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어린 산양. 뿔이 아직 덜 자랐다. 산양이 사람을 발견하면 험한 바위벼랑으로 달아난다. 그러나 자신의 행동권을 벗어나지 않고 주변을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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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사는 산양을 이야기할 때, 그 형태를 정확히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외국산 산양이나 가축 염소를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텔레비전의 자연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산양은 거대하고 기묘한 뿔을 가진 중앙아시아 또는 북미산 산양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또한 광고에서는 젖염소(흰색의 자이넨 품종)의 유제품을 산양유(山羊乳)라 선전하니 헷갈릴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산양은 면양보다 흑염소를 더 닮았다. 때문에 산양이라는 이름보다는 ‘산염소’가 더 어울릴 것 같지만, 여기서는 그냥 산양이라고 하자. 방목중인 흑염소가 야생화한 개체는 전국의 산에서 드물게 관찰된다. 때로는 야생화한 흑염소가 산양이라고 신고되기도 한다. 그러나 산양은 외형이 흑염소와 비슷할 뿐, 분류학적으로는 거리가 먼 관계다.
- ▲ <좌> 산양의 발자국. 눈이 내리지 않는 한 산양의 발자국을 보기란 힘들다. 산양 서식지는 바위투성이와 낙엽이 깊게 쌓여 발자국이 형성되기 어렵다. 산양 발자국은 고라니나 노루와 달리 가장자리가 둥근 편이다. / <우> 산양의 발걸음. 눈이 쌓인 바위 위를 쉽게 걸어다닌다. 두 마리 이상 지나간 걸음걸이는 보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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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사이의 외형을 비교해 보자. 산양의 몸 색깔은 흑갈색이 주류를 이루는 반면 흑염소는 광택이 나는 검정색이다. 산양의 아랫턱에는 턱수염이 없지만 흑염소는 턱수염이 있다. 산양의 꼬리는 엉덩이 아래로 길게 자라지만 흑염소의 꼬리는 옆에서 볼 때 돌출되지 않는다. 산양의 젖꼭지는 두 쌍(4개)이나 흑염소는 한 쌍(2개)뿐이다.
산양은 파키스탄 북부에서 히말라야를 거쳐 인도차이나 반도의 산악지대, 중국, 우리나라, 러시아 연해주에 걸쳐 살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경북 문경시에서 울진군 백암산 일대가 서식 남방한계선으로 보고되어 있다. 즉 전술한 경북 북부지방 이남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수백 년 전에는 더 남쪽에서도 서식했는지 알 수 없다).
현재 산양의 서식지는 문경 주흘산, 울진 백암산과 통고산, 삼척 덕풍계곡과 면산, 두타산, 석병산, 태백산, 오대산, 미천골계곡, 설악산, 향로봉~화천군 백암산에 이르는 민통선 내부 등이다. 그러나 이들 산악지대에 골고루 분포하는 것은 아니다.
가파른 바위 벼랑지대의 한 지역을 독점
산양은 특정 지형과 조용한 환경을 선호한다. 사람의 출입이 드물고 급한 경사의 바위벼랑이 넓게 펼쳐진, 이른바 악산에 서식한다. 인간의 시각에서 보면 경관이 수려한 산악지대에 사는 동물이다.
산양(학명 Nemorhaedus goral raddeanus)은 한지성 고산동물로 인식되지만, 진정한 고산동물은 아니다. 히말라야에 사는 산양도 수목한계선 이상으로는 올라가지 않으며, 티벳고원으로 진출하지도 못했다.
히말라야 수목한계선 이상과 티벳고원에는 산양과 외형이나 특성이 크게 다른 히말라야 타르 산양(학명 Hemitragus jemlahicus)을 비롯해 4종의 산양이 서식한다. 그러나 극한의 추위에는 적응하지 못한다.
러시아 극동지방의 북위 50도가 산양의 북방한계에 해당한다. 북위 65도 중앙 시베리아 고지와 캄차카 반도에는 시베리아 눈양이 서식한다. 산양이 고산동물로 인식되는 것은 한반도의 발굽동물 7종 중 고지대에서 발견되는 비율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발고도만으로 놓고 볼 때, 남한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사는 동물은 한라산의 노루가 된다. 조건만 맞으면 산양에게 해발고도란 의미가 없다. 다만 산양이 좋아하는 서식 환경이 대개 산악지대에 몰려 있어 상대적으로 표고가 높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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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양이 좋아하는 서식지는 인적이 드물고 가파른 비탈과 바위가 많은 산림지대다. 산양이 험하고 거친 암석지대를 생활 근거지로 삼는 것은 저지대는 혼잡하고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바위가 많은 산악지대는 먹이가 적다는 불리함이 있지만, 경쟁이 적고, 한 지역을 독점할 수 있다.
