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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agaser
예수님의 제자훈련 2 (계 1:12-16)
12 몸을 돌이켜 나에게 말한 음성을 알아보려고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13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14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15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 16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오늘도 이어서 “계시록에서 본 예수님의 제자훈련”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시아 일곱 교회에 나타나신 예수님의 모습은 금 촛대 사이에 계신 인자 예수님이셨습니다. 금 촛대는 신령한 교회이고, 인자는 육체를 입고 오셨을 때 예수님께서 제자들 앞에서 자기를 일컫던 명칭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 모습은 지금도 우리를 향하신 제자훈련이 계속되고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먼저는 교회를 통해서 혹은 개인의 경건생활과 섭리를 통하여 각인에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우연으로 보지 말고 훈련 상황으로 인식하시기 바랍니다. 교회의 양육도 여러분의 삶도 훈련상황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도는 큰 환난 가운데서 나온 자들입니다.
계속하여 제자로서 받아야 할 훈련은 무엇일까요?
5. 겸손훈련입니다.
15절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여기 주석 같은 발은 심판과 연단의 발입니다. 먼저 발의 의미는 수10:24에 여호수아가 잡아온 왕들을 놓고 “이 왕들의 목을 발로 밟으라” 했고, 행2:34-35에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신 것처럼 발은 심판과 승리의 상징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발은 누구도 항거할 수 없는 발입니다.
그리고 풀무불은 강철을 녹이는 뜨거운 용광로로 벧전4:12-13에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한 것처럼 환난과 연단의 상징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 모습으로 원수 사탄을 밟으셨을 뿐 아니라 또 밟아야 할 것이 있는데 바로 우리의 완고하고 교만한 내 중심의 자아입니다. 나를 내려놓으면 좋으련만 우리 인간 얼마나 어리석고 완악하여 자기를 내려놓지 못하는지 그래서 예수님은 어떤 완악한 것도 산산조각으로 부수시고 녹이시는 강한 모습으로 나타나십니다.
그러므로 교만한 내 중심의 자아가 아니라 하나님 중심의 자아로 새로워지시기 바랍니다. 겸손과 자아교환은 경건훈련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래서 마20:28에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하셨고, 빌2:5-8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러면서 하나님이셨지만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다고 했습니다. 바울도 나는 날마다 죽노라 했습니다.
제자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마19:37-39에 제자들에게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하셨습니다.
자기 현명함도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사55:8-9에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했습니다. 이 어리석음 인정해야 우리 인생이 복됩니다. 자기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겸손히 순종하십시요. 순종하는 것만이 연단의 과정을 속히 이수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6. 묵상훈련입니다.
15절 하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주의 음성이 물로 비유되고 있습니다. 물은 말씀입니다. 그런데 많은 물소리는 말씀의 증거가 많아 부정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모습입니다. 히12:1에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했던 것과 같습니다.
성경을 깊이 묵상하면 오병이어로 여자와 아이 외에도 5000명이 먹고도 12광주리나 남았듯이 모두가 먹고도 남습니다. 주의 종들이 성경을 묵상하면 메시지가 넘쳐서 온 교인들을 먹이고도 남습니다. 히3:1에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한 것처럼 하나님과 그 말씀을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사실 방향은 달랐지만 이런 묵상을 우리가 해오고 있었습니다. 무슨 일에 상처 받고 그걸 못 잊고 밤새토록 잠을 못 이루면서 생각하고 또 생각(묵상)하다가 마음이 지옥으로 변하고 맙니다. 묵상의 원리가 그런 원리입니다. 이젠 묵상의 내용을 바꿔서 해보세요. 날마다 나를 택해주신 사랑의 하나님과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신 그리고 함께 하신 보혜사 성령님을 생각하고 감사하고 찬송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예수와 함께 죄가 죽고 예수와 함께 의가 살고 예수와 함께 하늘에 앉혀져 아들의 영광과 권세와 승리를 누리게 하시는 등 영원한 영광으로 구원해 주신 것을 묵상하며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안에 모든 것이 다 들어 있어 예수님을 모시되 영화롭게 모실 때 그 안의 모든 복이 나의 것이 되는 그 진리를 묵상하고 있노라면 그렇게 감격스러울 수가 없고 믿는 대로 이루어짐을 봅니다.
그런데 자기를 비운다고 무념무상하는 그런 묵상은 이교적인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하나님만 간절히 사모한다는 것이지 목석처럼 되는 것이 아닙니다. 피동적 마음에는 사탄이 틈타기 쉽습니다. 사탄이 광명의 천사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기독교적 묵상은 우리의 사고의 기관이 정상으로 작동하는 가운데 하나님께 기도하고 성경 연구하고 외우고 믿고 감사하고 찬양하는 묵상이 우리가 드려야 할 묵상입니다.
그래서 시1:2에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했습니다. 즐거워한다는 이 말씀 속에 기독교 묵상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전5:2에도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 그만큼 정신 차려 마음과 사고가 정상으로 작동하는 가운데 온당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시기 바랍니다.
바울이나 프란시스가 얼마나 예수님을 깊이 생각했든지 몸에 성은이 생겼다고 하지 않습니까? 무디 선생이 그렇게 묵상했다고 합니다. 그랬기에 위대한 부흥사가 된 것입니다. 그랬기에 감격을 전하고 그랬기에 모두가 그 감격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보면서 혹은 고요히 혹은 경건서적을 보면서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가 너무 귀해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춤을 추지 않고는 견딜 수 없도록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요절도 외우시기 바랍니다. 이런 묵상을 통하여 성도는 눈물과 감격이 있는 위대한 신앙인으로 만들어집니다.
