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12세기,
잘 나가던 청동기시대가 붕괴한 이유
기원전 12세기,
잘 나가던 청동기시대가 붕괴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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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200년에 일어난 청동기 시대의 붕괴는
고대 세계의 대재앙 중 하나로 묘사된다.
이 시대는 2,000년 넘게 번성했으나,
급격히 몰락하여 엄청난 결과를 초래했는데,
그렇다면 어떻게 수천 년 동안 번영하던 시대가
갑자기 끝나게 되었으며, 왜 그렇게 많은
고대 문명들이 함께 무너졌을까?
이 연속적이였던 재앙들을 살펴보며 청동기 시대를
무너뜨리고 역사적 흐름을 바꾼 사건들을 되짚어보자!
청동기 시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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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 시대는 약 기원전 3300년부터
기원전 1200년까지 지속된 역사적 시기다.
유럽에서는 이 시기를 대표하는 정착지로
잉글랜드 데번의 다트무어에 위치한
그림스파운드 같은 공동체가 있다.
금속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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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는 사회가 광물과 금속 가공 기술에
의존하게 된 첫 번째 시기였으며,
금속을 다루는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왜 청동기 시대라고 불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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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전의 석기 시대에는 부싯돌을
도구나 무기로 사용했으나,
청동기 시대에 들어서면서 점차 돌이 청동
(주석과 구리를 녹여 혼합한 금속)으로 대체되었다.
농경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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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 시대의 대부분 중앙 및 북부 유럽은
농경 사회로 이루어져, 공동체는 주로
농작물 재배와 경작지를 유지하는 데 의존했다.
청동기 시대 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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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중해와 근동 지역에서는 부유하고
서로 연결된 청동기 시대 문명이 번성했다
우바이드 기(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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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청동기 시대(기원전 3300~2100년)에는 이미
바퀴와 문자의 발명이 이루어졌으며, 이는
메소포타미아의 우루크 시기에 실현된 것이다.
기자 피라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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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에서는 약 기원전 2700년에서
1500년 사이에 기자 피라미드가 건설되었다
히타이트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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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소르 근처에 있는 카르나크 신전 단지는
크리소스핑크스(인간 대신 양의 머리를 한 스핑크스),
거대한 문주, 기둥, 그리고 여러 건축물로
이루어진 놀라운 구조물이었다.
오늘날 튀르키의 하투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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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에서 이와 같은 규모로 건설된 신전은 카르나크 신전이 최대 규모였다.
한편, 청동기 시대 서아시아의 주요 문명 중 하나였던 히타이트 제국은 오늘날
튀르키의 보아즈칼레 근처에 위치한 하투샤에 제국의 중심을 두었다.
우가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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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해안에 위치한 페니키아 도시 우가리트는
오늘날 시리아 북부 지역에 해당하는 곳으로,
해상 무역 덕분에 번영을 누렸다.
이곳은 여러 바쁜 항구 중 하나로,
해양 교역 덕분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미케네 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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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에서는 미케네 문명이 전성기를 맞이했으며,
미케네를 중심으로 세력과 영향력이 확장되었다.
엘람의 고대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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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이란 서부와 남서부에 위치했던 엘람 문명의 사람들은
수사와 같은 위대한 도시들을 건설했다. 수사는
기원전 2700년부터 번영한 엘람 문명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고대 도시 바빌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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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빌론 역시 아카드어를 사용하는 바빌로니아 지역의
주요 문화 및 정치 중심지로, 역사상 가장 중요한
학문의 중심지 중 하나로 성장해 나가고 있었다.
놀라운 창의성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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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의 위대한 왕국과 제국들은 뛰어난 비전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역사적으로 유명한 기념비적 건축물을 세웠고,
눈부시게 복잡하고 아름다운 예술 작품들도 남겼다.
벽에 쓰여진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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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청동기 시대에 대해 알고 있는 많은 것은
건축 작업, 금융 거래, 군사적 업적 등 일상 생활을
기록하기 위해 많은 서기관들이 고용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원전 1200년경인 후기 청동기 시대에는
사진과 같이 벽에 글씨가 쓰여졌다.
