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는 당시에도 이봉창, 윤봉길과 같은 20대를 희생시켜 명세를 얻었다는 비판을 받았었어
게다가 자기 명성 때문에 독립운동단체 합체 하지 않음 ....(김구를 제외하고는 '해방'이라는 큰 목표를 수립하기 위해서 많은 단체가 힘을 모음)
게다가 친일파 논란
너무 길면 번호 매긴 제목만 읽어줘!
1.백색테러
김구는 중도주의자가 아니라 강경한 반공 극우 민족주의자였으며 테러를 통해 거물급 정적들을 제거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연구의 진척이 없거나 사료 부족으로 의혹 수준에 머문 사례도 있지만, 김립 피살 사건 같이 본인이 직접 범행 사실을 밝혀 김구의 책임소재가 명백한 사례도 존재한다. 이 거물급 정적들에는 송진우, 장덕수 등이 있으며 심지어 여운형도 김구가 죽였단 의혹이 강하게 제기된다. 여기에 실패한 인물을 합치면 김일성도 있다.[38] 사실 현재 한국인이 김구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인 평화주의자, 중도적 정치성향, 통일지상주의자, 반이승만 스탠스 등은 어느정도 후대에 덧붙여진 이미지가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김구를 좌파로 보는 시각은 훗날 이승만 지지자들이 말년에 이승만과 부딪쳤던 김구의 행동을 그의 일생에 걸친 것마냥 과장하여 후대에 꾸준히 덧씌운 결과이며, 이승만과 부딪쳤으면 좌파라고 생각하는 막연하고도 무식한 생각을 기초로 한다. 김구를 중도주의자로 보는 시각은 이승만의 남한 단독정부 주장에 반대해 북한과의 통일 정부 수립을 주장한 말년의 행적을 과대 해석한 것이다. 김구는 김일성이 통일정부를 위해 애쓸 거라는 기대가 별로 없었고, 그의 방북은 이승만과의 사이가 틀어진 것+백색테러의 결과가 초래한 정치적 입지 감소를 타개하기 위해 감행한 감정적인 측면이 많았다. 다만 말년에 통일 민족정부 수립을 외면하고 분단을 고착화 시키는 단독정부수립으로 자신의 입지를 굳히려 하는 이승만의 반대점에 서게 되다보니 암살된 뒤에 용공주의자 또는 중도주의자라는 왜곡된 이미지가 덧씌워지게 되었다.
또한 김구는 이승만과 같이, 좌익을 대상으로 백색테러를 펼치기 위한 조직인 백의사를 갖추고 있었고, 테러 활동을 실행에 옮긴 바 있다. 소련 해체 이후 비밀해제된 러시아 국방성 문서를 보면 이는 조금 더 명확해진다.
2.독립운동가를 대상으로 한 테러 사주
신탁통치를 옹호했다는 이유로 백의사라는 테러단체에서 송진우, 여운형, 장덕수를 암살했는데, 여기에 김구가 관여되었다는 의혹이 있다.
만약 김구가 사상이 다르다는 이유로 송진우, 여운형, 장덕수 중 적어도 한명에 대한 암살을 지시했다면, 김구를 존경하는 사람 대부분이 김구에 대한 존경을 철회할 것이 확실시될 정도로 심각한 사안이다. 김구가 직접적으로 지시를 내린것 아니냐고 당시에도 강력히 의심은 되었지만 결정적인 증거는 나오지 않은 상태이다. 미 군정은 김구를 용의자로 의심, 반탁 데모 경고 이후 소환해서 경고를 준다. 브루스 커밍스, 리처드 로빈슨 등은 김구를 의심하고 있다.
송진우 암살건 같은 경우에는 미군정이 의심했던 사항이기는 하나,1990년대 김구암살이 재조명될때 다른 점이 발견되었다.송진우같은 경우는 임정 봉대론을 주장했으면 김구 후술하기를 "자신들에게 돈을 되주는 사람을 죽일리가 있냐"고 반문할 정도로 김구 배후론이 의심된다.
송진우는 경교장에 정치자금 900만원을 전달한점과 한민당과 임정을 합당시켜려고 했던 점을 필두로 본다면 김구의 배후설이 설득력이 떨어진다.
김구의 배후론을 주장했던 장택상의 발언의 신빙성의 의문점은 장택상 같은 경우는 임정에 원한이 있었다는 점을 들수 있고, 송진우,여운형,암살사건의 배후에 1공화국은 항상 김구배후론을 견지했다는 사실이다.(실제로 1955년 경찰 요시찰요람의 1순위가 한독당이고 2순위가 민전이었다)
조병옥도 김구를 의심하였다. 조병옥은 김구의 소행이라고 확신하였다. 조병옥은 송진우가 우파 내에서의 중도적인 입장을 견지하면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꺼려한 김구가 암살자를 고용하여 그를 죽였다는 사실을 자기는 알고 있다고 언급하기도했다.
