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수상(隨想) 봉혜선 큰아들은 해병대 출신이다. 훈련병 시절 천자봉에 오른 사진이 홈페이지에 올랐고 마지막 날에는 수료식 사진이 올라왔다. 각종 수상(授賞)자로 대(臺)에 오른 몇 명을 찍은 사진 끝 쪽에 조금 삐져나온 발이 아무래도 아들 것 같았다. 시상자 해병대장의 모습을 직접 대면하는 자리에 부동자세로 상기되어 있는 모습 중에 흐트러진 발에서도 아들을 느끼다니, 사진이 입체이며 온기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일까. 저런 상태로 수상 대상이 되다니 반가운 마음도 잠시, 얼른 들어가 넣어주고 싶었다. 비밀 소식이 있다면서 기대하라는 편지에 담긴 수수께끼를 풀었다.
독자적인 결정으로 단행한 해병대였다. 해병 출신 아들은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해양대학으로 선회했다. 수상(水上)생활을 자원한 건 해병대 훈련병 시절 ‘무적해병상’을 받은(受賞) 이유였을까? 해병 생활을 한 연평도 시절 동안 바다를 바라보던 아이의 무엇이 마음을 바다로 이끌었던 걸까. 아버지를 벗어난 독립을 꿈꾼 것일까. 군 생활이 무사하기만을 바라던 나와는 다른 길에 섰었나보다.
대학 3학년이면 실습생으로 회사 배를 타는데 군 면제를 받는 같은 학부에 진학한 어린 동기들보다 실습 성적이 우수했다. 해병 생활을 거쳤으므로 군에 간 것처럼 열심히 실습에 임했다고 했다. 항해과를 졸업한 아들은 주로 철광석과 석탄을 수입하거나 대륙 간 이동하는 일을 하는 회사에 취직했다.
한국의 당진, 포항, 광양을 출발한 빈 배가 호주 최북단 항구에 닿는 건 20여 일만이다. 레이더가 다른 배를 감지해 항해 길을 돌리자면 브레이크를 밟은 지 30여분이 지나야 방향을 튼다는 배의 크기는 짐작만으로는 가늠하기 쉽지 않다. 63빌딩이 옆으로 누운 정도라는 설명에도 안전이 궁금하기만 하다. 20만 톤이 넘는 광물을 싣고 내리는 작업은 컨베이어 벨트가 하루24시간 가동해 3~4일이면 가능하다. 한 번 항해를 시작하면 6개월은 귀가하지 못하는 동안 선상, 즉 수상(水上)생활을 하는 나날이다.
수상생활을 하는 것이 직업의 주다. 동물이 바다에서 진화되었다는 설에 기대어 물 위의 생활이 낯설지 않다고 위무해본다. 베네치아에서처럼 물 위에 집을 짓고 지내지는 않는다. 어촌의 생활이 그렇듯 덕장이 있어 조업하거나 물질로 해산물을 채취하러 바다로 들어가지 않는다. 낚시하기 등으로 물고기 떼를 찾아다니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니다. 물속의 것들을 탐하지 않는다고 해서 수상생활을 하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다. 바다로 놀러가자는 말이 스쿠버 다이빙만을 겨냥한 말이 아니라 바닷가를 가리키듯 바다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의미를 품게 되었다.
수상이 주 무대인 항해사는 좁은 땅을 벗어나 대륙보다 6배 넓은 바다를, 물의 길과 바람의 길, 별의 길을 따라 오가는 가슴 넓은 사나이다. 좌우로 흔들리는 롤링과 앞뒤로 흔들리는 피칭을 온몸으로 맞으며 ‘다 받아주는 바다’ 세상에 나서 있다. 뗏목, 통나무배로부터 선박왕 오나시스로 더 알려져 있는 그리스 선박, 바이킹족의 배, 아메리카를 발견한 콜롬버스의 산타 마리아호, 자유를 찾아 떠난 메이플라워호, 풀턴의 증기선 등 세계 역사는 배의 항해로 인해 굵직굵직한 선을 그어 왔고 지평을 넓혔다. 영국이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인 것, 유럽 중심의 세상이 신대륙 미국을 ‘발견’하고 오늘에 이른 것 등 역사는 항해 기술에 기대어 변화, 발전했다. 발전하고 진보하며 변화의 발걸음을 옮길 수 있는 건 수상(水上)으로 교통하고 나서서라고 할 수 있다. 특수 직업이 아니라 개척자로서 수상생활은 재평가되어야 한다.
