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지: 경남 거창군 "현성산(960.0m) 산행"
▣. 산행출발일시 및 장소 : 2024. 5. 25(토) 06:00
안동 옥동LG전자앞 출발
*용상6단지(05:30)~서부초등(05:40)~동양카센터(05:45)~
옥동LG전자(06:00) ~ 미폭입구(경남 거창군)
▣.산행코스 및 소요시간
▶A코스 : 미폭입구 → 미폭폭포 → 암릉 → 현성산 → 서문가바위 → 필봉 → 모리산 → 말목고개 →성령산 → 수승대출렁다리 → 수승대주차장(약11.5km 6시간00분)
▶B코스 : 수승대주차장 → 구연서원 → 거북바위 → 힐링로드 → 수승대출렁다리→
성령산 → 전망대(정자) → 요수정 → 현수교 → 수승대주차장
(약4.5km 3시간00분)
▣. 산행준비물: 중식, 식수, 행동식, 등산화, 여벌옷, 기타 등산장비등
▣. 산행후원금: 연후원금 납부 한 우수회원 40,000원
일일회원,년후원금 납부하지않은 정회원 40,000원
회비입금계좌 : 농협 351-1308-4000-63
예금주 : 안동오두막산악회
※. 안동오두막 산악회 다음카페(http://cafe.daum.net/andongma)에 가입하시고 년후원금 10,000원 납부하시면 우수회원으로 등업 되오니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 산행에 관한 문의처: 산행신청은 댓글로 표시하고 궁금한점 및 문의사항은
아래 연락처로 문의 바랍니다......
회 장(태산신 ) 010-8851-7535
사무국장(자미성) 010-3539-1431
재무국장(나야) 010-8929-9706
☞ 산행팀
산행이사(만 디 이) 010-3810-7685 산행대장(독 종) 010-4813-5851
산행대장(용 학) 010-2062-1694 산행대장(동 백) 010-9311-4972
산행대장(태 양) 010-3538-5995 산행대장(삽질대장) 010-4604-7001
산행대장(극한산꾼) 010-4535-009 산행대장(꿀 쟁 이) 010-3060-2356
산행대장(신불사) 010-5038-8592 산행대장(일기일회) 010-9363-9539
산행대장(바람의여신) 010-5234-1515
저희 안동오두막산악회는 비영리 단체로 사고시 민형사상 법적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필요시 보험은 개인적으로 가입 하시길 바랍니다.
▣. 산행지소개
■현성산(玄城山 965m) 은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상천리와 북상면 창선리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현성산’ 명칭은 성스럽고 높음을 뜻하는 '감'을 한문으로 '검을 현(玄)'으로 표기하였던 데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곧 감뫼-검산-검무성-거무시로 되어 검다의 한문식 이름 현성산(玄城山)이 되었다고 짐작된다. 현성산은 거 무성 또는 거무시로도 불리고 있다. 경상남도 거창군과 경상남도 함양군의 경계에 솟아 있는 금원산의 지맥으로, 금원산에서 북동쪽으로 산맥이 이어져 있다. 현성산에서 발원하는 물줄기가 모여 크고 작은 소류지들을 이루고 그 물길이 동편으로 흘러 위천에 이른다. 북동쪽으로 위천면 시가지가 형성되어 있다. 서남쪽으로는 금원산 자락을 이어 서쪽과 북쪽으로 남덕유산, 덕유산 기슭과 이어져 있으며 금원산 자연 휴양림과 크고 작은 폭포들이 있다. 현성산은 금원산, 기백산을 일군 능선과 같은 맥에 솟아 있는 봉우리이다. 기백산에서 금원산을 거쳐 북동으로 방향을 돌린 능선은 현성산 봉우리로 솟구치고 위천면에 들어서서 들판으로 이어진다. 현성산은 백색 화강암반으로 되어 있다. 현성산 날머리 지재미골에는 국내 최대 크기의 거대한 바위가 있다. 그 뒤로 거창 가섭암지 마애 여래 삼존 입상이 바위 속에 숨어 있다.
■연화봉(서문가바위 967m) 은 경남 거창군 위천면 상천리에 소재한 산이다. 현성산에서 금원산/모리산 3거리봉 가기 전 바위암릉 산이다. 직등하지 말고 우회하여 능선에 붙어 왕복이 가능하다. 서문가바위는 이자성(二字姓)인 서문씨(西門氏)가 나왔다는 전설과 또 다른 전설은 임진왜란 때 이바위아래 석굴에서 서 씨와 문 씨 서울 가진 두 남자와 어느 여자 한 명이 함께 피난살이를 하다가 이 여자가 아을 나았는 데 그 아이의 성이 두 남자의 성을 따서 서문가(西門哥) 갖가 되었다는 전설도 전해지는 바위 봉이다.
