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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경훈목사의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마경훈목사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으면 일어나는 일들 시편 46:1-11
(설교자: 마경훈목사 비전교회)
동영상 설교: https://www.youtube.com/watch?v=oq7Fp2LtoB4
길을 가다가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요? 얼른 비를 피할 곳을 찾고 그럴만한 곳이 있다면 그리로 뛰어 들어가겠죠. 그때 비를 피하는 곳이 피난처입니다. 피난처는 어려움이나 큰 두려움 속에서 피할 수 있는 곳입니다. 피난처는 무서운 사건과 사고로부터 안전하게 보호 받을 수 있는 곳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다보면 소나기를 만나듯이 여러 가지 문제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질병의 문제, 물질의 문제, 가정의 문제, 대인관계의 문제 등 다양한 문제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문제를 만났을 때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피난처가 되어야 합니다.
시편 46편은 어려운 상황에서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을 찬양한 시입니다. 1, 7, 11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시인은 세 번이나 하나님이 우리의 피난처라고 고백합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환난을 만나고, 고난을 당하고, 문제를 만날 때, 하나님께 피해야 합니다.
오늘 설교는 피난처이신 하나님께 피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1. 하나님이 큰 도움이 되십니다(1절).
지구온난화 때문인지 북극의 얼음이 조금씩 녹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별로 신경 쓰이지 않은 현상이지만 이런 현상이 국가적인 위기를 초래하는 나라가 있습니다. 여러분 혹시 ‘투발루’라는 나라에 대해서 들어보셨어요? 생소하시죠? 남태평양 적도 부근에 있는 나라입니다. 세계에서 네 번째로 작은 나라입니다. 면적은 부산광역시 남구 정도입니다. 9개의 큰 섬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 8개 섬에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인구는 2005년 통계로 1만4백 명이 사는 작은 나라입니다. 20세기가 오기 전 까지만 해도 지구상에서 행복지수가 아주 높은 아름다운 섬나라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서 2개의 섬이 침식이 되어 사라졌으며 가장 높은 곳이 해발 4미터 정도입니다. 2월에는 조수 때문에 주요도로와 건물들이 바닷물에 잠기곤 합니다. 앞으로 50년 안에 모두 사라질 것이라고 합니다.
투발루는 국가적인 위기 앞에 놓여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유다가 지금의 투발루보다 더 위기에 처할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시편 46편의 배경도 그런 위기를 극복하고 지은 시입니다.
성경학자들은 시편 46편은 유다 히스기야 왕이 지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유다가 앗수르 왕 산헤립의 침공을 받아 온 성읍이 함락되었고 수도 예루살렘 성마저 포위되었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산헤립이 보낸 편지를 하나님 앞에 펼쳐놓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셨고 능력의 천사를 보내셨습니다. 그 천사가 하룻밤 사이에 앗수르 군대 18만5천 명을 죽였습니다. 졸지에 군사를 잃은 산헤립은 자기 나라로 돌아갔고, 거기서 자기 아들들에게 살해당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구원을 감사하며 지은 시입니다. 히스기야 왕은 국가적인 위기 앞에서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1절에서 히스기야는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요즘 대한민국을 보면 걱정이 많습니다. 생각 있는 사람들은 온갖 포퓰리즘 정책과 사회주의 정책 때문에 나라 걱정이 많습니다. 나라 곳간이 거덜나고 국민 1인당 나라 빚이 1621만원입니다. 그런데 서울시는 외국인들에게도 긴급재난지원금을 50만원씩 주겠다고 합니다. 경제는 마이너스 성장입니다. 거기다가 코로나-19로 인한 방역 독제로 자유민주주의가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대통령은 북한만 바라보고 있는데 북한은 계속해서 도발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미중간의 갈등 속에서 대통령은 잘못된 줄에 서고 있습니다. 국가적인 위기입니다. 참으로 불안한 시기입니다.
이러한 때에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나라를 걱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아야 합니다. 히스기야처럼 하나님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그런데 마귀는 사회적거리두기라는 핑계로 교회의 모임을 막고 있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 프레임에 넘어가서 하나님 앞에 나아오는 것을 내려놓고 있는 실정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아야 합니다. 5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도우시는데 언제 도우시겠다고 했습니까? 새벽에 도우신다고 했습니다.
