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그린벨트·농지 규제 완화 필요하지만 난개발 경계해야
중앙일보
입력 2024.02.22 00:49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울산 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 '열세번째, 대한민국 국가대표 산업 허브 울산'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울산=대통령실사진기자단
소멸 위기 지역 경제 살리고 토지 공급엔 숨통
지자체 개발 민원 해소하는 총선용은 안 돼야
도시의 무질서한 확산을 막기 위해 1971년 도입된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제도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치적으로 꼽힌다. 덕분에 도시 주변의 자연을 지켜 도시민의 삶의 질 개선에 나름의 역할을 했다. 하지만 획일적인 규제로 토지 소유자의 재산권을 지나치게 침해할뿐더러 과잉 규제로 인한 주민과 담당 공무원의 음습한 거래를 조장하는 ‘구린 벨트’라는 비판도 받았다. 30년 가까이 ‘성역’이었던 그린벨트는 김대중 정부 이후 꾸준히 축소됐다.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노무현 정부는 국민임대주택 사업을 위해 대규모로 해제했다. 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부도 보금자리 주택이나 공공주택 건설을 위해 일부 풀었다.
현 정부가 그린벨트·농지 규제를 대폭 완화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어제 울산 민생토론회에서 “그린벨트 해제의 결정적 장애였던 획일적인 해제 기준을 20년 만에 전면 개편하겠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고도가 높거나 경사가 급하기만 해도 무조건 개발할 수 없게 막았던 획일적 규제를 없애겠다”며 “철도역이나 기존 시가지 주변 인프라가 우수한 땅은 보전 등급이 아무리 높아도 활용할 수 있도록 기준을 내리겠다”고 했다.
정부는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는 지역 전략사업의 경우 지자체별로 정해진 그린벨트 해제 총량에서 제외해 주고, 원칙적으로 개발이 불가능했던 환경평가 1~2등급지 그린벨트도 풀어주기로 했다. 컨테이너를 이용해 농작물을 키우는 스마트팜 같은 수직농업의 농지 규제를 완화하고, 자투리 농업진흥지역(절대농지) 개발도 할 수 있게 된다.
윤 대통령이 울산에서 그린벨트 규제 완화를 선포한 건 이유가 있다. 그린벨트는 개념상 도시 주변을 둘러싸는 게 보통인데, 울산은 도시를 가로질러 공간을 쪼개는 기형적인 형태다. 울산시와 울주군이 1995년 통합되면서 두 지자체 경계의 그린벨트가 도시의 중심부가 돼버렸다. 낡은 규제의 폐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그동안 지방에 첨단 산업단지를 세우려고 해도 그린벨트로 인해 무산되는 경우가 많았다. 관련 규제의 완화는 소멸 위기에 처한 지역경제를 살리는 데 도움이 된다. 그린벨트·농지를 과도하게 규제하면 공장과 주택 등을 위한 토지 공급을 줄여 부동산 가격을 밀어 올리는 요인이 된다. 적절한 규모의 토지 공급이 이뤄진다면 한국 경제의 생산성을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
그린벨트 해제를 공약으로 내건 지자체장들이 여럿이다. 지자체의 경쟁적인 그린벨트 해제 요구가 개발 열풍으로 이어지는 부작용만은 경계해야 한다. 투명한 원칙과 엄격한 기준 없이 해제되면 지역 민원에 생색내기 위한 총선용 정책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 것이다. 그린벨트도, 농지도 일단 훼손하면 다시 복원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