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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15일 대림 3주간 수요일
<요한에게 가서 너희가 보고 들은 것을 전하여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18ㄴ-23
그때에 18 요한은 자기 제자들 가운데에서 두 사람을 불러
19 주님께 보내며,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하고 여쭙게 하였다.
20 그 사람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말하였다. “세례자 요한이 저희를 보내어,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하고 여쭈어 보라고 하셨습니다.”
21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질병과 병고와 악령에 시달리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시고, 또 많은 눈먼 이를 볼 수 있게 해 주셨다.
2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요한에게 가서 너희가 보고 들은 것을 전하여라.
눈먼 이들이 보고 다리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나병 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
23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
주님 앞에서 시험을 봅니다.
세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제일 싫은 것이 시험을 보는 것일 것입니다. 내가 시험 볼 때 답답하고 속이 상했던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특히 시험이라는 시간에 단편적인 것으로 답안을 작성하고 그 작성한 것을 채점하면서 성적을 내는 것도 별로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해서입니다. 그래도 학생들의 성적을 평가하고, 입력하여야 하기 때문에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학생들이 아주 열심히 공부하고, 성실하게 답안을 작성하는 것을 생각해서 아주 꼼꼼하게 채점을 합니다. 그러다보니 도대체 점수가 좋지 않습니다. 시험은 실수할 수도 있고, 잠시 외웠다가 잊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또는 시험 당일에 아파서 시험을 잘못 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평소의 성실성과 공부하는 자세를 가지고 시험지와 대비해서 채점하게 됩니다. 나는 그 방법을 아주 철저하게 사용합니다. 평소에 얼마나 열심히 공부하였는지가 잠시 동안의 시험보다도 아주 중요한 평가의 수단이 됩니다. 평소 수업시간의 태도를 보고 머리에 기억하고, 출석부에 꼼꼼하게 표시하고 평가에 반영합니다.
그런 나의 방법은 가끔 나 자신을 많이 반성하게 하고, 진땀을 흘리게 하는 것입니다. 분명 주님께서도 하늘나라의 평가에서도 내 평소의 삶을 가지고 시험을 보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 매일의 삶을 일일이 채점하시고, 잘잘못을 하늘나라의 책에 기록하시고, 내가 항변하려고 하면 조목조목 들이대시며 추상같이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몇 번 선행을 했다고 모든 것을 선행하였다고 점수를 주실 수 없는 것이고, 몇 번 뉘우쳤다고 내가 완전히 깨끗해졌다고 하신다면 하느님은 공의(公義)하신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평소에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가 언제나 내 신세를 가름하는 기준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냅니다. 그는 예수님을 알면서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하며, 제자들이 이제 곧 죽을 자신보다는 주님을 따르기를 바랐기 때문에 감옥에서 예수님께 제자들을 보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요한에게 가서 평소에 보고 들은 것을 그대로 전하라고 하십니다. 연출을 하거나 임기응변으로 겉꾸미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당신께서 하신 그대로 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나의 평소의 삶을 반성한답니다.
1. 눈먼 이들을 제대로 보게 하십니다. 그런데 나는 눈을 뜬 사람이면서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살았답니다. 나는 눈을 뜬 봉사랍니다. 세상에 가득 찬 징표를 보고도 소경이 되어 헤매고 있는 사람이랍니다.
2. 다리 저는 이들이 제대로 걷게 하십니다. 그러나 나는 영혼과 육신이 따로 움직이는 다리 저는 사람으로 살고 있답니다. 내 생각과 말과 행동이 각각 다르고, 내가 발을 디밀고 있는 곳에 더 마음을 두며 절룩거리며 걷고 있는 생활을 고치지 못하고 있답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나를 고쳐 주시려고 당신께서 모든 수모를 받으셨으나 나는 그 주님의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못하고 있답니다.
3. 주님께서는 나병 환자들이 깨끗하게 해 주십니다. 세상의 온갖 더러움에 물들어 있는 죄와 욕심과 헛된 것들에서 나를 구하기 위해서 온갖 약으로 치료하시듯 말씀으로 고쳐주십니다. 침을 놓아 주시고, 고운 수건으로 깨끗이 고름을 씻어 주십니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그 손길을 외면하고 그 모든 더러움에 파묻혀 있으면서 그 더러움과 아픔을 다른데서 치유한다고 생각하고 더 더럽게 하고, 더 아프게 하고 있답니다.
