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15일
본문 : 요12:1-3
제목 : 주의 마음을 보게 하소서
'앞으로 대한민국에 요즘처럼 교회가 많은 때가 또 올까'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교회가 많은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참 귀한 복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많은 교회들이 진실로 교회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가' 하는 염려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다른 교회 걱정할 것 없이 저와 우리 영명교회부터 하나님 앞에서 참회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본문 말씀을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향유가 든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죽으심을 미리 장사 지내는 한 여인의 신앙 고백이 담긴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4개의 복음서에 다 나오는 말씀입니다(마26:6-13, 막14:3-9, 눅7:36-50, 요12:1-8). 그 이유는 주님을 기쁘시게 만든 마리아라는 여인의 믿음의 행실을 모든 신자들이 본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믿음은 분명 우리에게 귀감이 됩니다. 즉 '주 예수님을 만나고 그분을 예배할 때 어떻게 영광을 돌려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그녀의 믿음의 행실이 바른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막14:9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오늘은 본문 말씀을 통해 이 여인의 믿음의 행실은 무엇이었으며, 주님을 항한 그녀의 마음가짐과 태도가 얼마나 귀한 것이었는지 살펴보면서 우리가 시급하게 인지하고 고쳐야 할 것들은 무엇인지 배우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분께서 우리 각자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는 항상 예배의 중요성을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참된 예배'란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가 참된 예배일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사실은 대부분의 성도들은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는 영과 진리의 예배를 드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감사와 회개가 빠진 형식적이고 습관적인 예배를 드리지는 않는지 자신의 신앙과 예배와 삶을 되돌아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오늘날 우리의 예배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감정의 변화입니다. 예배 안에서조차 내 생각, 내 욕심, 내 죄에 매인 본성을 포기하지 못한 채 은혜 받고 예배 성공한 신앙인인 척 연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모든 예배가 끝나고 성도들과 헤어진 후 예수님은 교회 본당에 그대로 모셔 두고 나만 출애굽하듯 세상으로 나아와 주님과는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본문 1절의 '유월절 엿새 전'은 예수님의 공생애가 다 지나간 것을 의미합니다. 고난주간의 시작과 함께 십자가의 죽으심이 멀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유월절'이라는 단어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빌라도 총독이 예수님과 죄인 바라바 중 누구를 살려줄 것인지 모인 사람들에게 선택하게 했던 일을 기억하십니까? 그것은 유월절에 죄수를 풀어주는 유대인들의 연례행사였습니다. 따라서 '유월절 엿새 전'은 주님께서 잡히시는 날이 곧 온다는 것을, 다시 말해서 수난절기가 도래했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시기 전 마지막으로 들르신 곳이 바로 베다니입니다. 주님께서는 그곳에서 죽었다가 살아난, 주님의 형제와 같은 나사로의 집에 머무시며 그들을 축복해주셨습니다. 주님과 제자들 주위에는 늘 그랬던 것처럼 맹수와 같은 인간들이 편을 짜고 주님을 죽일 계획을 세우고 있었지만 예수님께서는 나사로의 집에서 쉬시며 아름다운 교제를 나누셨습니다. 식사 때가 되어 주님께서는 나사로의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하셨습니다. 바로 그때 오늘 말씀의 핵심인 놀라운 축복의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마리아라는 여인이 손에 무언가를 조심스럽게 들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최고급 향유가 들어있는 옥합이었습니다. 그녀는 그 옥합을 미련 없이 깨뜨리고 그 속에 담긴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부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발에 입을 맞추고 눈물을 흘리며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주님의 발을 닦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보시고 크게 기뻐하셨습니다. 그녀의 모습은 주님께 영광을 돌렸던 그 어떤 이의 행위보다 더 영광스럽게 빛났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우리의 모든 죄를 홀로 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무덤 속에 누이신 죄 없으신 예수님의 장례를 미리 치르고 있는 모습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악한 제자 가룟 유다가 그녀를 비난했습니다. 요12:4-5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이는 주님을 잡아서 돈을 받고 살인자들에게 팔아넘길 제자의 악함이 여실히 드러나는 말이었습니다. 돈을 사랑하는 도둑(6절)이었던 그는 돈으로 자신을 지키고 싶었습니다. 아무리 많은 돈이 있어도 만족하지 못했고, 자기 것이 아닌 헌금을 소유하려고 했던 부질없는 인생을 산 사람이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그 여인을 가만 두어라(7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곧 마리아의 행동이 바로 '참된 예배'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영적 예배를 원하셨습니다. 식사 대접도 좋고 잔치도 좋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때 주님의 장사를 위한 예배를 가장 원하셨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런 예배를 드린 그녀를 대변하는 변호인이 되어주셨고, 목자가 양을 지키듯 그녀를 보호해주셨습니다.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7절)'는 예수님의 말씀은 '이 공간에서 참된 영적 예배를 드리는 자는 마리아뿐이다'라는 뜻입니다. 참으로 영광스러운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마리아처럼 예수님께서 가장 원하시는 예배, 변치 않고 그분을 경외하는 참된 예배를 적재적소에 드리는 그리스도인들이 됩시다. 주님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깨뜨려야 할까요? 마리아처럼 300데나리온이나 되는 비싼 물건을 드리는 것만이 주님을 위한 일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마리아가 자신의 전 재산과도 같은 향유가 든 옥합을 주님께 드린 것은 곧 자기 자신을 드린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자기 자신을 전부 드리신 것처럼 오늘 우리도 우리 자신을 산 제사의 산 제물로 주님께 드리기를 결단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믿음 안에 바로 서서 우리를 조롱하는 세상의 거짓된 소리, 우리와 주님 사이를 멀게 만드는 마귀의 소리, 모든 것이 부질없다고 가스라이팅하는 불신앙의 소리들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단호하게 물리치고, 예수님의 부르심에 귀기울이며, 그분의 죽으심과 부활, 승천 그리고 재림을 우리 삶의 중심에 두고 날마다 주님께 기쁨과 영광을 올려드리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이렇게 진정한 예배자가 될 때 향유가 든 옥합이 깨져 그 공간을 향기로 가득 채우듯 우리의 순종과 믿음의 행실이 주님의 역사의 한 페이지를 가득 채워 주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예배 속에서 우리의 옥합을 깹시다. 두려워하지 말고, 아까워하지 말고 깹시다. 옥합의 목적은 그것이 깨질 때 이루어집니다. '관상용 크리스천'이 되시겠습니까? 아니면 주님의 제자들처럼 깨지고 부서져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참된 신앙인으로 거듭나는 진정한 예배의 향유가 되시겠습니까? 십자가를 묵상합시다. 십자가를 기억합시다. 깨져야만 향기를 가득 채우는 옥합처럼, 자기 자신을 깨뜨리심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온 세상에 가득 채우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이 시간 깨집시다. 우리의 모든 불신앙적인 요소들을 깨고 참된 신자로 다시 태어나 주님의 일을 감당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