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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지역문화예술 플랫폼 아티스트 토크 2019. 9. 27
김명숙 작가 인터뷰 학예연구원 박규남
Q1. 이번 전시 명인 카타바시스에 대하여 찾아본 바에 의하면 그리스어 Katabasis는 Anabasis와 상반된 단어로 아나바시스가 해안선에서 뭍 내부로의 상승이라면 카타바시스는 내부에서 해안으로의 하강, 지하세계로의 여정, 퇴각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한 바로는 중심에서 벗어난, 변방의 역사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마찬가지로 작가님 또한 산막리 작업실의 외진 곳에서 작업하는 것이 그러한 카타바시스의 의미와 어느 정도 공명한다는 의미에서 나만의 작업, 고독하게 노동하는 나의 모습을 돌아보며 주제를 정하신 건지 궁금합니다.
김명숙: 카타바시스라는 부제는 전시가 결정되고 작업들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오래 전 저의 독서노트를 펼치다 발견되었습니다. 작업의 제목들 역시 평론가에게 자료를 보내면서 편의상 자료들을 지칭하는 꼬리표로 무의식적으로 붙여진 것입니다. 평론가를 터미널에서 기다리며 읽은 한스 불루멘베르크의 『진리의 은유로서의 빛』 조차도 책꽂이에서 간단히 기다리며 읽을거리로 무작위로 집어 들고 나간 것입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 모든 우연들이 저의 지난 10년간 지속된 공부의 의미를 비로소 깨닫게 하였습니다.
오래 전 영화 ‘그랑블루’의 주인공인 심해잠수부 자크가 연인과 함께 잠에 들려고 하지만 잠을 이루지 못한 채 칠흑 같은 밤 바다로 뛰어들어가 다시는 되돌아올 수 없는 잠수를 하기 위해 심연을 수직으로 낙하해 들어가는 마지막 장면을 저도 모르게 수 없이 반복해서 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선영 평론가의 평문 제목인 『반환점 없는 여정』은 바로 영화 그랑블루의 마지막 장면에서 유래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카타바시스는 하나의 은유로서 수직적 경험, 나무가 땅 속으로 뿌리를 내리듯이 자기 자신의 심연으로의 하강을 수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Q2. 오프닝 때 '카프카의 변신을 겪은 원숭이'라는 작가님의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에서 등장하는 인물은 '인간'으로부터의 생물적 변화(바퀴벌레가 되어버린)와 '사람'에서의 관계적 변화와 존재적 변화(더 이상 돈을 버는 아버지가 아닌)를 겪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번 카타바시스 전시를 넘어서 작가님의 작품에는 수 많은 동물들이 등장하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
나요?
김명숙 : 제가 그리는 동물들은 모두 카프카적 변신을 겪고 인간이었을 때보다도 더욱 직관적이 된, 실존적 존재들입니다. 저는 동물에 관한 다큐를 즐겨 보는데, 뉴스를 볼 때는 휴머니즘을 부르짖는 사람들 사이에서 오히려 애니멀리즘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동물 다큐에서 저는 오히려 휴머니즘을 느낍니다. 저는 애니멀리즘이 진정한 의미의 휴머니즘이라고 까지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제가 묘사한 동물들은 불안이나 고통의 상태가 아니라 세계를 명징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직관력을 획득한 수행자들입니다.
Painter(그림 그리는 자)는 원숭이가 되고. Watcher(응시하는 자)는 올빼미가 되고, Searcher(탐색하는 자)는 늑대가 되고, Hanger(견디는 자)는 나무늘보가 되고, Digger(파고 드는 자)는 두더지가 되기를 꿈꿉니다. 언젠가 저는 신체의 모든 군더더기가 퇴화되고 오로지 심연을 자유자재로 유영할 수 있도록 진화한 최첨단 전투기 같이 거대한 가오리를 그리고 싶습니다. 심해에서 마침내 검푸른 발광체 (가오리를 뜻하는 영어 ray는 광선, 빛을 뜻하기도 합니다)가 된 가오리…
Q3. 작가님이 사용하는 재료에 대해서 자유롭게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작가는 자기만의 재료를 선정하거나 그러한 재료에 대해 깊이 숙고하여 재료 자체를 탐구해나가며 작품을 만들어가기도 하는데 작가님에게 재료는 어떤 심상으로 다가오시나요?