■ 필봉(932m)은 경남 거창군 북상면 창선리 사유지 철조망 안에 있는 산이다. 철조망을 넘지 말고 철조망 따라 우회하면 철조망과 철조망사이 등로상에 정상을 만난다.
■깃대봉(삼각점 무주 315)은 필봉 정상석이 놓인 정상이다.
■모리산( 某里山878m)은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에 소재한 산이다. 모리산 중턱에 동계 정온 선생을 기리기 위해 조선 후기에 건립한 재실 모리제가 있다.
■ 성령산(城領山)[420m]은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에 소재한 산이다. 현재 산꼭대기에는 헬기장이 구축되어 있으며, 남쪽에는 위천 분지가 넓게 형성되어 있다. 성령산에 있는 퇴미식 산성 거창황산리 용문 고성( 居昌 黃山里 龍門 古城 ) 내부에서 와편과 토기 편이 다소 발견되고 있다. 임진왜란 때 왜적과 싸웠던 정유명(鄭惟明)이 쌓은 성으로 알려져 있다.
■ 모리재(某里齋)는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모리산 중턱에 동계 정온 선생을 기리기 위해 조선 후기에 건립한 재실이다.거창 모리재(居昌某里齋)는 조선 시대 광해군과 인조 때의 명신이었던 문간공 동계(桐溪) 정온(鄭蘊)[1569~1641]이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은거하던 곳을 유림들이 기려 건립한 재사(齋舍)이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는 뜻에서 ‘모리(某里)’라 하였으며, 산이름도 ‘모리산’이라 하였다.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강선대길 96-326[농산리 673]에 위치한다. 북상면사무소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지방도 37호선을 타고 1.2㎞ 정도 진행하다가 보면 도로의 좌측에 ‘모리재’ 표지판을 만난다. 이 표지판을 따라 좌회전하면 강선대 마을에 이른다. 마을 내부 도로를 지나 모리산으로 연결되는 산길을 따라 계속 진행하면 모리산의 중턱에 건립되어 있는 거창 모리재에 이른다. 거창 모리재는 강선대 마을 서쪽 2㎞ 지점에 있는 모리산 중턱에 있다.
1645년(인조 23) 유림에서 영당(靈堂)을 세워 영정과 유물을 보존하고 제향하다가 1704년(숙종 30)에 소실되었던 것을 1707년(숙종 33)에 중건하고 ‘모리재’라 하였다. 1758년(영조 34)에 선생의 유허비를 세웠고, 1806년에 문루인 화엽루를 세웠다. 1921년에 대대적인 중건을 하여 거창 모리재, 사당, 동재, 서재, 화엽루로 구성하였다. 1948년에 훼손이 심한 동재는 철거하였다가 2005년에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거창 모리재는 정자 거창 모리재를 중심으로 정면에 화엽루, 좌우측에 동재와 서재가 튼ㅁ자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거창 모리재의 배면에는 사당이 있으며 전체적인 배치를 보면 서원의 형식을 갖추었다. 거창 모리재는 정면 6칸, 측면 2칸의 규모로 전면의 반칸은 툇간을 구성한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평면은 좌측부터 부엌 1칸, 온돌방 2칸, 마루 2칸, 온돌방 1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공포 양식은 직절익공 양식으로 소로 수장하였고 상부 가구는 도리가 다섯 개인 오량가이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5칸의 홑처마 맞배지붕이다. 단청이 시문(施紋)되어 있고 정면에는 일각문이 있다. 화엽루는 중층 문루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공포는 이익공 양식이며 단청이 시문되어 있다.
거창 모리재는 강천리 마을 뒷산인 모리산의 북쪽에 있는 계곡 상류부에 동향하여 자리 잡고 있다. 강당 영역이 튼ㅁ자형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강당 배면의 우측에 사당이 있다. 산지의 경사 지형에 건립하여 강당 영역과 사당 영역의 높이차가 크다. 1995년 5월 2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07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거창 지역에서 가장 높은 벼슬을 지냈고 또한 당대의 학자이자 의사(義士)로서 지역의 존경을 받는 인물을 모신 재실로 그 역사적 가치가 있으며 서원 형식의 건축물도 학술적 가치가 크다.
