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쓰는 필자는 싱글 경력 15년이다. 다른 싱글들의 삶에도 관심이 있다. 그들은 가족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과 분명 다른 라이프스타일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싱글들의 일상은 이제 구체적으로 분석되고 수치화되고 있다. 결혼을 못하는 미혼보다 스스로 비혼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는 것도 특징이다. 무엇보다 그들이 내수 시장의 큰 손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싱글 슈머’, 또는 ‘솔로 이코노미’라는 용어도 생겨났다.
▶대한민국 세 가구 중 한 가구가 1인 가구
우리나라 ‘가구 기준’ 25%의 인구가 혼자 사는 ‘1인 가구’다. 성인 중 506만명으로 세 가구 가운데 한 가구가 혼자 사는 집이다. 그들 가운데 늙거나 병으로 배우자가 죽어 어쩔 수 없이 홀몸이 된 사람들을 제외한다 해도 적지 않은 수치다. 이전 조사 시점이었던 2000년에 비해 124%나 증가했고 상승곡선은 점점 가파르게 올라가고 있다. 큰 그림 안에서 볼 때 1인 가구가 늘어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만큼 독립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진다는 것이고 그들이 만들어 내는 시장의 규모가 만만치 않다. 마흔이 다 되도록 부모 집에 사는 자식들이 많은 게 결코 좋은 일은 아니다. 1인 가구가 늘어나는 이유는 ‘청년 조기독립’과 ‘이혼률 증가’ 등으로 정리할 수 있다. ‘청년 독립’이란 ‘비혼 남녀’가 직장을 구하고 어느 정도 수입이 안정되면 집을 나가 독립하는 것을 말한다. 예전에는 직장을 구해도 결혼하기 전까지는 부모 집에 사는 게 상식이었다. 그 기간을 재테크의 기회로 삼기도 했다. 이제는 취직한 자식의 월급을 부모가 관리해 주는 일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성인이 된 자식 돈을 부모가 관리하는 자체가 불합리한 일이다. 부모가 대신 해준 재테크가 자식의 삶에 결코 도움되지 않는다. 흥해서 나쁠 것은 없지만 설사 실패하더라도 스스로 다시 일어서려면 시작부터 혼자 가는 게 맞다는 게 요즘 부모, 자식 모두의 생각이다.
▶이혼율 상승과 ‘도전적 독립’으로 솔로 이코노미 발생
‘도전적인’ 독립도 있다. 아직 직장을 구하지 못한 상태이고 혼자 살아가기에는 훈련이 제대로 되지 못한 부분도 분명 있지만 그냥 집을 나가는 것이다. 한마디로 ‘개고생 출가’라 할 수 있다. 부모의 경제적 능력이 어지간히 완성되어 있는 자식은 이렇게 대책 없어 보이는 출가를 해도 최소한 막장으로 몰릴 위험은 거의 없다. 그러나 부모 또한 ‘코가 석자’일 때는 얘기가 달라진다. 취직 못한 자식과 돈벌이가 막힌 부모가 한 집에 살며 서로 못 볼 꼴을 보느니 각자도생 하자며 뿔뿔이 흩어지는 경우 그들의 불안과 박탈감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정도다. 그들은 알바를 몇 개씩 하며 제 몸 하나 건사하기 위한 삶의 투쟁에 돌입하는 그룹이다. 줄어들기는커녕 여전히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는 우리나라의 이혼률도 독립 가구를 늘이는데 일조를 하고 있다. 2014년 기준 법률적 이혼 절차를 마무리한 수가 22만명을 넘어섰다. 역시 전년 대비 0.2% 증가한 수치다. 이혼 결과 재산 분할이 확정되었다면 최소한 11만명이 새 집을 구해야 하고 새 집기를 사야 한다. 독립한 청년들도 마찬가지다. 원룸을 구하든 오피스텔을 구하든, 세간살이를 사갖고 들어가든, 빌트인 서비스 임대주택에 입주하든 싱글의 삶에는 피할 수 없는 비용이 발생한다. 이에 따라 관련 업계의 움직임이 활발해졌고 새로운 업종도 생기고 있다. 단순 커플 잇기 사업이 아닌, 재혼 전문 중계 기업도 늘어났다. 남의 뒷조사 하는 업무를 배제한 ‘순수 심부름센터’에서는 집안 청소, 관공서 심부름 대행, 일인용 도시락 전문 배달, 줄서기 대행, 심지어 복권을 대신 사다 주는 등의 업무 확대로 호황을 누리기도 한다. 부부가 있는 가구라면 아내와 남편이 간단히 나눠 할 수 있는 일도 싱글에게는 번거로운 일들이 심부름 회사의 활황 업무들이다. 한국에서는 이미 운행이 중단되었고 해외에서도 기존 택시업계의 강력한 저항을 받고 있는 ‘우버 택시’에 환호했던 인구는 역시 싱글들이었다. 하우스셰어, 카셰어 등도 심플하지만 실속 있는 삶을 추구하는 싱글라이프와 찰떡 궁합이다. 여행산업의 약진도 싱글의 증가와 무관하지 않다. 미디어에서는 솔로를 겨냥한 프로그램을 개발, 광고 수익을 늘려가고 있다.
