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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50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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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수상 노다지 1
마음자리 추천 0 조회 241 23.10.29 08:27 댓글 35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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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3.10.29 08:40

    첫댓글 그랬기에 글에 그렇게 상상력이 많이 묻어나나봅니다.
    문화적으로 참 풍요했었네요.ㅎ

  • 작성자 23.10.29 09:30

    전후 십년 쯤 후의 일이니 정말
    시대적 상황에 비해 문화적으로
    참 풍요로운 혜택을 받고 자랐던
    것 같습니다.
    어머니가 그런 쪽을 좋아하셨고
    우리 남매들이 그래서 다같이
    큰 혜택과 사랑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 23.10.29 08:42

    막둥이는 참 좋겠어요.
    이미 누나나 형들하고
    문화수준이 같아지니까요.
    저도 잼난 얘기 하나 할께요.
    사촌 여동생 막둥이인데
    사촌오빠가 대학생였거든요.
    사촌동생 초등학교 3학년인데 팝송을 멋드러지게 부르더라구요.
    놀라기도 했지만 무척 부러웠어요.
    우리때는 중학교 가야 영어 배우잖아요.

    아라비아 로렌스 정말정말 괜찮은 영화였어요. 저는요 얼마나 감동했는지 영화이야기도 제 티스토리에 써 놓았어요.
    007영화도 무척 많이 봤는데요.

  • 작성자 23.10.29 09:34

    두 형과 두 누나.
    제 큰 복 중 하나였습니다.
    형과 누나들이 안 끼워줄려고 할 수록
    더 필사적으로 끼어들곤 했어요. ㅎㅎ
    나무랑님도 세 세상을 만나는 영화들, 많이 좋아하셨군요.

  • 23.10.29 09:02

    국민학교를 들어가기 전부터 영화를 보았다니 부럽습니다

    나는 국민학교 2학년 때 쯤부터 아버지를 따라다니면서 영화를 보았습니다

    그 이후에 영화 감상에 취미가 붙어서

    결국 내나이 40 살 때까지 영화광이 되었지용

    충성 우하하하하하

  • 작성자 23.10.29 09:35

    실제로는 경험할 수 없는 세상을
    마음껏 경험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영화 덕분에 많은 것을 보고 배웠습니다.

  • 23.10.29 09:07


    마음자리님이 부러운 것이
    바깥 세상의 눈 뜨임입니다.

    언니 오빠들이 많은 아이들이
    사춘기에 빨리 젖어 들고
    정신연령이 빠른 것 같았습니다.

    맏이들은 부모님과 선생님, 어른들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않는 데서

    부모님의 사랑과 관심을 받아들이는 데
    어긋나지 않을려고요.ㅎ
    오빠, 언니가 많은 친구들을 부러워 했습니다.

  • 작성자 23.10.29 09:54

    콩꽃님이 맏이시지요?
    답글로 예전 수필방 단상으로
    올렸던 동시 하나 붙입니다.

    <큰형은 불쌍해>

    나 어릴 적 큰형은
    아버지랑 함께 잤지

    무뚝뚝한 아버지
    담배 태우는 아버지
    코까지 크게 고는
    아버지랑 함께 잤지

    나는
    엄마 젖 만지작거리며
    누나들과 작은형과
    동요도 부르고
    옛이야기도 하다가
    어느틈에 스르륵
    잠들었는데

    나 어릴 적 큰형은
    아버지랑 함께 잤지

    동요도 못 부르고
    옛이야기도 못하고
    애써 귀 막으며
    아버지랑 함께 잤지

    큰형은 참 불쌍해

  • 23.10.29 10:22

    @마음자리
    ㅎㅎ 마음자리님,
    이래서 순수한 님의 마음을 압니다.

    시대적 영향도 커지요.
    봉건적 가부장적인 가정에다
    엄부자모의 시절이었지요.

    문화적 절벽시대도 .