김명숙: 김용준 선생의 『근원수필』에 조선시대 이징이라는 선비의 일화가 있습니다. 공부는 소홀히 하고 자꾸 그림만 그리는 이징을 아버지가 툇마루에 서게 하는 벌을 주었는데, 한참 뒤에 가보니 어린 이징이 툇마루에 떨어진 자신의 눈물을 찍어 발가락으로 그림을 그리며 서 있었다고 합니다. 이번에 전시된 작품들을 되돌아보며 이 일화가 떠올랐는데 어쩌면 제 자신은 저의 진물로 그림을 그린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종이에 혼합재료를 쓰게 된 것은 유화물감과 캔버스를 마음 편히 구할 수 없었던 대학원생 때부터였는데, 이 재료들은 밀도감을 주기 위해 수없이 반복되는 작업 과정을 통해 비로소 work, 일-공부-작품이 되게 해줍니다. 어렸을 적 아무데서나 구석에 쪼그려 앉아 막대기나 사금파리를 주어 흙바닥에 그림을 그렸던 기억, 1990년대에 숲을 그릴 때 막힌 나무 연통을 청소하며 쓸어 담은 나무 진을 먹물과 함께 섞어 그리던 기억 (나무 재로 다시 나무를 환생 시키는 듯 했습니다…) 손의 힘이 더 직접적으로 화면에 전달되었으면 해서 나도 모르게 붓 대신 사용하기 시작한 수세미, 세월호 사건 이후 1년 넘게 나도 모르게 자꾸 물로만 그림을 그리던 고통스러운 기억…, 10여 년 전 시골길을 가다가 우연히 종이 공장 쓰레기통에 버려진 크래프트지 뭉치를 주어 와서 지금까지 그 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재료는 그렇게 저에게 그때그때마다 어쩌면 본능적으로, 자연스럽게 만나집니다.
Q4. 시지프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특히 작가님의 작품이나 작품 명에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인물들이 종종 등장합니다. '신들로부터 영원히 고통 받는' 캐릭터로 나오는 시지프스는 결국 끝없는 노동을 하게 되는데 제가 생각하기에 신이라는 것은 절대적인 것, 즉 누구에게나 절대좌표로 존재하는 삶이라고 보았는데 그렇다면 작가님은 절대적인 삶 안에서 영원히 고통 받는 한 인간으로서의 처절한 노동을 작품으로 승화시켜 그것을 시지프스 공부라 지칭했는지 또한 시지프스 공부를 하며 시지프스라는 인간성에 공감했는지 궁금합니다.