아들이 항해를 나간 지 5년이 되었다. 명절은 물론 집안의 각종 행사에 참석하지 못하는 큰 아들의 휴가 일정에 맞춰 외식 메뉴 등을 알아보고 있다. 내 위무일 수도 있는 먹이고 싶은 걸 다 먹으면 수상생활을 잘 버티고 올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다. 손잡는 것을 친밀의 표시로 여기는 나는 항해 후 주어지는 약 2개월의 휴가 기간 동안 아들의 손을 자주 잡는다. 관상, 수상(手上), 족상, 팔자 등을 믿는 건 아니지만 어느 해인가는 아들의 手相을 살펴보았다. 손금 어디에 수상생활을 하는 금이 그어져 있는가 하는 의구심과 탐구심은 빛을 보지 못했지만.
최초의 인류는 수상(樹上)에서 생활했다고 알려져 있다. 집을 지을 수 없는 상태에서 사나운 동물을 피할 수 있는 곳은 나무 위라는 것이다. 나무를 바라보며 평화와 안식을 느끼는 마음은 태초를 가리키는 원심력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생각한다.’ 로 생각을 넓혔다. 생각에 대해 남긴 글을 찾아가 보자. 먼저 떠오르는 책은 몽테뉴의 『수상록隨想錄』이다. 물 흐르듯 전개되는 글은 원하는 주제를 곱씹을수록 다가오는 의미가 진해진다. 『수상록』을 아들에게 보내는 소포에 담았다. 바다를 바라보며 수상이 깊어지기를 바라는 엄마의 비원도 전해지려나.
요즘(2020~)은 코로나-19로 하 수상(殊常, 愁傷)한 시절을 지나고 있는 시기라 아들은 우리나라는 물론 어느 나라에 닿아도 뭍으로 내리지 못한다. 한국에 도착했다는 소식에도 아들을 만나러 배에 오를 수 없다. 방선 신청을 하고 주민등록증을 세 번이나 보여야 만날 수 있는 때가 오히려 화양연화였다. 3등, 2등 항해사 때와는 달리 수상생활에 노련해진 1등 항해사는 부모가 방선하면 눈치가 보인다고 했다.
자식에 이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것이 어미 된 자의 마음이리라. 우리나라 말로는 같지만 서로 다른 한자를 쓰는 수상에 대해 주목하게 되었다. 알랭 드 보통의 같은 의미에 대해 다른 표현을 하는 것이 작가들에게 필요 덕목이라는 말에도 부합되는 사고이리라.
아들이 항해를 나간 지 5년이 되었다. 명절은 물론 집안의 각종 행사에 참석하지 못하는 큰 아들의 휴가 일정에 맞춰 외식 메뉴 등을 알아보고 있다. 내 위무일 수도 있는 먹이고 싶은 걸 다 먹으면 수상생활을 잘 버티고 올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다. 손잡는 것을 친밀의 표시로 여기는 나는 항해 후 주어지는 약 2개월의 휴가 기간 동안 아들의 손을 자주 잡는다. 관상, 수상(手上), 족상, 팔자 등을 믿는 건 아니지만 어느 해인가는 아들의 手相을 살펴보았다. 손금 어디에 수상생활을 하는 금이 그어져 있는가 하는 의구심과 탐구심은 빛을 보지 못했지만.
대학에 다니고 있을 때 나는 서클 활동으로 타임(TIME)지를 강독하는 반에 적을 두었다. 마가렛 대처여사가 영국 수상(首相)일 때였다. 여자 정치가로 최고의 자리에 오른 대처 수상에게서 자극받은 우리 서클에서는 대처 수상이 이목을 끌 때마다 해당 칼럼을 다루었다. 내가 주목한 건 청년 실업률에 대해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기사였다. 한 가족에게 가장이나 가족의 취업과 실업이 끼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하던 고학년 때였다. 그로부터 얼마마한 시간이 눈 한번 질끈 감았다 뜬 순간에 세월이라는 이름으로 지나버렸는지. 대처 수상의 염려를 불식하고 막힌 길 끝을 벗어나 희망을 꽃피우고 있는 아들을 생각하는 엄마의 작은 수상록(隨想錄)이다.
‘세계를 받아들일 수 있는 가슴으로!’ 40년 내내 유효한 구호.
<<한국산문 이사회 수필선 운현궁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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