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구절에서 지적하는 '진리'란 사물의 이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 관계에서 나타나는 정직성과 성실성을 가리킨다. 즉 백성들이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며 평화롭게 지냄으로써 행복한 사회를 이룩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진실하고 평화로운 관계를 깨뜨리는 것은 교만과 탐욕이다. 여기서 모든 악과 불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면서도 그렇게 되는 것은 불신과 이기심 때문이다. 내가 비이기적으로 행동하였을 때 상대방도 반드시 그런 식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기대하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면 내가 피해나 손해를 입게 된다는 생각에 지배당하여 결국은 이기적으로 행동하게 되고 갈등과 분열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인간의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더 쉽게 일어나게 된다. 따라서 상대방을 힘으로 제압해서 질서를 세워야 할 필요성 때문에 계급 사회가 형성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힘이 강한자의 편의와 이익을 위하여 질서와 법이 제정되어 왔던 것이다. 이것이 루소가 말하는 「인간 불평등의 기원」이다. 일반적으로 불평등은 사회, 경제, 정치, 문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발생할 수 있다. 몇 가지 주요한 요인은 다음과 같다: 경제적 요인: 경제적 불평등은 가장 일반적인 형태의 불평등이다. 경제 시스템 내에서 소득, 재산, 자본, 기회에 대한 불균형이 발생할 때 발생한다. 노동 시장에서의 임금 격차, 부의 불균형, 국가 간의 개발 수준 차이 등이 경제적 불평등의 주요 원인이 될 수 있다. 사회적 요인: 사회적 불평등은 인종, 성별, 인종, 출신 지역, 사회 계층 등의 차별로 인해 발생할 수 있다. 사회적으로 열등시키는 제도나 문화, 편견, 차별적 정책 등이 사회적 불평등을 형성하는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정치적 요인: 정치적 불평등은 정치적 권력과 의사결정에 대한 접근의 불균형으로 나타날 수 있다. 예를 들어, 부자나 특정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정책, 선거 제도의 불공정성, 부패 등이 정치적 불평등을 촉발할 수 있다. 문화적 요인: 문화적 불평등은 특정 문화나 종교의 가치관, 관행, 인식의 차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다. 문화적으로 일부 그룹이 다른 그룹보다 우월하다고 여겨지거나, 특정 인종이나 성별에 대한 선입견이 문화적 불평등을 유발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불평등은 이러한 다양한 요인들이 상호작용하며 복잡한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정책 수립과 사회적 개선이 다양한 영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이러한 외적 요인들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하여도 근원적인 인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이 사회는 불평등과 불의가 어떤 형태로든 지속될 수밖에 없다. 복음서에는 사회의 불평등을 개선시키고자 하는 두 인물이 등장한다. 예수와 침례 요한이 그들이다. 요한은 불평등에 의해 소외된 자, 가난한 자가 억압받는 사회를 개선시키고자 위에 언급한 요인들을 현실적으로 개선시키고자 노력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이 세상의 방식으로는 매우 뛰어난 개혁 운동가라 불릴만 하였다. 반면에 예수는 그러한 방식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근원적인 문제들을 해결해야만 이 사회가 진정으로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있음을 알았다. 그 방식은 믿음과 사랑으로부터 인간이 변화하게 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두 사람은 각자의 기준에서 상대방을 비판하였다. 침례 요한이 그의 제자들을 시켜 "당신이 오시기로 약속된 메시아가 맞습니까? 가짜인 것 같은데..."라고 하자 이에 예수는 그들을 돌려 보낸 다음에 자기의 제자들에게 이렇게 대응했다. "그는 여자에게서 난 자 중 매우 뛰어난 자이나 천국에서는 맨 꼴찌다." 이 두사람의 말은 서로 비판적이므로 조화되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먼저 어떤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가운데 미래의 이상을 실현 시켜 나가야 하는 것이다. 현실을 무시한 미래는 있을 수 없으며, 반대로 현실에 집착한 나머지, 미래의 꿈을 잃어버린 삭막한 삶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어느 한 곳에도 기울어지지 않게 균형을 잡으며 현실을 살되, 미래의 꿈을 잃지 않도록, 요한과 예수의 가르침을 적절하게 조화시켜 삶의 준칙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