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그 날을 기억하며...
남북 단일팀 이야기를 소재로 한 <코리아>라는 영화를 만들겠다는 제의를 처음 들었을 때
전 너무 반가운 나머지 하십시오. 제가 적극 지원하겠습니다. 라는 말이 절로 나왔습니다.
1991년 세계선수권 대회 출전을 위해 처음 결성되었던 남북 단일팀은 단순한 스포츠 경기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분단 이후 처음으로 결성된 남북 단일팀이었고, 지금보다도 더욱 경색되어 있었던 남과 북이 교류의 물꼬를 트는 최초의 사건이기도 했지요.
탁구는 저의 인생과도 같습니다.
1991년 남북 단일팀 이전에는 금메달, 세계 1위, 도전, 한계 극복... 이런 의미들로 나에게 ‘탁구’가 소중했다면, 남북 단일팀 이후 ‘탁구’는 내게 단순한 스포츠가 아닌 그 이상의 의미가 되었습니다.
탁구로 희망을 만들고, 탁구로 평화를 만들고, 탁구가 모두를 하나로 만들 수 있다는 것.
<코리아>라는 영화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그토록 반가웠던 건 바로 이런 이유들 때문일 겁니다.
제가 느꼈던 슬픔, 환희, 벅찬 감동... 많은 것들을 함께 나누고 싶기 때문이지요.
22년이 흘러 이제는 중년이 된 분들은 그 날의 희망과 감동을 다시 느끼길 바라며,
그 당시 너무 어려서, 혹은 세상의 빛을 보기도 전이어서 이 사건을 알지 못하는 젊은 세대들은
그 때의 이야기를 통해 새로운 희망과 도전을 찾길 바래 봅니다.
현정화 감독의 '그 날의 그 감동' 첫번째 포토 코멘터리
남북 단일팀이라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놀란 나머지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남과 북이 만나 한 팀이 된다는 것은 우리로썬 상상해 본 적도 없는 당혹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한 편으론 우리끼리 나가서 금메달을 따는 것이 더욱 값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남과 북, 서로 다른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한 팀이 되어 호흡을 맞춘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하지만 이렇게 우리가 당황스러워 하는 동안 이미 우린 전국민, 아니 전세계의 관심 속에 사상 최초로 결성된 남북 단일팀의 주인공이 되어있었다.
아직은 어색한 우리들…
그리고, 리분희 선수와의 첫 만남
[1991년 세계선수권대회, 남북 단일팀 선수단]
남한의 대표 선수와 북한의 대표 선수, 혹은 숙명적인 라이벌 관계
이것이 나와 리분희 선수가 한 팀이 되기 전까지의 관계였다. 당시 한국과 북한이 경기를 할 때엔 정말 전쟁에 나간다는 생각으로 경기를 해야 하던 때였다. 조금은 도도해 보이고 차가워 보이는 나의 라이벌 리분희 선수. 그녀와 함께 경기를 할 때면 나는 더욱 긴장되었다. 내가 부지런히 쫓아가야 할 상대이자 넘어서야 하는 라이벌. 네트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기만 하던 그녀와 한 팀이 되었다. 훈련해야 하는 목적지로 향하는 기차 안. 한 팀이라는 말 자체가 어색하기만 한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전세계에서 몰려온 수많은 방송과 기자들이었다. 22살의 어린 나이였던 나에게 그런 상황들은 낯설고 힘들었다.
남과 북,
우리들 사이에 얼어있던 공기가 조금씩 따뜻해지고 있었다.
[리분희 선수와 현정화]
북한 팀을 만나기 전에 나는 ‘북한 선수들은 훈련의 강도나 횟수도 우리보다 훨씬 많을 것이고 농담 같은 것은 전혀 안 할 것이다’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함께 만나고 훈련을 거듭할수록 조금씩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20대, 같은 또래의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다 똑 같은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이성에 대한 관심, 앞으로의 미래, 돈을 버는 것, 여자 선수들의 경우에는 외모에 대한 관심사까지 비슷한 것들이 많은 20대의 순수한 청춘이었다. 특히 리분희 선수는 나보다 한 살 더 많았으니까, 때론 친구 같기도, 언니 같기도 한 사람이었다.
점점 한 팀이 되어가는 우리들!
[현정화 & 리분희 선수의 경기 장면] [남북 단일팀]
훈련하는 것 또한 북한 팀도 다를 것이 없었다. 처음 훈련을 할 때엔 서로에 대한 라이벌 의식이 있었던 것 같다. 북한 선수들보다 내가 더 잘 해야 되는데, 내가 더 연습을 많이 해야 되는데 하는 묘한 경쟁심. 그런 부분이 오히려 서로에게 좋게 작용했다.
탁구는 테이블 앞에 서면,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오로지 같은 곳에 서서 작은 공 하나에 서로의 모든 에너지를 집중 할 때 한 팀이 되는 것일 뿐.
리분희 선수와 함께 훈련을 받으며 더욱 마음을 열게 된 계기는 그녀에게 간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부터였다. 리분희 선수는 간염으로 인해 정해진 시간만큼만 훈련을 해야 되기 때문에 하루에 소화해야 하는 운동량을 소화하지 못했다. 제대로 된 약도 챙겨먹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리분희 선수가 안타까웠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보다 꿋꿋이 훈련해 나가는 그녀의 모습이 존경스러웠다. 그렇게 우리는 서서히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리분희 선수와 가까워질수록, 그리고 그녀에 대해 더욱 많은 것을 알게 될수록 우리는 단단한 팀이 되어갔다. 우리는 서로에게 같은 팀으로서 보다 더 좋은 선수가 되어주기 위해 노력했다. 리분희 선수와 나 사이에 끈끈한 무언가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다음주에도 ‘그 날의 그 감동’ 두 번째 포토 코멘터리가 공개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