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아가씨:
현재 이녀석이 나보고 대뜸 웨딩드레스를 입어보라고 권했다. 하하. 난 그냥 꿈만
꾸고 있었는데...
나도 한번 입어볼까? 어떤 옷이 좋을까?
"아가씨!" 현재가 또 옷봐주는 아가씨에 부탁했다.
"저 바깥의 드레스도 입어 볼 수 있죠?"
"예. 여분이 있어요."
칫. 니가 내 신랑 될 사람이냐? 왜 골라주냐? 그렇지만 나도 쇼윈도의 마네킨이 입고 있던
고고하면서도 설레이는 저 웨딩드레스를 입어 보고 싶었다.
"잘 어울리시네요. 치수도 바깥의 마네킨에 입혀놓은 치수와 같은거에요."
"밖의 분하고 잘어울시네요. 결혼할 남자에요? 아니면 그냥 애인이에요?"
"결혼하시게 되면 우리 웨딩하우스를 이용해 주세요. 이 옷은 아가씨를 위한
옷같네요."탈의실에서 웨딩하우스아가씨가 나에게 한 말이다. 쿠쿠.
만화방총각:
우와. 혜지씨도 웨딩드레스 입으니까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같다.
"참 예쁘네 저 아가씨. 그렇지만 난 이병씨가 골라준 드레스가 더 맘에 들어." 정경이가
언제가부터 내이름 뒤에 꼭 씨자를 붙여 주고 있다. 기분좋다. 그래 저 설레이는 혜지씨의
드레스입은 모습보다 포근하게 느껴지는 정경이의 드레스 입은 모습이 훨씬 보기좋다.
자취생:
할말을 잊었음. 저 모습을 언어로 표현한다는건 언어도단이다. 나르키소스가 저 모습을
보았다면 결코 샘에서 자기 목숨을 버리지는 못했었으리라. 어머니! 어머니도 제 결혼식장에서 저
모습을 볼 수 있도록 노력하겠읍니다. 만화방아저씨의 모습이 왠지 초라해져 보인다.
백수아가씨:
내 모습이 현재녀석의 눈망울에서 빛났다. 거울속에 비친 하얀 내 모습이 뽀얀
설레임을 주고 있다.
후후. 여자가 결혼을 하고 싶어하는건 신부자신의 이런 모습을 보고 싶어서 일까? 이 옷을 권해준
녀석이 고맙다. 비록 내가 지금 결혼을 하기 위해 이 드레스를 입은건 아니지만, 현재녀석은
나에게 웨딩드레스를 입힌 최초의 남자다. 그러나 녀석은 나의 이런 모습을 보고 무뚝뚝하기만
하다.
만화방총각:
오늘 웨딩하우스에서 시간을 많이 소비했지만 결코 그 시간이 무료하지 않았다.
단골녀석도 마찬가질걸. 분위기로 봐서 저 둘은 이미 사랑을 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예전에 늦은
만화방에서 비친 저 둘의 뒷모습이 그렇게 정겨워 보이더니... 오늘 정경이가 옆에 있어서 그럴까?
포근해진 내 마음 때문에 저 둘의 모습이 동화같은 사랑의 모습으로 비추어진다. 저녁이나 먹으러
가자.
자취생:
아가씨. 아가씨의 모습은 혜지씨의 영상이었군요. 그 옷의 임자는 당신이 아니었습니다.
언젠가 그 옷의 신랑 될 사람은 내가 되어 그 옷의 진정한 주인될 사람 옆에 서겠습니다. 당신은
이제 그 옷을 벗어 던지고 다른 옷으로 갈아 입도록 하십시오.
오늘따라 혜지씨 그녀가 더욱 사랑스러워 미치겠다.
백수아가씨:
. 현재 저녀석 아까 내가 웨딩드레스 입은 모습보고 난 뒤부터 저렇게 떠냐? 괜히
마네킨 앞에 서서 입을 삐쭉거린다. "현재군 빨리 타." 녀석이 타고 아직도 고고한척 서 있는
마네킨을 보았다. 그래 어쩌면 저 고고한 모습은 내 마음이었는지도 모르지. 그리고 이제는 그
모습이 누구 때문에 흘러내리고 있다. 어릴때 동심으로 돌아가 그때처럼 이녀석한테 시집간다고
그래 버릴까? 지금 내 마음이 그렇다.
만화방총각:
근처 호텔라운지에서 저녁을 대접하고 싶었지만 혜지씨가 TGI로 가자고 했다. 조금
시끄러운 분위기가 오히려 더 좋게 느껴진다. 정경이도 이렇게 북적되는 분위기는
오랜만일것이다. 현재군은 배가 고팠나보다.