새벽에 도우신다는 말을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런 해석을 봤습니다. “새벽에 도우신다는 말은 인간이 감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신속하고 정확하게 우리의 문제를 감지하시고 해결해 주신다는 의미다.” 공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면 신속하게 응답하십니다.
칼빈(Calvin)은 새벽에 도우신다는 말을 해가 떠오른 직후를 가리키지만 매일이란 뜻도 있으므로 ‘항상 하나님께서 도우신다’로 해석했습니다. 맞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는 사람을 항상 도우십니다. 헹스텐버그(Hengstenberg)는 ‘고통의 밤이 지나면 새날이 오듯이 하나님께서 고통 중에 도우신다’로 해석했습니다. 로젠뮐러(Rosenmueller)는 이 말을 빨리로 해석해서 ‘고난 중에 하나님께서 속히 도우신다’로 해석했습니다.
저는 위에서 말한 해석들에 동의하지만 새벽에 도우신다는 말을 단어 그대로 새벽 시간에 도우신다로 해석하는 것도 좋다고 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새벽에 기도할 때 도우십니다.
대한민국 교회의 기도의 영성은 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특히 새벽기도의 영성은 대한민국 교회만이 가진 특별한 영성입니다. 세계적인 부흥사 고 빌리 그래함 목사님(Billy Graham)이 세계를 많이 방문하다가 우리 한국에 와서 깜짝 놀란 것이 새벽기도랍니다. 그는 한국은 새벽에 기도하는 사람들 때문에 하나님께 복을 받는다고 말했습니다.
외국인들은 새벽기도 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필재목사님이 미국 텍사스 휴스턴에서 미국 교회를 빌려 한인 목회를 시작할 때, 새벽기도를 하려고 그 교회 담임 목사님에게 요청을 했습니다. “한국 교회는 새벽기도를 하는데 새벽 5시에 이 교회 건물을 쓸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교실 하나만 주면 우리가 잘 쓰고 잘 정리하고 갈 테니 새벽 5시에 쓰게 해주십시오.” 그랬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이목사님을 쳐다보고 하시는 말씀이 “당신이 지금 새벽 5시라고 말했습니까, 오후 5시라고 말했습니까?”, “새벽 5시입니다.”, “그러면 당신이 새벽 5시에 나오셔서 설교하실 겁니까?”, “그렇습니다.”, “매일 나올 겁니까?”, “매일 하겠습니다.”, “그러다 죽으면 어떡하시려고 그럽니까?”, “안 죽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미국 사람들은 이런 약속은 서류로 합니다. 서류로 약속하는 이유는 “여기에서 파생되는 모든 문제는 네가 책임져라.” 그런 것입니다. “책임지겠다.” 그래서 당회서기 장로님이 서류를 가져왔습니다. 그 장로님이 이필재목사님에게 서류를 주면서 한 마디 했습니다. 이필재목사님은 그 말이 평생 잊지 못한답니다. “이목사님! 새벽 5시에는 하나님도 주무십니다.” 진짜 주무신다는 말은 아닐 겁니다. 새벽에 기도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해서 한 말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는 분입니다. 새벽에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분입니다.
대한민국은 6.25 직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못 살던 나라였습니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입니다. 지하자원이라고는 거의 전무한 나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GDP 세계 9위, 수출 세계 6위의 경제 대국으로 만들어주셨습니다.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믿음의 선배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도와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새벽에 도우시지만 새벽에만 도우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기도하는 사람을 도우시는 분입니다. 저는 18살 때부터 새벽기도를 시작했습니다. 40년 째 새벽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가진 가장 좋은 습관입니다. 요즘 우리 교회는 밤기도회를 합니다. 저는 또 밤마다 기도하는 습관을 갖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밤기도를 하면서 우리가 붙잡아야 할 말씀은 시편 134:1입니다. “보라 밤에 여호와의 성전에 서 있는 여호와의 모든 종들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우리는 밤마다 하나님의 전에 와서 기도합니다.