▶싱글 슈머 규모 2030년 약 200조원
싱글 슈머의 성장을 이끄는 결정적 분야는 역시 IT 다. 스마트폰, 태블릿PC, 그리고 솔로를 위한 애플리케이션들의 등장은 ‘혼자라도 혼자가 아닌’ 세상을 만들어 주었다. SNS는 커뮤니티를 구축해 주었고, 그 신뢰가 쌓여 제3의 시민운동 형태로 확장되기도 한다. 페이스북, 트윗의 불특정 다수 간의 소통 형식을 벗어나 그룹이나 페이지 등 ‘삶의 방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취향을 공유하는 인물들 끼리’ 모이게 되는 것. 밴드, 카카오그룹 등 배타적 공간에서의 활동에 점점 더 큰 비중을 두게 되는 것도 이런 현상의 연장선이라 할 수 있다. 과거의 싱글은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측면이 있었지만 요즘의 싱글들은 낯선 것들에 친화적이고 자신의 인생에 확실한 책임을 지고, 세상이 가야 할 방향에 대해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세대다. 그 방향에 필요한 일이라면 다소 무리해 보이는 투자라 할지라도 거침없이 감행한다. 돈벌이와 재테크는 물론 도네이션이 사회와 자신의 삶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는 것도 논리적으로 간파하고 있다. 하루하루 허덕이며 사는 것보다 자신과 사회의 방향에 더 큰 관심을 갖는다. 건강, 외모에 과감히 지갑을 열고 사는 것도 SNS에 의한 삶의 공유 공간이 넓어진 덕분이다. 그렇게 형성된 ‘싱글 슈머’의 규모가 2010년 기준으로 약 60조원, 2030년 예측 약 200조원이다. 관심을 가질 만하지 않겠는가. ‘싱글 컨슈머’, ‘솔로 이코노미’가 이 시대 중요한 경제 키워드가 된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 동안 추이만 엿보고 있던 기업들이 본격적인 시장 진출에 나서기 시작했고 통계청이나 기업 연구소에서도 싱글 컨슈머를 주인공으로 한 데이터 확보 작업에 한창이다.