    내 동생은 언니가 제일 사랑을 많이 받았다고 해요.
    맏딸인 내 친구는 '맏딸 스트레스' 라고 하더군요.^^

  • 작성자 23.10.29 10:25

    @콩꽃 저희 집도 그랬습니다.
    아버지 어머니의 가장 큰 사랑은
    큰형이었어요.
    아버지 어머니의 자부심이기도 했고요.
    어머닌 저에게 '니는 막내라 대충 키웠다.' 하시곤 했어요. ㅎㅎ
    콩꽃님도 올바르고 곧으셔서
    부모님께서 많이 사랑하셨을
    겁니다.

  • 23.10.29 12:14

    저는 장남인 탓인지 형제 간의
    기억은 없습니다만

    어린시절, 만화 그리고
    학창시절 마음님 처럼
    셰계 멍작 전집, 영화가 꿈의 나래를 펴는
    그런 보물 창고였던 것 같습니다.

    다음 보물 창고는 무엇인지
    건필 기대 합니다.

  • 작성자 23.10.29 15:33

    어머닌 살림이 빠듯하셨을 텐데도
    저희가 영화를 보거나 책이나 만화를
    보는 것에 관대하셨습니다.
    덕분에 제 삶이 풍성했던 것 같습니다.

  • 삭제된 댓글 입니다.

  • 작성자 23.10.29 16:20

    구봉님, 건강하시지요?
    뜸하셔서 가을 타시는가 했습니다. ㅎ
    문화교실, 기억하시는군요.

  • 23.10.29 16:36

    마음자리님 어릴 때 부터 호기심과
    열정이 있으셨네요

    영화에는 세상 견문을 넓혀 주는
    이야기가 다양하지요
    그래서인지 박식하시고
    마음이 풍성하십니다

  • 작성자 23.10.29 16:52

    네. 호기심 많은 아이였고 지금도 호기심이 큽니다. ㅎㅎ
    영화든 소설이든 만화든 이야기 듣기를 아주 좋아했습니다.

  • 23.10.29 21:20

    마음님은 도시에 살아서
    유년기부터 문화생활을 즐기셨네요.

    저는 첩첩산중에 살았는데
    전깃불이 초등6학년때쯤 들어왔을거예요.
    호롱불 아래서 공부하고 나면
    콧구멍이 그울려서 시커맸구요.

    근데
    지금은 그 유년의 시골정서가
    저에게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노다지네요.ㅋㅋ

    마음님의 유년시절은
    감히 상상조차 해볼 수 없는
    신세계였을 것 같습니다.

    노다지 연재 은근 기대 만땅입니다^^

  • 작성자 23.10.29 22:42

    제 외가와 큰집이 그랬습니다.
    초6년 겨울방학 때까지 호롱불을
    썼고, 저는 그게 좋아 방학만 되면
    외가를 갔습니다. 외할머니 도 보고싶고...
    그 추억도 저에겐 보물입니다.
    노다지 캐러 지금 곧 뉴멕시코로
    출발합니다. 캐면 조금 나누어 드리겠습니다. ㅎㅎ

  • 23.10.29 23:14

    제가 수필방에서
    꼭 챙겨보는 몇분의 글이 있는데
    마음자리님도 그중 한분이세요^^
    본문이나 댓글들에서 저의 어린시절도
    소환해 봅니다.

  • 작성자 23.10.30 01:44

    읽으시고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해솔정님 추억도 소환해서 나누어 주시면 수필방의 가을날이 더욱 깊어질 것 같습니다.

  • 삭제된 댓글 입니다.

  • 작성자 23.10.30 12:39

    저도 그런 것 같다고 느낍니다.
    되돌아 보니 걸어온 길에 참 많은
    노다지가 있었는데 모르고 지나쳤구나... 란 생각도 자주 듭니다.

  • 23.10.30 13:28

    몇몇글을 읽어보니 님께서는 미국에 사시는것 같네요
    나는 20대에 한국을 떠나 60대가 되었는데
    당시는 내가 살던 동내 분위기는 5년 이지나면 꼭 시민권을 취득해야 하는줄 알았지요
    인터뷰도 그리 어렵지 않았고 그런후 911 테러 사건후부터 아주 어렵다 하더군요
    요 며칠전에 우리동내에선 시장판 분위기에 술과 음식 파는곳 비용은 한국 호텔쯤
    젊은 한국인과 나이먹은 씨리즌 노인과 술김에 시끄럽다며 싸움이 벌어졌는데
    주인이 신고를해 순식간에 들이닥친 경찰에 다 잡혀 갔다네요
    다음날 노인은 나오고 젊은이는 다른절차를 기다려야 한다네요
    마음자리님은 미국에 오래 사셨으니 당연 시리즌 이시겠지요?

