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6년 박해 이후로 신자들에 대한 탄압은 더욱 심해져, 많은 교우들이 박해를 피해 영동 지방까지 피신하여 교우촌을 이루고 옹기를 구워 근근히 생계를 이었다.
1868년 강릉 굴아위에 살던 심능석 스테파노와 이유일 안토니오가 경포(京捕)에게 잡혀 서울로 끌려가 순교하였다. 심 스테파노는 자신을 찾는 경포에게 떳떳이
천주교인임을 밝히고 붙잡혔다. 심 스테파노와 이 안토니오는 현재 한국 천주교회에서 시복을 추진하고 있으며 춘천교구 교우들은 매 미사 때마다 시복시성을
위한 기도를 바치고 있다.
임당동 성당은 1921년 7월 양양본당 보좌신부였던 이철연 프란치스코 신부가 금광리 교우촌에 머물면서 사목한 데서 시작되어, 1923년 주문진, 1931년 강릉읍
으로 본당을 옮겼다가 1934년 현재의 자리로 이전하였다. 강릉본당으로 불리다가 1974년 11월 임당동본당으로 이름을 변경하였다.
1955년 준공된 임당동 성당은, 1950년대 강원 지역에서 동일한 기법의 고딕양식으로 건축된 성당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건축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중앙부 종탑과 건축 당시의 외형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문화재로서 가치를 인정받아 2010년 국가 등록문화재 제457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