싱글 슈머 라이프스타일 키워드
▶혼밥족
1인 가구는 주로 혼자 밥을 먹게 된다. 아침은 당연히 혼자 먹고 저녁도 ‘결국’ 혼자 먹게 된다. 싱글 초창기 때는 간섭 받지 않는 삶을 즐긴답시고 밤마다 친구, 동료들과 어울리곤 하지만 대부분은 일년도 되지 않아 경제적, 신체적 위협을 느끼며 무덤덤한 생활인으로 정착하게 된다. 주로 밥을 해먹게 되지만 휴일이나 저녁 식사 준비가 되지 않을 경우 식당을 찾는 일도 잦다. 싱글 인구의 증가는 식당의 형태에도 많은 변화를 주었다. 온돌식 홀이 점차 테이블식 라운지로 바뀌고 있고, ‘바’를 설치하거나 2인용 테이블을 늘려 혼밥족의 입장을 유도하고 있다. 정부에서 반찬 수를 줄이라고 홍보해도 꿈쩍 않던 식당 주인들이 이제 혼밥족이 늘어나자 스스로 손님의 수에 따라 반찬의 양을 조절하고 있다. 바 문화가 발달한 일본 식당이 인기 있는 이유도 혼밥족 증가와 무관하지 않다. 싱글족들은 배달 애플리케이션의 산업을 공룡 수준으로 키워주었다. 혼밥족을 위한 식당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저녁 시간에 음식점을 기웃거리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 집에서 혼자 통닭, 맥주 등을 시켜 TV 또는 스마트폰과 함께 식사를 즐기는 빈도가 높아진 것이다.
▶스마트폰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만들 때 생각한 주요 고객은 ‘싱글’이었을 것이다. 스마트폰은 혼자 사는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일단 책상이 필요 없게 되었다. 책상 위에 있던 데스크탑, 전화기, 달력, 스케줄러, 시계 등이 몽땅 스마트폰 속으로 들어가버렸다. 아직은 노트북, 태블릿 등 제2의 기기를 소유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개인의 책상에서 그것들이 사라질 날도 멀지 않았다. 검색, 소통, 금융이 스마트폰으로 모두 해결되는데 다른 기기가 왜 필요하겠나. 스마트폰의 발달은 싱글 라이프에 대해 별 다른 생각이 없던 사람들조차 ‘나도 혼자 살아봐?’ 라는 화두를 스스로에게 던지게 하는 계기를 주기도 한다. 지구인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페이스북 등 커뮤니티를 통해 삶의 다양성을 배우게 되고 인스타그램, 핀터레스트 등 라이프스타일을 한두 컷의 사진으로 응축해놓은 SNS를 통해 심플한 삶을 동경하게 되는 것이다.
▶노마드 라이프
도시를 떠나는 싱글들이 늘어나고 있다. 내 집 소유에 대한 개념도 달라지고 있다. 집을 사기 위해 몇십 년을 하우스푸어로 살아야 하는데다, 집을 구입할 때 피할 수 없는 취득세, 그 집을 보유하고 유지하느라 재산세를 내야 한다. 재산세 낸다고 건강보험료, 국민연금 요율이 올라가는 것보다 그냥 월세 내며 속 편히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게 그들이다. 집을 갖고 싶은 경우에도 대도시보다 시골을 선호한다. 몇 년째 노마드 라이프의 상징이 되었고 지금도 지속적 이주가 이뤄지고 있는 제주의 경우 30대 남녀들의 입도 분포가 제일 높은 것도 이런 싱글들의 노마드 지향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트레이너 아니면 안돼
싱글 인구가 늘어나면서 트레이너의 몸값도 올라가고 있다. 요즘 싱글들은 목숨 걸고 운동에 매진한다. 이것은 잘 빠진 몸매를 만들기 위한 일이기도 하고, 건강하게 살고 싶은 원초적 본능이기도 하다. 혼자 사는 게 때로는 폼나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불안한 요소들도 많다. 그중 제일 심각한 일이 질병이나 약골화 현상이다. 아파서 좋을 것 없는 건 커플과 다가구의 삶도 마찬가지이지만 싱글의 경우 심리적으로 위축되기 쉽고 급성 질환의 경우 치명적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어서 유난히 몸 관리에 신경을 쓰게 된다. 운동을 해도 혼자 하는 게 아니라 개인 트레이너를 고용해서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몸 관리를 하는 싱글들이 늘어나는 이유도 그것이다. 싱글들의 운동 종목이 다양화되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마라톤 인구의 급속한 증가, 유산소운동과 근육운동을 동시에 커버해 주는 ‘케틀벨’ 등 신종 운동기구들의 매출이 쭉쭉 올라가는 것도 싱글들의 건강에 대한 생각과 깊은 관련이 있다.
