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밭
윤용하곡
글 김광한
보리밭 사이길로 걸어가면
뉘 부르는 소리 있어 나를 멈춘다
옛 생각이 외로워 휘파람 불면
고운노래 귓가에 들려온다
돌아보면 아무도 보이지 않고
저녁놀 빈 하늘만 눈에 차누나
<박화목 詩>
어제 제 2회 국민가곡제가 열린 영등포 아트센터에서 테너 하만택이 보리밭을 불렀다.어느 누가 불러도 지위의 고하를, 연령의 대소를 불문하고 사람들의 마음에 잔잔한 감동과애련한 상심의 마음을 만들어주고 있는 이 노래, 하만택은 그 성량이 풍부하고 그 표정이 관객을 마치 5월의 보리밭으로 데려가는듯한 모습과 같았다. 윤용하 작곡 박화목의 시로된 이 노래는 이제 국민 가곡으로 자리를 잡았다는 생각이다.60년전 한국 전쟁 당시 부산피란 시절에 박화목과 윤용하는 자주 술집 등에서 만나 희망잃은 국민들에게 즐겨부를 수 있는 노래를 만들기로 했던 것이 바로 박화목의 시 <옛생각>에 윤용하가 곡을 붙은 노래가 악보에 "보리밭"이 된 것이다.
곡(曲)과 시(詩), 그것은 바늘과 실과 같이 한몸으로 된 두 동체(同體)인 것이다.윤용하 곡에 박화목의 시가 아니고 요즘 흔히 따발총처럼 이어지는 의미 모를 즉흥적 가사였다면 보리밭이 지금까지 이어졌을까.독실한 가톨릭 신자이면서 구교집안, 특히 가난한 옹기장이의 아들로 태어난 윤용하,독학으로 음악 공부를 하다가 중국 신징(新京) 음악학교에서 기초를 닦고 평톈(奉天)에서 음악활동을 했다.일제 말기 징용에서 탈출하여 간도에 피신, 용정과 함흥 영생여자 중학교에서 교사로 있다가 월남했다.
서울의 동북중학교, 한양공고 등에서 음악 선생을 하면서 수많은 노래를 작곡 했다.오페라, 칸타타,가곡, 그리고 진군가, 광복절 노래 등등,그의 일생은 음악을 사랑하고, 국가를 사랑하고 그리고 친구와 가족을 사랑하고 하느님을 섬긴 섬김의 일생이었다.지독한 가난과 병고를 극복하지 못한체 43세란 젊은 나이로 세상을 하직한 그에게 음악은 생명이자 삶의 희망이었다.그가 떠난지 반세기가 다 되어가지만 그가 곡을 만든 보리밭은 수많은 성악가들이 이름을 달리하면서 계속 불리워질 것이다.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뉘 부르는 소리 있어
나를 멈춘다.
보리고개가 있던 시절, 허기진 배에 보이는 것은 모두 먹을 것밖에 없었던 그 시절, 누가 부르는 것같아 뒤 돌아보면 보이는 것은 빈 하늘뿐, 그 부르는 사람은 혹은 애인일 수도, 혹은 먼곳으로 간 벗일 수도,그리고 한 세상을 정과 사랑을 쏟아주던 세상에서 물러난 누님, 부모님일 수도 있다. 윤용하와 박화목은 이제 세상에서 물러났지만 그분들이 남긴 것은 아름다운 시와 곡이다.윤용하가 바라보았던 세상, 그 세상속에서 곡을 만든 그 곡들을 지금 우리들이 부르고 있다.
성악가가 부르고 나같은 지독한 음치가 따라 부르고, 그리고 노래와 곡에서 의미를 찾아 눈물 젖게 하는 것, 그 모두가 그가 우리에게 준 귀한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성악가는 자신이 노래하게 해준 곡들의 주인,작곡가와 작사가들에게 고마움과 함께 잠시 묵념을 한 다음 노래를 부른 다면 천상의 그분들이 얼마나 기쁠까? 예술가들은 그 당장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먼 훗날 우리들의 후세들에게 선물을 나눠주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이다.아름다운 곡과 곁들인 시와 그리고 아름다운 이야기, 눈에 보이는 범접치 못할 많은 메시지, 이런 선물 말고 더 고귀한 선물이 또 어디있는가. 고통속에 잉태한 하나의 작품마다 감격과 눈물이 곁들인 그것들, 평생을 아름다운 곡들을 찾아 방황을 한 우리들의 작곡가, 백발의 이안삼 선생,그분이 작곡한 모든곡들이 마침내 전 세계 영혼이 황폐한 모든 사람들의 가슴에, 사랑의 샘물로 전환이 되어 흘러넘칠 때 그분의 일생은 결코 헛되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첫댓글 보리 밭 사잇 길로~ 걸어가면~
아침 일찍 뉘 부르는 소리 있어~