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이곳저곳
추억의 한 페이지
프랑스 에펠탑안에 만국기속에 우리나라 태국기가 보여서 반가웠다
2006년.3.17일에 파리 비행장 가까운 힐튼호텔에 여장을 풀고 파리 거리로 나섰다 이층 버스가 새롭게 보였다. 에펠탑을 제일 먼저 관광 63 빌딩보다 더 높았다. 파리 시내가 다 보였다. 그리고 에펠 탑 안에 만국기 속에 우리나라 태극기가 보여서 반가웠다. 없었는데 애국 관광객들이 항의하여 얼마 전에 올린 것이란다
루브르 박물관 이사진은 그 유명한* 딸이 감옥에서 굶어 죽게 된 아버지에게 젖을 먹이고 있는 그림 밀러의 팔 없는 비너스 루브르의 3대 자랑거리 중 하나 발견 되었을 때 팔이 없었다가 그리고 비너스 아래 사진은 여신상인데 미국 이름으로는 나이키이다. 이것도 발견 당시 목이 없었다. 모나리자는 사진 촬영 금지였다 후레쉬 불빛에 손상당할 수 있다고 함
루브르 박물관의 3대 자랑거리
1) 수태고지…. 임신 순결( 성가조그 성녀안나는 성모마리아의 어머니 응석의 어린이로 오신 것이 아니라 어린양을 돌 보러오신 것이 예수님
2) 모나리자의미소(레오날드다빈치)
3) 밀러의 비너스 (발견되었을 때 팔이 없었다)
몽마르트르 언덕(순교산)
나폴레옹 3세 때 로마의 식민지, 예수 성심 성당, 쌩등 신부처형(쌩등성당) 순교자리에 성당 지으라고 유언 달동네 비슷한 곳이었다. 고흐가 둥지를 튼 곳이며 피카소의 마지막 살던 곳 예술가의 마을 거리엔 화가들과 그림 악사들과 집시의 여인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몽마르트르 언덕
개선문
1806년 나폴레옹이 30년 걸려 완공 충혼의 불꽃을 24시간 밝혀주고 있다. 외국 정상들이 헌화하는 곳이다. 전사자들의 이름이 있고 동맹국 이름들이 있다….
베류사이유궁전
궁전에서 가장 볼만한 것은 17개의 대형 거울이 높다란 아치형의 창문과 마주 보고 있는 '거울의 방'이다. 길이 70m인 이방은 대형 샹들리에의 전시장이기도 하다. 또한 "왕비들이 출산하였던 왕비의 침실 루이 14세의 초상화가 걸려있는, "아폴로의 방 루이 14세" 동상이 화려한 대리석 장식 한가운데 세워져 있는 "비너스의 방" 2층에 있는 왕족만 사용할 수 있었던, 코린트식의 기둥에 흰 대리석, 금 도금된 바로크 벽화로 장식된 "왕실 성당" 등이 볼만하다. 나폴레옹의 대관식 (나폴레옹의 어머님이 대관식에 불참석한 것이 안타까워 어머니 그려 넣은 것) 효자였나 보다 화가 다비드
"노트르담 대성당" (노트르담 꼽추란 영화를 촬영한 곳이다) 노트르담 성당 마당에 있는 파리의 중심 표시에서 노트르담 성당은 사진에 담아내기엔 너무 높았다…. 까히에서본 사진(노틀담 성당)
프랑스주재 한국대사관 포럼/주 철기 대사 강의 내용 2006.03.20(월) 10:00~11:00
K가 아니라 C 이상하다
한국과 프랑스는 1886년 우호 통상조약 체결로 외교 관계를 수립하였으며, 1910년 한일합방으로 관계가 단절되었다가, 1949년 2월 외교 관계를 재개하였습니다.
1949년 외교 관계 재개와 함께 양국은 공사관을 설치하였으며, 1958년 양국 공사관을 대사관으로 승격,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양국은 정치, 경제, 문화 등 제반 분야에서 꾸준하게 돈독한 우호 협력 관계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우선 두 나라는 양국관계를 "21세기의 포괄적인 동반자 관계"로 규정하고, 이를 달성해 나가기로 합의하였습니다. 재불 한국인들은 13,000여 정도로 추산되고 있으며 한국에도 프랑스 교민사회가 점차 커지고 있으며 약 2,000여 명의 프랑스인들이 한국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평소 존경하는 김현욱 위원장님을 모시고 말씀드리게 됨을 감사드립니다. 중요한 외교안보포럼은 정말 필요한 일이고 감사한 일입니다. 프랑스외교정책과 한국에 대해서 간단하게 말씀드리자면, 프랑스는 17세기에 최 강대국이었고, 18, 19세기를 지나 20세기에 와서는 영향력이 많이 감퇴되었습니다.