▶풀 퍼니시드
가구에 대한 싱글 슈머들의 생각은 극명하게 갈린다. 오피스텔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펜션급 빌트인하우스를 선호한다. 아무것도 없이 맨몸으로 입주했다 이사할 때도 대형 트렁크 한두 개 정도만 들고 나오는 것을 원한다. 빌트인의 세분화 버전이라 할 수 있다. 연립주택 등 로맨틱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싱글들의 경우 취향에 맞는 가구, 가전을 선호한다. 최근 소형 냉장고와 세탁기 등이 많이 등장하고 있는 것도 싱글들을 염두에 둔 마케팅이라 할 수 있다.
▶배워서 내가 갖자
싱글들의 공통점 가운데 ‘학업의 뜻’을 빼놓을 수 없다. 싱글 인구를 직업별로 나눠보면 전문직 종사자들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전문직이라 꼭 직장 생활을 하지 않아도 괜찮고 소득도 비교적 높아 씀씀이도 큰 편이다. 하지만 조직에 의존하는 일반 직종에 비해 전문직의 경우 흐름에 뒤쳐지거나 새로운 정보, 한 단계 진화한 기술을 리드하지 못할 경우 도태되는 냉엄한 생태계가 전문직종의 세계다. 그래서 대학원, 강연, 아카데미 등 직종과 관련된 보다 높은 레벨의 공부에 매진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대학원 진학을 인맥을 넓히고 삶의 레벨을 상승시키는 기회로 삼고자 하는 싱글들도 많이 있다. 전공 관련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단기 연수, 유학까지 감행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최근에는 온라인, 교육 관련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독학을 하거나 같은 직종 사람들끼리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지속적인 활동을 벌이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
▶개인극장 멀티미디어
스마트폰이 일상의 대부분을 해결해준다고 멀티미디어 산업이 붕괴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싱글을 겨냥한 홈시어터, 블루투스 스피커, IP TV, 프로젝터 시장은 1인용 버전으로 변신을 시도하며 여전한 호황을 누리고 있다. IP TV 채널에 ‘개봉관’이 생긴 것도 주목할 만하다. 예전에는 극장 개봉이 완전히 끝이 나야 케이블 시장으로 넘어온 영화들이 이제 IP TV를 통해 동시에 개봉되는 예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극장에 혼자 가기 귀찮은 싱글들에게 더없이 좋은 미디어가 아닐 수 없다. 극장에 조조 이용자들이 많아지고 전용관의 커플석(2인 이상만 매표 가능)을 혼자 구입해 ‘스크린’을 즐기는 싱글도 늘어나고 있다.
▶반려동물에 목매는 외로운 영혼들
싱글들을 유혹하는 가장 강력한 미끼는 ‘반려동물’이다. 싱글치고 개나 고양이 한 두 마리와 동거하지 않는 사람을 찾기 힘들 정도다. 혼자 사는 게 홀가분한 일이지만 수시로 찾아오는 고독감도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반려동물을 생각하게 된다. 세상도 ‘반려동물 입양’을 훌륭한 미덕으로 칭찬하는 분위기다. 한동안 반려동물을 사고 파는 일이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졌지만 이제 ‘매매’보다 ‘입양’을 권하는 세상이 된 것도 이런 추세와 무관하지 않다. 반려동물만 늘어난 게 아니다. 동물병원, 동물 미용실, 애완견 동반 입장 가능 펜션, 반려동물 호텔 등 관련 산업도 크게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반려동물과의 동거를 후회하는 싱글들도 늘어나고 있다. ‘미안함’ 때문이다. 싱글이다 보니 여행 등 반려동물을 직접 돌봐주지 못하는 상황도 적지 않은데, 그것을 극복할 방법도 별로 없기 때문이다. 싱글들이 반려동물과의 동거를 생각할 때 좀 더 깊게 하고 다양한 경우의 수를 계산한 후 결정해야 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죽어라 떠나곤 하는 해외여행