4. 주님께서는 귀먹은 이들을 듣게 하십니다. 세상의 모든 불평불만을 다시 듣게 하시고, 진리의 말씀을 듣게 하시고, 사람들의 진실한 충고를 듣게 하시고, 올바른 가르침을 듣게 하십니다. 그런데도 나는 그 말씀을 외면하고, 세상의 불평불만과 어려움을 외면하고 살고 있답니다. 그리고 진리의 말씀을 듣지 않으려고 외면하는 사람들의 편에 서서 세상을 위해서 충고하는데 게으른 삶을 살고 있답니다.
5. 주님께서는 죽은 이들을 다시 살려 주십니다. 영원한 생명으로 다시 살게 해 주십니다. 육신의 죽음에서도 살려주시지만 영혼의 죽음에서 죄를 씻어 주시고, 성령을 보내주시어 다시 살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그러나 나는 이 초라한 육신의 쾌락을 위해서 매일 영혼을 죽이는 일을 되풀이하고 있답니다. 죄와 결탁하고 생명의 원천이신 주님을 외면하면서 살고 있답니다.
6. 주님께서는 가난한 이들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복음을 들려주십니다. 복음으로 그들을 영원한 행복에로 초대하십니다. 그러나 나는 지금도 세상의 행복에 빠져 어둠에서 살고 있고, 슬프고 괴로운 삶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애쓰고 있답니다. 주님의 복된 말씀을 의심하고 있답니다. 언제나 교만하고 오만하며 자신만만해서 복음을 듣지 못하고 있답니다.
7. 주님께서는 의심을 품지 않는 믿음을 가진 사람은 행복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나의 삶은 지금도 아주 작은 믿음도 갖지 못하고 언제나 회의와 좌절로 주님께 믿음을 고백하지 못하고 말로만 믿는다고 중얼거릴 뿐이랍니다. 이런 나의 삶은 평소의 나의 삶이랍니다. 언제나 이 어둠에서 벗어날지 답답합니다.
이 시기는 판공(辦功)의 시기입니다. 나의 평소의 공과(功過)를 낱낱이 들춰내고 일일이 저울질 하는 시기입니다. 저울질 하시는 주님의 앞에서 그간의 삶을 반성한답니다. 그리고 내게서 성적표를 받을 학생들과 같이 주님 앞에서 성적표를 받고 떨고 있을 자신을 보면서 전전긍긍(戰戰兢兢)하고 있습니다.
<하늘아, 위에서 이슬을 내려라.>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45,6ㄴ-8.18.21ㅁ-25
6 내가 주님이고 다른 이가 없다.
7 나는 빛을 만드는 이요 어둠을 창조하는 이다. 나는 행복을 주는 이요 불행을 일으키는 이다. 나 주님이 이 모든 것을 이룬다.
8 하늘아, 위에서 이슬을 내려라. 구름아, 의로움을 뿌려라. 땅은 열려 구원이 피어나게, 의로움도 함께 싹트게 하여라.
나 주님이 이것을 창조하였다.
18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하늘을 창조하신 분, 그분께서 하느님이시다. 땅을 빚으시고 땅을 만드신 분, 그분께서 그것을 굳게 세우셨다. 그분께서는 그것을 혼돈으로 창조하지 않으시고 살 수 있는 곳으로 빚어 만드셨다. 내가 주님이다. 다른 이가 없다.
21 나 주님이 아니냐? 나밖에는 다른 신이 아무도 없다. 의롭고 구원을 베푸는 하느님, 나 말고는 아무도 없다.
22 땅끝들아, 모두 나에게 돌아와 구원을 받아라. 나는 하느님, 다른 이가 없다.
23 내가 나 자신을 두고 맹세한다. 내 입에서 의로운 말이 나갔으니 그 말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
정녕 모두 나에게 무릎을 꿇고 입으로 맹세하며
24 말하리라. “주님께만 의로움과 권능이 있다. 그분께 격분하는 자들은 모두 그분 앞에 와서 부끄러운 일을 당하리라.