  • 작성자 23.10.31 11:59

    나이컨님은 미국 사신지 오래 되셨네요. 전 15년째 살고 있고 영주권자입니다. 국적은 그냥 대한국인으로 살다가 가고싶어 안 바꿀 생각입니다.

  • 작성자 23.10.31 11:59

    나이컨님은 미국 사신지 오래 되셨네요. 전 15년째 살고 있고 영주권자입니다. 국적은 그냥 대한국인으로 살다가 가고싶어 안 바꿀 생각입니다.

  • 작성자 23.10.31 12:00

    나이컨님은 미국 사신지 오래 되셨네요. 전 15년째 살고 있고 영주권자입니다. 국적은 그냥 대한국인으로 살다가 가고싶어 안 바꿀 생각입니다.

  • 23.10.30 14:08

    대한극장, 대도극장이라면
    대구인가요?
    저는 시골에서 자랐기에 가끔 오는
    가설극장에서 처음 영화를
    접했습니다.
    마음자리 님 글을 읽으니까 옛날생각이 납니다.
    영화 한 번 보겠다고 어두운 산길을
    동네 언니 오빠들 따라 갔던
    일이 그립게 떠오르네요.

  • 작성자 23.10.31 12:05

    대한극장 대도극장을 아시네요.
    네. 대구입니다.
    남문시장 입구, 길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고 있던...

  • 23.10.30 15:20

    누나 형 많은 막내 부럽네요.
    맏이인 저는 아버지와 영화 보러 다녔습니다.
    영화를 엄청 즐기시던 아버지와
    극장의 프로그램이 바뀔 때마다
    영화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먹던 단팥죽은 덤이었습니다.

  • 작성자 23.10.31 12:09

    아버님과 함께 했던 영화추억도
    참 기억에 강하게 남을 것 같습니다. 저는 아버지 목말타고 딱 한번 같이 영화 보러갔던 추억이 있습니다.

  • 23.10.30 16:35

    일찍 오락을 아셨습니다.
    영화의 재미를 다 아시고요.
    꼬마 마음자리님은
    늘 귀여운 아이로 연상됩니다.

    저는 여덟 살에 극장에 처음
    가 봤습니다.
    뉴스가 무성이더군요.

  • 작성자 23.10.31 12:14

    형들과 누나들 각 2명씩 둔
    덕분에 어릴적 호강이 많았습니다.
    변사가 있는 무성영화 이야기는
    큰형에게서 많이 들었지요.
    그중에 기억 남는 변사의 멘트가 있는데,
    서부 영화 끝 장면.
    악당과 주인공의 결투 장면에서
    변사가 하는 말.
    악당: "받아랏"
    주인공: "줘야 받지.."
    했답니다. ㅎㅎ

  • 23.10.30 20:48

    저와 통하는 부분이 있군요.
    언제인가 영화에 관한 글을 썼었는데..

    저 역시 유년 시절 영화에 관심이 많았어요.
    영화 관람을 선물로 받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였고..
    좋은 성적표를 어머니께 건네며 영화관 가자고 조르던 시절이 아련하게 떠오릅니다.

    전쟁을 모티브로 한 영화나 공포 영화..심지어 무술 영화..등등 암울했던 시절 치고는
    그 장르가 다양했던 것 같습니다.
    "시네마 천국"이란 영화에 토토라는 아이를 보면..제가 투영되곤하죠.

    살아 보니 그때 그 시절이 행복했습니다.



  • 작성자 23.10.31 12:17

    그러셨군요.
    저는 초딩시절엔 영화 보겠다고 열심히 구슬 따서 팔고 딱지 따서 팔고... 용돈 아껴 보태고 해서 영화보러 다녔습니다. ㅎㅎ

  • 23.11.03 01:44

    시골에서 자란 나도 언니따라 영화보려가는 시간이 커다란 문화교실 시간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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