싱글 인구가 늘어나는 것은 ‘막연하게나마 혼자 살다 보니 점점 만족스러운 일들이 늘어나 그냥 계속 혼자 살기로 결심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부자 독식 세상, 출산을 훼방하는 사회, 부부 중 한 사람만 벌어서는 가정을 유지하기조차 어려운 고공 물가, 도저히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자녀 교육비, 수억원 들여 대학을 졸업시켜도 보장될 수 없는 직장과 열악한 사회 복지 제도 등은 청춘 싱글들의 혼인 욕구를 짓눌러버리는 그림자들이다. 그래서 싱글들은 ‘가족 구성을 통한 탈출 모색’보다 ‘내 한 몸 보존’을 선택하고 평생 혼자 스스로의 삶을 즐기기로 결심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명분일 뿐 사실 그들에게는 ‘결핍 심리’가 엄연히 존재한다. 세상의 중심은 여전히 가족을 이룬 공통체를 중심으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일종의 ‘자격지심’을 한 방에 날리는 수단으로, 혼자 사는 가벼움을 만끽하는 방법으로 가장 쉽게 행동할 수 있는 일이 ‘여행’이다. 가정이 있거나 애인이 있는 사람들이 독단적 결정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싱글은 시간과 비용만 확보되면 언제든 떠날 수 있다. 때로는 직장을 그만두고 일년쯤 연수를 받고 돌아오기도 한다. 그 맛을 아는 싱글들은 적어도 일년에 한두 번은 해외여행을 떠나곤 한다. 처음 보는 세상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영감을 주고, 그것들이 모여 세상살이에 결정적 도움을 주곤 하니 그들의 해외여행, 또는 국내여행의 빈도는 지속적으로 높아지는 것이다.
싱글남녀 관찰기
하은정, 38세, 프리랜서 광고 기획자 | ‘평생 싱글 커밍아웃’
4년 전 서울을 떠나 제주도 애월읍에 둥지를 튼 하은정(38세, 가명) 씨는 최근 솔로의 삶으로 ‘완전 커밍아웃’했다. 혼자 살다 때가 되면 결혼하겠다는 일시적 싱글이 아닌, 어떤 일이 생겨도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겠다는 선언이다. 다소 과격해 보이는 커밍아웃에 대한 주변 싱글들의 반응을 뜨겁다. 앞으로 전개되는 자신의 삶만큼은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하겠다는 것, 심지어 죽음마저도 의지에 따라 선택하겠다는 그녀의 생각에 공감하는 싱글들은 의외로 많았다. 사는 거야 그렇다 치더라도 죽음까지 스스로 선택해서, 안락사, 선택사를 법적으로 인정해 주는 나라에 가서 자신의 일생에 막을 내리겠다니! 그녀의 이런 결정은 어느 날 문득 떠오른 즉흥적 환상이 아니라, 오랜 학습과 경험과 희망과 실망과 고독과 번민 끝에 내린 즐거운 결론이다. 결론을 이렇게 내린 뒤 어느 날 그녀는 자신의 삶을 한 마디로 이야기한 적이 있다.
“나는 깃털이야. 좋잖아, 아무 때나 바람을 탈 수 있다고.”
프리랜서 광고 기획자인 그녀는 광고 회사의 의뢰를 받아 시즌 광고 또는 기업 광고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강단 있는 창작자’다. 창의적인 실력과 추진력을 인정받아 광고 회사와의 관계를 ‘갑을’이 아닌 협력 관계로 유지하고 있다. 그녀가 제주로 내려온 이유는 일을 줄이고 영감을 많이 받기 위해서다. 일과 관련한 목표는 일단 성공적이다.
