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호박 추억
김세명
'애호박 손대면 도둑. 주지' 수필가 일행과 사찰 입구에 도착하자 베니아 판에 검정색 매직으로 쓴 글씨가 보였다. 얼마나 애호박을 도둑 맞았으면 절 입구에다 저렇게 썼을까 생각하면서 자세히 보니 돌담 사이로 애호박이 보이고 풀 사이에도 보니 애호박 서너 개가 수줍은 듯 숨어 있었다.
차마 ‘놈’자를 생략해서 그렇지 '애호박 손대는 놈은 도둑놈' 이란 뜻일 게다. 사찰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일주문을 지나 대웅전에 들어서니 똑같은 글씨체로 '개 조심' 이라고 씌어져 있어 돌아보니 커다란 황구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는데 짖지는 않고 늘어진 귀가 순해 보였다.
천년사찰에 속인들이나 씀직한 단어들이 있어서 처사에게 물어보니 이 사찰은 비구니(여승)들만 수양하고 있다고 했다. 듣고 보니 요사채 안에는 10여명의 여승이 있고 얼굴로 보아 20대 전후가 분명 했다. 우리 일행과 눈이 마주치자 얼굴에 홍조를 띈 채 외면햇다.
그래서였구나! '개 조심'이란 글씨는 분명 여승들에게는 안심을, 나쁜 마음으로 접근하려는 속인들에게는 겁을 주는 효과가 있으리라. 그 처사의 글씨임이 분명했다. 그러면 그렇지! 이 고찰의 주지가 속인들이나 쓸 용어를 쓸 리 없고 처사가 스님들의 공양을 위해 애호박을 재배하여 요리로 쓸 게다.
나는 애호박에 남다른 추억이 있다. 젊을 때 공군을 지원하여 친구와 함께 대전의 공군교육단에 입교하였다. 친구는 이름이 '知德(지덕)'인데 별명이 "지털'로 이름을 부를 때마다 웃음이 났다. 성과 함께 부르면 무슨 욕을 하는 것 같아서엿다.
성이 '조'씨였으니 그냥 '조지'까지는 미국식 이름 같아서 '조지 워싱턴' 하면 종씨라고 좋아했지만 끝 자가 맘에 안 들고 그냥 '지털' 이라고 부르면 다정하고 발음하기도 좋앗다. 그런데 성과 함께 이름만 대도 웃음보가 터져 사람이 좋아 '재떨이'로 볼러도 조상덕을 본 사람은 자기뿐이라고 좋아했다.
청운의 꿈이 파란 하늘처럼 싱그러워 고생이라기보다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심으로 시험을 치러 지원입대하였다. 비행기를 타 본다는 건 희망사항이고 악전고투하며 훈련을 받는데 매일 사역으로 비행장 부근 공터에 호박을 심고 애호박을 따 부식을 조달했다. 그 당시에는 전군이 자급자족 열풍으로 휩싸였었다. 이건 전부 훈련병들의 몫이었다.
비행기와는 관련도 없는 노역으로 하루 빨리 훈련소를 떠나는 게 희망사항이었다. 사역도 일과시간에는 교육을 받고 일과 후에 해야 했다. 매일 달력에 하루가 가면 그 날을 가위표로 지웠다. 똥통을 메고 사역을 가면서도 군가를 불렀다. '대전서 유성 간에 젊은 청춘이 모여드는 우리 항공병 학교...' 학교 좋아 하네! 대전 쪽에다는 오줌도 안 싼다!' 고 푸념이 나오고 매일 호박국에 호박반찬이었다.
저녁이면 비행장 주변 보초를 서는 것도 훈련병 몫이었다. 친구는 고된 훈련 중에도 웃음을 주는 청량제였다. 하는 짓도 고문관이라 그 친구 때문에 단체기합을 받을 때는 나까지 얼굴이 붉어지지만 훈련병에게 인기라 전우애가 남달랐다. '지털아! 너 성질 다 죽었다'고 하면 사고를 쳤다.
한 번은 야간에 보초를 서다 그 친구가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철조망에다 총을 걸어 놓고 인근 여군 막사에 가 여군들의 점호 모습을 훔쳐보다가 여군초병에게 들켰다. 그 당시는 육군 삼관구사령부 산하 여군 막사가 비행장 부근에 있었다. 훈련병들이 보기엔 애호박 사역 때문에 쌓인 불만의 표출이라고 짐작했다. 그러나 누구도 말할 수 없는 상황이라 '지털이‘ 덕에 우리는 다 '죽었다'는 말이 여기 저기서 나왔다. 당시에는 훈련병 중 한 사람이 잘못하면 가차 없이 단체기합이 있었기에 각오를 해야했고 명령에 따라 전원 연병장에 집합하였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 처벌 받아야 할 '조지덕'과 사단장은 나란히 사단장찝차를 타고 입장하는 게 아닌가? 별이 번쩍이는 사단장의 양 어깨에 비하여 그의 의기소침한 모습이 영 대조적이었다. 모두가 눈이 휘둥그래져서 바라보는데 사단장은 훈화를 통해 영창을 가야할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 귀관의 행위는 잘못되었지만 대한민국 공군으로 대단한 용기를 높이 치하(?)한다’며 특별휴가를 명하는 게 아닌가? 금일봉 휴가비와 함께 은전을 베풀었다.
