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부재로 인해 일어날 뻔 한 비극
한 부부가 결혼한지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부부싸움이 멈춰질 기색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날마다 계속되는 다툼의 연속에 지치고 지친 아내가 한 숨을 쉬면서 말했습니다.
“이제 그만하자, 이렇게 날마다 싸울봐에야 우리가 함께 살아갈 이유가 어디있겠어!”
남편이 질세라 댓구를 했습니다.
“헤어질 바에야 왜 싸우겠어. 그냥 헤어지만 그만이지....그러나 우리는 희망이 있으니까 싸우는 것 아니겠어. 서로 하나되기 위해서 싸우는 거야!”
여러분은 누구 말이 맞다고 생각하십니까?
이렇게 싸울봐에야 헤어지자는 의견과
하나되기 위해 싸우는데 어떻게 헤어져 하는 의견사이에서
어디에 한 표를 던지고 싶으신가요?
잘 살기 위해서 잘 싸우는 것이 아니라
잘 대화하고 의견을 조율하는 법을 배워야합니다.
사랑은 내 고집을 주장하고
상대방의 의견을 무시하고 짓밟는 것이 아니라
경청해 주는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것
그것이 사랑이 아닐까요?
내 마음대로 이해하고
내 마음대로 판단하고
내 마음대로 처단해 버리면 살아남을 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그 교훈을 주기위해 그리스 사람들은 프로크루스테스 (Procrustes)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는 아테네 근처에 살았던 악명 높은 강도로, 지나가는 나그네들을 자신의 집에 초대하여 '맞춤 침대'에 눕게 했습니다.
손님의 키가 침대보다 크면 튀어나온 팔이나 다리, 머리를 잘라 죽이고,
키가 침대보다 작으면 몸을 잡아 늘여서 죽였습니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이름 자체는 그리스어로 '잡아 늘이는 자'라는 뜻입니다.
이 이야기는 영웅 테세우스(Theseus)의 모험 중 하나로, 결국 테세우스가 프로크루스테스를 붙잡아 그가 남들에게 했던 똑같은 방식으로 처단하면서 끝이 납니다.
오늘날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Procrustean bed)'라는 표현은 자신의 독단적인 기준이나 편견에 다른 사람이나 사물을 억지로 맞추려 하는 횡포를 비유하는 관용구로 사용됩니다.
여호수아 22장에서도 하마터면 이스라엘이 팔 잘리고 목 잘리는 비참한 비극이 일어날 사건이 발생합니다.
여호수아서는 24장으로 되어져 12장까지는 가나안 정복 13장부터 가나안 분배입니다.
13장부터 남은 지파들에게 땅 분배를 마치고, 이제 전쟁을 위하여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헌신한 2지파 반의 전사들이 그들의 거주지 요단동편으로 가게 됩니다. 7년 이상 계속된 전쟁속에서 그들은 얼마나 가족들이 그립고 보고 싶었겠습니까?
여호수아는 그들의 수고에 칭찬하고, 그들에게 다시금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당부하고 축복하고 돌려보냅니다.
(수 22:5) “오직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명령한 명령과 율법을 반드시 행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계명을 지켜 그에게 친근히 하고 너희의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그를 섬길지니라 하고”
그들은 전리품들을 가지고 금의환향했을 것입니다. 가족들과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 재회가 이루어졌을까요?
요단강을 사이에 두고 있는 2지파반과 9지파반의 모습, 어느날 9지파 반 사람들이 요단 동편을 보다가 깜짝 놀라게 됩니다. 그곳에 보기에 큰 제단이 보이는 것입니다.
그 소문이 요단 서편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들리면서 이 두 지파 반에 대해 분노하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세워진 실로에 있는 유일한 제단을 무시하고 자신들만의 제사를 위해 다른 장소에 제단을 세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제단이 둘로 나뉘어지면 이스라엘의 공동체도 둘로 나뉘어질 수 있다고 하는 위기감이 그들에게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두 지파 반의 행동을 하나님과 이스라엘 전체 공동체에 반역하는 행위로 규정하고 군대를 소집하여 그들을 심판하려 했습니다.
그들은 다행히 바로 전쟁을 벌이지 않고, 사람들을 보냅니다.
긴급하게 각 지파에서 한 지도자씩을 선출한 10명과 대표자로 성질이 급하고 결단력있는 엘리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진상조사위원회를 결성하여 나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들의 상황을 물어보지도 않고, 다짜고짜 그들을 책망합니다.
“[16] 여호와의 온 회중이 말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이스라엘 하나님께 범죄하여 오늘 여호와를 따르는 데서 돌아서서 너희를 위하여 제단을 쌓아 너희가 오늘 여호와께 거역하고자 하느냐 [17] 브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회중에 재앙이 내렸으나 오늘까지 우리가 그 죄에서 정결함을 받지 못하였거늘 그 죄악이 우리에게 부족하여서 [18] 오늘 너희가 돌이켜 여호와를 따르지 아니하려고 하느냐 너희가 오늘 여호와를 배역하면 내일은 그가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 진노하시리라”(수 22:16-18)
실로외에 다른 곳에 제단을 쌓는 것은 이스라엘을 범죄케 한 발람이 브올에서 저지른 죄악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 죄악은 아간의 죄와 같아서 하나님의 영광을 탐하여 온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패배하게 한 원인과 같다는 그들의 의견을 말했습니다.
