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呵呵大笑
조 승 기
일곱시에 출근한 급사 김양이 교무실 창문을 열고 있을 때, 중년이 훨씬 넘어 보이는 검정 양복과 그보다는 더 좀 젊어 보이는 감청 양복의 두 남자가 교문으로 들어서고 있는 것이 보였다. 김양은 교장실로 갔다. 잠겨져 있었다. 김양은 고개를 갸웃했다. 교장선생님이 자신보다 늦게 출근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던 것이다. 김양은 무언가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나서 그와 같은 생각을 한 자신을 나무랐다. 문을 땄다. 실내는 교장선생님의 체취가 물씬 배어 있었다. 김양은 먼저 교장선생님이 제일 아끼는 난초 잎을 물 묻힌 손으로 곡선을 따라 깨끗이 닦아냈다. 이어 집무테이블로 가 두꺼운 유리를 걸레로 홈쳤다. 이때 교장실 문이 딸깍 열리며 아까 보았던 검정 양복과 감청 양복이 들어섰다. 김양은 실내를 정리하는 동작을 멈추지 않으면서, 웬 사람들이냐는 투로 쳐다보았다. 감청 양복이 너는 알 필요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교감선생님 출근하면 이리 오시라고 말씀드려!”
응접소파에 둘이 앉는 걸 보며 조심스럽게 교장실을 빠져나오려 하자, 비교적 둔탁한 느낌의 의문부호 몇 개가 날아와 김양의 발목에 덜컥덜컥 걸렸다.
“교장선생님은 어디 출장이라도 가셨느냐?”
“……”
“방금 관사에 들려왔는데 문이 잠겨져 있던데?”
“……”
“어젠 학교에 나오셨느냐? ”
“……”
첫번 물음과 일정한 간격을 두고 검정 양복이 계속 물었다. 아마 첫번 물음에 답해버렸다면, 그 다음부터의 물음은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김양은 어떻게 대답을 해야 될지를 몰랐다. 물론 자신의 대답 여하에 따라 교장선생님의 신상에 어떤 피해가 오고 안 오고 하는 것은 아닐 테지만, 어쩐지 하찮은 물음에도 함부로 입을 열 수가 없었다. 김양은 가녀린 발목을 더욱 죄는 덫에서 오는 고통 때문에 하마터면 손에 들고 있던 걸레를 놓칠 뻔하였다. 벌 받듯이 손을 앞으로 모으고 고개를 숙인 김양에게 검정 양복이 말했다.
“그만 가서 일해라.”
〈휴우〉 하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김 양은 붙잡힌 상태에서 겨우 풀려나오며 그냥 막연히, 교장선생님한테 무슨 일이 벌어졌구나, 사태가 꽤나 심각한 모양이다 하는 생각을 했다. 교무실에 와 선생님들의 책상 위 먼지를 닦으며 김양은 연신 교문 쪽만 바라보았다. 학생들이 두셋씩 짝지어 시월 하순의 싸늘한 아침 공기를 두 뺨으로 받으며 등교하는 모습이 보였다. 운동장 주위로 늘어선 느티나무의 이파리가 바람에 흔들렸다. 일곱시 반 정각에 어김 없이 출근한 교감은 교장실로 갔다. 여덟시가 되어 교감은 교무실로 와 전 직원을 모아놓고 교장선생님의 행방을 알고 있는 교사가 있는지를 물었다. 모두들 서로의 얼굴만 건너다보며 무슨 의미인지를 몰라 어리둥절하였다. 교감이 재차 똑같은 질문을 해왔을 때에야, 아하 교감이 교장의 행방을 묻고 있구나 하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본래 교장은 극히 정해진 몇곳 외엔 발을 붙이질 않는 분이니까 구태여 저런 질문이 왜 필요할까 의아해 했던 것이다. 교사들은 일제히 학생 주임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만약 교장이 정해진 몇 곳에 없다면 간 곳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 뿐이겠기 때문이다. 학생주임이 살찐 턱을 좌우로 흔들어대자 모두의 시선은 다시 교감에게로 갔다. 교감은 무언가 상황이 아주 급하다는 듯 마른 입술에 침을 축이면서 말했다.
“우선 교장선생님의 행방을 아는 일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게 교장선생님을 위해서 좋은 일입니다. 크게 벌어질 일을 작게 줄일 수도 있읍니다. 알고 계시
는 선생님은 교장실로 와주십시오.”
말을 마친 교감은 교장실로 갔다. 교장이 갈 만한 곳에 모두 연락을 취해본 뒤여서 교장의 행방이 막연했다. 위낙 생활반경이 좁은 분이라 더이상 생각나는 곳이 없었다. 더구나 어제도 제일 늦게 퇴근하신 분이 아니었던가. 첫째 시간 시작 전에 학생주임이 교장실로 불려갔다. 교감이 물었다.
“지 주임, 혹시 교장선생님이 가 계신 곳을 알고 있읍니까?”
“모르겠는데요.”
“그럼, 가 계실 만한 곳이라도? "
“정말 모르겠읍니다.”
“잘 생각해보세요. ”
“?”
학생주임은 교장실을 나와 수업에 들어갔다.
김윤철 교장은 각 교실들을 훑어보았다. 푸른 하늘처럼 깨끗한 유리창, 자신의 모습이 비칠 듯한 복도, 오와 열이 한 치의 틀림도 없는 책걸상, 잘 정비된 환경물, 복도에 놓여 있는 모래 한알 남아 있지 않은 신장들을 일일이 살펴보았다. 교장은 운동장으로 나갈까 하다가 다시 교장실로 왔다. 운동장에는 혀를 길게 빼문 개 두 마리가 엉덩이를 돌려대고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해 있었다.
“흉칙하긴.”