김명숙: 그리스 신화에서 시지프스, 아틀라스, 프로메테우스는 자신의 형벌을 거부하지 않고 과업으로 받아들여 수행해 냄으로써 죄인에서 영웅이 되어가는 존재들입니다. 그것은 바로Work-Deed-Try, 일-실천-노력을 통해서입니다. (사전에 의하면 work는 일, 공부, 작품의 의미를 아우릅니다.) 구원은 종교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일에 몰입하면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몰입 Rapt → 열락 Rapture! 과업은 이제 더 이상 신으로부터 받은 벌이 아니라 오히려 신에게서 받은 은총인 열락, Rapture를 경험할 수 있는 통과 의례가 됩니다.‘나는 절망에 무릎을 꿇는 대신 적극적인 절망, 즉 노력(work hard)하는 절망을 택하기로 했다.’-고흐
Q5. 사비나 미술관에서 전시의 주제는 Work for workers였습니다. 이쯤 되니 작가님이 생각하는 작업, 노동에 대한 총체적인 생각점들이 궁금해졌습니다. 작가님과 관련된 글을 찾다 고충환 선생님의 칼럼을 읽게 되었는데 철저하게 무용한, 무익한, 무의미한 것이야 말로 노동의 본질이다라는 말을 하셨습니다. 알베르 카뮈 또한 자신의 저서에서 시지프스의 노동을 해석하며 '진정한 자유'를 발화했는데 그런 노동과 자유의 관계에 대해서, 또는 작가님의 노동에 대한 사유들에 대해서 자유롭게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김명숙: 시지프스가 비로소 시지프스가 되는 순간은 밀레의 ‘노동은 나의 강령이다’를 실천하는 순간입니다. Labor를 Work로 받아들이는 순간, 그것은 노역이 아닌 과업이 됩니다. 그 노동의 통과의례를 묵묵히 수행하는 존재가 시지프스이고 밀레의 농부들일 것입니다. Work는 이익을 위한 일이 아니라, 목적을 위한 일, 즉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에서 니체의 ‘너 자신이 되라’는 목적을 향한 일, 생존의 수단이 아닌 실존의 수단으로, 수동적이 아닌, 능동적·자발적으로 자신과 조우하기 위해 행해지는 일입니다.
언젠가 TV에서 인도의 한 구루가 오랜 명상을 끝내고 불가촉천민들을 이끌어 친환경 생필품을 생산하는 자신의 대규모 공장단지를 안내하며, 'Life is religion, Work is worship', (삶이 종교다, 일은 삶을 경배하는 행위다)라고 말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그가 오랜 명상 끝에 도달한 결론, 그것은 바로 밀레의 강령이었습니다.
저는 Amy Winehouse라는 가수를 존경합니다. 저에게 그녀는 거의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여인의 후예가 아닐까 싶을 만큼 고전적인 정신을 계승한 예술가로서, 아름다운 마음결을 갖은 고귀한 인간으로서 다가왔습니다. 언젠가 저는 그녀를 추모하는 연작을 그릴 것입니다. 그녀는 「Some unholy war (어느 더러운 전쟁)」이라는 곡에서 약물 중독과 온갖 비행을 저지르는 자신의 연인 곁을 끝까지 함께하며, 부엌바닥에 주저앉아 자신의 dignity, 자존감을 지켜주는 노래를 만들겠노라고 노래합니다. Back to black (다시 칠흑 속으로 - 그녀의 카타바시스!) 이라는 그 유명한 앨범은 바로 자신의 unholy war 를 성스럽게 치룬 전리품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성전(聖戰), holy war 를 치르다(“I’ll battle ‘til this bitter final. 나는 싸울 것이다, 쓰라린 최후까지”라고 노래하면서) 27세에 말하자면 전사 하였습니다. 40여년전 Work me Lord를 부르던 Janis Joplin이 같은 나이에 전사한 바로 그 모습으로..
우리 각자의 삶 또한 시시 때때로 Unholy war를 맞이합니다. 매 순간 한계와 회의, 무력감에 시달리면서 작업을 그만두지 못하고 있는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Work는 각자의 unholy war를 holy war로 전환시켜 줍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시지프스가 카뮈에게 영웅으로 묘사되는 것은 그가 중력의 법칙에 의해 매번 굴러 내리는 바위를 매일 다시 산 정상으로 끌어올리는 노력을 죽을 때까지 멈추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Q6. 작가님의 작품 중에는 ‘자화상’이 많이 등장합니다. 이선영 평론가님 또한 ‘변주된 자화상’이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동물, 영감을 주었던 아티스트와 일반인 등 자아 같은 타자들을 통해 확대된 자화상들이 작품에 많이 엿보입니다. 그렇다면 풍경화나 정물화에서 보이는 수많은 대상들과 전·후경의 배경이 아닌 자화상의 1인칭 회화를 그리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김명숙: 자화상을 그린 것이 아닌 ‘타화상’을 그린 것입니다.^^ 내게 그려지기를 요구하는 대상, 그 타자들과 감정이입이 일어났다는 의미에서, 이 작업들은 나의 <타자되기>의 연작들이었습니다. 고흐의 해바라기와 사이프러스가 고흐의 변주된 자화상이었다는 의미에서 저의 연작들 역시 변주된 자화상일 것입니다..