20세기 중반에 EU에 가입해서 나라를 발전시키며 독자적인 국방력으로 프랑스의 위치를 계속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프랑스는 사회보장이 잘 되어있고, 젊은이들의 고용 창출에 대한 EU의 반대로 청년들의 데모가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프랑스 외교정책의 기조는 미국과 이념을 같이 하지만 다원적인 체제를 추구하며, 일본, 독일, 인도, 브라질을 UN 사임이 사 국으로 넣자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아시아와의 관계도 중요시하며, 독자적인 미사일을 개발하고 있고, 2003년 이라크 개전 이후로 프랑스가 대표가 되는 국제 다자외교를 중시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유엔환경기구의 설립을 주장하고 UN 안보리 상임 이사국을 늘리자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개도국에 대해서는 새로운 개발국에의 원조를 늘리고 에이즈 등 질병 퇴치를 위해 별도의 재원을 마련하자는 주장을 하고, 7월부터 항공권 발급 시에 소정의 금액을 떼어서 적립하고 있습니다. 유네스코에 문화의 다양성을 강조하고, 유럽통합을 중요시합니다.
EU 통합이 15개국까지는 순탄했으나 25국으로는 2~3년의 호흡조절 후에 가능할 것입니다. EU의 경제력을 키워나가고 EU의 경쟁력을 높이자는데 앞장서서 추진하고 있고, EU의 영향력을 높이기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자국의 국방력을 높이기 위해서 군사력의 보유를 강화하고 직업군인제로 바꿨으며 매년 군사 행진하는 유일한 국가로 자주 국방력을 강조합니다. 또한, 불어권을 넓히기 위한 노력을 하는데 예를 들면 불어로 CNN 같은 것을 만들려고 노력 중이며, 국력에 비해서 외교력은 세계 2위이며 9000여 명의 외교관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주요 국가와 관계는 미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아프리카 중동, 중앙아시아의 코소보 등에 EU 군대를 계속 확대해 나가며 NATO와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며 EU와의 관계는 유럽 안 보는 유럽인들이 책임진다는 주장을 하며, 불독 여단을 EU에 따로 배치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와는 파트너로서 매주 월요일 회합하고 있고, 시라크 대통령은 아시아를 중요시합니다. ASEM에 중심이 되어 참여하며 개발도상국에 불어권의 영향력을 포함해서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주요 국제 안보에 대해서는, 이라크인들을 지원하고 새 정부와 외교 관계를 갖고 이라크와 직접적인 관계는 아니지만, 이라크 영토 밖에서는 훈련을 함께 합니다.
우리나라의 이라크군 파견을 이해하며 적절한 때에 철군하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프간에도 군대를 파견했으며 테러에 반대하고 핵무기와 대량살상무기를 반대하며 테러의 근본 원인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중동과 팔레스타인의 발전을 지원하고 가자지구를 지원하며, 시리아, 레바논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PSI(핵확산방지)에 참여하고, 중거리 미사일에 관련하며 한. 프랑스 관계는, 19세기 초 프랑스 신부를 시작으로 병인양요, 외규장각 사건 등의 문제가 있고 우리나라와는 1986년 외교 관계를 수립하고 1900년부터 1905년까지 대사관을 설치했으며 1905년 대사관을 철수했다가 1910년 독립운동 후 상해임시정부에 파견했고, 우리나라와는 우호적인 측면이 많고 상해임시정부를 많이 도와주었고,1945년 드골 정부가 우리 정부를 승인했습니다. 6.25 참전국이며, 현재 교역 규모는 60억 불이고, 노 대통령 방문 후 한, 불 관계는 21세기 포괄 덕인 동반자로 하기로 했으며 앞으로 우리와 중요한 파트너가 될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평화, 햇볕정책을 100% 지지하며,
북한에 대표부는 있지만, 수교는 하지 않고 있습니다. 북한의 문제는 6자회담, 북핵 문제, 아편 문제 등에 있어서 실질적인 해결을 바라고 있습니다. 경제 관계는 앞으로 전망이 밝고 현재 까르푸 28개가 한국에 진출하고 있습니다. 문화 관계는 아시아엔 일본문화가 대표적인 줄 알고 시라크 대통령이 일본을 40번이나 공식 방문했으며, 최근에는 중국문화에 관심이 많고, 한국문화는 아직 잘 모르고 있습니다. 최근에 한국 영화를 통해 한국문화를 발견하고 있고, 교육 분야는 우리나라에 프랑스에서 양성한 박사가 1300여 명이 됩니다.
프랑스와 수교 120주년 기념행사를 130여 개 공연 진행 중이고 베르사유궁에서 국립예술단이 공연했습니다. 우리와는 정서가 잘 통하며 우리가 꼬레 오께-한국을 가슴속에라는 구호로 다가가고 있습니다. 프랑스인들은 중국은 겁이 나고, 일본은 어딘가 멀고 한국은 말은 안 통하나 어딘가 가깝다고 말합니다.
현재까지 프랑스 전역에서 꾸준히 대형행사가 아닌 중소행사로 문화행사를 꾸준히 하고 있고, 금년을 통해 21세기 미래 지향적인 행사를 하려고 합니다.