청동기 시대의 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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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기원전 1200년경, 후기 청동기 시대에
이르러 붕괴의 징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청동기 시대의 붕괴는 그야말로 재앙과 같았다.
불과 100여 년 만에 여러 문명이 급격히 해체되었고,
한때 번성했던 문화가 거의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무엇이 이렇게 갑작스럽고 광범위한 몰락을 초래했을까?
이란 바다 민족과 이집트 사이의 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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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원인 중 하나는 델타 해전였다. 기원전 1175년,
주로 에게해 지역에서 온 부족들로 구성된
'바다 민족' 연합이 이집트를 공격한다.
해상 침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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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의 파라오 람세스 3세는 이 공격을 막아내고
이집트를 침략으로부터 지켰다. 메디넷 하부에 있는
람세스 3세의 사원에 있는 부조는 이집트 군대가
침략자들과 전투를 벌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바다 민족의 군사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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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미 피해는 심각했다. 바다 민족의 군사 작전으로
우가리트와 하투사를 포함한 여러 도시가 약탈당했고,
이로 인해 무역이 심각하게 교란되었으며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터전을 잃게 되었다.
원자재 고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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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문명은 구리와 주석뿐만 아니라 금, 상아, 도자기 등으로
만든 물품과 같은 원자재를 서로에게 의존하고 있었다.
이 공급망이 끊기자, 한때 강성했던 많은 왕국들이
경제적 재앙을 맞이한다.
활발했던 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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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청동기 시대 동안 지중해를 가로질러 원자재와 사치품이
얼마나 활발하게 교역되었는지는 1982년 터키 해안에서 발견된
선박 난파선으로 드러났다. '울루부룬 난파선'으로 알려진
이 배에서는 금과 마노로 만든 보석, 대량의 구리와 주석 괴 등
귀중한 화물이 대거 발견되었다.
박물관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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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배에서 인양된 유물들은 현재 보드룸 해저
고고학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으며,
그 시기의 문명들이 얼마나 기술적, 문화적으로
발전했는지를 보여준다.
정치 및 외교적 관계 단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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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의 붕괴는 외교 관계의 단절로 이어졌다.
이어진 정치적 불안정은 내부 갈등과 불화를 더욱 악화시켰다.
그러나 전쟁만이 청동기 시대 붕괴를 가속화한 유일한 원인은 아니었다.
극심한 기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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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뭄과 기근 또한 중요한 역할을 했다.
텔아비브 대학 고고학 연구소 저널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기원전 1250년부터 1100년까지의 시기가
청동기 시대 전체에서 가장 건조했던 시기라고 한다.
최악의 상황을 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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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와 바빌로니아는 나일강과 티그리스,
유프라테스강과 같은 광대한 강에 가까워
최악의 가뭄을 피할 수 있었지만,
이 두 문명조차도 예전 같지는 않았다.
연이은 대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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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뭄과 기근에 더해, 기원전 1225년부터 1175년까지
50년 동안 지중해 지역은 연속적인 대지진에 시달렸다.
무너진 사회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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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사회의 모든 구조가 무너지게 되었다.
물물교환 시스템은 사라지고, 문자 사용법은 잊혔으며,
일반적인 문해력은 하락했고, 대규모 도시나
피라미드와 같은 건설도 중단되었다.
한 시대의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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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가뭄, 기근, 지진의 결합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동지중해, 근동, 발칸, 에게해, 아나톨리아 지역이 황폐화되었다.
철기 시대의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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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 시대의 붕괴는 문화적, 정치적, 경제적 공백을 남겼으며,
학자들은 이 시기를 "암흑기"라고 부른다. 그러나 고대 세계는
스스로를 재정립하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새로운 시대를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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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 시대의 붕괴는 철기 시대의 시작을 알렸다.
철은 훨씬 더 강하고 내구성이 뛰어나며, 제련 시
더 우수한 도구와 무기를 만들 수 있었다.
철기 시대는 기원전 550년까지 지속되었다.
출처:
(History) (Study.com)
(World History Encyclopedia)
(Cambridge University P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