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랑길 순례길
변수남
우리는 늘 길을 걸으며 살아간다. 그래서 인간의 삶 자체를 여행에 비유하기도 한다. 길을 나서는 목적도 다양하다. 만약 예수나 석가나 공자의 가르침이 서려있는 지역을 방문한다면 순례길이라 표현하여 보다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기도 할 것이다. 나의 서울 여행은 이스라엘의 베들레헴 방문도 아니요, 그렇다고 네팔의 룸비니 견학도 아니요, 중국의 곡부 니구산 탐방도 아니니 순례길이라는 말을 붙이기에는 너무 거창한 것 같다. 하지만 이번 나의 서울 여행은 글쓰기를 새롭게 하기 위한 순례길이었음을 고백하고 싶다.
10월에 <문학의 봄>에 수필을 응모했는데 뜻밖의 메일을 받았다. 나의 글이 당선되었다는 것이다. 너무 기쁘기도 했지만 ‘왜 나야?’란 의문도 들었다. 그리 잘 쓴 것 같지도 않고 부족함을 많이 간직한 글이 당선되다니. 메일에는 이런 말도 있었다. “당선 내정자라는 문자나 전화, 이메일을 받았더라도 마감일까지 아래의 절차가 완료되지 않으면 편집은 중단되고 당선은 취소됩니다.” 내가 아직 역량이 부족하니 “아래의 절차”를 완료하지 않으면 나의 의문도 자동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러지 못했다. 아니 그렇게 하지 않았다. 헛된 명예욕이었을까?
“아래의 절차” 중 가장 곤혹스러운 것은 당선 소감이었다. 글자 크기 11포인트에 A4 용지 삼분의 일 내외. 말이 삼분의 일이지 나는 이 글을 써내기 위해 꼬박 하루를 끙끙 앓아야 했다. 초고를 간신히 완성하였으나 문학의 봄이 요구하는 분량보다 세 배가 많았다. 이것을 이리 줄이고 저리 줄이고 하는데 등에 땀이 밸 지경이었다. 간신히 주최측에서 요구하는 분량에 근사해지자 메일을 보냈다. 더 줄이라는 연락이 올까 봐 조마조마했는데 다행히 발행인 개동(開東) 선생님으로부터 합격 문자를 받았다.
12월 2일에 종로 5가 대학로 아리랑에서 당선패를 준다고 했다. 그래서 미리 KTX 표를 예매했다. 차를 운전해서 가기에는 너무 먼 거리였기 때문이다. 행사가 가까워지자 윤슬 선생님으로부터 카톡이 왔다. 간단히 인사말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말이 간단한 인사말이지 당선 소감만큼이나 부담으로 왔다. 그래도 일단은 “알겠습니다.” 해놓고 말할 내용을 공책에 적었다. 공책에 적은 말을 아내 앞에서 외우기도 하며 거울을 보며 실연(實演)도 했다.
드디어 당선패를 받는 날이 왔다. 아침을 먹고 기차를 타기 위해 목포역으로 갔다. 기차는 몇십 년 만에 처음 타보는 것 같다. 언제인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외사촌 결혼식 때 어머니와 기차를 타고 서울을 갔던 기억이 났다. 그때는 의자 사이로 수레를 밀며 오징어나 음료수를 파는 분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풍경을 볼 수가 없었다.
기차 안에서도 문학의 봄 식구들에게 해야 할 말을 주문처럼 외워야만 했다. “64회 문학의 봄 수필 부분에서 당선된 변수남입니다. 이 자리에 서고 보니 글벗이니 말벗이니 술벗이니 하는 벗이라는 단어가 떠오릅니다. 벗 중에 제일 좋은 벗은 그래도 글벗인가 합니다. 문학의 봄 벗님들을 뵈니 갑자기 큰 부자가 된 듯싶습니다. 앞으로 문학의 봄 벗님들과 이 땅에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 나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몇 번을 중얼중얼 외워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더구나 기차에는 사람들까지 있어 소리 내서 말도 할 수 없는 처지였다.
이렇게 저렇게 하여 용산역에 도착하였다. 날씨는 목포에 비해 훨씬 춥게 느껴졌다. 행사가 있는 종로5가를 찾아가야 하는데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무척 당황스러웠다.
