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 십년 전 일본에 처음 갔을때 아주 사소한 것 때문에 무척 감명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 사소한 것이란 식사 자리에서 만난 이쑤시개입니다. 이쑤시개도 아마 일본에서 우리나라로 건너 온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때 이 이쑤시개 손잡이에 패인 홈. 세줄로 파 놓은 홈이 있습니다. 이것 뭐 때문에 파 놓은 것인지 알고 계시는지요? 아마 요즘도 이 홈을 왜 파 두었는지 모르고 있는 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몇번의 공정이 더 들어가는 이 홈을 왜 파 두었을까요? 어떤 분은 손으로 잡기 좋게 하기 위해서..라고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홈은 예사로 파 둔 것이 아닙니다. 철저한 위생관념이 몸에 배인 일본인들의 일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이 홈자국은 이쑤시개 걸이입니다. 똑 부질러 이쑤시개를 얹어 놓는 것입니다.
지도는 맨 아래쪽에 올려져 있습니다. 전에 소개해 드린 시라카와고 합장촌(이곳)도 이곳에서 멀지 않습니다. 이 목수들이 교토와 나라에 세금대신 노역으로 가서 사찰과 건물을 짓고, 그 목수들이 고향으로 돌아와 에도에서 지은 건물 그대로 히다의 거리(지금의 다카야마)를 만든 것입니다. 그런 향수 같은 도시로서 일본인들이 매우 아끼고 사랑하는 곳이 되었습니다. 16세기 도쿠가와시대 사무라이 가문의 통치속에서 지내온 히다는 바깥 격자창과 낮은 처마의 에도시대 건축물이 고스란히 이어져 내려온 것입니다. 가로 세로의 창살 간격이 일정한 연자 격자문과 세로 창살 간격이 좁은 천본 격자문으로 지어진 전통가옥들로 이어진 골목에는 이런저런 가게들이 줄지어 있고 각종 기념품과 산나물등을 판매하고 있어 흡사 우리의 5일장 같은 느낌도 듭니다. 이렇게 문화재를 아끼고 좋아 하는 일본인들.. 그리고 임진란 왜적의 침략속에서 되돌릴수 없이 사라진 우리나라의 숫한 소실 문화재. 정명가도(征明假道)라는 터무지 없는 억지로 도적이 남의 집 물건 훔치러 가는데 길을 비켜 달라는.. 명나라 치러 가는데 조선을 지나가야 되니 길을 내어 달라는 억지를 부린 왜군. 그렇게 우리 조선을 쳐 들어와 전국에 있는 목조 사찰이나 문화재를 모조리 불살라 버리고 결국은 노량해전을 끝으로 패전하여 달아나 버렸지만 지금도 우리의 금수강산을 둘러보면 ..임진왜란때 소실..이라는 안내문구를 참으로 많이 접하게 됩니다. 저들의 오래된 목조 문화재는 이렇게 아끼고 잘 보존하여 두면서 우리나라 목조 건물과 문화재는 모조리 불질러 버린.. 가슴 속에 저며오는 안타까운 마음이 한없이 쏫아지는 비속에서 먹먹하게 저려 왔습니다. 그 옛날 도쿠가와 막부의 직할도시로서 히다산맥 아래 고요히 몇 백년을 지켜 오는 아름다운 다카야마의 산마치(三町)를 둘러 보면서 아주 사소한 것도 이렇게 공을 들여서 가꾸고 보관하면 훗날 귀한 유산으로 남아 질것이라는 생각을 하여 봅니다. 중심 골목, 여행관광 안내소(맨 아래 사진)에는 여러나라 안내서가 비치되어 있고 우리나라의 글로 표기된 자세한 것도 있어 먼저 이곳에서 이것을 받아들고 둘러보면 도움이 많이 될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