■수승대는 유구한 역사를 거치면서 네 가지 이름이 붙었다. 삼국 시대에는 떠나가는 사신을 수심으로 전송하던 곳인지라 수송대(愁送臺)로 불렸고, 조선 시대로 들어와서는 거북바위의 형상을 따서 암구대(巖龜臺)로 불렸고, 1543년 이황(李滉)이 수승대(搜勝臺)로 개명하였으며, 신권의 후손들이 차지하고 난 뒤로는 신권의 호를 따서 요수대(樂水臺)라 불렀다.
선인들의 품평에 따라 수승대의 경관이미지를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안의 삼동 가운데 가장 빼어난 곳이다. 둘째, 유리 세계와 같이 맑고 밝다. 셋째, 맑은 시내와 아름다운 산과 높은 바위가 잘 어우러진 곳이다. 넷째, 맑고 수려한 경관과 그윽하고 미묘한 풍치가 있는 곳이다. 다섯째, 명소가 명인을 만나 명승이 된 곳이다.
수승대는 본래 명칭이 수송대였는데, ‘수송대’라는 명칭에도 여러 설이 전한다. 첫째는 신라·백제 시대 이곳에서 사신을 전송했는데, 사신을 떠나보내는 근심을 이기지 못하여 수송 대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이다. 둘째는 수송(愁送)은 송수(送愁)처럼 ‘근심을 날려 보내는 곳’이라는 뜻인데, 이 수송대의 빼어난 경관이 근심을 잊게 하기 때문에 붙여졌다는 설이다. 셋째는 신라 시대 중국으로 가는 사신을 여러 고을의 수령들이 이곳까지 나와 전별했기 때문에 수송 대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는 설이다. 이 세 가지 설 가운데, 첫째는 백제와 신라의 접경 지역일 때 생겨난 고사고, 셋째는 통일 신라 때에 붙여진 이름이며, 둘째는 역사적 사실이 잊힌 뒤에 나아가 붙여진 이름이다.
수송대가 ‘수승대’로 불리게 된 데에는 흥미로운 일화가 전한다. 이황은 1543년 1월 영승 마을에 들러 장인 권질(權礩)의 회갑연에 참석했다가 수송대로 가서 임훈·신권을 만날 예정이었으나 갑자기 조정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래서 서둘러 상경하면서 ‘수송대’를 ‘수승대’라 개명하고 시를 한 수 지어 보냈다. 그 시에 “수승대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바꾸니, 봄을 맞아 그 경치가 더욱 아름답네. 먼 숲에선 꽃들이 피어나려 꿈틀대는데, 그늘진 골짜기엔 눈이 그대로 남아 있네. 명승을 보고 싶어도 가 보질 못하니, 오직 상상의 회포만 더할 뿐이라네. 훗날 한 통의 술을 가지고 다시 와서, 큰 붓으로 운무 낀 암벽에 글을 쓰리.”라고 하였다.
이에 대해 신권은 이황이 개명한 이름이 좋다고 기뻐하였지만, 임훈은 생각이 달랐다. 유구한 역사가 전하는 이름을 외지인이 와보지도 않고 이름을 바꾼 것에 대해 선뜻 동의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임훈은 「수송(愁送)의 뜻을 풀이하여 제군에게 보임」이라는 제목으로 “꽃은 강 언덕에 가득하고 술은 술통에 가득한데, 유람하는 사람들이 소매 맞대고 분주히 오가네. 봄이 장차 저물려 할 때 그대도 장차 떠나려 하면, 봄 보내기가 시름일 뿐 아니라 그대 보내기도 시름일 텐데.”라는 시를 지었다. 이 시는 ‘수송대’라는 명칭이 갖고 있는 의미를 넌지시 풀이하면서 만나지 못한 서운함을 드러낸 것인데, ‘수승대’라는 이름을 수용할 수 없다는 의도가 들어있다.
첫댓글 산행 신청합니다
신청합니다~~
현성산행
안전산행
즐거운산행
열열한
응원합니다
정진씨 지난초암산산행때 옥수수막걸리와 홍어하산주로 잘 먹었습니다, 고맙고 감사해요~~~
@산토끼(강순구)
서울 경기
근교 산행때
반갑게
뵙겠습니다
신청합니다~~~
갑니다~~
참가합니다.
신청합니다
함께 합니다.
❤️ 산행비 입금하신 (존칭생략) ❤️
1~10
박기조 정용길 박미자 살구 파란나라
비타민 소수추 만디이 태산신 녹산
11~20
참보배 산사나이 이종구 심부섭 김시열
산토끼 이오직 캔디 규동법사 커피사랑
21~30
불생불멸 박옥자 동백 이성화 임종화
엉이 트랙스타 즐거운산초 조춘섭 강경곤
31~
삽질대장 완두사랑 동이동이
💕 연후원금 입금하신분 (존칭생략) 💕
임종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