看花(간화)
이색(李穡:1328~1396)
본관은 韓山. 자는 영숙(潁叔), 호는 목은(牧隱), 시호는 문정(文靖).
고려 말기의 문신이자 성리학자이며 정몽주, 정도전, 하륜 등이 그의 제자다. 조선 성리학의 주류를 이루게 하였고, 역성혁명에 협력하지 않았지만,, 그의 문인들은 혁명참여파와 절의파로 나뉘었다. 그도 1396년 여주로 가던 중 여강(驪江)의 배 안에서 급사(急死)했다. 일설에 독살되었다는 설이 있다. 여말삼은(三隱)의 한 사람으로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대표작으로 「부벽루」와 「「독두시」가 있다.
저서로는 『목은시고(牧隱詩藁)』 · 『목은문고(牧隱文藁)』있다.
우거진 수풀 향기로운 풀이 꽃보다 나을 때
綠陰芳草勝花時 녹음방초승화시
한 자락 맑고 한가함을 누구에게 줄 수 있으랴
一段淸閑付與誰 일단청한부여수
앉아서 생각해 보니 병든 노인에게 주는 환약 처방이네
坐想病翁丸藥處 좌상병옹환약처
뜰에 가득 보슬비 내리고 꾀꼬리 지저귀네
滿庭微雨囀黃鸝 만정미우전황리
*
어제 토요일
팔달시장에 갔다
간 이유는 가끔 나오시는
도장을 새기는 노인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여러 차례 집사람에게 부탁을 했다
시장에 가면 계시는지, 확인하고 연락 좀 해달라고
매번 갈 때마다 계시지 않았는데
그날따라 나와 계신다는 연락을 받고
팔달문 옆 공중화장실 앞 노상에서
작은 가방을 펼치고 보조의자에 앉아 손님을 기다리는 노인을 만났다
나 또한 생면부지 사이이지만
예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처럼 낯이 익어 보였다.
요즘은 도장도 기계로 새긴다고 하지만
나는 사람이 직접 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 사람의 혼과 기운이 도장에 스며들기 때문이다.
그분의 예술적 감각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도장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도장의 용도에 따라 많은 도장을 가지고 있지만
그분이 도장을 잘 판다고(?) 소문을 듣고 있었다.
처음에는 한글 도장을 주문했다
십장생이 그려진 대추나무인데,
벼락 맞은 대추나무라고 했다
일반 대추나무보다 세 배 가까이 비쌌다
사실 대추나무가 벼락을 맞았는지, 알 길이 없지만
믿고 그것으로 하기로 했다.
도장을 새기면서 그 어른이 말씀하시기를
번개 맞은 대추나무는 단단한 것보다는
이름을 새길 때 질기다고 한다
잘 파지지 않아 차라리 상아(象牙)가 훨씬 쉽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칼이 잘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질겼다
도장을 새기면서 주위로 사람들이 신기할 정도로 모여들었다
무슨 구경이 난 것처럼
몇몇은 내 도장을 파는 것을 보면서
자기들 것도 파달라고 주문을 했다.
한글 도장을 끝내고 이번에는 한자로 도장 하나를 더 팠다
도장 2개를 파는데 2시간 가까이 걸렸다.
주위에 젊은 커플도 번갈아 가면서 꼼짝도 안 하고 그것을 지켜보고
자기들 것도 파달라고 하고
아주머니와 딸들도 기다리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도장가격을 물을 때
나도 모르게 도장의 종류에 따라 대신 대답해 주었다
그 노인의 말씀이 도장을 새길 사람은
가격보다 도장을 먼저 고른다고 한다.
도장을 받으면서
고맙다고 도장집도 주셨다
돈 받고 파는 것인데 그냥 주신다고......
사실 나에게는 도장은 단순한 것이 아니라
부적(符籍) 같은 존재인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좋든 싫든 도장 찍을 일이 많다
모든 사람들이 경사스러운 일에
도장 찍을 일이 많았으면 좋겠다.
첫댓글 꽃을 보듯 글을 보았습니다. 이색의 한시도 좋았지만 도장 새기는 노인의 이야기 잔잔하고 맑은 울림을 주네요. 정성껏 올려주시는 글들 읽을 때 마다 감사한 마음이 들었어요. 번개맞은 대추나무 도장이 조만간 경사스러운 일에 쓰이길 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