혜지씨가 다 못먹겠다며 반이상 쓸어준 스테이크도 남김없이 다먹었다. 입에 뭘 넣고 한말이라 잘
뚜렷하게 듣지는 못했지만 우리더러 잘어울리는 병과 병마개 같다고 했다. 이상한 표현이었지만
김새지 않게 꼭 붙어 살라는 그의 말이 참 듣기 좋았다. 그 표현이 맘에 들었는지 정경이도 답을
했다.
"두사람 어색한 듯 하면서도 참 잘 어울려요. 서로 잘 되었으면 좋겠어요. 혹시 결혼하게 되면
청첩장 보내요."
정경이의 말이 많이 앞서 갔나보다. 말이 끝나자 둘다 당황했나보다. 서로 마주보며 '에. 우리둘이
결혼을?' 이런 표정이었지만 둘다 완강한 거부의 표정은 짓지 않았다. 현재군과 혜지씨를
만화방앞에 내려다주고 정경이와 기분좋은 작별키스를 하고 집에와 차와 몸을 맡겼다.
자취생:
일주일 동안 꿈꾸며 살았다. 뭔가 알 수 없는 힘에 자꾸만 끌려 가는거 같다. 혜지씨가
자꾸 보고 싶다.
만화방에 이병씨와 정경이란 이름의 그때 그 아가씨의 정다운 모습을 자주 보았다. 행복해라.
조금 힘들다 싶은 요즘. 실의에 빠진 사람들에게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희망을 주지 않겠냐.
나도 혜지씨하고 잘되어야 할텐데.
사랑의 힘은 대단한가 보다. 요즘 대학생들이 고민이 얼마나 많냐? 나또한 고민이 없을 수 없지.
지금까지 면접에 다 떨어졌지. 매스컴에서는 힘겨운 소리만 해대고... 그러나 요즘은 올해 대졸
실업자 더 증가할 것이라는 뉴스의 보도보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조그마한 사랑얘기에 귀를
더 귀울이게 되고, 실직자들의 추운 겨울나기의 보도가 나올때면 안스럽다라고 느끼기 보다는
그곳에도 사랑은 있겠지라는 생각이 든다. 어제 방송된 전쟁영화의 무수히 죽어간 병사들의
죽음을 보면서 그 죽음보다 그의 죽음으로 인해 고향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그들의 아파하는
여인의 모습이 상상되어 눈시울 붉혔다.
여학생들이 가장 기피하는 학과 일이위가 기계공학과하고 토목공학과라며? 삭막하고 무식하다고
공대내에서도 욕먹는 그 기계공학과에도 사랑하고픈 사람들은 많다. 그리고 나도 사랑하고 싶다.
백수아가씨:
일주일 동안 꿈꾸며 살았다. 뭔가 알 수 없는 힘에 자꾸만 끌려 가는거 같다. 녀석이
자꾸 머리속에 떠오른다. 자동차학원하고 과외 때문에 만화방은 가지 못했지만 왠지 녀석이
저곳에 있을거 같아 만화방을 스칠때마다 미소가 입가에 묻었다. 철민이와 현주둘이가 좋은
인연으로 맺어져 소박한 사랑을 하게됐으면 하는 마음도 녀석 때문에 느끼는거겠지. 뉴스에서
대졸자의 실업문제가 나오면 괜히 녀석생각이 나 걱정스럽다. 실직자들의 추운 겨울나기 얘기가
나올때면 녀석이 혹시 면접같은데서 떨어지고 혼자된 자취방에서 꺼이꺼이 울고나 있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어제 전쟁영화를 보면서 그냥 이름없이 죽어가는 어떤 한 병사가 녀석과 닮아
눈시울을 붉혔다. 울엄마가 엑스트라 죽는거 한두번 봤냐고 쫑을 주긴 했지만... 라디오에서 작은
사랑얘기가 들릴때면 고향이 생각났다.
만화방총각:
한주일이 가버렸다. 오늘은 토요일이다. 오늘은 양가 부모님들이 결혼식문제로
상견례한다고 저녁약속이 잡혀있다. 만화방은 일찍 닫아야겠지. 마침 혜지씨가 들어왔다. 좀
봐달라고 할까? 참 아직도 못보여주었네. 내가 명목상 가출한다고 해놓고 여행한 동안 찍었던
사진들을...
혜지씨가 만화방을 봐준다고 했다. 10시안에는 돌아올것이라고 전하고 난 만화방을 나왔다.