교장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도 열려진 창을 통해 운동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교장은 산사태로 죽은 마누라 생각이 났다. 평교사로 떠돌던 시절부터 마누라는 가는 곳마다 의사로 소문이 났었다. 처음에는 몇 가지의 구급의약품을 갖추어서 가벼운 상처 따위를 치료했으나 나중에는 감기라든가 체한 것도 치료할 수 있게까지 되었다. 그가 교장 첫발령으로 깊은 산골에 갔을 때, 마누라는 멀리서 통학하는 아이들의 집에까지도 불려가 치료를 해주었었다. 그 여름, 대단한 장마였다. 비가 좀 뜸하게 오다간, 곧 폭우로 변하곤 했다. 온 여름을 그러고 있는 것이었다. 교실바닥이건, 벽이건, 심지어는 학생들의 몸 어디를 쓸어보나 다 물기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깊은 밤중에 관사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잠에서 부시시 깨어난 마누라가 대문을 열어 데리고 들어온 아이는 1 학년에 다니는 남학생이었다. 그애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는데, 밑으로 국민학교 4 학년에 다니는 계집애 동생이 하나 있었다.
“웬일이냐?”
“……”
“괜찮아, 말해봐.”
“……”
그애는 교장 내외의 물음에 울음만 차고 있었다. 그 애가 걸치고 있는 옷에서는 빗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떠듬떠듬 입을 열었다.
“엄마가 일 주일 전에 보따리 장사를 떠났어요. 앞으로 한 주일을 더 기다려야오는데…….”
“그런데?”
“동생이 오늘 새벽부터 감자기 열이 높아져서 학교도 못 갔어요. 내가 학교를 파하고 가보니까 동생은 배를 움켜잡고 방바닥에서 뒹굴고 있었어요. 가끔 헛소리조차 해요.”
“그럼, 그때 바로 오지 지금까지 뭘 했냐?”
“도무지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안 나 옆에서 울고만 있었어요.”
“그러다가 이제야 온 거야?”
“네."
“울음 그쳐라. 바삐 가보자.”
마누라는 약품을 챙기더니 갔다오겠다고 했다. 교장은 그 아이의 딱한 사정에 '너무 늦지 않았어? 내일 가지. ’라고 말릴 수도 없었다. 때맞추어 더욱 굵게 쏟아지는 빗속으로 떠나보낸 게 마지막이었다. 빗줄기가 하얗게 마누라를 가두어 데려가버린 것이었다. 오리 정도 떨어진 그곳에서 밤새 앓는 애를 간호하다가 새벽녘 잔깐 눈을 붙였는데 빗물을 머금올 대로 머금고 있던 산이 무너져 집올 덮쳐버렸다. 이튿날 오후에야 흙을 파헤치고 마누라를 꺼냈는데, 마누라는 계집애를 꼬옥 껴안고 죽어 있었다. 마누라는 늘 매사에 박혀 있는 교장을 〈답답한 양반〉이라고 했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오다가 답답한 상태에 익숙해지자 그만 죽고 말았던 것이다. 둘이 평교사 시절에 만나 결혼하고, 애를 셋 낳은 뒤 마누라는 교직을 그만두고 살림에만 매달렸었다. 죽도록 고생만 하더니 끝내는 비명횡사를 했다.
“사모님, 가시다니요!”
“사모님, 가시다니요!”
출상날 면민 모두가 길에 나와 마누라의 죽음을 애도해주었지만, 그것이 어찌 살아 있음만 하겠는가.
“복도 지지리 못 타고났지.”
중얼거리며 교장은 여전히 운동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개들은 사랑의 행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양쪽에서 서로를 끌어당겼다. 교장은 묘한 감정의 변화를 느꼈다. 마누라의 체취가 은은히 풍겨와 한사코 콧등에 고였다. 교장은 손수건을 꺼내들고 콧등의 땀을 눌렀다. 부부교사로 낙도를 떠돌던 것은 점수따기 위함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돈을 아끼기 위해서였다. 삭막한 도시에서 씀씀이가 헤프게 사는 것보다는 오히려 인정이 다사로운 벽지에서 저축을 해가며 사는 게 훨씬 좋았다. 마누라가 교직을 떠나자 그는 중등교사 자격시험에 합격하여 공립고등학교로 자리를 옮겨 오늘에 이른 것이다. 교장은 주전자에서, 물을 한 컵 따라 조금씩 마셨다. 이렇게 일요일 오후를 보내는 자신에 대해 그는 한마디의 불평도 없었다. 의자에 몸을 깊숙이 묻고 나서 교장은 부모의 모습을 떠올렸다.
부모는 조그만 항구도시의 변두리에서 살았다. 집 안은 대대로 마차를 끌었다. 교장의 부친도 고뻐를 이어받았다. 말의 울음소리와 말의 걷는 부양과 말똥까지도 이어받았다. 그는 매일 새벽에 나가 깜깜한 밤중에 들어왔다. 성격이 차분했고 또 지극히 성실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선대가 말을 끌 때와는 사정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마차도 사향길에 접어들어 있었던 것이다. 월수입이 사만 원 내외에 불과했고, 거기에서 사료값을 제외하면 실제 수입은 겨우 이만 원이 될까 말까였다. 무엇이나 다 그렇듯이, 한때는 마차가 성업을 이룬 적도 있었다. 그들이 살고 있는 도시는 워낙 두로가 협소하여 화물트력 운행이 어려운 곳이 많았던 까닭인데, 웬걸 소형 용달차가 이 도시에 들어오고 나서부터는 사정이 달라져버렸다. 마차는 명목을 유지하기가 매우 힘들게 된 것이다. 마부들은 거의 일생을 말과 함께 걸어왔기애 다른 노동은 어려웠고, 또 마차 시세가 작연 폭락하여 마차를 처분해 구명가게 하나 차리기도 어려웠다. 마부들은 그야말로 끼니를 떼우기가 힘이 들었다. 살아간다는 것보다 살아 있기가 그렇게 어려웠던 것이다. 마부의 아내였지만, 교장의 모친은 매우 깔끔했다. 머리가 딱딱한 곳에 닿아서는 뇌의 활동이 원활해지지 않고, 또 숙면을 이룰 수가 없다고 자식들의 베갯속을 좁쌀로 채워놓았였는데, 나중에는 실을 타서 그 좁쌀마저 끼니에 봉당해야 했다. 교장이 장남이었다. 그 밑으로 두 살 터울로, 여덟 남매가 있었다. 때문에 생활은 말이 아니었다. 어느 해, 여름. 처음에 세 살짜리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는데, 한 살짜리에게로 옮겨갔다. 두무지 원인을 알 수 없었다. 돈 한푼 없어 병원은 고사하고 약국조차 가보지 못한 상태로 며칠을 지냈다. 한참 장마가 계속되고 있어 전혀 벌이가 없었다. 차도를 가끔 보이다가도 더욱 심해지곤 하는 아이들을 보며 부모는 눈물로 밤올 새울 뿐이었다. 비가 좀 그치는 기미를 보이자 교장의 부친은 마차를 몰고 나갔다.
