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삶은 마치 새장 속 작은 새 같았다. 새장 속 새가 세상을 알 수 없듯이 그 역시 세상을 알지 못했다. 그는 하늘을 보지만 하늘을 보지 못했고, 사랑했지만 사랑하지 못했다. 통제된 행복, 통제된 만남만이 그에게 주어질 뿐이었다. 그의 탄생부터 죽음까지 모든 시나리오는 정해져 있었고 그는 한 영화 속 주인공이자 동물원 속 새 같이 인생을 살아갈 뿐이었다.”
사실 트루먼의 삶은 나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릴 때의 트라우마를 제외한다면 평탄한 삶을 살았고 아름다운 아내 또한 있으며 번듯한 직장과 함께 매일 행복한 아침을 맞이하였다. 이렇듯 트루먼은 통제된 행복 속에서 살아왔다. 하지만 트루먼은 행복했고 그 행복이 거짓되었다고 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 통제된 행복이 트루먼에게 있어 의미 있는 행복이라고 할 수 있냐고 묻는다면 나는 쉽사리 그렇다고 답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모든 슬픔이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행복이 있기에 슬픔이 온다고 생각을 한다. 전에 행복했던 그 기억이, 그 행복을 잃었을 때 오는 그 감정이 슬픔이라고 생각한다. 트루먼도 마찬가지다. 트루먼에게 온 통제된 행복은 나중에 진실을 깨닫게 되면 무의미하고 건조하게 다가올 허상에 불과하다. 꼭 행복 뒤에 오는 슬픔 때문에 그 행복이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트루먼의 행복은 트루먼이 만들어간 것이 아닌 그저 짜여진 판에 가까웠다. 그는 자신의 행복마저 고르지 못했다. 그 행복은 트루먼을 나중에 더 슬프게 만들 것이고 자신의 인생을 의심하게 만들 것이다. 비참함만을 크게 만들 이 행복이 트루먼에게 의미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 곳보다 훨씬 큰 세상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작은 새는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바로 그 순간이 작은 새가 행복을 벗어나 자유를 선택하게 된 순간이었다. 작은 새는 자신이 죽게 되더라도 날개 짓을 멈추려하지 않았다. 무의미한 행복보단 자유를 선택하였고 한 번도 제대로 펼쳐본 적 없는 날개를 열심히 퍼덕이며 날아갔다. 자유를 얻은 새의 남은 생애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하지만 작은 새는 자유를 얻었다는 것. 그것 하나만이 우리에게 기억될 뿐이었다.”
트루먼은 통제된 행복보다 자유를 택하였다. 트루먼을 통제하려던 감독은 위험하고 알 수 없는 세상보다 안전하고 행복한 새장 속의 삶을 살라고 설득하였지만 통하지 않았다. 진실을 알아버린 트루먼에겐 새장 속 행복은 더이상 행복이 아니었다. 트루먼은 세트장을 탈출하기 전 다음과 같은 말을 마지막으로 남긴다.
"In case I don't see ya, good afternoon, good evening, and good night."
"나중에 못 볼지도 모르니 미리 말해 두죠. 좋은 오후, 좋은 저녁, 좋은 밤 보내세요.“
이 말대로 우린 더 이상 트루먼이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해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한다. 어쩌면 그는 더 큰 세상에 적응하지 못해 쓸쓸히 죽어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안정적인 삶보단 자유를 택했고 우린 그 선택을 비난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영화는 행복과 안정적인 삶보다도 스스로 살아가는 자유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한다. 행복과 안정적인 삶 역시 자유가 없고 내가 만들어가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인생의 최종 목표를 행복으로 잡는 사람은 많지만 자유로 잡는 사람은 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자유도 행복만큼 중요하고 의미있는 것임을, 새장 속 작은 새의 삶을 의미있게 만들 단 한 가지가 자유라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