7. 기도의 훈련입니다.
16절 "그 오른손에 일곱별이 있고" 별은 주의 종들이요, 오른손은 능력과 권세의 손입니다. 이 모습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능력의 손으로 붙들고 계신다는 의미요, 우리 역시 내 뜻과 내 힘이 아니라 온전히 하나님의 뜻과 능력의 팔에 붙들려야 한다는 메시지입니다.
먼저 주의 뜻대로 해야 합니다. 내 비전을 이루려고 하거나 성령을 부려서는 안 됩니다. "주의 종이 여기 있나이다. 제가 무엇을 하리이까?" 이래야 쓰임을 받습니다. 그래서 시123:1-2에 “하늘에 계시는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상전의 손을 바라보는 종들의 눈 같이, 여주인의 손을 바라보는 여종의 눈 같이 우리의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기다리나이다” 했습니다.
바울이 위대한 것도 행 22장을 보면 “주님 누구시니이까”(8절) 한 후에 10절을 보면 “주님 무엇을 하리이까”라고 여쭌 것입니다. 진즉 여쭈었다면 그가 예수 이름을 박해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처럼 주 뜻대로 되기를 구하는 기도훈련을 해야 합니다.
다음은 능력 충만을 구해야 합니다. 산파가 돕지만 산모가 힘을 써야 하듯이 나도 힘을 써야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마음을 다하여 전심으로 기도한 것과 같습니다. 대하16:9에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그랬고, 골1:29에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했습니다.
유다의 아사 왕이 전심으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은 결과 적군이 아사의 손에서 벗어나고 나라에 전쟁이 있게 됩니다. 이처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지 않으면 하나님의 일도 할 수 없고 시험에 들고 넘어지고 쓰러집니다. 그래서 주님의 손에 붙잡힌 사역훈련은 기도훈련입니다. 다니엘처럼 하루 3번씩 최소한 3시간은 하나님께 소리 내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8. 분별의 훈련입니다.
16절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날선 검은 심령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는 밝히 드러내는 분별의 말씀입니다(히4:12). 제물이 제사장의 검에 의해 부위별로 정리되듯 참된 말씀은 우리에게 확신과 영적체험을 줍니다. 말씀이 체험이 되고 반복되는 말씀이 나의 훈련이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단에 대해서 입의 검으로 싸우셨듯 좌우에 날선 검은 거짓교사와 이단에 대한 예리한 분별력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비교종교학과 사이비이단학을 공부하며 그 분야의 전공에도 힘쓰시기 바랍니다. 최고의 사이비종교학은 먼저 우리가 믿는 정통신앙을 밝히 아는 것입니다. 아시아 일곱 교회에 이단이 침투한 것도 정통신앙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바른 진리를 알면 잘못된 것은 다 드러납니다. 신학도 필요합니다. 성경을 믿지 교리는 믿지 않는다는 말은 무지한 말입니다.
신학이란 성경의 골자를 간추린 것으로 그런 과정을 거침으로서만이 우리의 사고가 성경의 내용을 인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리를 부정하는 그 자신도 결국은 나름대로 성경을 교리화해서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잘못하면 '내가복음'이 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정통신학의 틀 안에서 열심히 성경을 연구하고 앞서간 위대한 선배들의 저서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9. 기쁨의 훈련입니다.
16절 “그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예수님의 얼굴이 해와 같이 발광체여야 맞는데 왜 달과 같이 피광체일까요? 이렇게 묘사한 것은 우리에게 그렇게 살기를 원하신다는 메시지입니다. 힘 있게 비추신 것은 그만큼 우리가 밝게 살기가 어렵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 기쁨의 훈련 황수관 박사님처럼 열심히 하는데 가장 어렵습니다. 한 편으로는 기쁘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교회 걱정, 나라 걱정 너무나 어두울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약의 선지자들은 주의 얼굴의 광채를 비춰주셔서 구원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빌1:27에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했습니다. 거울을 보십시오. 표정은 어떻습니까? 얼굴이 복음화되셨습니까? 아직도 어둡습니까? 절망 가운데 있습니까? 슬픔 가운데 있습니까? 사랑 받는 사람은 얼굴에 후광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생각하며 항상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웃으면서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그렇게 빛나게 사는 훈련도 열심히 하시기 바랍니다.
시34:5에 “그들이 주를 앙망하고 광채를 내었으니 그들의 얼굴은 부끄럽지 아니하리로다” 했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행복이 넘쳐서 얼굴에 빛이 나기를 바랍니다. 우리들의 모습만 봐도 하나님을 보는 것 같고 천국을 보는 것 같고 모두에게 부러움이 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쁨의 훈련 열심히 하시기 바랍니다. 주바라기처럼 주님을 바라보며 해와 같이 빛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교역자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가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을 믿을 뿐 아니라 더욱 힘써 사랑하고 사랑할 뿐 아니라 본받으시기 바랍니다. 서툴고 넘어져도 온전해질 날이 올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말씀은 제자훈련의 입문 중에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오리엔테이션과 같은 대목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화평훈련 충성훈련 개혁훈련 성결훈련 겸손훈련 묵상훈련 기도훈련 분별훈련 기쁨훈련에 힘써서 예수님께서 여러분과 온전히 함께 하시고 또 가장 사랑 받는 예수님의 수제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