“이런 날씨에 어디 실을 짐이 있겠어요? 며칠만 더 쉬세요.”
“이대로 아이들을 계속 앓게 할 수는 없는 일 아니오?”
“그럼, 오늘 하루만이라도…… 어제 꿈이 마음에 걸려서 그래요.”
“꿈이 좋다고 어디 복덩이가 굴러들어옵디까!”
“여보, 그래두요.”
그는 아내의 만류를 한사코 뿌리치며 가늘었다 굵었다 하는 빗속을 건너 저편으로 가버렸다. 앓는 아이들 곁으로 온 교창의 모친은, 기어이 나갈 양반 괜히 불길한 말을 해보냈다고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벌이가 없어도 좋으니 제발 무사히만 돌아와달라고 빌었다. 그는 선창가를 이잡듯 뒤졌으나 한 견도 올리지 못했다. 비에 흠씬 젖어 오후 늦게 마차에 걸터앉아 집으로 돌아오다가 술 한잔이 생각났다. 수입도 땡전 한푼 없고, 피곤했으며, 무엇보다도 배가 고팠다. 산비탈 그의 집 주위에는 말들이 즐비했고, 또 집들도 몇 채 되지 않는 외곽지대였다. 그는 집 근처까지 와 전신주에 말을 매놓고 술집에 들어가 막걸리를 한 사발 벌컥벌컥 단숨에 들이켜 허기를 지웠다. 일 나가지 않은 동료들이 “오늘 재미 좀 보았는가.” “빗속인데 일이 있었을 까닭이 없지.” 하고 자꾸 붙잡으며 한잔만 더 하자고 했다. 그는 앓아누워 있는 아이들 생각이 나서 뿌리치고 서둘러 술집을 나왔다. 마차를 매둔 곳으로 와 고삐를 잠다가 그는 풀썩 주저앉아 목놓아 울었다. 말이 선 채로 죽어 있었던 것이다. 그는 비로소 고압선 전신주에 말을 매놓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전신주 밑에는 빗물이 괴어 있었고, 그 속에 말이 서 있었던 것이다. 그는 눈을 들어 산에서 산으로 넘어오는 철탑들을 바라보았다. 그 시절에는 기술이 부족해서 변압기가 자주 터지고, 인력이 부족해서 그때그때 고칠 수가 없었다. 감전사고가 너무 흔하던 당시였다. 그렇게 해서 말을 잃었다. 아니, 삶의 수단 전체를 잃었다. 그는 바로 한전으로 찾아갔다. 아무리 얘길 해도 누구 하나 귀 기울여주지 않았다. 한 관계자가 조용히 그를 불러, 사정은 딱하지만 그런 변상까지 해대다간 한전이 문을 닫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시청에도 가보고, 신문사에 찾아가 호소도 해보았지만, 변상받을 도리가 없었다. 그가 드러눕고 나서 며칠 있다가 잇따라 두 아이가 죽었다. 슬픔 속에서 겨우 몸을 회복한 그는 움막 같은 집을 처분해 산골로 들어갔다. 그때 교장은 사범학교 1학년이었다. 성적이 퍽 우수했으므로 그의 어머니 고집에 의해 혼자 남아 학업을 계속했다. 그는 가정교사로 입주할 수 있었다. 동생들은 다 부모를 따라가 등걸밭을 일구며 살았다. 말의 죽음 때문에 그의 집안은 풍지박산이 된 셈이다. 말의 죽음은 어찌 되었건 한 사발의 술과도 관련이 된다. 그래서 교장은 지금까지 한 모금의 술도 입에 대본 적이 없다. 그러나 술을 안 마시는 일로 인해 그의 평판이 늘 좋지 않았다. 속이 투욱 트이지 못했다는 둥, 저러니까 모든 자질구레한 일만 찾아들고 나선다는 둥, 갑갑한 사람이라는 둥. 교장은 교사시절부터 지금까지 그야말로 근면과 성실의 자세로 살아오고 있다. 교장이 된 지금도 낙도생활을 하던 교사시철처럼 살고 있는 것이다. 그는 근면과 성실 외엔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돈도 배경도 전혀 없었다. 하긴 교육하는데 그따위 것이 무손 필요가 있을 것인가. 그는 첫 교장발령을 세 학급짜리 남녀공학의 중학교로 갔었다. 더구나 신설교였기에 고충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줄곧 다섯 해를 그곳에 있으면서 한순간도 학교에서 떠나본 적이 없었다. 일요일이거나 국경일이거나, 심지어는 방학도 학교 안에서 보냈다. 부임 세 해로 접어들었을 땐 학급 수가 아홉으로 불어나 제법 학교다왔다. 산비탈에 세워진 이 학교의 철봉대, 화단, 교문 앞길, 쓰레기장 하나까지도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새벽부터 깊은 밤이 되도륵 매만지고 쓰다듬고 다녀서 학교가 자신의 신체의 일부나 마찬가지였다. 교장은 특히 쓰레기장을 관사 대문 바로 옆에다 만들었다. 교장은 하루 일과가 끝나고 교사와 학생이 학교를 다 빠져나가면 쓰레기장을 뒤졌다. 관사 창고에 휴지는 휴지대로, 비닐류는 비닐류대로, 빈병은 빈병들대로 모아두었다. 절대로 쓰레기를 함부로 소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일정량이 모아지면 그것들을 매각한 뒤, 전액을 불우학생돕기에 썼다. 그일로, 교장을 비난하는 일부 쿄사들은 교장을 〈고물장수〉라고 불렀다. 교장은 수업 위주였다. 누가 자습을 시킨다거나, 시골학교니까 얼렁뚱땅 있다갈 요량으보 있으면, 그 쿄사 수업시간에 매번 들어가 교실 뒤편에 앉아 있는다. 고쳐질 때까지, 하루나 이틀이 아니라 몇 주일이고 그런다. 교장이 학교행정을 그런 식으로 펼쳐나가니까 자연 교사들이 죽을 지경이었다. 교장은 신념이 있었다. 아무 것도 남보다 뛰어난 조건이 없는 자신의 앞날을 위해선 교사들을 도구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자신은 이곳에서 마누라마저 잃지 않았던가. 교사를 도구로 삼는다는 것이 학교가 잘 되고 학생들의 실력향상에 목적이 있는 바에야 누가 뭐라 하겠는가. 교장이 방학도 학교에서 보내는 까닭은 학교 외엔 갈곳이 없어서이기도 하다. 친구나 가까운 친척이 없다. 