인공위성 관련 우리 과학자가 30여 명 활동하고 있고 교포사회는 13, 00여 명이 되나 아직 제대로 자리를 잡고 있지 못하고 있지만, 교민 2세가 공부를 잘하면 프랑스 사회로 진입이 쉽기 때문에 앞으로 그 분야로 노력하려고 하며, 입양인 출신이 많습니다. 앞으로의 한. 불 관계는 전망이 밝고, 외규장각 문제는 150여 년이 되었으니 시간을 가지고 풀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돌려받아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이상입니다. 감사합니다.
*대사님 말씀 중에 외규장각 문제를 논하시며 150년이나 된 것을 돌려받겠다고 하시는데 내 생각은 프랑스나 모든 유럽 문화가 약탈한 문화인데 우리나라 것만 돌려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150년 동안 다른 나라 약탈 문화와 잘 어우러져 보관되여세계 만방에 우리나라 이름으로 알려지고 있는 문화유산을 꼭 돌려 받아와서 그만한 보관과 홍보를 할 수 있는 것인지 묻고 싶었다. 세계 질서를 흔드는 그것보다는 앞으로의 문화 유산 지키는 일에보다 많은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른 분들의 질문과 토론으로 시간이 없어서 나는 하고 싶었던 말을 가슴에 담고 와서 여기에 풀어 놓는다. 독자님들 생각은 어떠신지요?
나폴레옹의 무덤이 노란 황금 지붕 밑에 있다
돔 성당 내부(나폴레옹 무덤 성당 그 밑에는 돔 성당도 있다.
***거리에 건물 등은 모두 나무 대문이 있었다. 그건 150년 전 마차가 교통수단이 있을 때 마차가 집에 드나들던 문이란다 그리고 담배 콩초나 작은 쓰레기를 거리에 그냥 버리고 있었다. 그건 중수로 물로 물청소를 하기 때문이었다. 자동차 주유는 거의 스스로란다 파리 가의 16번지가 부촌이고 서울 공원도 생겼다. 150년 전 나폴레옹의 조카가 17년 동안 도지사를 하면서 도시 계획하여 만든 지금의 파리는 놀라웠다, 9.11테러 후 거리의 쓰레기통은 모두 훤히 보이는 비닐봉지로 바뀌었단다. 생제르맹 떼라는 거리는 명품 상들이 모이는 곳이고 샤프트가 즐겼던 뒈마고 카페가 있는데 문학 카페라도 한다.
생제르맹 떼거리에서 그런데 헤르만 헷세는 하도 가난해서 이 문학 카페를 들어가지 못하고 매일 사르트르가 나타나는 시간에 밖에서 서성거렸다고 전해온다. 센강 13번 교각에서 다이애나 왕비가 운명 다이애나 왕비의 애인이 운영했다는 리치 칼턴 호텔과 세계 제일이라는 끌레옹 호텔도 보았다. 프랑스는 13일을 제일 싫어한다고 합니다. 파리에 3일 동안이었지만 본 것이 많아 긴 일정 같았습니다. 다음은 이탈리아 로마 입니다. 너무 길었습니다. 읽어 주신 분께 감사한 마음 보내 드립니다 요즘 프랑스 내에서 절반이 넘는 대학들이 휴교를 한 채 CPE에 대항하기 위하여 데모하고 있었다 이 데모 때문에 파리 일정을 요리조리 바꾸어가며 다녔다
고용에 관한 법률.
처음 2년 동안 해고를 자유롭게 해서 더 많은 사람에게 일자리가 돌아가도록 하자는 게 법을 만든 측의 주장입니다. 문제가 되는 것도 그 2년간의 해고 내용 때문입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말이 많이 나온 비정규직이라는 고용형태를 2년간 인정하겠다는 것으로 봐도 됩니다.
현재 프랑스의 실업률은 상당히 높습니다. 그래서 그걸 극복하려는 방안이라면서 내놓은 것인데요, 우리에게 익숙한 노동시장 유연화라는 것을 적용하겠다는 말이죠. 이미 시장주의를 숭배하는 많은 한국 사람들은 그런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여전히 사회민주주의적 성향이 강한 프랑스에서는 용납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반발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받아들이면 점점 사람들의 생활과 노동조건이 나빠질 것이고, 더는 복지제도를 유지하는 것도 어려워진다.….
나폴레옹 보나팔트
샤크레퀘르 성당 Basilique du Sacre-Coeur (The Bascilica of Sacred Heart of Jesus)
1876년부터 40년에 걸쳐 지어진 이 사원은 비잔틴 양식으로 몽마르트 언덕에 상징처럼 위치해 있다.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패한 프랑스가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성금을 모아 지어졌다. 사원 앞에 서면 파리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여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으며 걸어서 올라갈 수 있는 계단에서 자연스럽게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중앙에는 높이 83, 넓이 50m의 거대한 돔이 있다. 이곳의 지하 묘실에는 성전 건축자금을 헌납한 르 장틸의 심장이 보관되어있다고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