모르면 물으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가장 친절해 보이는 여자분에게 “종로5가를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러자 상냥하게 가르쳐주었다. 아내는 카드를 어떻게 댔는지 여유롭게 개찰구를 통과했으나 나는 그러지 못했다. 개찰구 통과대에서 들려오는 이상한 굉음을 듣자 꼭 “너는 탈락!” 하는 것처럼 나를 서글프게 했다. 사람들은 잘도 통과하는데 나만 왜 이러나. 카드를 이리 대도 안 되고 저리 대도 안 되었다. 어디선가 ‘이런 원시인이 있나!’ 하는 환청까지 들려오는 듯했다. 한 5분 정도를 낙담하면서 개찰구에서 카드와 씨름을 하자 기운이 쏙 빠졌다. 간신히 개찰구를 통과해서 종로5가로 향하는 지하철을 타기는 했으나 한참 마음의 평안이 깨져있었다. 바삐 지나가는 서울 사람들은 가마 속에서 각자의 모습으로 구어져 어디론가 정신없이 팔려가듯 분주하면서도 모두 다 무표정하게 느껴졌다.
종로5가 대학로 아리랑 옆 커피숍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시며 인사말을 다시 외워보았다. 그리고 행사장으로 향했다. 제일 먼저 만난 사람은 머리가 희끗희끗하신 윤 회장님이었다. 영광스럽게도 회장님의 안내를 받아 어색하나마 식장 안으로 들어갔다. 윤슬 작가님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개량 한복은 입은 장 작가님과는 머리를 부딪쳐가면서까지 뜨거운 인사를 했다. 사회는 ≪여고생 챔프 아서왕≫ 을 지은 염 작가님이 보았는데, 유명한 작가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다니 참 신기했다. 개동 선생님도 뵈었는데 말씀은 별로 없을 것 같았으나 포근한 인상이었다. 내가 익히 <우물>이라는 시에 감동을 받은 적이 있었던 터라 임 작가님도 구면처럼 느껴졌다. 소설을 쓰신다는 신 작가님과는 기념 사진도 찍었다.
내 옆에는 63회 소설 부분에서 당선된 유 작가님이 있었으며 맞은 편에는 64회 동화와 소설에서 당선된 서 작가님과 박 작가님이 앉아 있었다. 신인 작가 인사말이 있었는데 유 작가님은 기자 출신이라서 그런지 순발력 있게 말을 잘했다. 다음으로 내 차례였다. 갑자기 정신이 멍해졌다. 어떻게 해야 하나. 외운 것을 복기한다 한들 유 작가님처럼 자연스럽지도 못할 테고 순간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에라 모르겠다. 나도 아무 준비 안 된 사람으로 돌아가자.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리 생각하니 새로운 힘이 생겼다. 외운 것을 그대로 말한들 생동감이 떨어질 것이며 또 아무리 달달 외웠다 한들 갑자기 말문이 막힐 수도 있지 않은가? 만약 그렇게 되어버리면 더욱 낭패일 테니까. 마침내 결심이 섰다. “반갑습니다. 어제 저녁까지만 해도 제가 외운 인사말을 거울 앞에서 연습도 했습니다만 이 자리에 서니 아무 생각도 안 납니다.” 그러자 여기저기에서 웃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웃음 소리를 듣자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내가 64회로 당선되었으니 이육사의 <광야>의 시구 한 구절을 가져오면 좋겠다 싶었다. 이렇게 해서 간신히 위기를 모면하고 지글지글 끓고 있는 불고기 국물에 밥을 말아 목을 축일 수 있었다.
행사를 마치고 목포로 돌아오면서 생각을 해 보았다. 오늘 나의 서울 방문은 과연 당선패만을 받으러 간 것인가? 아니면 정말로 글을 쓰기 위해서인가? 이 질문에 대한 결론을 내렸다. 만약 당선패만 받으러 갔다면 한낱 이름을 구하기 위한 허랑길이고 글을 쓰기 위해서라면 의미 있는 순례길이다.
며칠 전에 3학년 이승범 학생이 ≪목포문학≫이라는 책을 나에게 건네주었다. 자신의 작품이 ≪목포문학≫에 실려있는데 두 권이 있어 이 중 한 권을 나에게 준다고 했다. 학생의 마음이 하도 고마워 그의 작품을 세 번을 읽었다. 내가 이 학생을 박화성 백일장 대회에 추천했다. 그리고 여기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작품집을 읽기 전에는 그가 어떤 장르에 어떤 제목으로 글을 썼는지는 전혀 몰랐다. 승범 학생이 건네준 작품집을 읽고서 비로소 그가 소설 부분으로 글을 썼으며 제목은 <그 손은 예뻤다>였음을 알았다. 이 학생이 준 작품집에는 고정선 시인의 글도 있었는데 “시를 쓰기 위해 시인이 되어야지, 시인이 되기 위해 시를 써서는 안 된다.”란 말이 눈에 확 들어왔다. 고정선 시인은 이것이 서정춘 시인의 말이라고 하였다. 서정춘 시인이 말한 “시인이 되기 위해 시를 쓴다는 것”은 겉치레요 간판이요 헛된 명성이라는 뜻이다. 허명만 추구하는 것은 길로 보면 허랑길로 순례길과는 결코 함께 설 수 없다.