교장이 사범학교 졸업을 코앞에 두었을 때, 그의 부모와 형제들이 식중독으로 다들 함께 세상을 뜨고 말았었다. 교장에겐 피눈물 쏟아지는 일이었다. 무슨 풀인가를 잘못 캐다가 끓여먹었던 것이다. 그의 뒷바라지를 죽을 힘을 다해 대던 그들이 그의 졸업을 못 보고 눈을 감아버렸다. 지금 이 학교는 열다섯 학급짜리 고등학교다. 아흡 학급의 중학교에서 이곳으로 오게 된 것은 순전히 그의 생활태도 때문이었다. 교창은 시장기를 느끼며 교장실을 나왔다. 학교 앞 식당에 가서 점심 겸 저녁으로 끼니를 때우기 위해서였다. 그일이 끝나면 관사로 돌아와 혼자만의 쓸쓸한 잠을 잘 것이었다. 자식들이 모두 가정을 꾸려 다른 도시에서 살고 있다. 이따금 아들이나 딸이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러 온다. 교장은 그때가 제일 즐겁다. 떠들썩해 사람이 사는 집 같아서였다. 하룻밤을 지내고 대개는 다음날 떠난다. 아이를 놓아두고 가라면,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간다. 제 자식 귀한 줄만 알았지 애비 귀한 줄은 전혀 모른다.
첫째 시간이 끝나고 학생주임이 다시 불려갔다. 교감은 사뭇 흥분한 기운을 감추려 애쓰며, 힘써 태연 가장해 낮은 음성으로 물었다.
“교장선생님이 계신 곳을 정말 모릅니까?”
“네.”
“최근 몇달 동안 늘 모시고 다녔다던데요?”
“그렇지만 이번은 전혀…….”
“알았소. 그러나 숨기는 일만이 교장선생님을 위하는 길이 아니라는 사실을 바로 알아야 할 것이오.”
“……”
지덕남 학생주임. 그는 올 3월 초 정규이동 때 이 학교에 왔었다. 매사에 원리원칙인 교장은 근무경력으로 봐 그에게 전임교에서와 같이 학생주임을 맡겼다. 지덕남은 교장 관사로 양주를 한 병 들고 찾아갔다. 교장은 선물을 거절했
다. 지 주임은 으례 그러겠지 하는 식으로 방안에 밀어놓고 나왔다. 실수를 범한 것이다. 교장은 선물 사절이다. 그래도 도망치듯 놓고 가면, 반드시 다음날 직원조회 석상에서 되돌려주고야 만다. 교장은 그런 행위를 통해 자신의 청렴 결백을 과시하는 것이다. 또 자신의 그런 행위가 입에서 입을 통해 소문으로 널리 퍼져나가주기를 바란다. 지 주임은 돈과 요령만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의 비행은 이미 알 만한 사람은 모두 알고 있다. 그는 작은 돈이든 큰 돈이든 나올 만한 구멍은 안 쑤셔본 곳이 없다. 그래도 말썽이 안 나는 것은 나누어 먹으면 절대로 안전하다는 사실을 찰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교장은 그를 붙잡으면 용돈은 걱정없다라고 할 정도였다. 그는 가는 곳마다 교장을 먹여살렸다. 어린시절 지 주임은 가정이 극히 빈곤했다. 노동 품팔이하는 부모 밑에서 겨우 교육대학을 졸업했다. 그는 좋은 체격과 의젓한 말솜씨로 자신보다 세 살이나 위인 돈 많은 미용사를 하나 알았었다. 그녀는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열세 살부터 미장원에서 잔심부름을 해주며 살아온 고아였다. 때문에 일찍 돈에 눈떠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그녀의 도움으로 그는 지방대학의 체육과 3 학년에 적을 갖게 되었다. 지 주임은 순전히 그녀의 덕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식을 올린 뒤 군대에 갔다. 그가 군에 복무하는 동안 그의 부모형제들을 그녀가 다 떠맡았다. 딸도 하나 생겨났다. 그녀는 고된 시집살이 속에서도, 어려서부터 지금까지의 고생을 보상받는 행복감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녀의 삶은 오직 남편과 자식뿐이었다. 드디어 그가 제대했다. 못 배우고 나이 많은 여자이기에 받은 시부모와 시누이의 학대를 남편이 보상해주겠지 하고 그녀는 기쁨의 눈물까지 홀렸다. 지 주임은 순위고사에 합격하여 공립중학교로 첫 발령을 받았다. 그런데 그 직후부터 부부관계를 전혀 갖지 않는 것이었다. 처음 한두 주일은 학교생활에 적응이 안되어서겠지 했으나 그게 한두 달을 넘을 때 그녀는 정말 미칠 지경이었다. 그래도 애를 보고 살자 했었다. 한 해가 지나갔다. 그녀는 팔자 탓이라고 자위했으나 도저히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성(性)에 대한 모독을 견딜 수가 없다며 이혼을 제기했다. 지 주임은 기다렸다는 듯이 한마디의 위로조차 없이 이혼에 합의해주었다. 그동안 지 주임은 그녀와 사무적인 말을 건네는 일도 꺼려왔었다. 그녀는 빈털터리가 되어 다시 미용사로 길바닥에 나앉았다. 고아로서의 뼈저린 생활이 생각나 애를 자신이 키운다는 조건으로 다른 모든 것을 포기했던 것이다. 지 주임은 대학 후배인 부자집 딸과 바로 결혼했다. 그녀는 음악과를 나왔는데 돈 많은 집의 딸이라는 사실을 빼놓고는 별 볼일이 없는 여자였다. 특히 노래 곡목을 바꾸듯이 남자를 바꾼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지 주임은 보잘것없는 자신의 처지에서 행운을 붙잡으면, 반드시 그것을 이용해 더 큰 행운을 노리는 그런 인간이었다. 국졸에 미용사였다는 게 그렇게도 그의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지 주임은 남자라면 어떤 일이든 자기 뜻대로 밀고나가 반드시 관철시켜야 한다고 믿는 사람인데 고교시절에 다음과 같은 일이 있었다.