그러자 두지파반의 사람들은 분노하거나 감정적으로 대하지 않고 그들은 먼저 기도했습니다.
“우리가 제단을 쌓은 것이 돌이켜 여호와를 따르지 아니하려 함이거나 또는 그 위에 번제나 소제를 드리려 함이거나 또는 화목제물을 드리려 함이거든 여호와는 친히 벌하시옵소서”(수 22:23)
그리고 차분히 그들의 의견을 피력했습니다.
비록 제단을 쌓았지만 번제나 화목제를 드리기 위해 쌓은 제단이 아닙니다. 이 제단은 3가지 목적으로 쌓았습니다.
1) 우리도 한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있음을 알리기 위함이요.
2) 이스라엘 지파간의 같은 신앙의 연대의식을 가지고 있음을 알리고,
3) 후손들을 위한 교육을 위해서 입니다.
“[25] 너희 르우벤 자손 갓 자손아 여호와께서 우리와 너희 사이에 요단으로 경계를 삼으셨나니 너희는 여호와께 받을 분깃이 없느니라 하여 너희의 자손이 우리 자손에게 여호와 경외하기를 그치게 할까 하여 [26] 우리가 말하기를 우리가 이제 한 제단 쌓기를 준비하자 하였노니 이는 번제를 위함도 아니요 다른 제사를 위함도 아니라 [27] 우리가 여호와 앞에서 우리의 번제와 우리의 다른 제사와 우리의 화목제로 섬기는 것을 우리와 너희 사이와 우리의 후대 사이에 증거가 되게 할 뿐으로서 너희 자손들이 후일에 우리 자손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여호와께 받을 분깃이 없다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28] 우리가 말하였거니와 만일 그들이 후일에 우리에게나 우리 후대에게 이같이 말하면 우리가 말하기를 우리 조상이 지은 여호와의 제단 모형을 보라 이는 번제를 위한 것도 아니요 다른 제사를 위한 것도 아니라 오직 우리와 너희 사이에 증거만 되게 할 뿐이라 [29] 우리가 번제나 소제나 다른 제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성막 앞에 있는 제단 외에 제단을 쌓음으로 여호와를 거역하고 오늘 여호와를 따르는 데에서 돌아서려는 것은 결단코 아니라 하리라”(수 22:25-29)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무 문제될 것이 없었습니다. 또 다른 신앙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더욱 견고히 하기 위한 그들의 설명을 듣고 모든 오해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중요한 고백을 하게 됩니다.
“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자손에게 이르되 우리가 오늘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 줄을 아노니 이는 너희가 이 죄를 여호와께 범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너희가 이제 이스라엘 자손을 여호와의 손에서 건져내었느니라 하고”(수 22:31)
그리고 그 제단을 엣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이 그 제단을 엣이라 불렀으니 우리 사이에 이 제단은 여호와께서 하나님이 되시는 증거라 함이었더라”(수 22:34)
엣이라는 말은 증거라는 말입니다. 바로 여호와께서 하나님이 되신다는 증거이고,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 중에 계시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중에 계시다는 증거는 성경의 지식보다도, 소리 높은 찬양보다도 더욱 중요한 것은 그분의 속성, 사랑과 연합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우리 중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가장 중요한 선포입니다.
“[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4-35)
말세가 될수록 교회에 분란이 더 많이 생길 수 있습니다. 사탄이 교회를 시험하기 때문입니다.
왜 교회가 저래! 교회가 비난의 대상이 되면, 교회만 욕을 당하는 것뿐 아니라 그들이 섬기는 하나님이 욕을 당하게 됩니다. 엄청난 갈등과 분쟁이 일어날 사건이 이렇게 평화롭게 해결됨으로 분쟁의 근원이 될 뻔한 것이 완전히 화평의 원인이 되었기에 이것이야 말로 여호와께서 참 하나님이라는 증거가 되었다. 오해가 될 뻔 하다가 바르게 화목하게 되면 하나님이 우리 중에 계시는 증거가 된다. 여호와게서 하나님이 되시는 증거를 해피앤딩으로 보여줍니다. 이런 것이 증거이다. 예수의 제자됨의 참된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백성 사이는 연합과 우애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하신 바이다. 십자가에 못 박히기 바로 전에 드리신 그리스도의 기도는 당신의 제자들로 하여금 당신께서 아버지와 하나가 되신 것처럼 하나가 되게 하여 세상으로 하나님께서 당신을 보내신 것을 믿게 하려 함이었다. ... 우리는 진리의 한 원칙도 희생하지 말아야 하는 동시에 이같은 연합의 상태에 도달해야 함이 우리의 끊임없는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 증거이다. ”(부조, 520)
Autumn Leaves | 가을 단풍
https://youtu.be/VdCEzKPLzWg
그안에 거하라/ 가을풍경
https://youtu.be/Q8-im_zLDkY?list=RDQ8-im_zLDkY
아담 오실자의 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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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A01WZSnwDoY?list=PLghoOxePMNT7rzmFf1O7_HORuecwycgB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