▶깃털보다 가벼운 인생이 좋아
제주에 살지만 콕 박혀 살지 않고 시간을 만들어 ‘해외 여행’을 일년에 두 세 번 다니고 있다. 작년과 올해에 거쳐 홍콩과 코펜하겐으로 마라톤 겸 도시투어를 다녀왔고 오키나와 최남단 이시가키 섬의 부속 섬이자 대만과 경계를 이르고 있는 요나구니 섬에 들어가 20일을 머물고 돌아왔다. 하은정 씨의 요즘 삶은 거침없이 자유롭다. 물론 일을 하고 새로운 문물을 배우고(요즘은 코바늘과 마라톤에 열중), 여행을 떠나고 게으름을 떠는 일은 대개 계획적으로 이뤄진다. 가족이나 애인이 있는 상황에서 과연 이런 삶이 가능할까? 그녀가 대부분의 싱글들이 선택하는 반려동물과의 동거를 생각조차 하지 않는 이유도 조금 더 완벽한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다. 결혼은 ‘안 하는 걸로’ 결심을 굳혔다. 그 나이에 새삼 남자를 만나 ‘밀당’하다 덜컥 결혼이라도 하게 되면 위험 천만한 노산에 도전해야 하고 아이가 장성할 때까지 노심초사 세월을 보내야 한다. 부모님에게 미안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부모님 바람 때문에 자신의 삶이 달라질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는 게 하은정 씨의 확고한 생각이다. 그래도 부모님의 얼굴이 늘 가슴 한편에 어른거려 최근에는 어머니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씀드렸다. 죽음에 대한 코멘트는 하지 않았지만 딸의 이야기를 듣던 어머니는 눈물을 훔쳤다. 하지만 그녀는 결코 함께 우울해하지 않았다. “엄마는 아빠가 친구들과 해외 골프여행 떠나 며칠 혼자 지내면 아주 안정적이 되지 않아? 호호호.” 그녀는 두 가지 연금 외에 특별한 노후 대책을 세우지 않는다. 운동은 열심히 한다. 마라톤을 체계적으로 배우고 있으며 동호회 활동도 열심히 하는 편이다. 세 끼 식사를 거르지 않으며 비타민과 건강보조식품도 거르지 않고 먹는다. ‘오래 살고 싶어서가 아니라 살아있을 때에 건강하고 싶어서’다.
김정훈, 35세, 프리랜서 | 가정이 인생의 목표가 될 순 없잖아? 김정훈(35세, 가명) 씨는 서른 살 이후 한 번도 결혼해서 가정을 꾸린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암만 생각해도 자신은 여자와 맞지 않는 것 같다는 것을 20대 후반에 깨달았다. 사귀기 시작하면 진땀의 연속이었다. 남자로서의 모든 게 정상이었지만 여자에게 맞춰주는 일은 정말 할 수가 없었다. 그냥 남자들끼리 만나서 노는 게 편안했다. 남자끼리 피서 가고, 남자끼리 등산하고, 남자끼리 해외여행 가고, 남자끼리 토론하는 게 좋았다. 간혹 여자를 사귀기도 했지만 석 달을 가지 못했다. 그가 들려준, 그를 떠나는 여자들의 ‘토 나오는 심경’을 종합해 보면 김정훈 씨는 ‘여자가 뭘 생각하는 지 전혀 알아채지 못하는 바보’였다. 희한한 것은 여자가 그렇게 떠나면 김정훈 씨 자신은 오히려 ‘안심’이 된다는 것이었다. 그런 자각이 누적되자 그는 삶의 방향을 확실히 정리하기로 결심했다. 의학적으로 ‘여성기피증’이라는 질병은 없지만 조사해보니 게이도 아니면서 여자를 피하고 남자들과 어울리는 족속이 꽤 많았다. 그래서 궁리 끝에 결심했다. ‘가정을 목표로 하지 말고 나만의 재미를 목표로 살아가자’는 게 그의 결론이요 삶의 방향이었다. 그는 10년 넘게 다니던 방송 프로덕션을 관두고 프리랜서를 선언했다. 그리고 퇴직금과 그 동안 모았던 돈을 주식 투자금 확장용으로 돌렸다. 직장을 관둔다는 것은 불안한 일이지만 한 달에 보름 이상 야근을 해야 하는 ‘직장’이, ‘포기한 가정’을 대신해 특별한 가치를 주지는 못한다는 판단을 했다. 