같은 반에 늘 “죽고 싶다. ”라고 말하는 친구가 하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거기에 있지 않았다. 그의 말은 주문과 같은 효과를 나타내, 그만 죽고 싶은 게 아니라 분위기를 온통 그의 뜻대로 바꿀 뿐더러 곁의 모두도 죽고 싶어지게 만들었다. 누구도 그를 설득시킬 수 없었다. 모두들 그를 피하는 눈치였으나 그는 꼭꼭 죽음처럼 따라다녔다. 활기에 넘치고 약동하는 우렁찬 분위기가 깨뜨려진다고 느끼면 저승의 사자 같은 그가 반드시 누렇고 나른하며 음울한 자세로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순간 그들은 지독한 낭패감을 얻는 동시에 저 밑 아득한 세계로 떨어져갔다. 그는 특유의 가냘프고 희디횐 손가락과 얼굴과 마른 다리로 소리도 없이 그들의 겉에 와 앉는다. 마치 죽은 다음의 사람 같은 느낌을 주었다. 맞다, 그는 죽음의 질기고 얇은 막에 둘러싸인 유리상자 안의 채집된 나비 같았다. 움직이는 각 동작은 낱낱이 끊겨 고정이 된다. 모두들 그의 기운을 이겨내려고는 하지만, 그럴수록 그의 기운에 처음에는 부드럽게, 드디어는 세차게 칭칭 감겨든다. 빨려든다. 바로 그럴 떼, 그는 다시 한차례 안개 같은 음성으로 〈죽고 싶다〉를 풀어놓는다. 모두에게 그 안개를 구성하고 있는 알갱이 하나하나가 다가와 의식 속 깊이깊이 뿌리를 내린다. 지덕남은 친구의 소원인 〈죽고 싶다〉를 꼭· 깨뜨려놓고야 말겠다고 벼르곤 있었다. 그렇게 하는 것만이 그 친구를 구윈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지덕남은 자신의 의지를 가까운 시일 내에 보여주려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하루는 그가 먹이가 되어 지 덕남의 앞에 나타났다. 그들은 도서관에 모여 신간서적들에 관해 얘기하고 있었다. 방과후라 창밖은 이미 어두웠다. 지덕남은 구석지로 그 친구를 데리고 가 물었다.
“정말 죽고 싶으냐?”
“으응.”
“이를테면?”
“외부의 어떤 강한 힘에 의해 산산조각이 났으면 해.”
“그래서?”
“안개처럼 모두의 눈에 보여지다가 서서히 혼적 없이 사라지고 싶어.”
지덕남은 아무말없이 그를 밖으로 끌고 나갔다. 변소 뒤로 간 지덕남은 자신의 단련된 발을 들어 그의 턱을 깠다. 포옥 꼬꾸라졌다. 뒷덜미를 잡아 일으켜 세워 오른쪽 귀밑을 찍어찼다. 주먹을 연거푸 복부 쪽으로 뚫어져라 던져넣었다. 그 친구는 주먹이나 발길질을 주는 대로 전신으로 받아냈으며, 그때마다 형편없이 나뒹굴었다. 지덕남은 꼭 죽이고야 말겠다는 듯이 차츰 살기를 띠어갔다. 그 친구는 무기력에서 깨어나 싹싹 빌며 <살려달라〉고 했다. 지덕남은 그를 걷어차버렸다. 허공으로 떠올랐다가 떨어지는 친구를 지덕남은 다시 덤벼들어짓이겼다. 그 친구의 몸 어디서나 피가 묻어났다. 전신으로 피를 쏟아내고 있었다. 지덕남은 몇 차례 더 갈긴 다음, 그 친구를 한 손으로 질질 끌고 도서관의 친구들 앞으로 갔다. 모두들 심히 놀랐다. 피걸레가 되어 들어온 그 친구를 보고 다들 몸을 떨었다. 지덕남은 자신의 주먹을 들어서 그 친구의 뱃가죽에다 힘차게 집어넣었다. 그 친구는 발음이 분명치 않은 소리로 〈살려달라〉고 했다. 이미 그는 실신했고, 실신한 모습은 그간 상황이 얼마나 잔인했는가를 보여주었다. 지덕남은 좌중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 친구의 결심을 꺾어놓아서 보람을 느껴!”
