜로 품어내십니다.
예수의 하나님 나라는
자본주의나 민주주의, 그리고 사회주의의 포퓰리즘으로 이룰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의 하나님 나라는
걸인 나사로처럼 은혜의 선물로 들어 갈 수 있습니다.
이 놀라운 구원의 복음을 깨달았던 바울은
사도 중에 막삭되지 못하여 난 가장 작은 사도요,
성도 가운데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이며, 죄인 중의 괴수라는 고백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풍성한 구원의 은혜를 온전히 사모하였습니다.
사도로 부름을 받아 복음을 위하여 고난을 받고 서신을 성경으로 기록하고 많은 교회를 세운 것은
바울 자신을 구원하는 구원과 믿음의 근거가 될 수 없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믿음으로 구원의 은혜를 받는 진리를......
로마 감옥의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질 때까지 마음의 편지로 품었습니다.
바울은 죄인의 괴수로 단두대의 사형을 기쁘게 받아들이면서
예수의 하나님 나라 복음과 부활 신앙을 믿음의 흔적으로 아름답게 남겼습니다.
하니님의 은혜는 인본주의 신앙의 실상이 아니라
주 예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 구원의 주가 되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는
은혜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참된 복음을 실물 교훈으로 선포하신
진정한 예수의 하나님 나라 복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