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봄 / 이규리
그분하고 같은 된장찌개에 숟갈을 넣었을 때
그렇게
아찔할 수가 없었다
냄비 안에서 숟갈이 부딪혔을 때
그렇게
아득할 수가 없었다
먼 곳에서 희미하게 딩딩 종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
이것이 끝이라 해도 끝 아니라 해도
다시 된장찌개에 숟갈을 넣었을 때
하얗고 먼 길 하나 휘어져 있었다
같은 아픔을 보게 되리라 손가락이 다 해지리라
어떻게 되든 이것은 나의 이야기이다
누추하기 이를 데 없는 곳으로
한 순간이 다가와 연(緣)을 두었고
슬픔을 결심하게 하였으니
지금도 아련히 더듬어 가보는 그 햇빛 속
수저 소리 흐릿하게 남아 있던 그 점심나절에
내 일 모르듯 벙글던 흰 꽃들 아래에
- 계간 <문학들> 2018년 겨울호
* 이규리 시인
1955년 경북 문경 출생. 계명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
1994년 『현대시학』 등단
시집 『앤디 워홀의 생각』 『뒷모습』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당신은 첫눈입니까』
산문집 『시의 인기척』 『돌려주시지 않아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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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숟가락 모두 놀랐을 것이다.
캄캄한 찌개 속에서 맞부딪치는 순간, 해야 할 일이 단순히 국을 뜨는 일이 아님을 알았을 것이다.
펄펄 끓는 냄비 속에서 두부 한 점, 뜨거운 국물 한 술 이상의 무엇을 담고 싶었을 것이다.
달그락거리던 재주지만 최대한 깊은 종소리를 내고 싶었을 것이다.
휘어진 스테인리스 손잡이가 슬픔의 암시가 되길 바라지 않았을 것이다.
겨울을 벗어난 냇물처럼 끝내 꽃피는 봄길로 걸어가길 바랐을 것이다.
- 반칠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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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부드러운 이른 봄 꽃망울도 미쁜 숨을 고를 오후였을 것이다.
눈빛을 마주하고 생선의 잔가시를 발라주며 언약의 거룩한 말씀은 푸른 싹들을 튀었을 것이다.
숟가락이 마주치는 냄비 안에서 온 몸이 감전되며 오랫동안 같이 가야할 먼 길을 보았을 것이다.
뼈마디가 부딪치는 전율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온전한 것들 속에 잔금이 생기고 가고 싶은 길과 가지는 길이 다르듯이 이제 슬픔을 결심한
한 때의 사랑을 햇볕에 말리는 오후, 벙근 꽃들과 희미한 수저소리가 아련한 햇빛 속에 수런거린다.
어느 시인의 고백을 본다.
- 주강홍 진주예총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