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6월, 단잠에 취해 있던 일요일의 고요를 탱크와 대포로 중무장한 붉은 무리의 야욕은 평화를 단숨에 짓밟아버려 대책 없던 정부와 백성은 보따리 싸기에 바빴고 한없이 밀리고 밀려 한순간에 부산까지 밀려났지만, 자유우방의 참전과 우리의 백성과 젊은이들은 하나가 되어 목숨 바쳐 나라를 구했다. 전쟁 후의 폐허를 복구하느라 허리띠를 졸라매고 부국들의 원조로 생명을 연명하기도 했던 것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파병 군인들의 목숨의 대가와 참전의 명분으로 차관을 받아 밑거름을 삼았고 파독의 광부나 간호사들이 열사의 역군이 되어 건설의 땀방울을 재원으로 우리나라는 세기의 기적으로 일컬을 만큼 빠른 경제 자립을 이룩했다. 그리고 70여 년간 전쟁을 모르는 국민이 됐고 자유와 풍요를 만끽하는 우리의 자녀들은 그 고난의 시절과 땀의 노력과 희생을 잊고 사는 것 같아 부쩍 씁쓸한 기분이 든다. 국력만이 국민을 지켜주고 국력이 행복의 근원이기에 선진국들은 독립기념일이나 국가유공자들에게 나라가 온 힘을 다해 예우하고 받들고 기리며 전통을 이어가려고 힘을 다하는 것이다. 모병제인 미국은 군에만 들어가도 평생 삶을 보장해 준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도 호국선열들과 국가유공자들을 받들고 예우하며 공감대를 이루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러나 선진국에 비한다면 흉내에 불과하다. 우리나라는 캐나다나 호주의 참전 수당의 1/10에 불과하지만, 그마저 일부 사람들은 자기네들은 받지도 못하는 보상금을 받는다고 사촌이 땅 사는 것쯤으로 생각하는 눈빛이다. 관계기관은 모두가 예산 타령이다. 선진국에선 우선순위가 국가유공자고 우리나라는 우선 건설이고 복지고 교통이고 그리고 나서야 국가유공자인 것이다. 마치 자녀들이 부모를 생각하는 것과 유사하다. 아파트도 늘리고 차도 사고 사업의 안정과 성공이 우선하는 자녀들의 현명한 계산이지만 그래도 부모를 사랑하고 아끼는 많은 자녀들은 부모를 후 순위로 미루지 않는다. 부모는 나이도 건강도 기다려 주지 않기 때문이다. 전쟁이 끝 난지 70여 년. 꽃 같은 젊음과 목숨을 바쳐 국가를 위해 싸웠고 국가는 번영을 누리는데 그 초석을 이룬 고령의 국가유공자들에게 아직은 예산이 없으니 차차 개선해 나가겠다는 보훈처나 예산 집행부서의 변은 어불성설이다. 싸우다 불구가 되어 보상금을 준다고 참전 수당이나 무공훈장 수당을 줄 수 없다는 보훈처다. 목숨을 걸고 싸워 나라를 지킨 국가유공자들의 공적을 묵살하는 나라가 보훈의 달이니 현충일에 국가유공자들과 호국영령들에게 오늘의 영광을 돌린다는 말이 어떻게 나온단 말인가. 유월의 태양인 국가유공자들의 가슴엔 뜨거운 눈물이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