그들 모두는 지덕남의 잔인성에 놀라 치를 떨었다. 지 주임은 그런 식으로 세상을 살아왔다. 타인의 생활방식에 저항을 느끼면 수단과 방범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삶의 틀에다 뜯어맞추었다. 그는 술과 계집과 요령에 몸을 적시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는 누구의 결벽증이라도 보면 참지를 못했다. 반드시 그것을 깨뜨려놓고야 마는 성미였다. 그가 이 학교에 와서 제일 먼저 저항을 느낀 대상이 바로 교장이었다. 부임 첫날의 직원조회시 받았던 모욕(?)을 반드시 멋있게 갚아줄 심산이었다. 지 주임은 그렇게 하려면 우선 교장을 술마시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교장에게 술을 마시게 하는 일이 의외로 쉬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술에 대해 일생을 버텨온 사람이라면 늘 술을 의식하고 있으며, 술에 대한 유혹을 항상 받고 있다는 뜻이 되는 것이다. 일단 술을 입에 대야 계집이 나타나고 그래야 온갖 부정이 그 아래서 횡행할 수가 있는 범이다. 지 주임은 전임교에서 한탕 잘해먹었다. 정말 구질구질한 곳에까지 손을 대 배를 불렸었다. 하나의 예를 들면, 한 주일에 영화를 두 차례 보여준 적도 있었다. 학생들의 단체관람은 세금을 내지 않으므로 극장측에서는 학교측에 상당액의 사례금을 주고도 무척 이익이었다. 특히 극장측은 TV 때문에 사향길이어서 학생동원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학생들에게 교육적으로 가치가 있는 작품을 보여주는 것은 좋으나, 시사회도 거치지 않고 내용이야 어떻든 극장측의 요구에만 따르기에 교육상 좋지 않은 면이 더욱 많았다. 이보다 규모가 더 작은 것도 이루 헤아릴 수 없이 해먹었다. 그런때도 지 주임의 목이 온전한 것은 교장과 나눠먹기 때문이다. 지 주임은 이것만은 철저했다. 말썽나면 교장이 앞장 서서 막아주었다. 지 주임은 난감했다. 김윤철 교장에게는 그게 통하지 않아서였다. 그는 부딪처셔 자신의 생활방식에 기필코 교장을 끌어넣고야 말겠다고 다짐 했다.
“임자를 못 만나서 그런 거야. 어디 한번 맛 좀 봐라."
라고 그는 중얼거렸다.
이럴 땐 교장이 가지고 있는 조건들을 십분 활용해야 하는 것이다. 그는 양주를 한 병 구했다. 밤을 이용해 관사로 갔다. 다음날, 직원조회시 되돌려 받는다. 또 갔다 주고, 다시 받기를 무려 열 차례가 넘도록 했다. 하루는 교장이 부르더니, 참 딱한 사람도 있다는 듯이 말했다.
“지 주임, 왜 사람이 그따위요. 창피스러운지도 알아야지. 교장하고 장난하는 거요, 뭐요? 지 주임 같은 사람은 생전 처음이오.”
“……”
“날마다 되돌린다는 일이 오히려 쑥스럽게 느껴질 정도요!”
“……”
“다신 이러지 마시오.”
“……”
지 주임은 그날밤 또 양주를 들고 관사를 찾았다. 교장은 벌레를 보듯 지 주임을 보았다. 아주 징그러운 존재라는 듯 눈썹이 가늘게 떨리기까지 했다. 지 주임은 이번에는 놓고 오는 게 아니라 마개를 비틀어땄다. 마시다 다 못 마시면 놓아두었다가 내일 와 다시 마실 참이었다. 아무리 지독한 교장이라도 마시다 남은 병이나 빈병을 들고 교무실에 나타나지는 않으리란 생각에서였다. 지 주임은 사신이 마시기 전에 교장에게 꼭 술을 권했다. 그때마다 교장은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고개를 획 돌렸다. 지 주임은 혼자 홍에 겨워 홍얼홍얼 밤이 깊도록 혼자 마시다 돌아갔다.
“교장선생님, 마개 꼭 막아놓았읍니다. 내일 와서 나머지를 마시겠읍니다.”
그는 하루이틀만 그런게 아니라 매일 그랬다. 일이 이렇게 진전되자 교장은 죽을 지경이었다. 교장은 새벽잠이 없어서 초저녁에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데, 지 주임이 하루도 안 빼고 그 지경이니, 생활의 리듬이 완전히 부서져버렸다. 교장의 시선이 양주병에 가끔씩 가닿았다. 교장은 그때마다 흠칠 놀라곤 했다. 교장은 그때마다, 나는 술을 보는 게 아니다, 예쁜 모양의 술병을 본다, 술병 안의 아름다운 색깔을 본다라고 하지만, 결국 그 뒤에 남는 것은 역시 술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양주의 향기가 온 집안을 적시고 다녔다. 유혹을 이기느라 교장은 무척 애를 썼다. 한번은 무심결에 양주병을 손에 쥐었는데, 바로 나가 비누를 사용해 손을 깨끗이 씻었다. 미끈, 전달되어 오는 느낌이 여체를 만지고 있는 것 같은 착각속으로 그를 몰아넣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부족해 시멘트 바닥에 손바닥을 싹싹 문질렀다. 지 주임은 매일 어디서 술이 약간 올라가지고 관사로 오기 시작했다. 때문에 교장의 위엄이 전혀 먹혀들지를 않았다. 인정하지 않는 권위란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가. 지 주임은, 평생 소원이 교장이 자신의 술을 한잔 받아 마시는 모습을 보는 일이라고 해랬다. 교장은 이제 제정신이 아니었다. 지 주임의 행동이 두 주일이나 계속되었을 때, 교장의 능력은 거의 한계에 도달해 있었다. 교장은 울며 겨자 먹는다는 식으로 받을 수밖에 없었고, 받아서 마시지 않을 수 없었다. 교장은 그 독한 술을 혀로 조금 찍어 몸안으로 날랐다. 교장은 몸속을 파고들어 전신으로 퍼져가는 어떤 기운의 짜릿함에 온통 사로잡혀버렸다. 이어 입술 사이로 소량을 흘려넣어보았다. 교장은 낮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한 잔을 완전히 비웠다. 