산양이 사는 바위지대는 열악한 서식환경이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곳에도 장점은 많다. 그런 지역은 대개 면적은 좁지만 다양한 환경 조건을 보인다. 즉, 고도, 경사도, 방향, 지표생태, 식생에 따라 매우 다양한 생태계를 나타낸다. 이는 생산성은 낮지만 다양한 먹거리를 제공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다양한 먹이란 계절적인 먹이에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산악지대는 바람이 많고 춥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산악지대는 지형의 변화가 심하다. 좁은 지역에서도 양지와 음지, 바람이 심한 곳과 바람이 없는 곳, 눈이 깊게 쌓이는 지역과 그렇지 않은 곳이 섞여 있다. 이러한 변화는 계절과 장소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한다. 산양은 이와 같은 조건을 잘 알고 있으며, 한 지역을 독점해 살아간다.
산양은 균형감각이 뛰어나고 몸의 폭이 좁아 바위 절벽을 쉽게 이동해 다닌다. 이들의 다리는 뼈가 굵고 튼튼하다. 특히 발굽은 암석지대나 급경사 비탈을 쉽게 이동하도록 특수화되어 있다. 두 쪽으로 갈라진 발굽은 유연하게 움직이는 집게형이다. 바위 절벽에서는 발굽을 크게 벌려 접지 면적을 넓힌다. 아울러 바위의 작은 돌기나 각이 진 부위를 움켜잡기도 한다.
발굽의 바닥은 가장자리가 약간 솟아나 있다. 바닥의 뒤쪽은 조금 패여 있으며, 딱딱하지 않고 부드럽다. 이러한 구조는 암석지대를 이동할 때 발굽을 안정되게 흡착시켜주며, 뛰어내릴 때 충격을 흡수한다.
60년대 폭설기에 매년 수천 마리 희생
산양은 기본적으로 단독으로 산다. 그러나 어미가 올해 태어난 새끼를 데리고 지난 해 태어나 어미의 행동권에 머무는 암컷 새끼를 만나면 3마리가 되기도 한다. 수컷은 혼자 다니는데, 가을 겨울철 번식기에는 암수가 함께 있는 것이 관찰되기도 한다. 아무튼 어미와 새끼 이외의 무리는 고정적이지 않으며 일시적인 무리에 불과하다.
- ▲ <좌> 산양의 뿔질 흔적. 비교적 얇은 나무줄기에 정수리와 뿔로 비빈 흔적이다. 먹이로 나무껍질을 벗겨 먹은 게 아니라 자신의 체취를 남긴 영역 표시의 기능을 한다. / <우> 산양의 휴식터. 짧은 바위굴은 기상이 급변할 때 산양이 잠시 추위와 눈 또는 비를 피하는 장소가 된다. 내부 바닥에는 적은 양의 똥이 흩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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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양은 좁은 지역을 점유해 적극적으로 그곳을 방어하면서 사는 동물이다. 때문에 행동권이 좁다. 산양의 최대 적은 폭설이다. 산양은 우리나라의 최저기온 정도는 별 탈 없이 잘 견딘다. 그러나 며칠간 이어지는 폭설은 치명적 결과를 초래한다.
산양은 여름과 가을에 걸쳐 비축한 영양분이 겨울을 지나면서 고갈된다. 체력을 회복해야 할 3~4월에 내리는 폭설은 산양을 굶주림으로 내몰고, 그 결과 대량 아사를 발생시킨다. 굶주린 산양은 늑대나 표범에게 손쉽게 잡히며, 자연의 천적이 없는 곳에서는 사람에게도 쉽게 잡힌다.
지난 1970년대까지 강원도에서 폭설이 내린 후 많은 수의 산양이 식용으로 포획되었다. 특히 1964~65년의 폭설기에 영동지방에서는 3,000마리로 추정되는 산양이 집단으로 포획되었다. 그후 매년 벌어지는 겨울철 대살육으로 말미암아 강원도 백두대간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산양이 급감했다. 식용 목적의 산양 포획이 너무 심해 1968년 사향노루와 함께 산양은 젖먹이동물로는 최초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산에서 어떤 동물을 만나면 대개의 동물은 도망친다.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또 그 대상 동물의 속력이 얼마나 빠른지 후다닥 도망치는 동물이 뭔지 모를 때도 있다. 그러나 많은 눈이 내리면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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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만큼 독한 동물이 없다.” 멧돼지 사냥꾼이 내게 한 말이다. 눈이 내려 쌓이고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발자국을 줄기차게 좇으면 대개의 동물은 스스로 항복한다고 했다. 완강한 멧돼지조차 먹고 쉴 틈을 주지 않고 추적할 경우 지쳐 거리를 허용한다고 했다.