저는 대한민국 교회가 새벽이 되었든 밤이 되었든 날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대한민국과 이 땅의 교회와 기도하는 사람들의 가정과 기도하는 개인의 피난처가 되시고 환난 날에 피할 큰 도움이 되실 것을 믿습니다.
제가 목회를 하면서 확신하는 것은 사람이 겸손하게 하나님을 찾고 기도하는 생활을 계속하면 갑자기 눈에 띄는 축복은 없어도 세월이 지나면 하나님이 축복의 증거가 나타납니다. 확실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아 하나님의 도움을 받읍시다.
2. 하나님이 두려움을 이기게 하십니다(2-3절).
두려워하는 사람은 스스로 형벌을 받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4:18을 보겠습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우리의 인생에 찾아오는 대부분의 불행은 두려움의 결과입니다.
몇 년 전 미국의 닉 시즈맨이라는 철도 역무원이 사망한 적이 있었습니다. 어느 여름날 닉 시즈맨은 냉동차량에서 홀로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직원들은 그것을 깜빡 잊고 냉동차량 밖에서 문을 잠그고 퇴근해 버렸습니다. 닉은 자기가 냉동차량 안에 갇힌 것을 뒤늦게 깨닫고 문을 아무리 두드리고 소리를 질렀지만 소용없었습니다. 그는 ‘여기서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면 나는 몇 시간이 못 되어 얼어 죽을 것이다’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절망에 빠진 그는 칼로 바닥에 다음과 같은 글을 새겨 나갔습니다. “너무나도 추워서 온 몸이 마비되어 가는 것 같다. 차라리 그냥 잠들어 버렸으면 좋겠다. 아마도 이게 나의 마지막 말이 될 것이다” 다음날 아침 철도역의 직원들이 냉동차량의 문을 열어보니 그 안에 닉이 죽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그가 냉동차량에 갇혀 있던 날 밤에 냉동차량의 냉방장치는 고장이 나서 작동하지 않았으며 온도계는 섭씨 13도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닉은 자신이 냉동차량 안에 있었기에 으레 추울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두려움이 그를 죽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두려움의 결과입니다.
두려움은 환경에서 비롯된 것이 있고 마음에서 발생하는 것이 있습니다. 환경에서 비롯된 것은 두려움의 대상이 있지만 마음에서 발생한 것은 대상이 없습니다. 많은 경우 사람들은 마음에서 발생하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런 두려움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아니라 마귀가 주는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어서 얻고자하는 목표가 이렇습니다. ➀우리의 잠재력을 마비시킵니다. ➁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를 파괴시킵니다. ➂우리가 누리는 평안을 깨뜨립니다. ➃우리의 성공을 방해합니다.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으면 두려움을 이기게 됩니다. 본문 2,3절을 보십시오. 히스기야가 만났던 상황을 시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상상해보십시오. 어마어마한 지진이 발생하는데, 지진이 얼마나 심한지 우리 교회 뒷산이 흔들리면서 움직여 한강에 빠질 정도입니다. 바다에서 해일이 일어나서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까지 물이 밀고 오는데 그 힘이 얼마나 강한지 교회 뒷산이 흔들릴 정도입니다. 히스기야는 그 정도로 심각한 상황을 만났으나 두렵지 않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자신의 피난처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에게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 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히스기야는 땅이 변하고,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에 빠지고, 바닷물이 뛰놀고, 바닷물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했던 것입니다.
루터는 독일의 작센지방의 광산업자의 아들로 태어나 성장했습니다. 그는 고등학교 과정을 졸업하고 가족들의 바람대로 법학부에 합격했습니다. 그러나 1505년 7월 2일 벌판에서 뜻밖의 폭풍우를 만났는데 옆에 있던 친구가 번개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는 땅에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성 안나여! 나를 살려주세요. 그러면 나는 수도사가 되겠습니다.” 이 기도는 잘못된 기도입니다. 사람은 기도의 대상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기도의 대상입니다. 아무튼 루터는 이 사건 이후에 세상의 모든 관계를 청산하고 어거스틴 수도원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헌신적인 수도사가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1515년 어느 날 로마서 강의를 준비하는 중에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는 말씀이 그에게 다가왔습니다. 그는 구원을 얻기 위해 수도사로써 고행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구원은 행위나 선행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얻는 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너무 기뻤습니다. 이 진리를 온 세상에 전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쉽지 않았습니다. 천주교회는 그를 죽이려고 온갖 음모를 다했습니다.
