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
김광한
「유토피아」란 이상국(理想國)을 말한다. 1516년 토마스 모어란 영국 작가가 쓴 이 책의 내용은 사회구조의 모순에서 야기 되는 인간적 갈등과 문명(文明)비판, 그리고 여기에서 더 나아가 인간에게 친정 평화로운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에 대한 내용을 담았다. 작가는 농업을 기반으로 가(家)가 맡은 일에 충실하고, 아무도 간섭하지 않으며, 간섭받지 않는 마치 요순시대의 공산(共産)사회를 이상국(理想國)이라고 표현했다. 문명이란 인간에게 참으로 편리한 것이긴 하지만, 편하다는 것이 정신적 인 만정을 뜻해야지, 잘 먹고, 널찍한 집에 살고, 빠르고 편한 교통기관을 이용해 가고 싶은 곳을 가는 그런 편안함을 의미한다면 진정한 안락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빠른 교통기관을 만들어 내면, 그걸 관리하는 사람이 있고, 또 관리의 등급이 있게 되고, 수익의 과다가 있고, 여기에서 파생되는 인간의 이기심이 개입되어 사람은 빠른 교통기관을 이용하는 편안함보다 오히려 정신적으로는 더욱 피곤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유토피아는 현실에 존재할 수 있는가. 사람들은 유토피아는 없다고들 말한다. 왜냐 하면 인간이란 원래 이기심이 강한 동물이기 때문이다. 어쩌다 좋은 물건이 하나 생긴다고 하자. 그 물건을 보는 순간 사람들은 숨어 있던 욕심이 발동되어 평소에는 성인군자처럼 행세하던 사람도 이상한 말을 꺼내면서 자신의 지분을 주장하고, 인격이 비천한 자는 주먹을 앞세우며 상을 험하게 만들면서 자기 것이라 떠들어댄다. 이런 인간들을 상대로 설혹 유토피아 왕국을 만든다고 한들 그것이 그대로 잘 유지가 될 것인가. 문명이란 인간의 육체를 편안하게 해줄지언정 정신적인 안락함까지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일찍이 폴 고갱이란 화가는 문명이 싫어서 문명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남쪽의 타이티란 나라에 가서 원주민 여자와 결혼, 자식까지 두었다. 그래서 그가 평생 동안 그린 그림의 소재는 자연(自然)과 자연에 가까운 순박한 원주민들이었다. 물건이 생기면 같이 나눠 쓰고, 같이 먹고, 사랑하는 사회는 문명보다 문명이 아닌 사회에서 더 잘 이뤄지고 있다.
숫자를 알게 되는 순간부터 사람이란 영악한 마음이 들고, 하나라도 더 가지려는 욕심이 생기게 되는 법이다. 「어린 왕
자」의 저자인 생텍쥐베리는 인간의 부질없는 욕심에 대해 우화(愚話)를 사용하여 질책했다. 밤하늘에 떠 있는 별에 소유권을 인정하게끔 하는 정부(政府)가 있다면 사람들은 제각기 줄을 서서 등기부 등본을 만들어 달라고 싸움질을 하게 될 것이다. 작가는 사실은 아무런 필요도 없는 쳐다보는 대상, 꿈과 동경의 대상을 현실화시키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빗대어 그렸다. 그리고 작가 나름대로의 진정한 행복을 제시했다.
일찍이 중국의 육조(六朝)시대의 대시인 도연명은 이런 시를 읊었다.
「울밑의 국화 한 송이를 꺾어 놓고 느긋이 남산을 내려다본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 도원경(桃源境)이란 세계를 그렸다. 토 마스 모어의 유토피아가 서양적 이상국이라면 도연명의 도원 경의 세계는 동양의 유토피아인 것이다. 그것은 도화원기(桃花源記)에 기록되어 있는데 여기의 내용은 이렇다.
