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파수꾼
어떤 개체나 조직 상태를 진단하는 데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물질의 산성도 측정은 리트머스시험지로 간단히 해결한다. 아파트 층간을 비롯한 소음을 측정하는 단위는 데시벨이 있고 수질오염에는 생물학적 산소 요구량이 있다. 인간 신체의 건강성 측도 가운데 중요한 눈금이 되는 수치가 있다. 그것은 바로 신체 노화가 진행되면서 자연히 수치가 올라가는 혈압과 혈당량이다.
인간의 주거환경이 얼마나 쾌적한가를 알려주는 지표는 여러 가지다. 그 가운데 하나가 사람들이 사는 동네에 여러 종의 새들이 얼마나 많이 서식하는가도 중요한 지표가 된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새들이 살 수 없는 환경이라면 인간도 살아남을 수 없다는 이야기다. 인간이 자연과 공존해야 하는 이유와 우리가 얼마나 자연을 숭배하고 자연 앞에 겸손해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잠시 화제를 돌려본다. 일부 사람들은 자신의 고독을 치유하려고 반려동물을 키운다고 한다. 강아지나 고양이를 비롯해 새장 속의 새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혈육을 나눈 가족 이상으로 끔찍이도 동물을 사랑한다. 나는 반려동물에는 관심이 없다. 그렇지만 나는 산과 들에 야생하는 동물들 모두가 그들의 반려동물만큼이나 사랑의 대상으로 삼고 싶다. 요란스럽게 떠들썩거리지 않고.
그렇게 춥다고들 한 겨울도 막바지다. 엊그제 대한이 지났고 열흘 뒤 입춘이다. 봄은 우리가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 우리 곁에 다가오고 있는 중이다. 그간 틈이 날 때마다 강가나 바닷가를 나가 걸었다. 그런데 우리 지역의 대표적인 철새도래지인 주남저수지는 들리지 않았다. 전혀 가지 않은 것은 아니고 주남저수지 건너편은 겨울 들머리 돌미나리를 걷어오느라 한 차례 들렸다.
주남저수지는 시간이 없어서 찾지 못한 게 아니라 나 말고도 여러 사람들이 찾기 때문이다. 달포 전 주남저수지에선 철새축제가 열려 탐조행사를 비롯한 생태 환경을 체험하는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방학을 맞아 아이들과 함께 야외로 나온 가족들도 많았다. 전문 사진작가들은 포신같이 육중한 카메라로 철새들을 군상을 포착하느라 군인들이 입는 위장복까지 입고 나타나기도 했다.
일월 하순 주중 수요일 하늘은 잔뜩 찌푸렸다. 아침나절 나는 남들보다 뒤늦게 주남저수지를 향해 나섰다. 도계동 만남의 광장에서 본포로 가는 41번 녹색버스를 탔다. 봉강에서 각을 크게 꺾어 산남에서 가술을 지나 본포까지 가는 버스였다. 산남마을 앞에서 내려 들길을 지나 산남저수지 둑부터 걸음직 했으나 용산마을에서 내렸다. 용산은 산남저수지와 주남저수지 경계지점이다.
산남저수지는 붕어를 낚는 낚시꾼 서너 명이 있었다. 둑 안 물가에 자라는 능수버들 가지에선 파릇한 수액이 올라 함초롬히 늘어졌다. 용산마을에서 데크 보도를 따라 주남저수지 쪽으로 걸었다. 얼음이 얼지 않은 수면 위는 고방오리와 가마우지가 떼 지어 놀았다. 얼음 위는 여름 철새로 귀향을 단념하고 텃새처럼 살고 있는 왜가리와 백로가 파수꾼처럼 외다리로 외로이 서 있었다.
길고 긴 둑길을 걸어 제3수문을 지나 탐조대 앞으로 갔다. 어린이집에서 새를 관찰하러 나온 귀여운 아이들을 만났다. 큰고니 떼들은 자기들끼리 뭐라고 고시랑고시랑거리고 있었다. 인근 들판으로 먹이사냥을 떠나지 않은 쇠기러기들도 보였다. 탐조대 앞 들판엔 먹이를 뿌려 놓았는지 다양한 종의 철새들이 탐조객을 의식하지 않고 식사를 즐겼다. 인간과 공존하는 철새들이었다.
우리나라를 찾아오는 겨울 철새들은 바이칼이나 캄차카반도 일대가 서식지다. 혹한기 따뜻한 남쪽으로 내려와 한 철을 잘 보내다 간다. 철새는 이동하면서 20퍼센트, 도래지에서 20퍼센트 희생된다. 족제비나 매들이 천적이다. 철새들은 천적을 두려워하지 않고 머나먼 길을 오간다. 생환해 가는 개체 수가 절반만 넘으면 성공이다. 그곳서 다시 식솔을 불려 가을이면 또 데리고 온다. 13.01.23
첫댓글 고맙습니다. 머릿속으로 풍경을 옮겨 주시어...
조용히 다녀오고 싶은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