Q7. 작가님 작품들을 보면서 느껴졌던 1차적인 감정은 비극적이고 섬짓한 감정이었습니다. 더불어 수 없는 선들의 번짐과 뭉침, 흩어짐을 바라보며 켜켜이 쌓인 선들의 과장된 모습들이 표현주의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실제로 작가님은 작품들 중에 ‘오버워크’ 되었다고 종종 말씀 하셨는데 그러한 표현주의에 대해 깊은 인상을 받으신 건가요?
김명숙: 모든 예술은 표현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미술사에서 규정한 표현주의의 표현과는 다른 의미의 표현일 것입니다. 입체파가 세잔느의 작업에서, 표현주의가 고흐의 작업에서 영향을 받았다고들 하지만, 정작 세잔느나 고흐는 동의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여기서도 흔한 비유가 적용되는데 즉, 예술의 표현은 달을 가리켜 달을 제대로 보게 하려는 손가락 동작과 같은 의미입니다. 그러나 저에게 표현주의는 달이 아니라 작가의 손가락을 보게 할 뿐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예술에 있어서 표현이란 ‘아무런 예술적 편견 없이 마치Q6. 작가님의 작품 중에는 ‘자화상’이 많이 등장합니다. 이선영 평론가님 또한 ‘변주된 자화상’이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동물, 영감을 주었던 아티스트와 일반인 등 자아 같은 타자들을 통해 확대된 자화상들이 작품에 많이 엿보입니다. 그렇다면 풍경화나 정물화에서 보이는 수많은 대상들과 전·후경의 배경이 아닌 자화상의 1인칭 회화를 그리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김명숙 : 자화상을 그린 것이 아닌 ‘타화상’을 그린 것입니다.^^ 내게 그려지기를 요구하는 대상, 그 타자들과 감정이입이 일어났다는 의미에서, 이 작업들은 나의 <타자되기>의 연작들이었습니다. 고흐의 해바라기와 사이프러스가 고흐의 변주된 자화상이었다는 의미에서 저의 연작들 역시 변주된 자화상일 것입니다..
Q7. 작가님 작품들을 보면서 느껴졌던 1차적인 감정은 비극적이고 섬짓한 감정이었습니다. 더불어 수 없는 선들의 번짐과 뭉침, 흩어짐을 바라보며 켜켜이 쌓인 선들의 과장된 모습들이 표현주의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실제로 작가님은 작품들 중에 ‘오버워크’ 되었다고 종종 말씀 하셨는데 그러한 표현주의에 대해 깊은 인상을 받으신 건가요?
김명숙: 모든 예술은 표현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미술사에서 규정한 표현주의의 표현과는 다른 의미의 표현일 것입니다. 입체파가 세잔느의 작업에서, 표현주의가 고흐의 작업에서 영향을 받았다고들 하지만, 정작 세잔느나 고흐는 동의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여기서도 흔한 비유가 적용되는데 즉, 예술의 표현은 달을 가리켜 달을 제대로 보게 하려는 손가락 동작과 같은 의미입니다. 그러나 저에게 표현주의는 달이 아니라 작가의 손가락을 보게 할 뿐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예술에 있어서 표현이란 ‘아무런 예술적 편견 없이 마치 구두를 만드는 것처럼 그림 그리기’ (고흐) 에서의 구두를 만드는 과정, 즉 구현의 의미로서의 표현일 것입니다. 더불어 내가 오버워크를 했다는 의미는 표현주의를 추구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솜씨 없는 구두쟁이가 완벽한 구두를 만들어 보려고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었다는 의미입니다.
