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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지하 식품부.
아침 조회시간.
고객에 대한 친절 교육과 인사복창을 한 다음, 그날 일터와 청소에 필요한 용품을 배당받아 둘씩 짝을 지어준다.
짝꿍은 나보다 5살 아래였지만 손자가 초등학교 3학년이란다. 오랜 경력을 쌓은 그녀의 일머리는 경이로웠다.
자그마하니 땅땅한 몸매를 어찌나 재게 놀리는지 미처 따라잡지 못해 대걸레를 질질 끄는 나에게 대걸레를 질질 끌면 cc tv에 찍힌다고 질겁했다. 걸레는 항상 앞으로, 알았지요? 그녀는 '항상 앞으로'를 대 여섯 번이나 복창하면서 얼굴이 빨개졌다.
cctv에 찍힐까 봐 엔간히 겁이 나는 모양이다. '한 손은 대걸레 위를 꼭 잡고, 다른 한 손은 중간지점을 잡아 돌려가며 마포 질을
해야 깔끔하게 된다고요.' 설명은 쉬워도 막상 하려면 어려웠다.
신입 교육 잘못시키면 자기가 문책당하니 잘하라며 어깨를 들썩였다.
쉬는 시간이 되자 짝꿍 아줌마 수다가 시작됐다.
쉴 새 없이 지껄이는 와중에 무심한 척 내 신상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요 몇 년 혼자 조용히 살던 버릇이 들어있던 나는
죽을 맛이다. 육체를 놀리는 일보다 이야기를 듣는 일이 더 힘들었다. 최선을 다해 고개를 끄덕여 장단을 맞추는 일,
감탄사를 섞는 일,
적당한 질문을 준비하는 일이 시를 쓸 때보다 더 골똘하게 한다. 그래도 열심히 분위기를 맞춘다.
결혼하고 삼십 오 년간 매일 하던 청소가 손에 익지 않아 짝꿍 아줌마 잔소리를 자주 듣다 보니 정신이 혼미했다.
짝꿍 아줌마는 내 실수를 즐기는 것 같다. 청소전문가의 긍지려나.
변기 뚜껑에 입이 닿도록 코를 박고 변기 몸통을 닦고, 뚜껑을 닦고, 변기 속을 닦으면서 이 일로 밥을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하자고
중얼거린다.
때로는 중얼거림이 약이 되기도 한다. 괜찮아, 괜찮아. 잘했어. 혼자 묻고 답하면서 청소 아줌마들의 신입이 되었다.
점심시간에 청소 아줌마들이 모였다. 계단 밑 공간에 라면상자를 깔고 둘러앉아 왁자지껄 수다가 시작되었다.
신입은 김밥과 사과로 내일 신고식을 치러야 한다고 짝꿍이 귀뜸한다.
둘째 날, 1층
신입의 첫째 임무, 되도록 빨리 전 층을 돌며 백화점 구조를 익혀야 한다.
1층 엘리베이터가 가동되기를 기다리는 동안 엘리베이터 문과 주변 벽을 닦는다.
엘리베이터 앞 휴지통도 손자국 하나 없이 닦고 액자나 팻말도 먼지 한 톨 없이 닦는다.
엘리베이터가 가동되자 안쪽 문과 벽, 엘리베이터 짬 새를 손닿는 곳까지 닦는다.
엘리베이터가 올라가기 전에 순식간에 해치워야 하는 게 포인트다.
특히 층 표시는 지문이 많이 묻으므로 신경 써서 닦아야 한다고 짝꿍이 일러준다.
넓은 홀 마포 질은 청소 아저씨들이 청소차를 몰고 다닌다. 청소차가 신기해 돌아다보다 넘어질 뻔했다.
밖으로 난 대형유리창과 쇠창살은 양손을 동시에 휘둘러 닦는다. 어설픈 나는 자꾸 한쪽 걸레를 떨어트린다.
유리를 닦은 걸레로 홀 중간에 있는 소파를 닦다가 짝꿍에게 혼이 났다.
딴엔 시간을 절약한답시고 그랬는데 유리 닦던 걸레로 소파를 닦으면 유리에 먼지 앉는다고 성질을 부렸다.
백번 맞는 말이다. 청소도 요령이 있다. 백화점 청소는 집 청소와는 비교가 되지 않게 청결을 요구했다.
고객들이 잠시 앉아 쉬는 소파를 걸레로 닦고, 건물 주변에 떨어진 것이 없나 확인하느라 잠시도 쉴 틈이 없다.
점심시간이 되자 김밥과 음료수와 사과를 사 들고 가 아줌마들이 있는 계단 밑 공간에 라면상자를 펼쳐 자리를 만들었다.
수다 삼매경이 한창일 때, 반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식품부 채소류 냉장고 밑에 물이 떨어졌으니 어서 가보라는 불호령.
총 근무시간은 열 시간, 점심 시간과 쉬는 시간 합쳐 두 시간의 휴식시간이 있지만, 쉬는 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고로 눈치껏, 요령껏 몸을 쉬어야 한다. 매장을 한 바퀴 돌면서 마포 질을 하고 나면 숨이 차고 숨 쉴 때마다 명치와 가슴이
쪼개지듯 아프다. 지병인 심장병 탓이다.
요령껏 움직여야 하지만 요령이란 일이 몸에 익숙해져야만 가능하다.
더구나 나는 고관절과 퇴행성 관절염 골다공증을 합친 부실한 몸이다.
처음 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요령을 피울 줄 모르는 나는 몸만 힘들다.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살뜰히 살림만 하던 나는 예순이 넘은 나이에 겪는 노동이 익숙해지지 않는다.
집안일치곤 다른 집보다 4대가 사는 대가족이어서 엄청나게 많은 일을 했는데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