원래 등산이 취미인 그는 ‘국내 오백봉정복’, ‘해외 백봉정복’, ’1000km 능선’ 등 등산 목표를 세웠다. 이미 국내 산은 삼백봉 이상 다녔으므로 조금만 더 다니면 목표 달성에 성공할 것이다. 최근에 획득한 버스운전 면허증에 이어 곧 ‘트레일러 면허증’에도 도전할 계획이다. 트레일러는 언젠가 하고야 말 ‘유라시아 대륙 대형 캠핑카 여행’을 대비한 일이다. 지게차와 중장비도 그의 목표 리스트에 들어있다. IT와 관련된 프로그래밍 등 필수 자격증에도 도전하기로 했다. 모두 시간과 비용이 필요한 일들이다. 이런 자격증들을 따려는 목적은 미래의 먹거리 때문이다. 그는 ‘진정한 싱글 라이프’를 이루고 싶어한다. 돈벌이도, 집안일도 누구에게 의탁하지 않고 오로지 혼자 일구고 싶은 것이다. 방송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도 앞으로는 혼자 북치고 장구도 쳐야 하는 세상이 올 텐데, 새로운 미디어를 배우지 않고는 버틸 재간도 없다. 해서 IT도 배우는 것이다. 가정 생활을 기준으로 볼 때 다소 애잔한 면도 없잖아 있지만 그는 아무렇지 않다. “포기하니 신세계가 열렸고, 운동과 긴장된 두뇌활동을 지속하니 미래에 대한 걱정도 하지 않고 산다”고 말한다.
신성원, 63세, 문화해설사 | 과연 늙은 싱글도 화려하게 살고 있을까? 신성원(63세, 가명) 씨는 싱글 경력 30년을 맞았다. 친구들은 그에게 ‘너는 이제 싱글이 아니라 냄새 나는 홀아비야’라고 농담하지만 그는 상관하지 않는다. 그 동안 엄마와 사는 외동딸 대학 졸업 때까지의 학비를 내주었고 재테크도 야무지게 해 노후 준비도 살뜰하게 마쳤다. 그런데 딸이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하자 신성원 씨는 갑자기 허전해졌다. 거기에 혼자 돈벌이는 물론 살림살이며 친구, 친척들의 대소사까지 죄 챙겨야 하는 일에 몸이 힘들어하기 시작했다. 벌써 세상을 떠나 버린 친구도 있고 남은 녀석들도 예전처럼 어울려 술도 마시지 못하는 데다 여행 떠날 엄두도 내지 못한다. 최악의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신성원 씨는 최근 ‘화려한 싱글 포기’를 작정했다.
그렇다고 여전히 가정 생활을 하고 있는 친구들이 부러운 것은 아니다. 그들 또한 노쇠해가는 심신으로 갈등하고 있고 신성원 씨와 마찬가지로 가족에 대한 일말의 배신감 때문에 멘탈이 무너지는 사태를 맞기도 한다. 발톱 빠진 숫사자는 더 이상 평원에서 포효할 수 없는 것이다. 신성원 씨는 싱글 포기를 결심하면서 돈벌이를 줄이고 봉사 활동에 비중을 두기로 했다.
60대 중반을 바라보는 나이에 ‘젊은 오빠’ 소리를 듣기는 애저녁에 글러먹은 일이니, 베풀고 사랑하며 살기로 한 것이다. 지역 문화해설사 과정에 참여한 것도 그런 이유다. 연금과 소소한 주식 소득의 일부를 주로 ‘어린이’, ‘아프리카’, ‘환경’, ‘동물보호’ 등을 주제로 활동하는 단체에 기부하기 시작했다. ‘나눔’에 대한 일상적 장치가 일단계 마무리 되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글 아트만(프리랜서) 사진 이영근, 포토파크]
첫댓글 신성원씨의 삶의 모습에 공감합니다
외로운 독거노인이 되지 않으려면 해법은 나눔인것을 공감 합니다
에휴~~~밥이나 묵자^^
@맘만은턱별시 그러자구 강촌에 별장 지어두었음 날만잡어
@맘만은턱별시 몸만오면되
@달구지 별장이 크네~
지붕도 덮을수 없고 울타리도 칠수없을 만큼~
조만간 지기님과 회동 함하자~
맛점하구 오후도 달리자~(말띠일동)ㅎ
@맘만은턱별시 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