자취생:
전화가 왔다. 어둠이 거의 내려앉은 저녁무렵이다.
"여보시오."
"저에요. 최"
"하하. 안녕하세요."
"여기 만화방이거든요. 혼자 있어요."
"그리 갈까요?"
"그말 할려고 전화한거에요. 그럼 기다리고 있을께요."
"예 바로 갈께요."
그녀가 만화방에 있구나. 당연히 가야쥐.
백수아가씨:
저녁때 혹시나 하고 만화방을 가보았는데 녀석은 없었다. 이병씨가 어디간다고
만화방을 봐달라고 했다. 잘됐다. 이병씨가고 나면 현재녀석 불러서 놀아야겠다. 이병씨가 준
사진들을 보았다. 많이도 돌아다녔네.
나중에 현재오면 같이 봐야지. 7시가 조금 넘어 현재녀석이 만화방에 전에 처럼 헐레벌떡 들이
닥쳤다.
"빨리 오셨네요."
"그럼요."
"여기 앉아요. 지금은 제가 주인이나 마찬가지니까." 녀석을 카운터 내가 앉은 안쪽 옆자리에
앉혔다.
"다시 만화방 아르바이트 시작했어요?"
"아니에요. 오늘만..."
"철민이랑 현주는 말 잘 듣던가요. 안들어면 내가 날라차기 시범이라도..하하."
"귀여워요. 철민이는 꼭 현재씨 같아요."
"아니 그녀석이 그렇게 멋있단 말입니까?"
"후후. 어색해하고 쑥스러워 하는 표정이 닮았다는거에요. 멋있는 부분은 하나도 안닮았지뭐."
"에이.. 참 그건 뭐에요?"
"이거 이병씨 가출했을때 찍은 사진들이래요."
"만화방아저씨가 왜 가출을 해요?"
"쿠쿠 그럴일이 있었겠지요. 난 짐작이 가지만... 그냥 현재씨는 모른채 하세요."
"뭔지 모르지만 모른채 하겠습니다. 한번 봐요.
일월일일 해뜨는 동해에서.. 그 아가씨하고 같이 있네. 일월 육일 대구 달성공원. 또 같이 있네.
십이월 이십오일 어느 성당앞에서. 여기도 같이 있군. 십이월 이십칠일 해운대 겨울바다에서 지는
해를 등지고 바다를 보며. 분위기는 다 잡고 있구만..."
"낭만적이고 좋은데요 뭘."
"가만 그 사진 좀 줘봐요."
"어떤거요?"
"그 뒤에 이십오일 성당앞에서라고 쓰인사진이요."
"이거요? 왜 이사진이 뭐 이상한가요."
"예. 그래 어쩐지 뒷 건물이 낯익다 했더니. 우리유치원 성당이잖아."
"이게요? 아닌거 같은데..."
"맞아요. 우리동네서 뭐 멀다고... 내가 모르겠어요."
"나 다닐때는 들어가는 입구가 이러지 않았는데..."
"아. 앞쪽은 몇년전에 보수를 싹 했어요. "
"아. 차라리 옛날처럼 입구가 아취형인게 더 어울리는 거 같은데..."
"그렇죠? 내가봐도 보수를 잘 못했어요."
"그렇네요. 그래도 옆에 마리아상은 그대로 있네요. 한쪽 팔밖에는 보이지않지만..."
"잠깐. 자스트 모우먼트. 우리대화가 약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지금?"
"뭐가요?" 그러고 보니 그렇네.
"혜지씨가 우리유치원 옛모습에 대해 어떻게 그렇게 잘알죠?"
"그야 내가 그 유치원을 나왔으니까..."
자취생:
그녀가 나하고 같은 유치원을 나왔다는게 쉽게 믿어지질 않는다. 그녀가 집에가서 들고온
유치원 앨범은 분명 우리집의 그것과 똑같았다. 그리고 그 앨범속 동그라미 쳐진 내 사진을
보았다. 그녀는 이미 예전부터 내가 그녀의 유치원 동기라는걸 알고 있었던거 같다. 이제 왜
그녀가 자주 나 모르겠냐고 물어 본 것의 의문이 풀렸다. 또하나의 궁금증도 풀렸다. 유치원때
나한테 시집오겠다던 그애도 바로 혜지씨였다는 걸...
기쁠 줄 알았다. 그러나 왜 이렇게 공허해 지는 것일까?