작가가 사랑한 작품들
음악
Sting - Shape of my heart
Janis Joplin - Work Me Lord (woodstock version)
Amy Winehouse - Some Unholy War
영화
·Luc Besson - The Grand Blue
2019 지역문화예술 플랫폼 아티스트 토크 2019. 9. 27
김명숙 작가 인터뷰 학예연구원 박규남
Q1. 이번 전시 명인 카타바시스에 대하여 찾아본 바에 의하면 그리스어 Katabasis는 Anabasis와 상반된 단어로 아나바시스가 해안선에서 뭍 내부로의 상승이라면 카타바시스는 내부에서 해안으로의 하강, 지하세계로의 여정, 퇴각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한 바로는 중심에서 벗어난, 변방의 역사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마찬가지로 작가님 또한 산막리 작업실의 외진 곳에서 작업하는 것이 그러한 카타바시스의 의미와 어느 정도 공명한다는 의미에서 나만의 작업, 고독하게 노동하는 나의 모습을 돌아보며 주제를 정하신 건지 궁금합니다.
김명숙: 카타바시스라는 부제는 전시가 결정되고 작업들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오래 전 저의 독서노트를 펼치다 발견되었습니다. 작업의 제목들 역시 평론가에게 자료를 보내면서 편의상 자료들을 지칭하는 꼬리표로 무의식적으로 붙여진 것입니다. 평론가를 터미널에서 기다리며 읽은 한스 불루멘베르크의 『진리의 은유로서의 빛』 조차도 책꽂이에서 간단히 기다리며 읽을거리로 무작위로 집어 들고 나간 것입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 모든 우연들이 저의 지난 10년간 지속된 공부의 의미를 비로소 깨닫게 하였습니다.
오래 전 영화 ‘그랑블루’의 주인공인 심해잠수부 자크가 연인과 함께 잠에 들려고 하지만 잠을 이루지 못한 채 칠흑 같은 밤 바다로 뛰어들어가 다시는 되돌아올 수 없는 잠수를 하기 위해 심연을 수직으로 낙하해 들어가는 마지막 장면을 저도 모르게 수 없이 반복해서 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선영 평론가의 평문 제목인 『반환점 없는 여정』은 바로 영화 그랑블루의 마지막 장면에서 유래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카타바시스는 하나의 은유로서 수직적 경험, 나무가 땅 속으로 뿌리를 내리듯이 자기 자신의 심연으로의 하강을 수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Q2. 오프닝 때 '카프카의 변신을 겪은 원숭이'라는 작가님의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에서 등장하는 인물은 '인간'으로부터의 생물적 변화(바퀴벌레가 되어버린)와 '사람'에서의 관계적 변화와 존재적 변화(더 이상 돈을 버는 아버지가 아닌)를 겪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번 카타바시스 전시를 넘어서 작가님의 작품에는 수 많은 동물들이 등장하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
나요?
김명숙 : 제가 그리는 동물들은 모두 카프카적 변신을 겪고 인간이었을 때보다도 더욱 직관적이 된, 실존적 존재들입니다. 저는 동물에 관한 다큐를 즐겨 보는데, 뉴스를 볼 때는 휴머니즘을 부르짖는 사람들 사이에서 오히려 애니멀리즘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동물 다큐에서 저는 오히려 휴머니즘을 느낍니다. 저는 애니멀리즘이 진정한 의미의 휴머니즘이라고 까지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제가 묘사한 동물들은 불안이나 고통의 상태가 아니라 세계를 명징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직관력을 획득한 수행자들입니다.
Painter(그림 그리는 자)는 원숭이가 되고. Watcher(응시하는 자)는 올빼미가 되고, Searcher(탐색하는 자)는 늑대가 되고, Hanger(견디는 자)는 나무늘보가 되고, Digger(파고 드는 자)는 두더지가 되기를 꿈꿉니다. 언젠가 저는 신체의 모든 군더더기가 퇴화되고 오로지 심연을 자유자재로 유영할 수 있도록 진화한 최첨단 전투기 같이 거대한 가오리를 그리고 싶습니다. 심해에서 마침내 검푸른 발광체 (가오리를 뜻하는 영어 ray는 광선, 빛을 뜻하기도 합니다)가 된 가오리…
Q3. 작가님이 사용하는 재료에 대해서 자유롭게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작가는 자기만의 재료를 선정하거나 그러한 재료에 대해 깊이 숙고하여 재료 자체를 탐구해나가며 작품을 만들어가기도 하는데 작가님에게 재료는 어떤 심상으로 다가오시나요?
