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 서사기행 30 / 미라보 거리Mirabeau street
로통드 분수대
미라보 거리에서 미라보 거리에 바람이 분다 어떤 바람은 쉬어서 가라 하고 어떤 바람은 그냥 지나가라 한다 이 눈치 저 눈치 엿보며 한 생을 살아온 그대 어떤 바람은 여기서 살라 하고 다른 바람은 그대가 가야 할 길을 그대 홀로 가라 한다 없는 바람은 만들지 말고 있는 바람은 있는 그대로 그대도 조용히 바람 속을 흔들리라 한다 가다가 넘어져도 꽃 옆에 넘어져서 한 번 찾아낸 꽃의 힘으로 이웃의 바람소리도 알아라 한다 |
30. 미라보 거리Mirabeau street
광장에 서면 아무도 길을 잃지 않는다
남으로 가면 햇살 바르고
북으로 떠나면 바람을 만난다
동으로 가면 그리움을 만나고
서쪽으로 가면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만난다
어느 곳으로 길을 떠나든
광장에 서면 아무도 춥지 않다
광장은 온갖 우주의 중심
광장은 드넓은 인간의 집이다
모든 집은 우주로 통하기에
광장에 발 딛고 서 있는 한
아무도 서럽지 않다
그대 길이 여기 있으니 홀로 길을 떠나라 한다
그대가 보라
엑스의 로통드 분수대에 서면
세 여신은 그대가 어느 길로 가겠느냐고
그대에게 길을 묻는다
로통드 분수대 Fontaine de La Rotonde -
로통드 분수대는 이 도시의 관문이자
역사의 추억 속으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1860년에 세워진 분수대는 엑스의 자존심이자
자랑스런 자화상이다
생통토냉 및 퓌보 마을에서 가져온 돌로 제작된
원형의 받침수반은 크고 우아하다
세 여신상은 허공에 고요하다
여신의 얼굴에는 평화가 서려 있다
아무리 바쁜 나그네도 이곳에선 서두르지 않아도 좋다
받침수반은 높이 12미터 지름 32미터
받침수반 위에 다시
지름 15미터의 중간수반
중간수반 위의 꼭대기에는
각기 다른 세 조각가가 제작한 세 여신이
서로 다른 쪽을 바라보고 서 있다
남쪽 마르세이유 방향을 바라보는 신은
농업과 상업을 주관하는 여신
쿠르 미라보 쪽을 바라보는 신은 정의와 사법의 여신
북쪽 아비뇽 방면을 바라보는 신은 예술의 여신
수반에 넘실대는 물은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베르통 강에서 수로로 끌어들인 물
미라보 광장의 세잔느 동상
광장 한편의 보도 위에
화가 세잔느의 동상이 서 있다
화가는 방금 등에 화구를 짊어지고
손에는 지팡이를 든 채
이제 막 길을 떠날 채비를 하고 있는 모습
먼 곳을 응시하는 화가의 표정에는
오가는 세간의 번다한 근심이 없다
미라보 거리 양편과
동상 주변에 늘어선 키 큰 플라타너스는
그늘이 깊어 한가롭다
어떤 이는 사진을 찍을 분위기가 아니라 하고
어떤 이는 사진 찍을 분위기로
이보다 좋은 곳이 어디 있겠느냔다
사람 마음은 오고가는 것
햇살 한 폭만 달리 비쳐도 신으로 모시고
빗방울 하나만 떨어져도 우상이라 한다
가치는 언제나 개인의 마음속에 있던가
삶은 아무 말이 없는데
인간의 마음은 쉬지 못한다
고흐의 카페 테라스에 오후의 햇살 비낀다
세잔느의 화실에 수목의 그늘이 진다
미네 학교 골목길에
에밀 졸라의 고독이 저문다
오후의 플라타너스가 조용히 쉰다
엑스의 미라보 거리에
얼마나 숱한 이방인이 다녀갔으랴
얼마나 많은 나그네가 자신의 애환을 부려놓고
이곳을 떠나갔을까
‘엑상 프로방스’, 줄여서 ‘엑스’의 명성은
방금도 찬연하다
수많은 여행자가
물 많은 도시 엑스에 고인 햇살을 보고 간다
그러나 애석하여라
물 많은 도시에도 물이 줄어들고 있다
분수의 수도 자꾸만 줄어드는 형국
물은 문명에 시달리고
늘어나는 사람에 부대끼고
흥청대는 상업성에 돌아눕는 물이 많다
한 번 등을 돌린 물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세계 3대 폭포 가운데 하나인
아프리카 빅토리아 폭포가 메말라가는 중이라는 소식은
우리 가슴을 아프게 한다
북유럽의 빙하가 녹아
해빙의 속도를 맞추지 못하는 순록 떼가
먹을거리를 잃고 방황하고 있다는 소식은
나를 잠 못 들게 한다
환경파괴로 아이슬란드의 얼음이 녹아
생태계의 지도가 급속도로 변화하는 사실은
나를 슬프게 한다
이 아름다운 행성 지구는
인간들만의 행성이 아니다
세랭게티 평원의 사자가 떠나면
인간의 서식지도 사라지리라
누와 얼룩말과 버펄로의 무리가 사라지면
인간의 마을도 폐허로 돌아가리라
그리하여 고갈된 물은 옛 낙원을 돌려주지 않으리라
생 빅투아르 산의 수목이 줄어들면
세잔느인들 마음이 편하겠는가
햇살이 줄어들면 고흐인들
텅 빈 어깨에 내린 그늘이 더욱 무겁지 않겠는가
한없이 아름다운 이 행성은
이래저래 마음이 편치 않다
물 많은 거리에
물이 줄어든다는 소식은
바람 속을 떠도는 여행자인 나를 슬프게 한다
미라보 거리에 바람이 분다
바람은 와서 내 귀에 대고
네 몸에 부는 바람도 알고
너의 이웃에 부는 바람소리도 알아라 한다
그 낯선 바람들의 이마를 짚어주며
오래 서로 어울려 살라 한다
(이어짐)
첫댓글 앉아서 프랑스의 여행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