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을 가진 동식물이 이질적으로 보일 만큼 화려하 고 아름다운 외양을 가졌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 실이다. 이들의 겉모습은 포식자의 눈에 너무 잘 띄는데, 그들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독을 품 어야 했다. 어떤 사람은 독이 있는 동식물의 모습 이 일종의 경고 같다고 말했다. 나를 건드리면 죽 는 건 너다, 라고 말하는 경고를 온몸으로 말한다 고. 독개구리가 화자에게 잡혀 오는데 ‘죽은 척 가 만히 있는' 이유는 굳이 살기 위해 몸부림칠 필요 가 없기 때문은 아닐까. 화자가 '어제 접어 놓은 시집에는 개구리가 없다’. 없어서 독개구리를 잡아 온 것처럼 보인다. 기왕이 면 예쁜 게 좋으니 청개구리가 아니라 독개구리 를 잡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아프리카 독개구리 의 독은 극소량으로 인간을 죽일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사람이 독개구리를 잡는 건 자살행위와 도 다를 바 없다. 화자가 이를 알면서도 독개구리 를 잡아 온 건 화자에게는 '생활이 없기 때문이 다. ‘방바닥’에는 '마사지 오이'가 붙어 말라가고 있다. 화자의 일상은 보일러 열기에 말라 버린 마 사지 오이와 다름없을 것이다. 사실 '머리를 감고, 몸을 씻고, 옷을 입고, 의자에 앉아 ‘밀린 일을 생 각하고 옛 애인을 생각하는 건 지극히 '생활적'이 다. 그런데도 ‘생활이 없다고 말한다면 이미 화자 의 생활은 생존과 별반 다르지 않은 상태가 됐겠 다고 추측할 수 있다. 그런 일상에 독개구리 한 마 리를 들이는 게 화자의 적극적인 의도였음은 자연 스럽다. 화자는 '옛 애인을 생각하다 읽던 시’를 떠올린다. 화자가 생활이 아닌 생존을 하게 만든 원인이 여 기에 있을 것 같다. 독 없는 청개구리조차 없는 시 집, 거기에 실린 어떤 시는 옛 애인을 생각하면 떠 오른다. 애인이 '옛 애인'이 된 데에도 이유가 있 을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드러나지 않았고 또 굳이 나타날 필요도 없겠지만 화자와 '옛 애 인’을 둘러싼 일련의 갈등이 화자의 생활을 앗아 가고 오직 생존만 남겼다. 화자는 '시집에 손을 뻗 다/책상 위에 앉은 그것을 본다. 채 시집을 잡기 도 전에 ‘그것을 보’는 게 먼저였다. 그리고 그 순 간 ‘극소량의 공포를 느’낀다. ‘아프리카 독개구리 의 독’이 ‘극소량으로 인간을 죽일 수 있는 것처 럼, 화자가 느낀 '극소량의 공포’는 ‘극소량’이지 만 화자에게는 치사량이다. '책상 위에 앉은 그것’은 독개구리가 아닐 수도 있다. 화자는 사실 책 상 위에서 아무것도 보지 못했고 다만 어제 읽다 말고 접어 둔 시집만이 있었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화자는 시집을 향해 '손을 뻗다'가 치사량의 공포를 느꼈다. 독개구리를 잡듯 시집을 손에 들 면 죽어 버리고 말 거 라는 예감. 신체적 사망은 명 백히 아니더라도 정신적 사망이 예고되는, 하다못 해 '생활'이 생존이 되는 수준의 치명상을 입게 될 거라는 예감을 '책상 위에 앉은 그것을 보’는 순간 에 느꼈다. 삶의 파괴가 지속적이라면 이 시는 파 괴 과정의 가장 마지막 단계에 있다. 시를 읽을 것 인가, 말 것인가. '극소 량의 공포’가 정말로 치사 량인가, '손이 퉁퉁 부’을 정도에 그치는가. 시를 읽지 않고서 이 '생활이 없는 생활을 이어갈 것인 가. 화자가 어떤 선택을 할지 상상해 본다. 시들이 이토록 투명하다. 독이 든 줄 알면서 손을 뻗을 수밖에 없었던 사랑이 있다.
첫댓글시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통해서 모르는 것으로 혹은 놀라움으로, 우리가 본 적 없는 곳으로 향해 움직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코 시는 아니지만 우리 알고 있는 것이지만 이것들이 모여서 함께 움직인다면 시가 될 수 있을만한 것들이 나에게는 시다.이것들은 시가 도달해야 할 곳은 아니지만 시가 통과해야할 지점이라고는 생각한다. 길을 가다가보면 많은 말들이 있다. 그 말들은 각각 그 맥락안에 있는 것이다. 내가 그 말을 우연히 마주치게 되면 나에게는 그 말들이 그 맥락에서 벗어나게 된다.그 말은 내 안의 다른 맥락과 연결이 되어 새로운 작용을 하기 된다.그런 말들이 주는 힘들이 크다.(황인찬)
첫댓글 시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통해서 모르는 것으로 혹은 놀라움으로, 우리가 본 적 없는 곳으로 향해 움직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코 시는 아니지만 우리 알고 있는 것이지만 이것들이 모여서 함께 움직인다면 시가 될 수 있을만한 것들이 나에게는 시다.이것들은 시가 도달해야 할 곳은 아니지만 시가 통과해야할 지점이라고는 생각한다.
길을 가다가보면 많은 말들이 있다. 그 말들은 각각 그 맥락안에 있는 것이다. 내가 그 말을 우연히 마주치게 되면 나에게는 그 말들이 그 맥락에서 벗어나게 된다.그 말은 내 안의 다른 맥락과 연결이 되어 새로운 작용을 하기 된다.그런 말들이 주는 힘들이 크다.(황인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