김명숙: 김용준 선생의 『근원수필』에 조선시대 이징이라는 선비의 일화가 있습니다. 공부는 소홀히 하고 자꾸 그림만 그리는 이징을 아버지가 툇마루에 서게 하는 벌을 주었는데, 한참 뒤에 가보니 어린 이징이 툇마루에 떨어진 자신의 눈물을 찍어 발가락으로 그림을 그리며 서 있었다고 합니다. 이번에 전시된 작품들을 되돌아보며 이 일화가 떠올랐는데 어쩌면 제 자신은 저의 진물로 그림을 그린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종이에 혼합재료를 쓰게 된 것은 유화물감과 캔버스를 마음 편히 구할 수 없었던 대학원생 때부터였는데, 이 재료들은 밀도감을 주기 위해 수없이 반복되는 작업 과정을 통해 비로소 work, 일-공부-작품이 되게 해줍니다. 어렸을 적 아무데서나 구석에 쪼그려 앉아 막대기나 사금파리를 주어 흙바닥에 그림을 그렸던 기억, 1990년대에 숲을 그릴 때 막힌 나무 연통을 청소하며 쓸어 담은 나무 진을 먹물과 함께 섞어 그리던 기억 (나무 재로 다시 나무를 환생 시키는 듯 했습니다…) 손의 힘이 더 직접적으로 화면에 전달되었으면 해서 나도 모르게 붓 대신 사용하기 시작한 수세미, 세월호 사건 이후 1년 넘게 나도 모르게 자꾸 물로만 그림을 그리던 고통스러운 기억…, 10여 년 전 시골길을 가다가 우연히 종이 공장 쓰레기통에 버려진 크래프트지 뭉치를 주어 와서 지금까지 그 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재료는 그렇게 저에게 그때그때마다 어쩌면 본능적으로, 자연스럽게 만나집니다.
Q4. 시지프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특히 작가님의 작품이나 작품 명에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인물들이 종종 등장합니다. '신들로부터 영원히 고통 받는' 캐릭터로 나오는 시지프스는 결국 끝없는 노동을 하게 되는데 제가 생각하기에 신이라는 것은 절대적인 것, 즉 누구에게나 절대좌표로 존재하는 삶이라고 보았는데 그렇다면 작가님은 절대적인 삶 안에서 영원히 고통 받는 한 인간으로서의 처절한 노동을 작품으로 승화시켜 그것을 시지프스 공부라 지칭했는지 또한 시지프스 공부를 하며 시지프스라는 인간성에 공감했는지 궁금합니다.