더구나 미군정의 손에 체범된 한현우가 15년형을 언도받은것과는 달리 1951년 8월에 국회에서 이미 시내를 활보중인것이 확인되었고[41], 이에 법무차관이 체포에 노력중이라고 답변하였다.하지만 한현우는 일본에서 건너가서 살았다.더구나 1994년 다큐에서 한현우는 안두희도 1949년에 방첩대에서 서로 알고 있었다는 증언이 있었다.
이처럼 송진우 암살배후로 미군정이나 학자 브루스 커밍스, 리처드 로빈슨도 김구를 의심했고 국내에서도 조병옥과 장택상은 그를 의심했다. 최근에는 의문이 가는점이 많다.이미 1946년 1월1일의 임정포고령1호라고 부리는 임정쿠데타는 12월29일 계획되었고,한민당에 소속된 서울시내 경찰서장,유력자들은 임정의 포고령이 따르기로 한시점이 12월 29일이다.
한현우의 진술중에 김구,이승만이 자신을 의사라고 칭찬해주었다고 하는데,이것은 신뢰하기가 곤란하다. 그러나 김구의 송진우 저격이 확실하다면 1공화국이 김구를 배격하기 위해서라도 그것을 굳이 숨길필요가 없다. 하지만 의혹만이 남아있다.
3. 안중근 동생 안공근 암살 의혹
김구의 최측근이었던 안공근은 상해사변으로 상하이가 일본군에 함락되었을 때 자신의 가족보다도 김구의 어머니 곽낙원을 먼저 모시고 나왔다. 그 뒤에 자신의 가족을 데리고 나온다. 그러나 형수(안중근의 부인)을 구해내지 못했다는 이유로 김구에게 심한 질책을 당한다.백범일지에는 안공근이 자신의 가족보다 김구의 어머니를 먼저 모시고 나왔다는 내용은 없다.
김구에게 호된 질책을 당한 후 김구와 결별한 안공근은 독자적으로 활동하려고 중국 국민당에 자금지원도 요청했다. 김구는 안공근에게 준 임시정부 및 한인애국단의 대외 연락업무를 박찬익에게 넘겼다. 이후 안공근은 독자적으로 활동하던 중 상하이의 한 부두에서 사라졌었다.
안공근은 의문의 실종을 당했고, 이후 김구의 최측근 인사인 모 독립지사의 수하들이 안공근을 제거했다는 의혹이 독립운동가 후손들 사이에서 전해지고 있다.
4. 김립 암살 사주 (이거 유명)
김구는 저서 백범일지에 김립이 횡령을 했다며 자신의 암살사주를 정당화 한다. 박노자는 이러한 김구의 주장을 근거가 없다며 정면으로 반박한다. 박노자는 "1922년 초기에 상하이 임시정부가 한인사회당의 간부인 김립(1880~1922)을 “레닌이 보낸 독립운동 자금을 유용했다”고 성토한 데 이어 김구 부하인 오면직, 노종균 두 청년이 1922년 2월11일에 상하이의 거리에서 김립을 사살했다. 이 암살을 ‘정당한 응징’으로 묘사한 《백범일지》의 권위가 절대적이기에 김립이 '응분의 대가를 받았다'는 통설을 의심한 이들이 여태까지 거의 없었지만, 반병률 교수(한국외대)의 연구에 의하면 김립의 ‘횡령 행위’가 사실이라기보다는 정적이 유포한 뜬소문이었다.
김립은 블라디미르 레닌이 준 200만 루블 중 60만 루블만 가져왔는데, 김립의 암살로 나머지 140만 루블은 구경도 못하게 된다. 김립이 향락을 했다거나 중국 여자와 집을 샀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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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난 김구보다 김원봉, 장준하(박정희가 타살한 걸로 유력), 이회영 --- 이 분들이 더 많이 알려져야한다고 생각해
이밖에도 독립운동가들 정말 많은데 왜 김구만 과장포장하는지 모르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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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씨부인 맞아.. 그 말도 추가하려다 말아따 난 정설로 믿음
헐 진짜인가...ㄷㄷ
헐 여운형...????????
헐
헐..? 나 백범일지도 열심히 읽었는데.... 배신감이....
ㄹㅇ난그냥 김구는 딱 정치인이라고 생각함
진심 교수들이랑 유명한국사강사들 중에 김구 안좋게(순화해서) 생각하는사람 ㅈㄴ많은데 커뮤에서 덮어두고 무조건 통일을 위해 인생을바친 독립운동가ㅠ 이렇게 생각하는사람 너무 많아서 답답했음..
나 옛날 위인들의 실체 이런것들 알고나서 위인들 다 안믿는데 김구도 새삼 이렇다는 글을 보니 충격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