「동진 시대 무릉(武陵)에 사는 한 어부가 복숭아꽃이 아름답게 떠내려 오는 시냇물을 따라가 보았다. 복숭아꽃이 피어 있는 곳이 어디인가. 어부는 호기심을 갖고 계속 따라 올라갔다. 한참을 올라가 보니 갑자기 복숭아나무로 뒤덮인 숲이 나왔다. 복숭아 숲 주위에는 아름다운 갖가지 꽃이 만발하여 있었다. 그 꽃들에게서 나오는 향기는 이 세상의 속된 향기가 아니었다. 어부는 그 아름다움에 흠뻑 취하여 자신도 모르게 그 숲을 계속 따라 올라가 보았다. 한참 올라가다 보니 복숭아나무 숲이 끝나는 지점에 산이 가로 막혀 있고 굴이 눈에 띠었다. 어부는 배를 버리고 굴속으로 들어갔다. 굴의 입구는 매우 비좁고 어두웠지만 수십 보 걸어 들어가니 갑자기 훤해지면서 별천지가 나타났다. 넓은 평야, 가지런히 세워진 건물, 논두렁, 밭두렁이 보이고 비옥한 전답과 연못, 뽕나무와 대나무가 보기 좋게 어우러져 있었으며 수탉이 울고, 삽사리가 꼬리를 반기고 있었다.
어쩌면 그렇게 평온하고 아름다운 풍경 안 어부는 자기 눈 을 의심했다. 사람들은 각자 생업에 열중하여 해가 뜨면 밭에 나가 일하고 해가 지면 집에 들어와 편히 쉬는 요순시절의 태평성대를 누리고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이곳에 사는 주민들의 선조가 진(泰)나라 때 난리를 피하여 이곳에 옮겨왔다는 것이며 그 후 오랫동안 외계(外界)와 단절되어 오늘날까지 지내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외계에서는 이미 진나라에 이어 전한(前漢), 후한(後漢), 삼국, 서진의 시대가 지났다는 것도 까마득하게 모르고 있었다. 어부는 그곳에서 꿈과 같은 며칠 동안을 머무른 후, 그들과 작별을 고했다. 어부는 가족들을 데리고 다시 그곳에 와서 살 작정으로 돌아오는 길에 여러 군데에 표시를 해 놓았다. 그러나 가족들을 이끌고 그가 표시해 놓은 장소를 찾아갔으나 무릉도원은 결코 나타나지 않았다.
어부의 이야기를 들은 동리 사람들은 그곳을 찾으려고 몇 차례 나셨지만 다시는 찾지 못했다.」
또 후세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도원경은 확실히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러나 그런 곳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은 선량한 마음을 가진 시인이 어 지러운 세상의 괴로움을 맛본 끝에 찾고픈 동경하고 그리던 그저 이상향에 불과한 것이다. 도원경은 확실히 비현실적인 것임에 틀림없으나 당시의 현실과 비교해 볼 때 진 ·선 ·미와 거짓, 추악함과는 확실히 구별되는 곳이다.」
얼마 전까지 우리 선조들은 초가(草家)에서 살았다. 초가란 농경민족의 독특한 가옥 형태이다. 추수한 볏 짚단을 올려서 지붕을 만들고 그 아래에서 우리의 선조들은 방을 꾸며 살았다. 겨울에는 화로를 만들어 방을 훈훈하게 만들고 구들을 놓아 따뜻하게 만들었다. 이 방에서 우리의 선조들은 옛날이야기를 하면서 정답게, 꿈을 가꾸며 살았는데 비록 가진 것은 단조로운 물건에 불과했지만 정이 오가고 효성스런 자식들에 의해 노인들이 공경 받는 그런 생활을 해 왔다.
그런데 농촌 근대화니 새마을 사업이니 하는 것에 밀려 초가지붕이 슬레이트로 변했고, 이어서 아파트란 주거형태가 생겨났다. 아파트는 참으로 편한 주거공간임에는 분명한 듯하다.
그러나 아파트가 고총화, 고급화되고 나서부터 사람 사는 공간은 윤택해졌는지 모르지만 사람들의 꿈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 돼 버렸다. 돈에 눈이 멀어 제 아비 어미 알기를 발톱의 때만큼도 여기지 않는 불효자식들이 양산되고 돈 때문에 강도들이 드나들고, 사람을 죽이고, 부동산 투기를 하는 복부인들이 설쳐대는 세상이 되어 버리고 말았으니 문명이란 과연 우리에게 '필요선' 인가하는 문제가 생긴다.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나 도연명의 무릉도원 같은 곳은 없다고 치더라도, 인간의 본질을 순수하게 만드는 공간, 그런 공 간마저 없어진다는 것은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유토피아를 생 각 할 꿈마저 상실됐을 때, 사람은 이미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잃어버리고 마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