25 이스라엘의 모든 후손들은 주님 안에서 승리와 영예를 얻으리라.”
축일 : 12월 15일 성녀 비르지니아 첸투리오네 브라첼리 (Virginia Centurione Bracelli)
신분 : 과부, 설립자, 수녀
활동 지역 : 제노바(Genova)
활동 연도 : 1587-1651년
같은 이름 : 버지니아, 첸뚜리오네
성녀 비르지니아 첸투리오네 브라첼리는 1587년 4월 2일 이탈리아의 제노바에서 공화국의 총독을 역임(1621-1622년)한 조르지오 첸투리오네(Giorgio Centurione)와 렐리아 스피놀라(Spinola)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의 부모는 모두 전통적인 귀족 가문 출신이었다. 태어난 지 이틀 만에 세례성사를 받은 그녀는 어머니와 가정교사로부터 신앙과 문학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비르지니아는 봉쇄 수도생활에 대한 성소를 느꼈지만 아버지의 강력한 권유에 의해 1602년 12월 10일 가스파레 그리말디 브라첼리(Gaspare Grimaldi Bracelli)와 결혼을 했다.
그녀의 남편인 가스파레는 저명하고 부유한 가문 출신이었지만 도박에 깊이 빠져 방탕한 생활을 했다. 비르지니아는 결혼 생활을 통해 렐리아(Lelia)와 이사벨라(Isabella) 두 딸을 얻었다. 하지만 그녀의 결혼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가스파레 브라첼리는 결혼을 한 아버지임에도 불구하고 쾌락에 빠진 생활을 포기하지 않아 결국 짧은 생애를 마감하게 되었다. 비르지니아는 마지막까지 인내하며 기도와 애정을 갖고 남편을 겸손하고 정상적인 생활로 이끌려고 노력했지만, 불행히도 병약해진 남편은 1607년 6월 13일 이탈리아 서북부 알레산드리아(Alessandria)에서 사망하였다. 신앙심 깊은 비르지니아는 남편이 하느님 안에서 은총과 평화로운 죽음을 맞이하도록 도와주었다.
20살의 나이에 남편을 잃고 홀로 된 그녀는 평생 정결을 지키며 살겠다며 아버지가 제안한 재혼의 기회를 거절했다. 그녀는 시댁에 머물며 자녀들을 교육하고 재산을 관리하며 기도와 자선 활동에 전념하였다. 1610년 가난한 이들 안에서 하느님을 섬기는 특별한 소명을 느낀 비르지니아는 아버지의 엄격한 통제 하에서도 가문을 훌륭히 지키며 가난한 이들에게 헌신하는 생활을 시작했다. 그녀는 재산의 반을 가지고 개인적 또는 자선기관을 이용해 가난한 이들을 도왔다. 두 딸이 결혼하여 안정된 생활을 하자 그녀는 버려진 아이들과 노인들 그리고 병든 이들을 위해 헌신하며 소외된 이들의 생활을 개선하는데 전적으로 투신하였다.
1624년 가을부터 이듬해까지 이어진 리구오리(Liguori) 공화국과 프랑스의 지원을 받는 사부아(Savoie) 공작 간의 전쟁으로 직업을 잃고 굶주리는 이들이 증가하였다. 비르지니아는 처음에는 15명의 버려진 아이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다가 점차 마을의 난민들 전체로 확장해갔다. 그녀는 특별히 가난한 여성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하였다. 1635년 8월 시어머니가 사망하자 그녀는 본격적으로 마을로 나가 열악한 환경에서 사는 가난한 이들과 그릇된 길에 빠질 위험에 놓인 이들을 찾아다니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면서 점증하는 가난의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지역주민들의 조직인 ‘자비로운 8명의 부인회’와 연합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가난한 이들의 자비로운 보호자인 100명의 부인회’를 설립하였다. 그녀는 가정 방문을 통해 가난한 이들 중에서도 특별히 숫기가 없는 이들의 요구를 조정하는 임무를 맡았다.