나는 친구의 일이 내일처럼 느낀 터라 천당과 지옥을 왕래한 듯 묘한 기분인데 동료들은 우뢰와 같은 박수를 쳤다. 처벌보다 격려로 훈련병의 사기를 올려 준 것이다. 동병상련이랄까? 모든 훈련병들은 애호박사역과 고된 훈련 그리고 보초 때문에 불평이 많았으나 훈화에 감동되어 눈 녹듯이 불평은 사라지고 감동이 연출 되었다. 사단장은 군법으로 처벌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멋진 결단은 그의 이름도 한 몫 하였을 것이다. 고생하는 훈련병들에게는 정을 주었고 공군의 사기를 올려 주었으니 말이다.
상전벽해라 할까, 지금은 그 훈련소가 없어지고 아파트와 도시 시설이 들어서 있어 추억의 장소로만 기억되지만 나는 가끔 '호박 같은 세상 둥글둥글` 하다가도 살기 어려워 고통 받는 서민이 어려울 때는 드라마 같이 멋진 결단을 내려주는 지도자가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해 본다.
사찰의 처사가 '애호박 손대면 도둑' '개 조심' 같이 어울리지 않지만 사연을 알고 보면 이해하고 멋진 결단이 훈련병에게 사기를 올려 준 것처럼 함께 어울려 사는 세상, 평범한 데 감동이 있고 희망을 꿈꾸는 것처럼 서로 한 발씩 양보하는 희망을 보여주면 어떨까?
어려울 때면 친구가 생각나고 그 시절이 떠오르고 어려운 사람에게 질책보다는 격려가 훨씬 좋다. 애호박에 관한 추억을 접고 사찰을 나설 때는 저녁노을이 흘러온 세월만큼 긴 그림자를 남기고 있었다. ( 2007년 여름)
첫댓글 언젠가 면회가던 대전의그곳이 생각나는군요.외출과 면회가엇갈려 헛탕치고 왔엇던.......그땐 핸폰도 없엇지요.지난추억은 아름답군요.
세상을 날고 기는 사람이라도 군복을 입혀 놓으면 좀 변하는 것 같습니다. 양복을 짝 빼입고 엘리트 생활을 하다가, 예비군복을 입으면 달라지듯이.군대생활 추억의 한토막입니다.
군대건 사회건 누구 한 사람 때문에 웃을일이 있다면 행운이지요....그 사람 때문에 단체로 매 맞을 수도 있지만 ....여군들의 막사가 얼마나 궁금했을까???ㅎㅎㅎㅎ
여군 막사를 훔쳐본게 대단한 용기였다고 금일봉에 특별휴가? 어째 좀 이상하네요~ 어쨋든 단체기합으로 끝났으면 추억에 남질 았았을텐데 천국과 지옥을 넘나든 상황은 짐작이 되네요.
서점에 진열되어 있는 책 중 언뜻 보이는 책한권.... " * 지털 그것이 알고싶다!"..... 호기심에 얼른 들어보니.... " 디지털 그것이 알고 싶다!"...ㅎㅎㅎㅎ
오늘도 애동호박 많이 따서 겨우살이 준비 하였네요~. 우리 남정내들에겐 군대 시절의 추억처럼 재미난게 없지요~~~ㅎㅎㅎ. 좋은글 잘 보고 갑니다. 편안한 휴일 저녁 되세요. 감사 합니다.
여군 막사 ,,내용을 좀더 ,,세밀하게 ,,리얼하게 ,,,,,,,,,,,,,,,,읽고 도 싶은데 ,,,어쩌지요,,,,,,,,
그쵸그쵸..아잉~늠늠 궁금..ㅋㅋ
그러면 조털 못혀
애호박 볶음으로 추억보다 찐한 맛 한번 맹그러 볼람미드`ㅋㅋ
그땐 1963년도 니까 상상이 않되지요 ! 지금은 인터넷 소원수리 그런거 땜에 규정대로.... 그때 군대는 까라면깔수밖에 뭐 그런 시절ㅋㅋㅋㅋ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