백수아가씨:
참 우연처럼 엉겹결에 녀석과 내가 유치원 동기였다는 사실을 밝혔다. 집에서 가져온
내 유치원앨범속의 동그라미 쳐진 녀석의 사진을 보고 난 그가 기뻐할 줄 알았다. 아직 내가
그때를 못잊어 하고 있음에 감격이라도 할 줄 알았다. 그러나 녀석의 표정은 무덤덤했고 조금
어두워 보였다. 그냥 "그랬군요."라는 말만 내뱉고 앉아만 있다.
자취생:
그랬군. 그녀는 단지 내가 옛날 유치원다닐때의 모습이 그리워 나한테 잘해 준거 였군.
그래서 사진도 오래된 걸 원했었고... 내가 그렇지 뭐. 유치원때 날 좋아해주던 그애를
만난것만해도 반가운 일이지 뭐.
너무 기대는 하지말자. 이제는 그녀를 단지 친구처럼만 생각하자. 지금의 내 모습은 그녀에게
단지 옛추억의 그림자밖에는 되지 않을테니까... 자리나 비켜주면 집이라도 갈텐데...
백수아가씨:
이녀석 분위기가 왜 갑자기 어두워졌지? 내가 알고 있었음에도 모른채 했다고
삐졌나?
"현재야. 다시 만나서 반가워." 난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앞으로 잘해보자는 뜻으로.
"그래요. 반가웠어요." 아직 존댓말이네.
"아직도 존댓말이야? 이제 알았잖아. 내가 너한테 시집간다고 했던 그 애란 말이야."
"그래요. 어릴때였으니까..."
"왜그래. 표정이 별로 밝지 않다?"
"집에 가게 자리좀 비켜줘요."
"내가 알고 있었는데 모른채 했다고 삐진거야?"
"뭐 그런일로 삐질것 까지야."
"그럼 왜그래?"
"그냥 뭐. 그렇네요."
"뭐가? "
"지금 내 모습이 초라해서요. 난 갈렵니다. 다음에 봐요."
"현재씨 뭐 기분 나쁜거 있어요?"
그의 서글픈 모습과 나를 스쳐 지나치는 그의 뒷모습을 보았다.
왠지 이대로 보내면 안될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의 손을 잡았다.
"나 갈렵니다. 손 놓으세요."
"뭐가 못마땅한건데... 갑자기 왜그래?"약간 언성을 높혔다.
만화방안에 혼자 남아있던 손님이 뭔가 분위기를 눈치챘는지 돈을 내고 조용히 사라져 주었다.
"난 사랑한게 죄고, 당신은 옛추억이 그리웠던게지요." 뭔 말 하는거야?
"무슨 말이에요?"
"난 현재의 당신을 사랑하게 된거고, 당신은 나의 옛모습을 그리고 있던거라는 겁니다."
그거였어? 왜 녀석이 분위기를 떨구었는지 조금씩 이해가 된다. 왜 그생각은 못했을까?
"난 착각하고 있었던거지요." 말잘하네 이녀석.
그러나 넌 지금 내가 지금의 너에게 더 사랑하는 맘이 들고 있다는건 모르는가 보지.
"난 지금의 네 모습도 좋아. 아니 더 사랑해."
그 소리를 듣고 힘이 풀려버리는 녀석의 손을 다시 잡았다. 에라 모르겠다.
고개를 다시 돌린 그에게 난 입맛춤을 했다. 녀석이 또 머쩍은 듯 눈을 똥그랗게 뜨고 내 눈동자를
주시하고 있다.
눈을 감았다. 후후. 여자가 먼저 키스를 하게 만들다니... 너 머리썼다.
발자국 소릴 들었다. 누군가 들어올려나 보다. 녀석이 먼저 느꼈나보다. 나를 살포시 그에게서
떼어놓았다.
이병씨가 들어와 우리둘의 어색한 모습을 보았다.
"하하. 만화방에 둘만 있었군요."
만화방총각: 만화방에 10시가 조금 넘어 만화방앞에 도착했다. 누군가 만화방에서 나오더니 "우쒸
또 할려나보다.씨." 그런다. 그리고 나를 보더니 "안에 녀석이 그때 그녀석이 아니구먼." 그런
혼잣말을 하고 지나쳤다. 뭐여 저녀석? 담배나 한대피고 들어갈까?
들어왔더니 현재녀석하고 혜지씨만 만화방에 있었다. 왠지 분위기가 어색해 보였다. 그리고
현재군의 입술에 묻어 있는 립스틱자욱을 보았다. 하하. 저둘도 이제는 ...
"하하 만화방에 둘만 있었군요."
자취생:
이것이 꿈만 아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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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조의 사랑이야기 - 열여덟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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