빈 머릿속을 가득 채운 꽃구름에 대해 교창은 생각했다. 어린시절, 억머니의 등에 업혀 외가에 가던 것 같은 포근함이 왔다. 이어 미끄럼틀에서 미끄러져내리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지 주임이 취해져 가버린 훨씬 뒤까지도 교창은 두 발이 푸욱푹 빠지는 구름 위에 올라서 헤어날 수가 없었다. 교장은 그날밤, 술기운을 품고 코에 땀방울까지 맺어가며 쿨쿨 잘 잤다. 이튿날 아침엔 지난밤의 술잔을 그리워까지 하게 되었다. 이쯤해서 지 주임은 뜸을 들였다. 발을 잠시 끊은 것이다. 밤이 깊어가면 지 주임이 기다려졌다. 끝내 안 낙타나면 몹시 서운하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교장은 술잔에 자신의 혀문, 다음에는 전신을 담그기 시작했다. 교장은 넘실거리는 술잔을 바라보며, 술잔을 통해 내다보이는 바깥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생각하기도 할 정도가 되었다. 교장은 술을 마시면 눈꺼풀 안으로 들어오는 까칠한 마누라를 만났다. 교장의 눈에 눈물이 번지면, 마누라는 옷고름으로 눈물을 찍어대며 교장의 눈꺼풀 밖으로 번져나왔다. 이제 교장은 술의 양이 늘어나 두 잔 정도의 양주를 마실 수 있었다. 그는 본래 체질상으로 술을 못 마시는 게 아니었다. 그의 선친이나 자식들도 술을 꽤 했다. 다만 참았을 뿐이었다. 술 마신 뒤의 붉어진 얼굴을 교장 자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피부가 등불을 켜 단다는 것이다. 그 등불의 빛으로 외로운 밤을 친구삼아 간다는 것이다. 상당히 발전된 셈이다. 이때쯤 해서 지 주임은 교장을 끌고 밖으로 나돌기 시작했다. 몇잔씩 걸친 다음 얼큰해진 뒤 안방 술집으로 옮겨갔다. 교장과 지 주임이 〈처가집〉의 방으로 들어가 술을 마시고 있을 때 아가씨가 둘 들어왔다. 교장은 몹시 난처해했다. 교장은 그런 좌석이 처음이었으므로 자연 거북할 수밖에 없었다. 교장이 일어서 나가려 했으나, 지 주임의 눈짓 하나로 양쪽에서 아가씨들이 눌러앉혔다. 진한 화장품 냄새 때문에 교장은 숨이 막힐 것 같았다. 눈앞이 아찔하며 현기증이 일었다. 교장이 일어설 의사를 포기하자 비로소 아가씨들은 교장의 팔을 놓았다. 교장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숨을 깊이 들여마셨다. 얼마나 오랫동안 못 맡아왔던 냄새든가. 값싸고 질이 나쁜 화장품 냄새였지만, 반드시 싫지는 않았다. 오히려 초원을 달리는 폿풋함, 흑은 싱싱함으로 다가왔다. 지 주임은 단골이었으므로 이미 아가씨들을 조종해놓았었다. 절대로 잔에 술을 채우는 일 외엔 교태를 부려선 안된다, 하루하루 넘기면서 조금씩 접촉을 해라, 여자는 자신의 부인 하나밖에 경험이 없읗 분이니까 너무 덤벼선 안된다, 하여튼 마지막엔 혼을 빼놓아야 된다는 등의 요구를 벌써 해놓은 터였다. 아가씨들은 지 주임의 말대로 했다. 잔에 술을 채워 건네면서 손가락끼리 살짝 부딪쳤다. 그 조그만 부딪침에도 교장은 움찔 몸을 떨었다. 며칠이 지나는 동안 아가씨들은 술을 일부러 교장의 하의에 떨어뜨린 다음 부드러운 손질로 털어주기도 했다. 취한 척하며 슬쩍 넘어지듯 안기기도 했다. 뭉클한 느낌이 전달되자 교장은 전기에 감전된 듯했다. 온몸이 잘게 떨렸다. 그 모든 일이 극히 자연스럽게 이루어져 교장은 거의 정신이 나가버렸다. 나중에는 취한 교장의 손을 그녀들의 사타구니에 집어넣었으며, 자신들의 손은 역시 교장의 은밀한 곳으로 보내 물건을 주물럭거렸다. 교장은 그 행동들
을 물리칠 수가 없었다. 의식은 뚜렷했지만 이미 손발이 제멋대로여서 만사가 귀찮았던 것이다. 교장은 거부하는 듯한 몸짓을 하면서도, 아 이런 세계도 있었구나 했다. 교장은 깊이깊이 빠져들었다. 다음날 아침, 술이 깨고 나면 그런 모습들을 지 주임이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는 사실이 교장을 몹시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도 잠시였다. 교장은 아가씨들의 손목을 잡는 거라든지 가슴을 헤치는 일쯤은 보통으로 알게 됐다. 교장은 라디오를 들으며 유행가 가사를 적어 외었다. 흘이 솟구치면 술상을 두드려야 하기 때문이었다. 술값을지 주임이 다 댔다. 교장은 손쓸 수가 없었다. 교장이 변소에 가는 척해 지불하려면 주인은 이미 지불이 되었다는 것이고, 그럼 이 돈은 팁이라고 해도 그것마저 받지 않는 것이었다. 일을 이쯤 진전시켜놓고 지 주임은 큰손을 휘첫기 시작했다. 이 학교는 평준화가 실시된 지 두 해가 되었다. 지 주임은 바로 이 사실을 건수로 삼았다. 이 학교는 공립이면서도 평이 나빴다. 이 조그만 도시에는 인문계 남자 고등학교가 공립 하나, 사립 셋, 이렇게 넷이 있었는데, 공립이 사립에 눌려 있었다. 공립에 훨씬 문제아가 많았고, 대학 진학률도 저조했다. 1, 2 학년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있는 모습을 지 주임이 보았던 것이다. 그들은 꽤나 심각하게 지금 3학년을 선배로 인정할 것이냐, 아니냐를 얘기하고 있었다. 지 주임은 〈옳다!〉라고 외쳤다. 어디든 뜻이 있으면 길이 있는 법이다. 지 주임은 일부 학부형들과 접촉을 시도했다. 즉 1, 2학년의 교복을 바꿈으로써 지금까지의 학교 이미지를 쇄신시킨다는 것이었다. 현재 3학년 및 졸업생들과 교복을 달리함으로써 은연중에 그들과는 다르다는 표현을 하자는 속셈이다. 학부형들은 대찬성이었다. 지 주임은 한 양복점과 짜고 일을 벌였다. 양복점 주인은 세련된 그리고 날렵한 색깔을 내놓았으나, 지 주임은 극히 우중충하고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색깔을 골라잡았다. 