나 또한 그렇다. 문학의 봄이 준 “수필당선패”만을 위해 서울을 방문했다면 나는 허명만을 추구하는 사람일 것이다. 허명 하니까 정사신(鄭士信)의 <우음(偶吟)>이라는 시가 생각난다. "검이 있다는 물에 검은 없고, 평탄하다는 산은 정작 평탄치 않네. 넓게 인간사를 보아도, 모두가 허명뿐이라네." 검수(劒水)에는 검이 있어야 하고 평산(平山)은 산이 평평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 말만 검수요 평산인 것이다. 내가 “당선패”만 받으러 서울을 방문했다면 글은 없고 수필가의 껍데기만 취한 <우음(偶吟)> 속 허명을 따른 사람에 불과하다. 내가 이런 사람이라면, 정사신 선생이 “네 이놈 네가 무슨 허명을 얻어 볼라고....” 하며 큰 소리로 일갈하며 내 가슴에 독화살을 날릴 것이다. 생각만 해도 두렵다. 생각해보면 허명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시간을 허비하기엔 인생은 너무 짧지 않은가?
이번 나의 서울 방문이 글을 쓰기 위한 소중한 기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사람들이 예수나 부처나 공자의 도를 배우기 위해 머나먼 순례길을 포기하지 않듯 나도 이번 서울 방문을 통해 구각을 벗고 한 차원 높은 정신적 도약을 했으면 한다. 비록 짧은 만남이었지만 문학의 봄 식구들이 전해준 따뜻한 마음을 가슴에 잘 간직해서 봄에는 꽃을 피우고, 여름에는 푸른 잎을 길러, 가을에는 열매를 맺고, 겨울에는 풍성하게 거두어 간직할 수 있는 인간이 되었으면 한다. 이렇게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내 정신에 골고루 순환한다면, 문학의 봄 벗님들과의 만남이 내 인생에 파랑을 일으켜주는 순례길이었음을 스스로 깨달아 나가지 않겠는가.
첫댓글 아, 서울 행차를 이렇게 명수필로 승화시킬 수 있는군요.
작가가 되기 위해 글을 쓴 나를 겸허하게 반성합니다.
느낌 주는 수필 즐감합니다.
부디 허명과 허랑길이 아니 되고 내내 순례길을 걸어가시길 빕니다.
참 진솔한 글입니다. 대중 앞에서 써 오거나 외워온 것을 낭독한다는 것이 쉽지 않죠. 외워지지 않아 메모지에 써와 읽으려면 손이 떨리고 덩달아 메모지도 펄럭입니다. 그러나 이는 정상입니다. 2군에서 1군으로 승격된다는 것은 떨리는 일 아니겠습니까? 따라서 설레는 것도 당연합니다. 저는 시상 후 간혹 냉정하게 말합니다. 진열장 채우려고 수상하러 왔느냐고요. 이제 아마추어가 아니고 자기 글에 책임을 지는 프로이다. 따라서 아마추어 때의 허명심은 버리고 초심을 잃지 말라고 당부하죠. 이를 다짐하는 글. 감동적입니다.
변작가님!
멋진 글 잘 읽었습니다
먼길을 다녀가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그 길이 새로운 출발을 하는 순례길이라 생각합니다
앞으로 좋은글 더욱 많이 쓰시기 바랍니다
탱자에게서 가르침을 받으신 것처럼
문학의봄이 좋은 순례길이 되시길 바랍니다.
어린 제자를 문학의 길로 이끄셨으니
좋은 스승이며, 아이들 앞에 부끄럽지 않은
좋은 수필가가 되시리라 믿어요.
잘 읽었습니다ㆍ변작가님ㆍ꾸준히 쓰세요ㆍ
지난번 멀리서 오셨는데 제대로 인사도 하지 못했군요.
문학의 순례길에 나선 작가님의 앞날을 응원합니다.
안 작가님 감사합니다
늘 건필하시길 기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