김명숙: 그리스 신화에서 시지프스, 아틀라스, 프로메테우스는 자신의 형벌을 거부하지 않고 과업으로 받아들여 수행해 냄으로써 죄인에서 영웅이 되어가는 존재들입니다. 그것은 바로Work-Deed-Try, 일-실천-노력을 통해서입니다. (사전에 의하면 work는 일, 공부, 작품의 의미를 아우릅니다.) 구원은 종교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일에 몰입하면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몰입 Rapt → 열락 Rapture! 과업은 이제 더 이상 신으로부터 받은 벌이 아니라 오히려 신에게서 받은 은총인 열락, Rapture를 경험할 수 있는 통과 의례가 됩니다.‘나는 절망에 무릎을 꿇는 대신 적극적인 절망, 즉 노력(work hard)하는 절망을 택하기로 했다.’-고흐
Q5. 사비나 미술관에서 전시의 주제는 Work for workers였습니다. 이쯤 되니 작가님이 생각하는 작업, 노동에 대한 총체적인 생각점들이 궁금해졌습니다. 작가님과 관련된 글을 찾다 고충환 선생님의 칼럼을 읽게 되었는데 철저하게 무용한, 무익한, 무의미한 것이야 말로 노동의 본질이다라는 말을 하셨습니다. 알베르 카뮈 또한 자신의 저서에서 시지프스의 노동을 해석하며 '진정한 자유'를 발화했는데 그런 노동과 자유의 관계에 대해서, 또는 작가님의 노동에 대한 사유들에 대해서 자유롭게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김명숙: 시지프스가 비로소 시지프스가 되는 순간은 밀레의 ‘노동은 나의 강령이다’를 실천하는 순간입니다. Labor를 Work로 받아들이는 순간, 그것은 노역이 아닌 과업이 됩니다. 그 노동의 통과의례를 묵묵히 수행하는 존재가 시지프스이고 밀레의 농부들일 것입니다. Work는 이익을 위한 일이 아니라, 목적을 위한 일, 즉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에서 니체의 ‘너 자신이 되라’는 목적을 향한 일, 생존의 수단이 아닌 실존의 수단으로, 수동적이 아닌, 능동적·자발적으로 자신과 조우하기 위해 행해지는 일입니다.
언젠가 TV에서 인도의 한 구루가 오랜 명상을 끝내고 불가촉천민들을 이끌어 친환경 생필품을 생산하는 자신의 대규모 공장단지를 안내하며, 'Life is religion, Work is worship', (삶이 종교다, 일은 삶을 경배하는 행위다)라고 말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그가 오랜 명상 끝에 도달한 결론, 그것은 바로 밀레의 강령이었습니다.
저는 Amy Winehouse라는 가수를 존경합니다. 저에게 그녀는 거의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여인의 후예가 아닐까 싶을 만큼 고전적인 정신을 계승한 예술가로서, 아름다운 마음결을 갖은 고귀한 인간으로서 다가왔습니다. 언젠가 저는 그녀를 추모하는 연작을 그릴 것입니다. 그녀는 「Some unholy war (어느 더러운 전쟁)」이라는 곡에서 약물 중독과 온갖 비행을 저지르는 자신의 연인 곁을 끝까지 함께하며, 부엌바닥에 주저앉아 자신의 dignity, 자존감을 지켜주는 노래를 만들겠노라고 노래합니다. Back to black (다시 칠흑 속으로 - 그녀의 카타바시스!) 이라는 그 유명한 앨범은 바로 자신의 unholy war 를 성스럽게 치룬 전리품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성전(聖戰), holy war 를 치르다(“I’ll battle ‘til this bitter final. 나는 싸울 것이다, 쓰라린 최후까지”라고 노래하면서) 27세에 말하자면 전사 하였습니다. 40여년전 Work me Lord를 부르던 Janis Joplin이 같은 나이에 전사한 바로 그 모습으로..
우리 각자의 삶 또한 시시 때때로 Unholy war를 맞이합니다. 매 순간 한계와 회의, 무력감에 시달리면서 작업을 그만두지 못하고 있는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Work는 각자의 unholy war를 holy war로 전환시켜 줍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시지프스가 카뮈에게 영웅으로 묘사되는 것은 그가 중력의 법칙에 의해 매번 굴러 내리는 바위를 매일 다시 산 정상으로 끌어올리는 노력을 죽을 때까지 멈추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Q6. 작가님의 작품 중에는 ‘자화상’이 많이 등장합니다. 이선영 평론가님 또한 ‘변주된 자화상’이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동물, 영감을 주었던 아티스트와 일반인 등 자아 같은 타자들을 통해 확대된 자화상들이 작품에 많이 엿보입니다. 그렇다면 풍경화나 정물화에서 보이는 수많은 대상들과 전·후경의 배경이 아닌 자화상의 1인칭 회화를 그리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김명숙: 자화상을 그린 것이 아닌 ‘타화상’을 그린 것입니다.^^ 내게 그려지기를 요구하는 대상, 그 타자들과 감정이입이 일어났다는 의미에서, 이 작업들은 나의 <타자되기>의 연작들이었습니다. 고흐의 해바라기와 사이프러스가 고흐의 변주된 자화상이었다는 의미에서 저의 연작들 역시 변주된 자화상일 것입니다..
