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고향에서 쫓겨났다.
어려서는 이복형제와 싸우면서 자랐고, 커서는 사촌과 육촌의 배신 속에서 두려워했다.
가난하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들쥐를 잡아먹으며 연명했고, 내가 살던 땅에서는 시든 나무마다 비린내, 마른 나무마다 누린내만 났다. 천신만고 끝에 부족장이 된 뒤에도 가난한 백성들을 위해 적진을 누비면서 먹을 것을 찾아다녔다. 나는 먹을 것을 훔치고 빼앗기 위해 수많은 전쟁을 벌였다. 목숨을 건 전쟁이 내 직업이고, 유일한 일이었다.
작은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그림자 말고는 친구도 없고, 꼬리 말고는 채찍도 없는 데서 자랐다. 내가 세계를 정복하는 데 동원한 몽골인은 병사로는 고작 10만, 백성으로는 어린애, 노인까지 합쳐 2백만도 되지 않았다. 내가 말을 타고 달리기에 세상이 너무 좁았다고 말할 수는 있어도 결코 내가 큰 것은 아니었다.
배운 게 없다고, 힘이 약하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글이라고는 내 이름도 쓸 줄 몰랐고, 지혜로는 안다 자모카를 당할 수 없었으며, 힘으로는 내 동생 카사르한테도 졌다. 그 대신 나는 남의 말에 항상 귀를 기울였고, 그런 내 귀는 나를 현명하게 가르쳤다. 나는 힘이 없기 때문에 평생 친구와 동지들을 많이 사귀었다. 그들은 나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나를 위해 비가 오는 들판에서 밤새도록 비를 막아주고, 나를 위해 끼니를 굶었다. 나도 그들을 위해 목숨을 걸고 전쟁터를 누볐고, 그들을 위해 의리를 지켰다. 나는 내 동지와 처자식들이 부드러운 비단옷을 입고, 빛나는 보석으로 치장하고, 진귀한 음식을 실컷 먹는 것을 꿈꾸었다. 나는 죽을 때까지 쉬지 않고 달린 끝에 그 꿈을 이루었다. 아니, 그 꿈을 향해 달렸을 뿐이다.
너무 막막하다고, 그래서 포기해야겠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목에 칼을 쓰고도 탈출했고, 땡볕이 내리쬐는 더운 여름날 양털 속에 하루 종일 숨어 땀을 비 오듯이 흘렸다. 뺨에 화살을 맞고 죽었다 살아나기도 했고, 가슴에 화살을 맞고 꼬리가 빠져라 도망친 적도 있었다. 적에게 포위되어 빗발치는 화살을 칼로 쳐내며, 어떤 것은 미처 막지 못해 내 부하들이 대신 몸으로 맞으면서 탈출한 적도 있었다. 나는 전쟁을 할 때면 언제나 죽음을 무릅쓰고 싸웠고, 그래서 마지막에는 반드시 이겼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극도의 절망감과 죽음의 공포가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아는가? 나는 사랑하는 아내가 납치됐을 때도, 아내가 남의 자식을 낳았을 때도 눈을 감지 않았다. 숨죽이는 분노가 더 무섭다는 것을 적들은 알지 못했다.
나는 전쟁에 져서 내 자식과 부하들이 뿔뿔이 흩어져 돌아오지 못하는 참담한 현실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더 큰 복수를 결심했다. 군사 1백 명으로 적군 1만 명과 마주쳤을 때에도 바위처럼 꿈쩍하지 않았다. 숨이 끊어지기 전에는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나는 죽기도 전에 먼저 죽는 사람을 경멸했다. 숨을 쉴 수 있는 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나는 흘러가 버린 과거에 매달리지 않고 아직 결정되지 않은 미래를 개척해 나갔다.
알고 보니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깡그리 쓸어버렸다.
나 자신을 극복하자 나는 칭기스칸이 되었다.
출처: '밀레니엄맨 칭기즈칸'에서
<몽골비사가 말하는 칭기즈칸>
‘몽골비사’에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어 주목할 만하다. 알탄 칸(금나라의 황제)이 타타르가 자신에 복종하지 않자 칭기즈칸에 협력을 요청하고 칭기즈칸이 타타르를 정벌한다. 이 때 칭기즈칸이 받은 칭호가 '자오드 코리(札兀忽里)'다(몽골비사 134절).
여기서 말하는 자오드는 족장을 의미하는 말이다. 쉽게 말해 코리족의 족장이라는 말이다. 이 코리는 바로 고리·고리국·구리(고구리·고구려) 등을 의미한다. 칭기즈칸은 이 호칭에 대해 대체로 만족스러워했다고 한다. 당시 칭기즈칸은 자오드(札兀) 이상의 제후인 '제후타오(招討) 코리'를 요청했으나 금의 승상 옹깅이 그것은 대금황제에게 결정하도록 요청해보겠다고 하면서 떠났다고 한다.
몽골 전문가인 박원길 교수는 고구려는 기원적으로 몽골과 유사성을 가진 민족으로 단언한다. 부여·고구려의 시조의 어머님인 유화부인은 중세 몽골에서 버드나무꽃(Uda-Checheg)으로 다시 복원된다고 한다. 그리고 금·후금의 삼신할머니인 포도마마는 다름 아닌 버드나무(Uda)를 의미한다고 한다.
몽골계나 부여·고구려·금(만주) 민족의 발원지로 알려져 있는 흑룡강 중상류 일대에서 무성한 가지를 자랑하는 나무는 버드나무밖에는 없다는 것이다.(박원길, ‘유라시아 초원제국의 샤머니즘’(민속원 : 2001) 82쪽)
이상의 기록으로 보면 칭기즈칸은 분명히 코리족의 족장이었으며 금나라와 긴밀한 관계를 가지면서 성장해왔고 후일 세계정복을 하는 과정에서 남으로 이동하여 금나라를 병합했다. 그리고 금나라와 힘을 합해 중국경영에 나선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먼 후일 청 태조(신라 귀족의 후손)가 북으로 몽골의 주요부족을 통일하고 그들과 함께 다시 남으로 내려가 중국경영에 나섰다는 것이다. 방향만 다를 뿐 결국은 유사한 역사가 되풀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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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세상흐름 큰공부 원문보기 글쓴이: 새마옹
첫댓글 네에 탓하지아니하고 주어진대로 살겠습니다.마님 잘지내구 게시지요
우리나라를 절단내고,삼별초와우리의 아낙네를 엄청나게 짖밟고 유린한,고려시대의80 여년 !!!! 징기스칸을 영웅시 보다는 원수같은 생각은 저 뿐인가 모르겠습니다. 괜한 딴지 걸자는 게 아니라, 이런 어두웠던,그림자도 있다는 뜻입니다. 오해 없기 바랍니다.
얼마전에 방영된 징기스칸 을 감명깊게 본적이있습니다 영웅에 정신과 역사를 잘배우고갑니다
hulk님 의견에 공감하는바 있슴니다. 그런데요. 청태조가 신라인의 후예라는 역사적 사실이 있슴니다. 다음 카페에서 청태조 검색해보세여.시간 나시면.글구 딴지라고 생각하지 안슴니다. 서연님 늘 수고하심에 감사감사,부끄럽네요.건승하세요.판사님두여.
이번 10일 저녘에 고양정모에서 뵐수있길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