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스럽다'는 말이 나돈다.
제수씨 강간미수 사건으로 유명(?)해저 전국구 인물로 떠오른 새누리당 공천으로 당선되었다 탈당한 김형태(경북 포항 남구·울릉군) 덕분이다.
포항역 ⓒ민중의소리
"온갖 나쁜 소리가 포항에 쏟아지고 있습니다. 김형태가 포항을 욕되게 하잖아요. '문도리코처럼 박사 학위 따려면 부산 가면 되고, 제수씨 성추행하려면 포항 가면 되고', 이런 소리까지 나오고 있단 말입니다." 포항 시민들은 모욕감에 치를 떨고 있다. "패륜아 같은 놈이지!", "인간 말종이야", "나쁜 놈의 XX", "쪽팔린다", "남자 XX가 할 짓이 없어서 그런 짓 하냐", 평소 같으면 입에 담기도 힘든 욕설들이 포항 시민들 입에서 거침없이 쏟아졌다.
20일 포항 시내에서 만난 이모(44)씨 부부는 '김형태 파문'으로 입은 포항 시민들의 상처를 토로했다.
이에 분노한 포항시민들이 '패륜범 김태형 국회의원직 사퇴를 촉구하는 범 포항 시민대회를 24일 저녁 7시 포항 중앙 우체국 앞에서 개최하고 '김형태 제명' 국회청원 서명운동에 돌입한다.
민중의 소리 보도에 따르면 포항여성회 윤정숙 회장은 사무실로 항의 전화가 빗발친다고 말했다. "타 지역 어떤 분이 그러더라고요. '포항은 빨간 깃발만 꽂으면 다 되냐. 정신 좀 차려라.' 또 어떤 분은 '포항사람들은 어떻게 그러냐. 포항에서는 제수를 그렇게 해도 되는 거냐'고 그럽니다."
윤 회장은 수치감에 김 당선자 축하 현수막을 떼는 사람도 있다고 전했다. "김 당선자 출신 초등학교 근처에 '당선 축하드립니다' 현수막이 걸려 있었거든요. 어떤 동창 분이 하도 화가 나서 돌아다니며 다 떼 버린 일도 있었어요. 포항은 지금 너무 분한 상태예요."
김형태 당선자 성추행 의혹이 터지기 시작한 것은 투표일을 불과 3일 남겨둔 8일이었다. 포항 시민들은 문제가 불거졌을 때 상대 후보의 흑색선전, 또는 비방 쯤으로 여기거나 '에이, 설마 사실이겠어'라며 믿지 않는 분위기였다. 중앙언론이나 지역언론에서도 이를 제대로 다루지 않아 모르는 사람도 상당했다.
남구 송도동에서 중국음식점을 운영하는 안모(48·여)씨도 마찬가지였다. "(당시는) 유언비어라고 생각했지요. 그게 사실이면 말도 안 되는 거죠. 어떻게 그래요?"
"포항 망신! 박근혜씨도 책임있죠"
자신의 언론특보단장이었던 김형태 지지 유세를 하는 박근혜씨
|
무엇보다도 포항 시민들은 배신감마저 토로하고 있다. 인지도가 현저히 떨어졌던 김형태 당선자는 '새누리당' 간판을 달고 나와서 당선됐다. 포항에서는 새누리당만 보고 찍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김 당선자는 지난 2004년 17대 총선에 무소속으로 출마했을 때는 1%도 안 되는 득표율을 기록한 바 있다.
남구 해도동에 사는 김모(40대)씨는 선거 당시 분위기에 대해 "(새누리당 공천탈락 뒤 무소속으로 출마한) 정장식이 포항시장을 두번 해서 인지도가 높았고, 김형태는 모르는 사람이 태반인데 (새누리당이) 공천했다는 이유로 찍은 사람들이 많다"고 전했다.
포항환경운동연합 정진귀 사무국장은 "새누리당이 공직자 국회의원에 대한 자질 문제를 어떤 식으로 보느냐가 더 큰 문제"라며 "결국은 포항 시민을 기만한 게 됐죠. 이상득 텃밭인 포항에서 '친박(근혜)'을 공천해 준 것만으로도 달가워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김형태) 그런 흠집을 알고도 놔둔다는 것은 포항 시민을 기만하는 겁니다"라고 지적했다.
김형태에 대한 포항시민의 화살은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에게도 겨눠지고 있는 형국이다. 김 당선자는 '박근혜 언론특보단장' 경력을 내세우며 이상득 의원이 내리 6선을 한 이 지역구에 공천됐다. 공인중개사 이모(64·남구 상대동)씨는 "선거 나오기 전에는 김형태 몰랐죠"라며 "어떻게 공천됐는지도 의심스럽고 새누리당 선대위 자체가 의심스러운 겁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있을 수 없는 일이죠. 나라 망신! 포항시민 망신! 남구 망신!"이라며 "박근혜씨도 책임있다고 봐야죠. 후보 선정 자체가 잘못 됐으니까"라고 분개했다.
남구 해도동에 사는 서모(42·여)씨는 "박근혜씨가 이런 문제를 캐치하지 못했다면 책임져야 하는 게 맞죠. 삼류잡지에나 나올 법한 일이 벌어졌는데 그런 것도 모르고 말이에요. 구설수에 올랐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안 되는 거예요"라며 날을 세웠다.
포항여성회 윤정숙 회장은 "새누리당 자체에서 이명박 정권 잘못한 것에 대한 대안으로 박근혜를 얘기하고, 사람들은 새누리당 지지와 박근혜 지지를 같이 놓고 김형태를 뽑은 것"이라며 "박근혜 위원장이 책임져야 하죠. (김형태) 개인 일이니 개인이 알아서 하라는 게 아니라 새누리당을 뽑은 포항을 위해서라도 더 책임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맞습니다"라고 강조했다.
물론 아직까지 '박근혜 책임론'에 대해 유보적인 입장도 많이 있다. 죽도 시장 한 구석에서 "김형태는 제명해야 된다"며 열띤 난상 토론을 벌이고 있던 임모(64·남구 해도동)씨는 "박근혜씨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은 맞죠. 밑의 사람이 공천을 줘도 위의 사람이 책임지는 거 아닙니까. 하지만 당에서도 미리 알았다면 공천 안 줬겠죠"라고 말했다.
포항 시민단체들, '김형태 제명' 청원운동 나서
포항여성회는 19일 "인면수심의 친족성폭력을 저지르고도 사과는 커녕 사실 자체를 부인하고 있는 김 당선자의 후안무치한 태도에 분노하며, 즉각적인 자진사퇴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어 "김 당선자의 자진탈당이 새누리당의 면죄부가 될 수 없다"며 "자격미달인 인사를 국회의원 후보로 공천하고 당선시킨 새누리당은 김 당선자의 의원직 박탈에 앞장서는 모습을 통해 끝까지 책임질 것"을 촉구했다.
김형태 개인의 사퇴뿐만 아니라 '박근혜·새누리당 책임론'에 대한 여론도 꿈틀대고 있는 만큼, 향후 이와 관련한 포항 시민단체들의 적극적인 대응도 이뤄질 전망이다.
포항 시민들 사이에 들끓는 분노의 화살, 그 화살은 김형태를 뚫고 박근혜에도 꽂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