마귀는 루터를 거꾸러트리려고 많은 고통을 주었습니다. 루터는 아이를 낳자마자 잃었습니다. 열두 살 난 딸도 죽었습니다. 그의 가장 친한 친구가 배신을 하고 루터를 비난하였습니다. 천주교회는 끝까지 그를 추적하여 살해하려했습니다. 그러나 루터는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았고 하나님은 루터에게 큰 도움이 되셨습니다. 루터는 모든 두려움을 이기고 종교개혁을 단행했습니다.
루터는 절망에 빠졌을 때 시편 46편을 통해 힘을 얻고 두려움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찰스 황제로부터 보름스 회의에 참석하라는 소환장을 받았습니다. 회의에서 종교개혁을 포기할 것을 강요받았습니다. 그러나 루터는 “나의 양심은 하나님 말씀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내가 주장한 어떠한 것도 철회할 수도 없고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하며, “제가 여기 섰사오니 오 하나님 저를 도와주소서”라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찬송 585장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되시니’를 불렀습니다.
루터가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 되시니’라는 찬송을 만든 동기가 있습니다. 1529년에 루터가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갔을 때 비엔나는 터키 군대에게 포위 되었습니다. 국가적인 위기를 만난 것입니다. 당시 터키군과 오스트리아군은 독수리와 참새로 비교할 만큼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때 비엔나 시민들은 교회로 모여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터키군대가 물러갔습니다. 본국에서 철수하라는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을 내린 것입니다. 루터는 이 현장을 목격하고 ‘이것이 하나님이 행하신 기적이다. 하나님의 하신 일이다’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루터는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되시니”라고 찬양하게 되었습니다.
워싱톤에 가면 링컨이 애용하던 성경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그 성경 속에는 손가락에 눌린 자국이 있습니다. 여러 번 같은 말씀을 손가락으로 눌러서 생긴 자국입니다. 시편 34:4입니다.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링컨이 믿었던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시고 모든 두려움에서 건져주시는 하나님이었습니다.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으면 하나님은 모든 두려움을 이기게 하십니다.
3. 하나님이 동행해주십니다(4-5절)
4절에 시내가 나옵니다. 여기서 시내는 히브리어로 rh;n(나하르)인데 강이나 시내를 말합니다. 성경에서 강과 시내는 하나님의 축복의 상징입니다. 예루살렘에는 강이 없습니다. 그런데 강이 흐른다고 표현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복 주신다는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그 당시 예루살렘에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습니다. 그래서 5절에서는 하나님이 그 성 중에 계시매 성이 흔들리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히스기야가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으니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복을 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말은 하나님이 거기에 계신다는 의미보다는 하나님이 동행해주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신 분으로 어디든지 계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그분을 느끼든 느끼지 못하든 하나님은 언제나 어디서나 계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표현할 때는 동행하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면 하나님이 나를 붙들어주시는 것입니다. 이사야 41:10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여기 보면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면 나에게 네 가지 결과가 나타납니다. ➀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➁하나님이 나를 굳세게 해주십니다. ➂하나님이 나를 도와주십니다. ➃하나님이 나를 붙들어주십니다. 내가 하나님과 동행할 때 하나님이 나를 붙들어주십니다.
‘죽 이야기’로 알려진 글로벌 한식 브랜드 ‘대호가(大戶家)’ 임영서 대표의 이야기입니다. 경기도 양평 산골에서 가난하게 자랐습니다. 12살 때부터 군고구마 장사, 떡 장사, 꽃 장사, 과일 장사, 신문 배달, 공사장 인부 등 안 해본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늘 하나님을 의지하며 이겨냈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기도하는 어머니의 가르침 때문입니다.
