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제가 2018년부터 작성해 온 글로써, 매년 조금씩 교정하여 다시 올리고 있습니다.]
(요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 15: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하는데, 그 방법은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지금부터 현실감 떨어지는, 무슨 꿈나라 얘기 같더라도 성경의 원리를 얘기하는 것이니 한번 들어보십시오.
저는 부부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여러분들은 모든 인간관계에 적용해 보십시오. 남편은 오로지 아내의 유익만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아내는 오로지 남편의 유익만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그러면 이 가정은 정말 그야말로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나는 상대방의 유익만을 생각하면서 행동하지만 동시에 나의 필요도 모두 채워집니다. 상대방도 내 생각만 하고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나는 나만을 제어할 수 있을 뿐, 상대방은 제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서로가 자기만 생각하는 부부라면 거기는 안 봐도 뻔합니다. 지옥입니다. 그런데 남편은 아내만 생각하는데 아내는 자기만 생각하는 부부라든지, 아내는 남편만 생각하는데 남편은 자기만 생각하는 경우가 있겠습니다. 즉 나는 예수님의 말씀을 순종하기 원하고 또 순종하는데 상대방이 순종하지 않을 때 어떻게 해야 하나, 이것이 문제입니다.
(롬 12:18)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먼저, 상대방의 불순종이 나의 순종을 멈추게 해서는 안 됩니다. 상대는 상대고 나는 내 인생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서 나의 순종을 이용한다고 해도, 나는 오로지 예수님께만 영향을 받아야지,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사람에게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그 사람에게 영향받지 않는다는 것은 그 사람을 미워하거나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닙니다. 단지 그 사람에게 영향받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상대방이 자기만 생각하고 행동을 하더라도 너는 그 사람만 생각하고 행동을 하라'는 말이 되는데, 이것은 학대를 당하고 무조건 이용만 당하는 지경까지 그렇게 하라는 말은 아니고, "주 안에서" 그렇게 하라는 말입니다. 비정상적인 요구까지 들어주라는 말은 아닙니다. 또 상대방을 정말 성경적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비성경적인 행동을 하거나 요구를 했을 때는 단호히 거절하라는 말도 됩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성경적인 사랑이란 그 사람이 지금보다 더 하나님적으로 성숙해지도록 돕는 것을 말합니다. 더 마귀적이 되도록 허락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나의 유익은 누가 채워주나?
하나님께서 채워주십니다. '상대가 나에게 이렇게 하니까 나도 이럴 수밖에 없다'는 논리는 하나님께서 나를 돌보신다는 진리를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하는 영원한 줄다리기입니다. 정말 영원합니다. 주변에 70, 80 넘으신 할머니 할아버지들 중에서 그러고 계신 분들 많잖아요.
이 '이타적인 사랑'을 한번 연습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한 사람을 상대로 시작해야지 자기만 생각하던 이기적인 인간이 갑자기 모두를 이타적으로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내 생각과 기준으로 섬기면 안 됩니다. 예를 들어 상대방은 차가운 음식을 싫어하는데 내가 냉면을 좋아한다고 맨날 냉면 먹으러 가자고 하면, 그것은 이타적인 사랑이 아니라 자기 방식을 주장하는 것이 됩니다. 상대에게 맞춰야 합니다. 물론 성경적인 테두리 안에서! 아내는 남편이 집안일을 도와줄 때 사랑받는다고 느낀다면 그 남편은 말로만 사랑한다고 하던 것을 멈추고 집안일을 도와야 합니다. 자기의 사랑의 언어가 말이라고 해서 상대방도 말로 사랑받는다고 생각하면 안 되고 상대방의 방식으로 사랑을 주어야 합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가 정말 탁월한 책입니다.)
상대가 원하는 것, 상대가 필요한 것(이것도 내가 판단해서 정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판단으로 결정해야 합니다)을 채워 주다 보면 상대방이 끝까지 이기적인 마음을 고수한다고 해도 나는 그 관계에서 순종했고 승리한 것입니다. 불순종한 그 상대는 나중에 하나님과 결산을 해야 되는 것이고 나는 하나님 앞에서 순종한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관계에 적용됩니다. 이 나라와 나의 관계, 교회와 나의 관계, 내가 사는 지역과 나의 관계, 회사와 나의 관계, 가정과 나의 관계, 그리고 모든 인간관계에서 말입니다. 이것을 반대로 했을 때 인간의 모든 고통의 문이 열리게 됩니다. 상대가 (상대가 이 나라든, 내 교회든) 내 기준에 맞지 않는 부분만 생각한다면 거기에는 고통만 남을 뿐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살면 어딜 가든 고통이 따릅니다.
제목에 말씀드렸듯이 이것이 쉬운 것은 아니지만 일단 한 사람을 대상으로 시작해 보십시오. 받을 기대를 온전히 내려놓고 그 사람의 필요를 성경적인 잣대로 채워주면 거기서 오는 자유함과 승리감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말씀드리자면 그래도 그 사람은 안 변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 사람의 자유의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는 나에게 명하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고 그렇게 할 때, 그 관계에서 완전한 자유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