Q7. 작가님 작품들을 보면서 느껴졌던 1차적인 감정은 비극적이고 섬짓한 감정이었습니다. 더불어 수 없는 선들의 번짐과 뭉침, 흩어짐을 바라보며 켜켜이 쌓인 선들의 과장된 모습들이 표현주의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실제로 작가님은 작품들 중에 ‘오버워크’ 되었다고 종종 말씀 하셨는데 그러한 표현주의에 대해 깊은 인상을 받으신 건가요?
김명숙: 모든 예술은 표현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미술사에서 규정한 표현주의의 표현과는 다른 의미의 표현일 것입니다. 입체파가 세잔느의 작업에서, 표현주의가 고흐의 작업에서 영향을 받았다고들 하지만, 정작 세잔느나 고흐는 동의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여기서도 흔한 비유가 적용되는데 즉, 예술의 표현은 달을 가리켜 달을 제대로 보게 하려는 손가락 동작과 같은 의미입니다. 그러나 저에게 표현주의는 달이 아니라 작가의 손가락을 보게 할 뿐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예술에 있어서 표현이란 ‘아무런 예술적 편견 없이 마치Q6. 작가님의 작품 중에는 ‘자화상’이 많이 등장합니다. 이선영 평론가님 또한 ‘변주된 자화상’이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동물, 영감을 주었던 아티스트와 일반인 등 자아 같은 타자들을 통해 확대된 자화상들이 작품에 많이 엿보입니다. 그렇다면 풍경화나 정물화에서 보이는 수많은 대상들과 전·후경의 배경이 아닌 자화상의 1인칭 회화를 그리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김명숙 : 자화상을 그린 것이 아닌 ‘타화상’을 그린 것입니다.^^ 내게 그려지기를 요구하는 대상, 그 타자들과 감정이입이 일어났다는 의미에서, 이 작업들은 나의 <타자되기>의 연작들이었습니다. 고흐의 해바라기와 사이프러스가 고흐의 변주된 자화상이었다는 의미에서 저의 연작들 역시 변주된 자화상일 것입니다..
Q7. 작가님 작품들을 보면서 느껴졌던 1차적인 감정은 비극적이고 섬짓한 감정이었습니다. 더불어 수 없는 선들의 번짐과 뭉침, 흩어짐을 바라보며 켜켜이 쌓인 선들의 과장된 모습들이 표현주의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실제로 작가님은 작품들 중에 ‘오버워크’ 되었다고 종종 말씀 하셨는데 그러한 표현주의에 대해 깊은 인상을 받으신 건가요?
김명숙: 모든 예술은 표현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미술사에서 규정한 표현주의의 표현과는 다른 의미의 표현일 것입니다. 입체파가 세잔느의 작업에서, 표현주의가 고흐의 작업에서 영향을 받았다고들 하지만, 정작 세잔느나 고흐는 동의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여기서도 흔한 비유가 적용되는데 즉, 예술의 표현은 달을 가리켜 달을 제대로 보게 하려는 손가락 동작과 같은 의미입니다. 그러나 저에게 표현주의는 달이 아니라 작가의 손가락을 보게 할 뿐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예술에 있어서 표현이란 ‘아무런 예술적 편견 없이 마치 구두를 만드는 것처럼 그림 그리기’ (고흐) 에서의 구두를 만드는 과정, 즉 구현의 의미로서의 표현일 것입니다. 더불어 내가 오버워크를 했다는 의미는 표현주의를 추구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솜씨 없는 구두쟁이가 완벽한 구두를 만들어 보려고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었다는 의미입니다.
작가가 사랑한 작품들
음악
Sting - Shape of my heart
Janis Joplin - Work Me Lord (woodstock version)
Amy Winehouse - Some Unholy War
영화
·Luc Besson - The Grand Bl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