양복점 주인은 말렸다. 교무회의에서도 누가 그따위 색깔의 교복을 마춰 입으려 하겠는냐고 다들 반대했으나, 지 주임은 교장을 내새워 그걸로 결정하고 말았다. 학생들은 그 색깔의 옷으로 마췄다. 학부형들도 이전 학생들과 자신의 아이들이 구별되어진다는, 우리 아들은 나쁜 전통의 학생이 아니라는 사실에 만족해서 그냥 교복이 바꾸어진다는 일만 가지고 좋아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교복의 색깔이 너무나 촌스럽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죽으면 죽어도 그 교복을 못 입히겠다는 항의 전화가 학교로 빗발쳤다. 좋은 얼굴 옷 때문에 버린다고 학부형들은 난리였다. 제발 교복을 바꾸어달라고 사정조로 나왔다. 지 주임은 웃음을 입에 물었다. 자신의 작전이 맞아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정말 씩씩하고 총명해 보이는 색깔의 교복으로 바꾸었다. 간단이 잔머리로 두 탕을 해 지 주임은 상당액을 챙겼고, 물론 그 돈의 일부로 교장의 술값을 대었다. 이것은 한 예에 불과하다. 교장은 지 주임의 비행을 낱낱이 알아차리고 있었으나, 만류하거나 어쩌거나 할 수가 없었다. 모든 일이 무사히만 지나가달라고 빌며 그저 모른 체하고 있는 도리밖에 없었다. 며칠 건너 한 차례에 〈처가집〉에 같이 드나들면서 눈뜨고 차마 못 볼 모습을 다 내보인 다음이라 도무지 할말이 없었다. 다만, 그렇게 되어버린 자신의 처지가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리고 요즘의 지 주임은 방자해져서 별 해괴한 게임을 다 하고 있었다. 하루는 술이 거나하게 되었는데 갑자기 이런 제의를 했다.
"아, 이년들아. 우리 〈교장놀이〉를 해볼까?”
“놀이라구? 와아 재미있겠다. 어떻게 하는 건데요?”
“하루하루씩 돌아가며 〈교장〉 행세를 하는 거야.”
"에이, 여기 실제로 교장선생님이 계시는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요.”
“이건 게임이야, 게임!”
“그럼 교장선생님은 뭘 하시고?”
“물론 그냥 교사야, 교사! 어디까지나 이건 놀이이기 때문에 정말 교장선생님은 여기에선 교장이 될 수 없지.”
“아니, 교장선생님이 그럼 선생님을 한단 말야요.”
“그래!”
“우린 교사자격증이 없으니까 그만두겠어요. 그렇게 하고 싶으면 주임 선생 님 혼자서 하세요.”
“좋다. 그럼 박수를 쳐라.”
그렇게 해서 짝짝짝 셋이 박수를 치고는 〈교장놀이〉를 하기로 해버렸다. 어디까지나 추대에 의하여 이 술집에만 오면 지 주임이 교장이 되었다. 밤교장인 것이다. 주인이나 아가씨들이 문턱만 넘어오면 모두 지 주임을 교장이라고 불렀다. 〈교장놀이〉라는 게 직원조회시 지 주임이 가져왔던 양주를 돌려주는 짓만 되풀이하였다. 그러니까 지 주임이 교장이 되어 “김 주임, 왜 자꾸 이러시오? 창피한 줄 알아야지.” 하며 교장에게 술잔을 계속해서 돌리는 행위였다. 이러하는 사이에 가을이 짙어가면서 교복자율화 문제가 대두되었다. 학부형들은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을 느꼈다. 교복을 바꾸었던 게 업자와 짜고 한탕 해먹기 위한 수법이 아니었나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보니 이놈의 학교 하는 짓이 그저 다 그렇게만 보였다. 학부형들은 학교의 비행을 모조리 기록해 연명으로 도교육위원회에 투서했다. 도교위에서는 하늘이 무너지더라도 그 교장은 그럴 분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일단 감사반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감사반이 내려오기 하루 전에 지 주임은 도교위에 있는 친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지 주임은 옳다, 이번 기회에 교장을 매장시키자, 감사반에게 결정적인 장면을 보여줘 교장을 변명의 여지가 없이 만들어 모든 일을 교장에게 떠맡기자라고 계획을 짰다. 교장과 함께 〈처가집〉으로 가, 교장 몰래 아가씨들에게 팁을 듬뿍 집어주면서 〈밤새 먹여라〉 〈절대 잠을 못 들게 혼들어 깨워라〉는 등의 부탁을 했다. 교장이 인사불성이 되어가는 꼴을 보면 지 주임은 새벽에 혼자서 〈처가집〉을 빠져나왔다. 안녕히 가시라고 따라나온 아가씨에게 오전 늦게나 올 테니 될 수 있으면 그 시간에 정사라도 벌이고 있으라는 부탁도 했다.
둘째 시간이 끝나고 지 주임은 다시 교장실로 불려갔다. 지 주임은 일이 이렇게 된 바에야 십자가를 지겠다는 괴로운 표정으로 안내하겠다는 의사표시를 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매우 딱한 입장에 놓여 있다는 듯이 연신 뒤통수를 굵어댔다. 그들 일행이 〈처가집〉의 방문을 열었을 때 거의 발가벗고 있는 탈렌트 지망생 이었다는 아가씨와 가수 지망생 이었다는 아가씨 사이에서, 역시 거의 발가벗은 상태로 임만 겨우 움직이며 술을 받아먹고 있는 교장을 볼 수 있었다. 교감은 고개를 돌려버렸다. 술은 교장의 입으로 들어가는 척하다간 턱을 타고 모조리 흘러내리는 형편이었다. 교장의 두 볼은 푸르게 멍들어 있었다. 잠들려 하면 아가씨들이 볼을 꼬집어댔던 모양이다. 교장은 이미 잠에 붙잡혀 가버렸고, 입술 부분만 끝이 약간 살아남아 달싹거리고 있었다.
=끝-
2016년 3월 30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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