어느 날 어머니가 밥상 앞에서 젓가락을 건네며 말합니다. “이 젓가락을 상에 세워봐라” 그는 터무니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어머니께 “그걸 어떻게 세워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왜 못 세워? 네가 끝을 잡고 있으면 되지”라고 말씀하시며 평생 기억에 남을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너를 이렇게 잡아주시면 설 수 있다. 성공하고 싶다고 했지? 젓가락을 잡은 손처럼 하나님이 너를 잡아주셔야 성공할 수 있어. 사람들은 저마다 행복해지기 위해 무언가를 붙잡는다. 어떤 사람은 돈을, 어떤 사람은 권력을, 어떤 사람은 명예를 잡는다. 하지만 너는 하나님의 손만 잡아라. 하나님 없이 붙잡은 돈과 권력과 명예는 다 부질없는 것이다.” 당시 그는 어머니의 말씀을 다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세상 성공을 좇다가 쓰라린 실패를 맛보고 수많은 고비와 어려움을 겪으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난 다음 결국 기도로 하나님 손만 붙잡는 신앙인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2003년 창립한 ‘죽 이야기’는 430개의 매장을 거느린 대형 프랜차이즈가 되었습니다. 그가 붙잡았던 말씀은 시편 55:22절이었습니다.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 그는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기억하며 그날그날, 순간순간의 어려움을 하나님께 도움을 토로했습니다. 누군가를 만나 하소연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것을 받아줄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언제 어디서나 저를 만나주십니다. 시간과 장소에 관계없이 편하게 만날 수 있는 분이십니다. 틈나는 대로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 그것을 통해 오늘도 제게 주어진 길을 담대하게 걸어갈 수 있는 힘을 얻고 있습니다.” 임영서 대표는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았습니다. 하나님이 임영서 대표와 동행해주셨고 그를 붙드시고 그의 사업을 통해서 영광 받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으면 하나님은 우리와 동행해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산업을 일으키시는 정도가 아니라 친히 우리의 산업이 되어주십니다.
4. 하나님이 대신 싸워주십니다(6-9절).
신약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이 37가지 나옵니다. 치유의 기적이 제일 많고, 죽은 사람을 살리신 기적도 있고, 자연을 변화시킨 기적도 있습니다. 주님은 무서운 갈릴리 바다의 풍랑을 잔잔하게 하셨습니다. 거기서 풍랑을 만난 배는 우리의 인생을 보여줍니다. 삶에는 풍랑이 많습니다. 어떤 풍랑은 우리의 능력으로 이겨낼 수 있지만 어떤 풍랑은 우리의 능력으로 이겨낼 수 없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그 풍랑과 누가 싸우느냐입니다. 내가 싸우는가 주님이 싸우시는가가 중요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으면 하나님이 나를 대신해서 내가 만난 풍랑과 싸워주십니다.
성경에 보면 적이 얼마나 큰가, 얼마나 강한가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 적과 내가 싸우느냐 하나님이 나를 대신해서 싸우느냐가 중요합니다.