1629-1630년의 전염병과 대기근의 시기에 그녀는 어린이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사업을 더욱 본격화하기 위해 몬테 칼바리오(Monte Calvario)에 있는 빈 수도원 건물을 빌려 피난처이신 성모의 집의 보호 하에 있던 이들을 데리고 1631년 4월 13일 입주하였다. 그 후 3년의 시간 동안 그녀가 설립한 기구는 300명의 환자들을 돌보는 세 개의 시설로 확장되었다. 그러자 비르지니아는 제노바 공화국 의회로부터 공식적인 승인을 얻기 위해 노력하여 1635년 12월 13일 마침내 그 뜻을 이루었다. 이 시설에 수용된 이들은 함께 음식과 옷을 나누며 비르지니아의 훌륭한 자매들이 되었다. 그녀는 그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스스로 자신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도록 교육하였다.
비르지니아는 몬테 칼바리오 수도원을 아예 매입하고자 했으나 값이 너무 비싸 포기하였다. 대신 카리냐노(Carignano) 언덕 옆에 있는 두 채의 주택을 구입하여 피난처이신 성모의 집과 성당으로 개축하여 그녀가 설립한 기구의 모원으로 삼았다. 그녀가 설립한 기구의 정신은 1644-1650년에 편찬된 규칙서에 잘 표현되어 있다. 모든 거주시설은 피난처이신 성모의 집과 같은 형태를 갖춰야 하며 공화국 의회에서 임명된 훌륭한 평신도 보호자의 감독과 관리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수도복을 입는 자매들과 그렇지 않은 자매들 간의 구분은 필요하지만 그들 모두 서원 여부와 상관없이 순명과 가난, 노동과 기도 안에서 엄격한 수도승처럼 살아야 한다. 또한 공공의 보호시설에서 봉사할 준비를 해야 하며 이를 서원의 한 가지로 생각해야 한다. 이런 정신에 따라 운영되던 기구는 그 후 두 개의 수도회, 즉 골고타 언덕의 피난처이신 성모의 자매회와 골고타 언덕의 성모의 자매회로 분리되었다.
1641년 7월 3일 수도회의 진정한 책임자인 보호자 모임이 임명되자 비르지니아는 비로소 행정적인 의무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그녀는 모든 직무에서 물러나 가장 낮은 자매의 자세로 기꺼이 허드렛일을 수행하며, 아침부터 밤까지 거리에 나가 자선을 위한 기금을 모금하였다. 그녀는 모든 이들, 특별히 병든 이들의 어머니로서 자신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주고자 했다. 비르지니아는 몇 년 동안 죄악의 뿌리를 치유하고, 타락으로부터 예방하며, 병자와 장애인들을 기구에 모셔오고, 건장한 남자들에게 일터를 찾아주며, 여성들에게는 자수와 양말을 만드는 기술을 훈련시키고, 어린이들이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돕는 다양한 사회활동 그룹을 조직하였다. 그녀가 설립한 수도회의 활동이 성공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협력자들이 감소하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비르지니아는 건강이 나빠지면서 다시 관리직 활동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그 지역 전체의 영적인 성장을 위해 노력했고, 1637년에는 제노바 공화국의 수호성인으로서 성모 마리아가 선정될 수 있도록 활약하기도 했다. 또한 40시간 기도 모임과 가정 사명의 회복을 위해서 힘썼다. 귀족 가문과 기사들 간의 평화 조정자로서도 활동한 그녀는 1647년 교회와 공화국 간의 화해를 도모해 공화국 당국이 보호시설에 대한 지원을 포기함으로써 야기된 논쟁을 종식시켰다. 그녀는 생애의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모든 시간을 사회적 신분과 관계없이 도움을 청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사용했다. 환시와 내적 담화 등 많은 신비적 은사를 받은 그녀는 1651년 12월 15일 64세의 나이로 제노바에서 선종하였다. 1985년 8월 22일 제노바를 방문한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는 그녀의 시복식을 거행했고, 2003년 5월 18일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그녀를 성인품에 올렸다.
오늘 축일을 맞은 비르지니아 첸투리오네 브라첼리 (Virginia Centurione Bracelli) 자매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