산양 역시 마찬가지다. 눈이 사람 허벅지 정도로 쌓이면 바위를 날렵하게 타는 산양조차 고립된다. 산양이 사륜구동이라면 사람은 이륜구동이다. 그런데 산양은 사람에 비해 다리가 짧다. 그런 체형에서 폭설이 내리면 가슴과 배가 눈에 닿아 허우적거리기만 할 뿐, 전진할수록 힘이 빠진다. 더욱이 자신의 행동권을 포기하지 않고 빙빙 도는 산양은 잡으려 마음 먹으면 어려운 일도 아닐 것이다.
- ▲ <좌> 산양의 서식지. 경북 울진군 금장산(849m). 산양은 특정 지역을 선호한다. 바위절벽지대는 산양이 살아가는 데에 반드시 필요로 하는 지형이다. 바위지대는 새끼를 낳아 기르고, 천적을 피하고, 휴식을 취하는 곳이다. 먹이는 주변의 좁은 초지나 관목지대에서 구한다. / <우> 산양의 똥자리. 산양은 양지바르고, 앞이 탁 트여 전망이 좋으며, 자신의 위치는 발각되기 어려운 바위턱에 똥자리를 만든다. 이곳에서 산양은 휴식과 되새김질을 하면서 배설한다. 때문에 오래된 똥 위로 새로운 똥이 겹겹이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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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0년대까지 이루어진 산양의 집단살육도 그런 상황에서 벌어진 것이다. 그때는 눈에 갇혀 허우적거리는 산양을 간단히 지게 작대기로 때려죽이는 게 부지기수였다고 한다. 요즘은 그와 같은 참상은 사라졌지만, 밀렵이 없어진 건 아니다. 또 아직도 당시의 개체수로 회복되지 않고 있다. 많이 잡기도 했지만 산양의 번식력이 낮다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어미, 새끼 버리고 달아나
2년 전 늦겨울 오대산 산양 서식지를 답사한 적이 있었다. 그 전해 봄과 달리 눈 쌓인 계곡을 오르기란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대략 해발 800m 지점부터 산양의 발자국과 똥이 눈에 띄기 시작했고, 새로운 발자국을 따라 100m 정도 더 올랐다. 산양이 몇 시간 전에 지나갔을 것 같은 발자국은 벼랑에서 끊겼다. 산양이 벼랑 아래로 내려간 것이다.
하나밖에 없는 목숨, 도저히 겁이 나 벼랑을 내려갈 수는 없어 고개를 빼고 내려다보다가 뒤돌아서려던 순간 위태스럽게 밟고 있던 돌이 굴러버렸다. 산양은 그리 먼 데 있지 않았다. 돌이 굴러내리자 내가 선 바위벼랑 정상에서 10여m 아래에서 순식간에 어미 산양과 새끼 산양이 동시에 튀어나왔다.
어미는 앞의 바위절벽을 곧장 타고 올라 사라졌지만 새끼는 허우적거리며 경사면의 측면으로 뛰었다. 험겹게 눈을 헤치며 도망가는 새끼 산양도 계곡의 벼랑에 가려 곧 사라졌다. 나는 내가 선 바위벼랑을 우회해 눈 쌓인 계곡에 몸을 맡기듯 주르르 미끄러져 내려갔다. 계곡 바닥에는 산양이 배를 깔고 눈을 헤쳐간 흔적이 길게 띠를 이루며 이어져 있었다. 그 길을 따라 50m쯤 갔을 때 새끼 산양이 맞은편 계곡 절벽을 기어오르고 있었다. 녀석은 수직에 가까운 절벽인 데다 눈까지 쌓여 중간쯤에서 오르기를 포기한 듯 나를 쳐다보며 서 있었다. 난 그곳에서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녀석의 모습은 이미 내 카메라의 파인더 안에 갇혔기 때문이다.
산양은 서식지에 확실한 증거를 남긴다. 똥자리가 그것이다. 만약 암벽등반을 하다가 산양의 똥자리를 보면 그냥 하던 그대로 그곳을 지나치면 된다. 어떤 동물이든 자신이 사는 곳에 사람이 출현하는 일은 흔히 있는 일이다. 다만 소리를 지르는 일과 같은 소란 행위는 자제해야 할 것이다. 그 때가 갓 낳은 새끼를 기르는 시기라면 어미가 새끼를 포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계속>
/ 글 사진 최현명 조경·동물연구가·<야생동물 흔적도감>(최태영 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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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양이 좋아하는 서식지는 인적이 드물고 가파른 비탈과 바위가 많은 산림지대다. 산양이 험하고 거친 암석지대를 생활 근거지로 삼는 것은 저지대는 혼잡하고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바위가 많은 산악지대는 먹이가 적다는 불리함이 있지만, 경쟁이 적고, 한 지역을 독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