6-9절의 내용은 히스기야가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았더니 하나님께서 히스기야를 대신해서 싸워주셨다는 내용입니다. 그 결과 대적이 흔들렸습니다. 그들의 땅이 녹았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땅을 황무지로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히스기야가 이겼고, 전쟁을 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적들의 활을 꺾고 창을 끊으며 수레를 불사르셨습니다. 피난처이신 하나님이 대신 싸워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인생에서 일하시면 내가 할 수 없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부흥사 중에 은석교회를 담임하시는 고충진 목사님 교회에 ‘산소통 장로’라는 별명을 가진 장로님이 계십니다. 그분은 은석교회 개척초기에 나오셨는데 온몸에 23가지 병을 가지고 있어 산송장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돈이 없어 병원에도 못가니 병 고치기 위해 교회에 나왔다가 두 주 만에 은혜를 받고 새벽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이분이 새벽기도 중에 마음에 감동이 와서 헌금 30만원을 작정했습니다. 40년도 더 된 일이니 30만원은 엄청나게 큰돈입니다. 그 당시 교회가 월세가 3만원이었으니 30만원이면 꽤 큰 돈 이었습니다. 목사님은 가난하고 병든 사람이 어떻게 그 돈을 헌금할 수 있을까 혹시 그로 인해 시험이라도 들지 않을까 염려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지하철 공사장에 나가 하루 일당 7천원을 받고 일을 시작했습니다. 하루는 일하는 도중에 위에서 산소통이 떨어지는 바람에 머리와 몸에 맞아 기절하여 병원으로 실려 갔습니다. 목사님이 달려 가보니 머리가 터지고 갈비뼈가 3대가 부러졌습니다. 부인은 “우리 남편이 예수 믿다가 머리통 깨졌네요.”하고 원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의사가 신앙을 가진 분이었는데 그 분의 도움으로 1년 4개월 동안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며 23가지 병을 모두 고쳤습니다. 거기다가 보상금으로 2500만원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분이 십일조 250만원하고 감사헌금 50만원하고 담임목사님께 감사하다고 50만원을 드리고 나머지로 슈퍼마켓을 차렸습니다. 그 슈퍼마켓이 장사가 너무 잘 되어서 십일조를 100만원 200만원을 드리게 되었고, 고목사님이 그 간증을 하실 때는 오래 전인데 십일조를 300만원을 드린다고 했습니다. 지금은 그분이 장로가 되어 교회를 잘 섬기고 물질도 넉넉하여 선교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어려운 문제를 만나 장로님에게 상담하면 장로님은 “염려 하지마! 산소통 한대 맞으면 돼!”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산소통을 맞아도 수지맞는 것입니다. 그분이 새벽기도를 하며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했고,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은 결과 하나님이 그분을 대신해서 물질을 공급해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문제를 만나면 피난처이신 하나님께 속히 피해야 합니다. 시편 55:8을 보겠습니다. “내가 나의 피난처로 속히 가서 폭풍과 광풍을 피하리라 하였도다” 여기서 속히 피한다는 말을 도피성으로 피하는 사람을 놓고 생각해 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안에 6개의 도피성을 두셨습니다. 요단강 서쪽에 3개, 동쪽에 3개씩 배치해두셨습니다. 하룻길이면 도망칠 수 있도록 이스라엘 어디서든지 48km 안에 배치해두셨습니다. 도피성은 과실로 사람을 죽인 사람이 피하는 성입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어떤 사람이 도끼질을 하는데 도끼날이 자루에서 빠져서 지나가는 사람의 머리를 때려서 그 사람이 죽었습니다. 이런 경우 살인자는 도피성으로 도망을 쳤습니다. 이유는 그가 도피성 밖에 있다면 죽음을 당한 사람의 가족들이 보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 과실치사를 한 사람은 도피성으로 도망을 가면 보호를 받았습니다. 그는 대제사장이 죽은 후에는 자유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그림자입니다. 도피성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고, 대제사장의 죽음으로 과실로 사람을 죽인 자가 자유롭게 되는 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죄와 사망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기서 질문하나 하겠습니다. 과실로 사람을 죽인 사람은 도피성으로 속히 달려서 피할까요? 아니면 천천히 여유 있게 걸어서 피할까요? 당연히 신속하게 피할 것입니다. 시편 55:8을 다시 보겠습니다. “내가 나의 피난처로 속히 가서 폭풍과 광풍을 피하리라 하였도다” 인생의 폭풍과 광풍을 만났을 때 피난처이신 하나님께 피하는데 속히 피해야 합니다. 우리는 인생의 문제를 만나면 과실로 사람을 죽인 사람이 신속하게 도피성으로 피하는 것처럼 그렇게 신속하게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피난처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설교는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를 나눴습니다. 1. 하나님이 큰 도움이 되십니다. 2. 하나님이 두려움을 이게 하십니다. 3. 하나님이 동행해주십니다. 4. 하나님이 대신 싸워주십니다.
성경을 들고 믿음의 고백을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피난처이십니다. 하나님은 내가 환난을 만날 때 큰 도움이 이십니다. 하나님은 내가 만난 모든 두려움을 이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나와 동행해주십니다. 하나님은 나를 대신해서 나의 대적과 싸워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